한양여대 기은경 감독, ‘대승’이 더 힘든 이유는?


[스포츠니어스|합천=조성룡 기자] “이런 경기가 제일 힘들어요.”

25일 합천에서 열리고 있는 제 17회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 대학부 조별예선 한양여대와 전주대의 경기. 이 경기는 정말 이상했다. 딴짓을 하고 고개를 들면 센터 서클에 공이 항상 가 있었다.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킥오프를 할 때마다 한양여대 선수들은 하프 라인 근처에 8명 가량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주심의 휘슬만 울리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상대 진영으로 뛰어갔다.

한양여대는 시종일관 전주대를 상대로 맹공을 퍼부었다.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의 ‘닥공’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전반전에만 10골을 넘게 퍼부었다. ‘이 정도면 40골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한양여대는 16-0을 만들고 나더니 다시 정상적인 포메이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체력을 아끼며 여유 있게 경기를 운영했다. 최종 경기 결과는 18-0, 한양여대의 대승이었다.

경기 후 한양여대 기은경 감독을 만나 대뜸 물어봤다. “도대체 한양여대의 포메이션은 무엇이었나요?” 기 감독은 웃으면서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사실 한양여대의 기본 포메이션은 4-4-2입니다. 그런데 이번 전주대전은 골을 많이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전주대는 전문 선수들이 아닌 일반인들로 구성된 팀입니다. 그래서 정말 공격에 집중하려고 포메이션에 신경쓰는 것보다 선수들을 무조건 공격적으로 배치했어요.”

이번 대회에서 한양여대는 고려대, 전주대와 같은 조에 편성됐다. 상위 두 팀이 토너먼트 라운드에 진출한다. 조 1위와 조 2위의 무게감은 확연히 다르다. 조 2위는 무조건 6강전에 진출해야 하지만 조 1위는 추첨 결과에 따라 4강전 직행 티켓을 얻을 수 있다. 한양여대의 입장에서는 조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유리했다. 전주대는 아마추어 팀이다. 그렇다면 한양여대는 고려대를 꺾어야 1위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공교롭게도 한양여대의 경기가 있기 전 고려대와 전주대는 이미 맞붙었다. 여기서 고려대는 15-0 대승을 거뒀다. 한양여대와 고려대의 ‘사실상 1위 결정전’은 28일 열린다. 그 전에 한양여대는 전주대를 만났다. 기 감독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만일 패한다면 미련 없이 조 2위고 승리한다면 확실한 조 1위지만 비길 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기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과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목표를 16골로 잡았다. 골 득실에서 고려대를 이긴다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체력을 최대한 아끼는 것도 이번 경기의 목표였다. 경기 도중 기 감독은 “체인지(전환)”를 외쳤다. 그러자 공격수와 수비수들이 자리를 맞바꿔 골을 넣었다. “공격수들이 16골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면 체력 소모가 심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 또한 주문했죠.”

손쉽게 대승을 거둔 한양여대지만 기 감독은 “오히려 이런 경기가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저희가 두 번째 경기였기 때문에 고려대 상황을 보며 대응할 수 있었지만 만일 저희가 첫 번째 경기였다면 더욱 난감했을 겁니다. 그리고 선수들의 동기부여 문제도 있어요. 그저 ‘쉬운 경기다’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경기를 어렵게 풀기도 합니다. 이번 경기 앞두고도 그런 모습이 조금 보여서 몸 풀 때 혼 많이 냈어요.”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따뜻하다. 기 감독은 경기 도중 훈훈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전주대 선수의 스로인이 미숙하자 뒤에서 알려주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쑥쓰럽게 웃은 기 감독은 “전주대 같은 팀은 비록 아마추어지만 열정 있는 팀이거든요. 승부의 세계에서는 냉정한 법이지만 이런 팀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라면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스로인 가르쳐준 것은 작은 것입니다. 그들이 더 좋은 팀이 된다면 여자축구도 함께 발전할 수 있겠지요”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제 고려대와의 경기를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기 감독에게 장난 삼아 한 마디를 던졌다. “골키퍼는 숙소 돌아가서 샤워 하나요?” 이날 한양여대 골키퍼는 단 한 차례도 공을 막을 일이 없었다. 그러자 웃은 기 감독은 “아무래도 골키퍼 본인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라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골키퍼가 쿨링 브레이크 타임에도 벤치로 오지 않더라고요. 아마 샤워 할까말까 고민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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