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이 날씨에 축구장 극한직업 ‘탈 알바’ 체험기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축구장 최고의 극한직업은 무엇일까.

요즘 참 덥다. 최근 대한민국은 기록적인 폭염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이런 날에는 축구장 가기도 망설여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K리그는 계속 열린다. 대신 관중의 편의를 위해 시간을 조정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문제는 그래도 덥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쉽게 이길 수 없다. 관중도 덥고 선수도 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스포츠니어스>답게 이런 날씨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었다.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무릎을 탁 쳤다. “맞다. ‘탈 알바’가 있었지!” K리그 경기장에서는 마스코트로 분장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멀리서 봐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무거운 탈과 의상을 입고 경기 시작 전부터 종료 후까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때로는 ‘초딩’들의 공격 또한 웃으며 견뎌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여름이다. 정말 이런 ‘극한 직업’은 없어 보였다.

생각난 김에 K리그2 FC안양 구단 사무국에 전화를 걸었다. 어릴 적 꿈과 모험의 나라였던 ‘롯데월드’의 추억을 되살리며 너구리 탈을 써보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스포츠니어스> 조성룡입니다. 제가 ‘탈 알바’ 한 번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예상 외로 구단은 흔쾌히 수락했다. “항상 고생하던 친구 좀 쉬게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이왕 하시는 김에 당장 오세요. 이틀 뒤인 21일 홈 경기에 다섯 시까지 오세요.”

구단 관계자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캐릭터 탈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롭게 외쳤다. “괜찮으니 열심히 굴려 주세요. 열정을 다해서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틀 뒤가 될 때까지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실 내 입은 상당히 방정 맞다는 것을. 그렇게 내 인생 평생 후회할 일이 시작됐다.

기록적인 폭염, 호기롭게 탈을 쓰다
21일 아침 눈을 뜨자 집 밖에는 매미가 신나게 울고 있었다. 덥다는 증거다. 딱 봐도 더워 보였다. 슬슬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사진을 찍기 위해 동행한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대표도 걱정 어린 한 마디를 거들었다. “정말 괜찮겠어? 지금이라도 안한다고 하는 게 어때?” 하지만 오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어디 한 번 해봐. 내가 ‘돌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었네.”

오후 다섯 시에 안양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이날은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다. 안양시도 마찬가지였다. 차에 내리고 스마트폰으로 기온을 확인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해가 점점 지면서 한낮에 비해 기온이 2도 가량 내려갔다. 옆에서 김 대표는 “너 살았다. 시원하게 하겠네”라고 말하며 쭈쭈바를 빨고 있었다. 그 시각 안양시의 기온은 35도에서 2도 내려간 33도였다. 퍽이나 시원한 날씨였다. <스포츠니어스>를 반갑게 맞이한 홍보팀 문병헌 사원은 내게 말했다. “일단 밥부터 드세요. 밥 먹어야 할 수 있어요.”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고 있자 구단 직원들이 하나 둘 다가와 “괜찮겠냐”며 걱정한다. 군 입대하는 날에도 이런 걱정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괜히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해 “걱정 마시고 있는 힘껏 굴려달라”는 당부를 했다. 정말 그 때의 나는 미쳤다.

잠시 후 안양 직원 두 명이 마스코트 탈을 들고 왔다. 한 명이서는 쉽게 나르기 어려운 사이즈다. 나는 이제부터 기자가 아닌 안양의 마스코트 ‘바티’로 변신할 예정이었다. ‘바티’는 너구리다. 안양종합운동장 근처에는 학의천이 흐르고 있다. 이곳에 많이 서식하고 있는 야생 너구리에서 착안한 마스코트다. 너구리답게 털이 많다. 우리집 겨울용 이불보다 많아 보였다.

먼저 탈만 써봤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시야가 급격히 좁아진다는 것만 뺀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전까지 ‘바티’ 역할을 했던 안양의 펀 크리에이터(대학생 마케터)는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꼭 휴식을 많이 취하시고 수분을 많이 섭취하세요. 오늘 같이 더운 날은 무리하다가는 정말 큰일 납니다. 제가 ‘바티’를 하면서 몸무게가 9kg 가량 줄었어요. 처음에는 무리하다가 탈진도 했어요. 마스코트 탈을 쓰면 한겨울에도 따뜻한 게 아니라 더워요. 저는 헬스장에서 몸을 만들면서 이 일을 해요. 병원에서 수액도 맞아봤고요. 특히 머리가 상당히 무겁기 때문에 목에 상당한 무리가 와요. 반드시 시작 전에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야 합니다.”

한 여름에 입어야 할 의상이 수북하다 ⓒ 스포츠니어스

본격적으로 의상을 입었다. 일체형으로 되어 있는 옷을 입고 그 위에 구단 유니폼을 입는다. 그 때부터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문 사원은 계속해서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있었다. “관중들과 스킨십을 많이 하세요. 아마 사진 찍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올 겁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응해주세요. 준비 다 하면 출발하시면 됩니다.” 이날 일정은 꽤 빡빡했다. 경기 전부터 경기장 앞 광장에서 시민들과 만나다가 가변석 입구 앞에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 행사에 참여한다. 그리고 킥오프 직전 공식 행사에 참여하고 경기 중에는 관중석을 돌아다닌다. 경기 종료 후에는 선수들과 함께 찾아온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광장 앞에서 관중들과 기념 촬영을 하며 일정을 마무리한다. 약 세 시간 가량 소요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해볼 만 하겠는데요? 바로 출발할게요.”

먼저 털이 엄청나게 많은 옷을 입는다 ⓒ 스포츠니어스
‘바티’로 변신 완료 ⓒ 스포츠니어스

선수보다 인기 많은 ‘초통령’의 몸 속은 땀 투성이
호기롭게 경기장을 나섰다. 그 때부터 숨막히는 더위가 찾아왔다. 경기장 옆에서 판촉 행사를 하던 아저씨들은 “엄청 덥겠다”고 혀를 내두르면서 “극기훈련!”을 외쳤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제 고작 20분 정도 지났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김 대표가 알려줬다. “3분 지났어.” 광장에 서있자 어린이들이 하나 둘 “바티”를 외치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인사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때로는 포옹도 했다. 조 기자가 아닌 ‘바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민들은 생각보다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머 바티, 그 동안 잘 있었어?” 다정한 한 마디에 나 또한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내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다.

광장을 활보하고 가변석 입구에서 선수들과의 하이파이브 행사에 참여했다. 여기서 ‘바티’의 인기는 확실히 드러났다. 선수 두 명과 ‘바티’가 나란히 서 있자 어린이들은 선수들 대신 내게 달려왔다. 한 선수는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와 진짜 나보다 바티가 인기 더 많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슬쩍 물어봤다. “그럼 우리 바꿀래요?” 그러자 선수는 씩 웃더니 한 마디 던졌다. “아뇨. 그냥 계속 하시던 거 하세요. 죽어도 안바꿀래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을 때였다. 이미 내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가고 있었다. 땀이 흘러 눈을 뜨지 못할 정도가 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쉬었다 올게요.”

아이들은 ‘바티’를 격하게 환영했다 ⓒ 스포츠니어스
짬을 내 김대욱의 사인도 받았다 ⓒ 스포츠니어스

조용히 미디어실에 들어와 탈을 벗었다. 이미 머리는 땀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몸의 모든 부위에서 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기했다. 내 몸 속에 이렇게 많은 땀이 있을 줄이야. 땀을 흘리면 상쾌해야 하지만 겨울 이불보다 더 두꺼운 의상이 상쾌함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때 펀 크리에이터의 말이 생각났다. “수분을 많이 섭취하세요.” 일단 물부터 벌컥벌컥 들이켰다. 생수 한 병을 다 비웠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미디어실은 천국이었다. 하지만 한가롭게 쉴 수는 없었다. 바로 다음 행사가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바티’가 활약할 때가 온 것이었다. “자 갑시다!” 호기롭게 외치고 미디어실을 나섰다. 하지만 머리가 걸렸다. 아직 ‘바티’가 되려면 좀 더 적응이 필요했다.

아뿔싸 ⓒ 스포츠니어스

시장님, 신형 탈 하나 사주세요
이날 안양종합운동장은 분주했다. 새로 시장에 당선된 최대호 안양시장이 경기장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의원들도 선수단 격려를 위해 참석했다. 게다가 안양 전수현 골키퍼의 100경기를 축하하는 행사도 열렸다. 나의 미션은 한 가지였다. 최대한 많은 사진에 ‘바티’를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홍보팀 문 사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선수단 입장 전까지 시의원들 도열해있는 곳 옆에 서계시다가 행사가 시작 되면 사진 찍을 때 옆에 계시면 됩니다.” 땡볕이 내리쬐는 트랙에 서 있으란 이야기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조용히 시의원들 옆에 자리했다.

내가 다가가자 시의원들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더운데 정말 고생이 많네요.” 한 시의원은 해줄 것이 없다면서 입으로 내게 바람을 불어주기도 했다. 내심 고마웠다. 나의 고생, 아니 ‘바티’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분명 이 모습을 본 시의원들이 추경 예산에 ‘바티 마스코트 신규 탈 제작’ 비용을 편성해줄 것 같았다. 새로운 탈 제작은 결코 쉽지 않다. 한 세트 당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요즘 신형 탈은 머리 안에 선풍기도 있다던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선수단 입장이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전수현의 100경기 출전 기념식에 얼굴을 들이밀었고 선수단 에스코트 어린이들과 시 관계자들의 기념 촬영에도 함께 했다. 없었던 자신감이 샘솟았다. 다 탈을 쓴 덕분이었다.

전수현 선수 죄송합니다 ⓒ FC안양 제공

시의원들은 내가, 아니 ‘바티’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관중석으로 이동하기 전 나를 부르더니 다시 한 번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제 그들의 마음은 거의 사로잡은 것 같았다. 최대호 시장의 마음만 사로잡으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시축을 하고 돌아오는 최 시장에게 다가갔다. “시장님, 새로운 탈 좀 사주세요”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바티’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그 사이에 최 시장은 유유히 사인볼 한 개를 들고 관중석으로 올라가고 말았다. 그렇게 안양 ‘탈 알바’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나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아쉬워 할 시간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관중석을 돌아야 했다.

“시장님, 예산 좀…” ⓒ 스포츠니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을 벗을 수 없었다
먼저 트랙 위 관중석을 돌았다. 서포터석과 일반석이 자리한 곳이다. ‘바티’의 인기는 역시 폭발적이었다. 손 한 번 흔들면 어린이들과 중학생들이 환호하며 인사했다. 연예인이 된 기분이었다. 마음은 흐뭇했지만 몸은 그와 상관 없이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도 쏟아졌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줬다. 그런데 갑자기 한 어린이가 물었다. “근데 왜 손가락으로 욕해요?” 아뿔싸, 나의 실수였다. ‘바티’는 손가락이 네 개다. 그래서 장갑을 낄 때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겹쳐서 착용해야 한다. 이 사실을 까먹고 평소처럼 검지와 중지만 폈다. 본의 아니게 손가락 욕처럼 보인 것이다. 잽싸게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제서야 ‘브이’ 포즈가 나왔다.

경기를 집중해서 보던 서포터들도 ‘바티’가 오니 환영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팬이 따끔한 한 마디를 던졌다. “바티야, 왜 네 여자친구 나리는 안왔어? 너 바람폈지?” ‘나리’는 지난 6월 선정된 안양의 새로운 마스코트다. ‘학의천에 산책 나갔던 바티가 여자친구를 데려왔다’는 컨셉 하에 만들어졌다. 그의 말대로 바티는 나리와 함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날은 나리가 없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대신 바람을 피웠다는 의심은 나의 몫이었다. 나는 ‘바티’가 아니지만 이날은 ‘바티’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죄송했다. 정말 억울하고 죄송했다. “바람 핀 적 없습니다”란 말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바티’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동심을 지켜줘야 한다.

탈을 쓰면 없는 애교도 생긴다 ⓒ 스포츠니어스

서포터석을 지나 계속 걸었다. 여전히 인사와 사진 촬영은 쏟아졌다. 점점 힘들고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카메라 세례를 받는 연예인들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일부 어린이들과 중학생들은 내 뒤를 졸졸 쫓아오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나마 탈 덕분에 내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 때였다. 한 무리의 남자 중학생들이 달려왔다. “우와 탈 알바다!” 그들은 내게 “보이루”라고 인사하더니 질문을 쏟아냈다. “얼마 받고 일해요? 안더워요? 대박! 기분 더럽죠?”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중학생들은 나를 거칠게 만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툭툭 치고 꼬리를 잡아 당기고 엉덩이를 찌르기도 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탈을 벗거나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저 멀리 수많은 어린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동심을 무너뜨릴 순 없다. ‘바티’가 알고보니 시커먼 아저씨라면 그들은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간신히 그들을 제지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그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움직여지지 않는 발을 힘겹게 옮기며 걸어가자 뒤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와, 진짜 존X 불쌍하다.” 그러게 말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 고생을 나는 사서 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설이 비교적 낙후된 안양종합운동장은 계단이 높고 미끄러워 위험했다. 걷기가 더욱 힘들었다. 겨우 구단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본부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때 노트북은 덮고 탄산음료와 아이스크림을 펼쳐놓고 먹던 김 대표가 나를 보더니 한 마디 던졌다. “잘 갔다왔어? 취재 왔는데 기사는 써야지.” 나는 ‘탈 알바’를 하다 말고 기자석에 앉아 기사를 써야 했다. 그렇게 힘겨운 전반전이 끝나고 나는 미디어실로 돌아와 에어컨을 쐬며 겨우 쉴 수 있었다. 이미 온 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조금씩 어지럽기 시작했다.

머리가 땀으로 저렇게 흥건해질 수 있다니 ⓒ 스포츠니어스
여러분, <스포츠니어스>가 이런 곳입니다 ⓒ 스포츠니어스

‘초딩’들의 습격,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
“전략을 바꾸겠습니다.” 하프타임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안양종합운동장의 관중석은 ‘바티’가 이동하기에 좁고 위험했다. 그래서 가변석을 공략하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이 얘기를 듣던 펀 크리에이터는 내게 말했다. “일단 쉬기나 하세요.” 이제 내게 패기란 없었다. 그래서 얌전히 그의 말을 들었다. 하프타임에 잠시 털로 뒤덮인 의상도 벗었다. 이미 속옷까지 완전히 젖은 상태였다. 하지만 끝나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여전히 기온은 30도 안팎이었다. 에어컨을 쐴 수 있는 실내는 천국이었다.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5분 가량이었다.

‘말잇못’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기 좋다 ⓒ 스포츠니어스

원래 달콤한 시간은 빠른 법이다. 순식간에 15분이 지나갔고 나는 다시 옷을 입고 나가야 했다. 체력 저하를 걱정한 펀 크리에이터는 에스코트를 자청했다. 이번 코스는 트랙을 돌면서 가변석에서 팬 서비스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나마 한결 편했다. 계단이 없었고 관중석 의자를 피해 다녀야 한다는 불편함도 없었다. 내가 터벅터벅 걷자 펀 크리에이터는 다가와서 속삭였다. “손 흔드세요. 관중석에서 지금 ‘바티’ 보면서 손 흔드는 어린이들 정말 많아요.” 그의 말은 헬스장 트레이너보다 무서웠다. 인기인의 삶은 정말 피곤했다. 운동장 반 바퀴를 돌면서 나는 계속해서 위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야 했다. 팔은 무겁고 대형 탈 때문에 목도 아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드디어 가변석에 입장했다. 펀 크리에이터는 내게 조언했다. “가변석 앞에 트랙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해보세요. 관중들이 사진도 많이 찍을 겁니다. 특히 여기는 어린이들이 많아서 사진 요청을 많이 할 겁니다. 최대한 많이 응해주세요. 손도 계속 흔드시고요.” 심호흡을 하고 가변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한 어린이가 외쳤다. “바티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문화 충격에 빠졌다. 나를 향해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환영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들에게 ‘바티’는 그저 즐거운 놀잇감이었다.

수없이 달려온 어린이들은 나를 둘러싸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허리를 때리면서 “이래도 안아파요?”라고 묻는 어린이도 있었고 웃으면서 뒤통수를 가격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 볼 수 없었다. 나는 ‘바티’의 눈과 입을 통해서만 밖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촘촘히 가려져 있어 쉽지 않다. 시야가 좁은 상황에서 나는 그저 맞고만 있어야 했다. 성난 군중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옆에서 펀 크리에이터가 “길 좀 비켜달라”고 했지만 그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내 탈을 벗기려고 달려들었다. 앞에서는 탈 속의 내 얼굴을 보겠다고 눈과 입의 작은 구멍에 무언가를 찔러넣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 스포츠니어스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다. 한 손으로는 머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꼬리가 떨어지지 않게 꽉 움켜쥐었다. 그저 나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버텨내야 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상황은 진정됐다. 나 또한 정신을 수습하고 가변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펀 크리에이터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최근에 홈 경기가 별로 없었고 지난 경기에서는 비가 왔어요. 그래서 바티가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날이거든요. 게다가 오늘 따라 아이들이 정말 많이 왔네요.” 하지만 위로를 귀담아 들을 정신이 없었다. 이미 한증막과 같은 탈 속에서 세 시간 가까이를 보냈고 어린이들의 습격에 점점 혼미해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정희웅의 골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90분은 끝났다.

은성수의 한 방, 고정운 감독의 동정
이날 경기에서 안양은 1-0 승리를 거뒀다. 정희웅의 선제 결승골로 서울이랜드를 꺾고 최하위 탈출에 성공했다. 안양은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선수단이 원정석을 제외한 세 구역을 돌면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한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신나게 선수단을 따라갔다. 어차피 그라운드 안에는 관중들이 들어올 수 없었다. 어린이들과 중학생들이 나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이제는 맞을 일이 없겠지’라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선수단을 따라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뒤통수에 다시 한 번 ‘퍽’하고 충격이 전해졌다.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는 어리둥절했다.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친 것이었다. 알고보니 승리로 기분이 좋아진 은성수가 나를 때린 것이었다. 친근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대를 더 적립한 셈이었다. ‘반드시 다음에 기자회견장에서 은성수를 만나 물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경기장 광장으로 이동했다. 이날의 마지막 미션인 광장에서 사진 찍기가 남아 있었다.

오랜만에 승리를 거둔 안양의 홈 경기장은 훈훈한 분위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바티’와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해 찾아왔다. 사진을 찍고 고개를 돌리면 또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바티’와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정신 없이 포즈를 취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구단 관계자가 내게 말했다. “이제 그만 하시고 기자회견장으로 가셔야 합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그는 말했다. “김 대표님이 조 기자님 기자회견 참석해야 한다고 빨리 보내달라네요.”

‘악덕업주’ 김 대표 덕분에 나는 탈만 겨우 벗은 채 기자회견장에서 안양 고정운 감독의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고 감독은 나를 바라보더니 껄껄 웃었다. “오늘 이거 했던 거야?” 하지만 나는 그 때부터 ‘바티’가 아닌 조 기자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마스코트 의상을 입은 채 나는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다음주 FA컵이 있는데 선수단 운용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로테이션 돌릴 겁니까?”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 감독은 내게 물었다. “시급은 많이 준대?” 땀에 완전히 젖은 내가 불쌍했던 모양이다. 그의 질문에 웃으면서 답했다. “체험이라서 무급입니다.” 이제 정말로 나의 임무가 끝났다.

악덕 업주의 노동 착취 현장 ⓒ 스포츠니어스

이어지는 폭염처럼 여전히 ‘탈 알바’는 계속되고 있다
모든 의상을 벗자 세상이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젖어버린 옷을 갈아입고 경기장을 나서자 열대야의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이것마저 시원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덥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켰다. 워낙 몸에 열이 많아 에어컨을 달고 사는 나지만 갑자기 에어컨이 춥게 느껴졌다. 그래서 집에 가는 내내 창문을 꼭 닫고 에어컨을 껐다. 덕분에 김 대표는 조수석에서 열대야의 더위에 혼자 고통받아야 했다. “꼭 그래야겠니”를 연발하면서.

정말로 이날 ‘탈 알바’ 체험은 극한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내 몸무게는 단 세 시간 만에 3kg 가량 줄어들었다.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하루였다. 숀 리도 이렇게 단시간에 살을 빼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탈 알바’는 계속되고 있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있지만 축구장이 아닌 곳에서도 수많은 ‘탈 알바’들이 무거운 탈을 쓰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은 시급을 받으면서 그들은 고된 육체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때로는 정신적인 고통도 받는다.

단 세 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느꼈다. 하나의 추억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그저 ‘불쌍한 탈 알바’로 보며 무시하는 냉소적인 시선이 공존했다. 언젠가 자식이 생긴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꼭 훌륭한 사람이 되서 ‘탈 알바’가 노동 강도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돌아오는 K리그 경기에도 전국 각지의 경기장에서 ‘탈 알바’가 구단 마스코트로 변신해 구단의 얼굴이 되어 팬들을 맞이할 것이다. 열심히 일하느라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만 탈을 벗어야 하는 그들을 위해 물 한 잔 건네지는 못하더라도 따뜻한 미소라도 격려 한 마디 건네주는 것은 어떨까.

※ 황당한 취재 요청에도 흔쾌히 승낙하며 적극 협조해주신 FC안양 관계자 여러분과 ‘바티’를 향해 따뜻한 격려와 응원의 말씀을 건네주셨던 수많은 안양 시민들, 그리고 축구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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