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의 감독은 제자인 조유민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을 기대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수원=김현회 기자] 수원FC 김대의 감독은 현역 시절 김학범 감독과 인연이 깊다. 그는 성남일화에서 현역으로 뛸 당시 김학범 코치의 지도를 받았다. 당시 성남일화는 차경복 감독과 김학범 코치, 그리고 초호화 선수단을 구성해 K리그를 호령했다. 당시 성남의 전성기를 논할 때 김대의 감독은 빼놓을 수 없는 선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제 김대의 감독은 지도자가 돼 K리그2 수원FC를 이끌고 있다. 김학범 감독은 프로 무대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그를 퍼거슨 감독에 빗대 ‘학범슨’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한 명의 ‘학범슨 제자’가 있다. 바로 광주FC 박진섭 감독이다. 그 역시 2005년 성남일화 유니폼을 입고 김학범 감독의 제자가 됐다. 무려 4년 동안 김학범 감독의 축구를 경험했다. 이 시기 성남일화는 K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박진섭 감독은 여러 팀을 거친 뒤 올 시즌부터 광주FC 지도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박진섭 감독은 여전히 김학범 감독의 ‘지리산 훈련’에 혀를 내두른다. 김학범 감독은 성남 시절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다잡기 위해 지리산 등정을 훈련 코스로 잡았다. 박진섭 감독은 “1년에 네 번씩 지리산에 올랐다”며 “요즘도 지리산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두 감독이 이제는 자신의 제자를 김학범 감독에게 선보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일이다. ‘학범슨 제자’의 제자들이 내달 자카르타-팔렘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나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김학범 감독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의 제자들이 김학범 감독의 선택을 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주인공은 수원FC 조유민과 광주FC 나상호다.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김학범 감독의 제자들은 자신의 제자들이 김학범 감독의 부름을 받아야 하는 운명과도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다.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상상이나 했을까.

박진섭 감독의 제도를 받는 나상호는 아시안게임에 갈 수 있을까. ⓒ프로축구연맹

운명과도 같은 경기는 오늘(15일) 펼쳐졌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수원FC와 광주FC가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내일(16일) 오전 대망의 아시안게임 본선 출전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다. 김대의 감독은 조유민을 선발로 내세웠고 박진섭 감독 역시 나상호를 선발로 투입했다.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한 번이라도 더 김학범 감독에게 자신이 키운 제자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시안게임은 병역 혜택을 위해서도 꼭 출전해야 하는 대회다. 이 대회에 나가면 K리그에서 4~5경기에 활용할 수 없지만 팀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도, 선수를 위해서도 아시안게임은 간절한 대회다.

경기 전에 만난 김대의 감독도 다소 긴장되는 듯했다. 김대의 감독은 “평소 김학범 감독과 조유민의 몸 상태와 관련해 자주 통화했다”면서 “오늘 경기에도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상광 골키퍼 코치도 대동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했다. 김대의 감독은 “내일 있을 최종 엔트리 발표와 관련해 김학범 감독으로부터 어떤 언질도 듣지 못했다. 아마 김학범 감독이 훌륭한 선택을 하실 것이다. 어떤 선택이라도 감독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그래도 유민이가 계속 대표팀에 뽑혔다. 뽑힐 때마다 나도 조건 없이 보내줬다”고 뼈 있는 말을 전했다. 수비 자원인 조유민은 지금껏 김학범 감독으로부터 빠짐 없이 부름을 받았다.

경기 전에 만난 박진섭 감독도 은근히 신경을 썼다. 박진섭 감독 역시 나상호의 몸 상태와 관련해 김학범 감독과 지속적으로 소통했다. 그는 “이번 경기를 앞두고는 따로 통화하지 않았지만 평소 김학범 감독과는 나상호의 컨디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면서 “대표팀 전지훈련을 갔다 오면 김학범 감독이 ‘애 피곤하니까 리그에서는 적당히 쓰라’고 농담을 건네신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지도했던 스승님이 내 제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부담은 없다”면서도 “상호가 워낙 능력이 있으니 김학범 감독도 좋게 평가하실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조유민과 나상호는 아시안게임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그렇게 준비했다.

박진섭 감독의 제도를 받는 나상호는 아시안게임에 갈 수 있을까. ⓒ프로축구연맹

김학범 감독은 이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제자들이 이끄는 팀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 이 경기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김학범 감독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뭐 제자들의 경기를 바라보는 마음이야 똑같지. 그런데 나만 걔네들 스승이라고 할 수 있나. 그 친구들이 축구를 몇 년을 했는데 거쳐 가는 지도자가 한 둘이 아니잖아. 둘 다 잘 됐으면 좋겠어.” 박진섭 감독이 “아직도 선수 생활 때 지리산 등정했던 걸 떠올리며 혀를 내두른다”고 하자 껄껄 웃으며 이런 반응을 보인다. “걔는 원래 머리로 공 차는 애라 그렇게 뛰는 걸 싫어했어.” 여전히 김학범 감독은 두 제자에 대해 친근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그는 이제 내일이면 운명의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를 선발해야 한다. 머리가 꽤 복잡할 것이다.

김학범 감독은 최종 엔트리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아직 말해줄 순 없지만 오늘 이 경기를 통해 지켜볼 선수가 있다”고 했다. 조유민과 나상호가 유력한 후보다. 그러면서 “뽑을 친구가 있으니까 왔지 없으면 왔겠어?”라고 웃으며 반문한다. 김학범 감독은 전날(14일)에는 수원삼성과 전북현대전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당장 최종 선발 명단 발표까지 하루도 남지 않았지만 고민이 깊다. 그는 “오늘 밤까지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범 감독은 다시 신중하게 경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이미 결론이 내려졌을 수도 있지만 그 선택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해 보였다.

‘학범슨의 제자’들은 이제 K리그에서도 지도자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가 키운 제자들은 또 다시 제자를 키워내고 있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김학범 감독은 자신이 키운 제자의 제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운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학범슨 제자’의 제자들은 과연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을까. 김학범 감독은 내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아시안게임에 나설 20명의 이름을 부를 예정이다. 조유민과 나상호도 호명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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