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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이 어제(18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지난 9일 출국해 외국인 감독 후보들과 미팅 및 협상을 한 김판곤 위원장은 오늘(19일) 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회에서 이 면담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3개 소위원회(TSG 소위원회, 스포츠과학 소위원회, 스카우트 소위원회)가 작성한 러시아 월드컵 한국대표팀 리포트와 대표팀 코칭 스태프가 제출한 월드컵 참가 보고서를 토대로 신태용 감독에 대해 평가를 할 계획이다. 행보가 발 빠르다. 또한 협회와 김판곤 위원장의 신중한 언행도 좋게 평가하고 있다. 협회는 원활한 감독 선임을 위해 해외 감독 후보군 명단도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 중이다.

지지 보내지만 순서는 아쉽다

많은 부분에 지지를 보낸다. 각 언론에 해외 감독 후보군 추측도 자제해 달라고 할 만큼 협회는 이 일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장고를 거듭했으니 상당 부분 지지를 보낼 생각이다. 그들의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순서는 조금 잘못된 것 같다. 해외 감독을 다 만나고 온 뒤 신태용 감독의 러시아월드컵을 평가하는 건 온전한 평가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다. 김판곤 위원장은 여러 차기 감독 후보 중에 신태용 감독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신태용 감독으로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수 있지만 흔쾌히 후보군에 포함되는 걸 응했다고 전해졌다. 오는 31일부로 대표팀 계약이 만료되는 신태용 감독은 이제 다른 후보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여기에서 순서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김판곤 위원장이 해외로 떠나기 이전에 신태용 감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렸다면 어땠을까. 이 평가가 먼저 내려진 뒤 신태용 감독과 더 함께 갈지, 아니면 작별을 할지를 먼저 판단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신태용 감독에 대한 평가를 미뤄놓고 해외로 먼저 나가는 건 순서상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국인 감독과 생각보다 협상이 잘 진행됐다고 해 신태용 감독의 러시아월드컵을 박하게 평가할 수도 없고 반대라고 해 신태용 감독을 성과보다 더 후하게 쳐줄 수도 없다. 하지만 말하기 좋아하고 예측하기 좋아하는 주변에서는 외국인 감독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신태용 감독의 공과를 평가하면 괜한 오해를 할 수도 있다. 대표팀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너무 애매한 사이다. 뭔가 완벽한 이별을 하지 않아 놓고 다른 ‘썸’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나는 신태용 감독이 어려운 환경에서 성과를 냈다고 믿고 지금도 연임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언론에서는 연일 세계적인 명장이 후보라고 흘러 나오는데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명장을 데려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고 생각보다 명망이 부족한 감독을 데리고 오거나 지금 애매한 포지션에 있는 신태용 감독을 이제 와서 연임한다고 하면 대중의 질타는 더 커질 것이다. 차라리 해외로 떠나기 전에 딱 잘라 “신태용 감독이 고생하셨는데 재계약은 하지 않겠다”고 평가하거나 아예 “우리는 신태용 감독과 더 함께 할 것”이라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완벽하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다른 ‘썸녀’와 저울질하는 느낌이다.

이 여자친구와 헤어질 것이냐 말 것이냐는 이제 이 여자친구가 아닌 다른 '썸녀'와의 사이에 달렸다. ⓒ프로축구연맹

이별과 만남의 중간에 선 협회

이미 해외로 날아가 감독 후보들과 면담을 한 이상 다시 신태용 감독 연임을 선택하기는 어렵다. 그럴 경우 대중의 지탄을 피할 수가 없다. 차라리 처음부터 연임을 선택했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다 이야기를 해보니 그래도 신태용 감독이 낫겠다”고 해선 성난 이들을 더 화나게만 한다. 외국인 감독과 연봉이 왜 맞지 않고 그들의 제안을 왜 받아들일 수 없는지 상세하게 설명해도 성난 대중은 그냥 협회와 신태용 감독은 ‘짝짜꿍’하는 적폐(?)일 뿐이다. 황의조가 왜 J리그 경기에서 전반 13분 만에 교체됐는지 대중은 이유도 듣지 않는다. 팀 동료 퇴장으로 공격수를 어쩔 수 없이 빼야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냥 ‘와일드카드로 뽑힌 적폐 공격수가 전반 13분 만에 교체됐다’고만 받아들인다. 대중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지 않으면 그 이유는 들을 생각이 없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김판곤 위원장이 감독 후보자와의 면담 내용을 보고하고 신태용 감독에 대해서도 평가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신태용 감독이 연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협회가 새로운 감독을 찾는 과정에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임 감독도 후보군에 올려야 하는 상황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전임 감독을 평가하면서 동시에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자세로 나오는 건 아쉽다. 이건 신태용 감독에게도 굉장히 잔인한 일이다. 차라리 깔끔한 이별을 택하고 새로운 여자친구를 맞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물론 나는 여전히 지금 여자친구인 신태용 감독과 더 만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여자친구는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나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다. 다른 여자친구를 만나보고 그때 후회하며 소중함을 느끼면 늦는다.

협회는 스스로 부담을 안게 됐다. 이제 신태용 감독 연임을 결정하기에는 너무 큰 부담이 생겼다. 그렇다고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하면서 신태용 감독을 평가하는 것도 모양새가 그리 좋지는 않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대로 신태용 감독의 거취를 먼저 결정하고 해외로 떠나는 편이 더 좋았다. 그래도 우리나라 대표팀을 이끈 감독인데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너무 세워주지 않는 듯한 모양새다. 이제 와서 엄청난 여론과 비난을 무릅쓰고 신태용 감독을 연임하기에도 어려운데 신태용 감독의 러시아월드컵을 평가하며 외국인 감독과 동일선상에 놓고 감독직을 경쟁하라는 건 순서상의 문제가 분명히 있다. 차라리 모양새라도 좋게 작별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 놓고 그때 가서 “그 동안 신태용 감독이 고생 많았다”고 이,취임식을 하는 건 존중의 자세는 아니다.

이 여자친구와 헤어질 것이냐 말 것이냐는 이제 이 여자친구가 아닌 다른 '썸녀'와의 사이에 달렸다. ⓒ프로축구연맹

고심했으니 최선의 선택 내리길

물론 비난 받더라도 협회가 옳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밀고 나갔으면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바에야 그래도 100%의 전력도 아니었으면서도 고생하며 성과를 낸 신태용 감독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소원은 월드컵 16강보다도 제발 우리나라가 시간과 기회를 준 감독과 함께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걸 보는 것이다. 새 감독을 선임해 앞으로 5개월 뒤 열릴 아시안컵을 또 다시 테스트의 장으로 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봤을 땐 이도 저도 아닌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거면 그냥 신태용 감독으로 계속 밀고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협회가 지금은 해외 감독으로 눈을 돌린 상황에서 다시 신태용 감독을 신임하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협회가 감독 선임 문제를 놓고 철저히 비공개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는 터라 100% 속내를 털어놓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야했던 일은 차기 감독을 물색하기 전에 신태용 감독을 연임하느냐, 계약 만료로 작별하느냐 결정하는 것이었다. 이별을 할 거면 깔끔하게 이별한 뒤 김판곤 위원장이 해외로 떠났어야 한다. 그게 조금 더 순리에 맞았을 것이다. 나는 김판곤 위원장의 행동을 신임하는 입장이고 어떤 선택을 하건 존중할 테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는 이 아쉬움은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아무쪼록 고심했으니 지금이라도 최선의 선택을 내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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