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를 응시하는 마산용마고 선수단. 카메라를 의식하는 외야수 김영균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목동야구장=김현희 기자] 청룡기 선수권대회는 챔피언쉽(Championship)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국내 유일의 고교야구 대회입니다. 그만큼 역사도 가장 깊고, 극적인 승부 또한 많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는 한편, 대한민국의 기온이 가장 높을 때 시행하는 한여름철의 대회라 선수들의 고충도 상당히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장마까지 겹치면 결승전이 순연되는 일 또한 많았습니다. 작년에도 우천으로 인하여 상당히 큰 어려움을 겪은 끝에 배명고의 우승으로 마무리된 바 있습니다.

17일을 기준으로 40개 팀이 참가했던 청룡기 선수권도 이제는 16개 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16개 팀도 16강전을 치르면 절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무더운 기온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우승을 향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 쏟아 부은 어린 선수들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낼 만합니다. 여기 목동구장은 운동하는 학생 선수들에게는 또 하나의 교실이기도 합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공부하는 고교생들이 학원이나 과외로 본인들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는 것처럼, 선수들 역시 공부를 하듯 야구를 하는 것입니다.

32강전 마지막 경기를 본 소회(所懷)

결의를 다지는 물금고 선수단. ⓒ스포츠니어스

그런데, 32강전 마지막 경기는 선수들이 '쉽게 끝내기 아쉬웠는지' 경기 내내 접전을 이어갔습니다. 공교롭게도 맞대결을 펼치는 두 학교는 마산용마고와 양산물금고, 경남지역 라이벌이었습니다. 그런데, 접전을 펼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경남 야구소프트볼협회가 같은 지역 라이벌간의 본선 맞대결 결과로 전국 체육대회 고등부 야구 출전 팀을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32강전 승리 팀은 16강에 안착하게 되어 다음 대회인 대통령배 대회도 오를 수 있게 됩니다(전/후반기 왕중왕전 16강전 진출 팀이 대통령배에도 진출). 즉, 32강전 한 번의 경기로 인하여 전국체전 지역 대표 출전 팀, 청룡기 선수권 16강전 진출 팀, 대통령배 진출 팀이 한꺼번에 결정되는 셈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양 팀도 에이스를 내면서 결의를 다졌습니다. 마산용마고는 2학년생 안경 에이스 김태경을, 물금고는 3학년생 투-타 올라운더 임경목을 선발로 내세웠습니다. 두 이의 구위를 생각해 보면, 투수전으로 흐를 수 있었던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 마리 토끼가 걸려 있는 경기라서 그런지, 타자들의 집중력이 상당했습니다. 물금고가 상대 에이스의 제구 난조를 틈타 점수를 내면, 마산용마고가 이를 따라가는 방식이 계속됐습니다. 경기 중반까지 집중타를 앞세운 물금고가 앞서가면, 마산용마고 역시 동점을 만들면서 8회까지 양 팀은 6-6의 팽팽한 기운을 이어갔습니다. 이 때가 대략 저녁 10시 20분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맞이했던 운명의 9회, 마산용마고 타선이 먼저 폭발했습니다. 유도훈의 2타점 적시타를 시작으로 투 아웃 이후 6번 홍성진이 그라운드 만루 홈런이라는 보기 드문 기록을 만들어내며 단숨에 6점을 뽑아 낸 것입니다. 그러나 6점까지 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중견수 노학준과 좌익수 장세현 사이로 뜨는 평범한 플라이였는데, 둘이 콜(Call)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타구를 따라 서로 충돌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이에 두 이는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만약에 둘 중 하나만이라도 '자신이 잡겠다.‘라는 사인만 보냈어도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콜 플레이는 프로 선수들도 어려워 하는 법입니다. 하물며 아직 고교생인 이 선수들이 타구 자체만 쫓는 장면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 점을 잘 알기에 서로 충돌했던 이 장면은 당시 현장에 있던 저도 깜짝 놀랄 만큼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결의를 다지는 물금고 선수단. ⓒ스포츠니어스

그런데, 이후 상황이 문제였습니다. 구급차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심판 위원의 수신호(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오라는)에도 불구하고 들어 올 생각을 안 하자 결국 선수들이 들것을 이용하여 장세현을 밖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런데,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목동구장 중앙 출입구에 있어야 할 구급차가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어서 수송까지 2~3분 가량 지체됐다는 점입니다. 알고 보니, 목동구장 주변을 리뉴얼하다보니, 평소 위치해 있어야 할 구급차 대기장소까지 공사를 하여 부득이하게 다른 곳에 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목동 구장 내부로 구급차가 들어오지 못했던 것도 공사 구간에 막혀서 그랬던 것 아닌가 하고 믿고 싶습니다. 일부러 안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구급차 탑승 순간까지 아픔을 호소했던 장세현 선수의 모습은 안타깝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5분 정도 지체된 상황 속에서도 장세현 선수가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은 천만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의를 다지는 물금고 선수단. ⓒ스포츠니어스

9회 말 물금고의 마지막 공격은 이러한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보통 이 정도 되면 승패가 어느 정도 갈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후송을 간 친구를 위해서라도 경기를 뒤집어 보자는 선수들의 투혼이 통했는지, 물금고 선수단도 9회에만 6점을 만들어내며 경기를 끝낼 찬스까지 만들었습니다. 아쉽게도 두 명의 후속 타자들이 좌익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물러나며 경기는 결국 서스펜디드(일시 중지) 선언되었습니다. 9회까지 12-12가 되는 동안 양 팀은 4시간 41분이 넘는 혈전을 펼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에 재개된 이 경기에서 승부치기 끝에 결국 마산용마고가 14-12로 승리하면서 16강행 막차를 탔습니다. 물금고로써는 팀 동료의 부상을 바탕으로 투혼을 선보였던 장면이 두고두고 아쉽게 됐습니다.

결의를 다지는 물금고 선수단. ⓒ스포츠니어스

그런데, 경기 외적인 내용(구급차 대응)이 빵점인 것과는 별개로 경기 자체에 대한 내용까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양 팀 합쳐 60명이 넘는 주자들이 출루하면서 26점이 난 장면은 어찌되었건 반성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마운드에서 투수들은 얼마나 집중력 있는 모습을 보였는지, 큰 점수 차이로 앞서갔다고 이미 마음을 놓아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콜 플레이의 아쉬움(양 팀 모두) 등 복기하여 반성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승패를 떠나 이 날의 경험을 잊지 말고, 향후에는 조금 더 집중력 있는 모습으로 학생야구 선수답게 경기를 펼쳐줬으면 좋겠습니다.

eugenephil@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