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부 창단 이후 25년 만에 전국무대 결승에 오르는 포항제철고 선수단.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목동야구장=김현희 기자] 녹색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고교야구 선수들의 뜨거운 승부가 이제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제73회 청룡기 쟁탈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겸 2018 후반기 주말리그 왕중왕전(조선일보, 스포츠조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동 주최, 이하 청룡기 선수권) 4강 진출팀이 결정된 가운데, 22일에는 40개 참가교 중 단 4학교만이 살아남아 결승 진출자를 가리는 준결승전이 진행됐다.

네 팀 중 당초 대회 전 우승 후보나 다크호스로 거론됐던 학교는 단 한 학교 뿐이었다. 그만큼 이변도 많았고, 그 안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4강전 두 번째 경기로 맞붙은 마산용마고와 포항제철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승후보 아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 할 뿐"

양 팀은 당초 우승 후보에도, 다크호스에도 언급조차 되지 못했던 학교였다. 되려 반대였다. 매 경기를 결승전처럼 생각하고 뛰어야 했다. 그랬기에 어느 시점에서 탈락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양 교는 우승 후보나 다크호스로 언급되었던 학교들을 차례로 이기고 4강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압도적인 에이스를 보유한 것도 아니었고, 타선의 힘이 지난해를 능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양 교의 공통분모가 있다면 그것은 짜임새와 믿음의 야구, 두 가지였다.

양 교의 공통분모는 준결승전 제2경기의 변수이기도 했다. 두 학교 중 어느 학교의 타선이 더욱 짜임새가 있느냐, 그리고 투수가 부족한 각 팀의 사정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앞서 열린 광주동성고 vs 장충고전과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변수는 그대로 그라운드에 드러났다.

투수가 없는 가운데서도 양 팀 감독은 '짜낼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 해서 마운드에 선수들을 올렸다. 특히, 마산용마고는 32강전에서 다소 제구력에 애를 먹었던 1학년생 이기용을 선발로 투입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32강전 모습을 떠올린다면, 이기용이 조기 강판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기용은 105개의 한계 투구수를 기록하는 동안 6과 1/3이닝을 소화, 포철고 타선을 5피안타 4실점(3자책)으로 막았다. 1학년생이 이렇게 마운드에서 힘을 낸 결과가 이후 이충희-권태우 투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당초 조일현은 서울을 떠나 포항으로 유학올 때만 해도 투수로서의 재능도 빼어냈던 이였다. 그러나 타자로서의 능력이 더 출중, 현재 포철고 부동의 1번 타자를 맡고 있다. ⓒ스포츠니어스

그런데, 포철고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에이스 이형빈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김영직 감독은 윤찬과 노승제, 서준호 등으로 경기 중반까지 버틴 후 마지막에는 야수를 쓰겠다는 복안까지 이미 밝혔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7회부터는 중견수를 보는 조일현이 마운드로 투입되어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기도 했다. 결국 양 팀 모두 감독의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역투를 펼치면서 상대 타선에 최소 실점을 허용한 셈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양 팀의 승부는 정규 이닝에서 마무리되지 못한 채 연장 승부치기까지 가야 했다.

먼저 승부치기에 나선 포철고는 1사 2, 3루에서 6번 정재흠이 몸에맞는 볼로 나가면서 절호의 득점 찬스를 맞이했다. 그러나 후속 김정현이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아웃카운트만 늘어나게 됐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득점으로 10회 승부치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상대 투수 권태현이 유리한 볼카운트를 잡아 놓고도 대타 조하선에게 몸에 맞는 볼을 허용하면서 밀어내기로 1실점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1점이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었다.

곧바로 다음 승부치기에 나선 마산용마고도 1사 2, 3루 찬스를 맞았다. 여기에서 대타로 박범진이 등장하자 김영직 감독은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고의 사구를 지시한 것이다. 1사 만루 상황에서 7번 윤성주의 발이 느린 점을 감안, 내야 땅볼 유도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여지없이 맞아 떨어졌다. 윤성주는 2구만에 낮은 볼을 당겨쳐 3루 방면 땅볼을 만들었고, 이는 3루-1루로 이어지는 병살타가 되면서 순식간에 경기가 종료됐다. 김영직 감독으로서는 부임 이후 첫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에, 마산용마고 김성훈 감독은 경기 내용에서 이기도고 승부에서 졌다는 자책감 속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당초 포철고가 우승후보는 고사하고 8강 진출도 어려울 것이라 본 것은 선수단 구성에 있었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엔트리 구성에 애를 먹으며, 전국 각지에서 우수 인재들을 받아들이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절박함은 되려 선수단 사이에서 "부족해도 한 번 이겨보자!"라는 결의로 이어진 셈이었다. 특히, 투수를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마운드에 오른 조일현의 모습이 이 날 경기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강남중학교 시절 이후 꽤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함은 왠만한 투수들보다 훨씬 나아보였을 정도였다. 특히, 빠른 볼 없이도 느린 변화구로 마산용마고 타선의 조급함을 이끌어냈던 경기 운영 능력은 팀의 기둥이라 칭찬받을 만했다.

당초 조일현은 서울을 떠나 포항으로 유학올 때만 해도 투수로서의 재능도 빼어냈던 이였다. 그러나 타자로서의 능력이 더 출중, 현재 포철고 부동의 1번 타자를 맡고 있다. ⓒ스포츠니어스

마산용마고 역시 몇 차례 불운 속에서도 뒤지고 있는 경기를 동점으로 만드는 등 최선을 다했다. 다만, 1회 말 삼중살을 비롯하여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가는 장면이 너무 자주 발생했다는 점이 끝내 그들의 발목을 잡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여기에 대통령배를 앞두고 한 가지 과제를 안고 마산에 내려가게 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나오는 타선의 성급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침착함은 프로야구 선수들도 갖추기 어려운 덕목이지만, 이러한 경기를 통하여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도 학생 야구 선수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학습 효과인 셈이다.

※ 준결승 제2경기 최종 결과 : 포항제철고등학교 5-4 마산용마고등학교(10회 연장)

승리투수 : 조일현(4이닝 2탈삼진 무실점), 투구수 49개

패전투수 : 권태우(2와 2/3이닝 5탈삼진 1실점 무자책), 투구수 47개

eugenephil@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