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고(사진 좌)와 경북고(사진 우), 두 학교 모두 지역에서는 '경고'로 통한다. 사진ⓒ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목동야구장=김현희 기자] 제73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겸 2018 후반기 주말리그 왕중왕전)가 한창인 15일 오후, 목동야구장에서는 다소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1루 측 관중석에서나 3루 측 관중석 모두 "경고 파이팅!"이라는 응원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얼핏 들으면, 서로 같은 두 학교가 청백전이라도 펼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부산을 대표하여 청룡기에 출전한 경남고등학교와 대구를 대표하여 출전한 경북고등학교가 맞대결을 펼쳤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학교는 각 지역에서 '경고'라는 약칭으로 통하고 있어 "경고 파이팅!"이라는 응원 구호가 서로 통했던 것이었다.

롯데 1차 지명을 받은 사이드암 서준원을 포함하여 우완 이준호, 남상현 및 좌완 이정훈, 그리고 2학년생 최준용까지 버티고 있는 경남고는 명실상부한 올 시즌 선수권대회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다. 리드오프 김민수를 포함하여 올해 고교야구에서 첫 사이클링을 기록한 김현민, 1학년 때부터 한동희(롯데)와 함께 4번을 번갈아 쳤던 노시환이 버틴 타선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에 맞서는 경북고의 사정도 비슷했다. 삼성의 1차 지명을 받은 원태인을 포함하여 좌완 속구 투수 오상민, 190cm의 큰 키를 바탕으로 공을 던지는 2학년생 황동재가 버티는 마운드 높이가 상당하다. 강민성과 이건희, 배성렬 등 지난해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올해 한층 나은 기량을 선보인 타선의 힘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렇기에 경북고 역시 이번 대회를 앞두고 청룡기 우승을 노릴 수 있는 다크호스로 손꼽혔던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경고'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요?

아쉬운 점은 두 강호들은 결승전이 아닌 첫 경기(32강전)에서 바로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1차 지명권자들을 배출하면서도 주말리그에서 선전을 이어갔던 두 학교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이끌 만했다. 이는 연고팀(삼성, 롯데)을 중심으로 다수의 프로야구 선수들을 배출한 양 교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양 교는 5회까지 팽팽한 0의 행진을 이어갔다. 좌완 에이스 오상민(경북고)과 우완 이준호(경남고)가 효과적인 투구를 펼치면서 5회 동안 단 7명의 주자만 출루했을 정도였다. 특히, 오상민은 부상을 극복하고 실전에 투입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5이닝 7탈삼진 역투를 펼치면서 프로 스카우트 팀의 눈도장을 받기도 했다.

팀 타선을 이끈 경남고 4번 타자 노시환. 올해 청소년 대표팀으로도 선발됐다. 사진ⓒ스포츠니어스

승부의 방향이 바뀐 것은 클리닝타임 이후 6회 초 경남고 공격에서였다. 여기에서 경북고 이준호 감독이 에이스 원태인 카드를 투입한 것이다. 팀의 에이스로 이미 보여준 것이 많았던 원태인이었던 만큼, 나머지 이닝을 효과적으로 틀어막으면 승산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서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원태인이 투입되자마자 2번 최원영이 볼넷으로 걸어나간 데 이어 3번 김현민이 좌익 선상으로 빠지는 2루타를 기록하면서 무사 2, 3루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여기에서 등장한 4번 노시환은 불리한 볼카운트에도 불구하고 좌전 적시타를 기록, 두 명의 주자를 홈으로 불러 들이며 길고 긴 0의 행진을 마감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학년생 전의산마저 2사 이후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기록, 주자 둘을 또 다시 불러 들였다. 경북고로서는 원태인 투입 이후 경기 종반에 승부를 걸겠다는 작전이 흐트러진 것에 아쉬움을 표할 만했다.

이후 경북고는 원태인을 제외하고 2학년 황동재를 투입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에이스가 빠진 탓인지 경남고는 7회에만 3점을 더 추가하면서 아예 콜드게임을 완성했다. 중반까지 팽팽했던 기운이 일순간 경남고쪽으로 흐르면서 '어?'하는 사이에 경기가 끝나버린 것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올해 일본에서 개최될 아시아 선수권대회 청소년 대표팀 멤버들간의 대결도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맞대결의 결과 역시 경남고의 판정승이었다. 원태인과 김현민의 맞대결에서는 김현민이 2루타를 기록하면서 출루에 성공했고, 원태인과 노시환의 맞대결에서는 노사환이 0의 행진을 깨는 적시타를 기록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이들 셋은 대회 이후 대표팀 소집 기간에 다시 만날 예정이다. 물론 이들 외에도 경기에 투입되지 않았던 경남의 에이스 서준원도 중용될 예정이다.

기록을 찾아보면,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양 교가 2009년 청룡기 선수권에서도 첫 경기에서 만났다는 사실이었다. 당시에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구축했던 양 팀이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경북고가 7-0, 7회 콜드게임 승리를 했던 것이었다. 투-타를 넘나들며 좋은 모습을 보였던 김상훈(당시 두산 지명. 現 소속 넥센)이 홍재영(前 롯데), 이성진(前 LG-한화)을 앞세운 경남고에 완승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시점에서 경남고가 똑같은 스코어로 경북고에 승리, 2009년 이후 청룡기 맞대결 1승 1패, 7득점 7실점을 유지하게 됐다.

이렇게 대구와 부산을 대표하는 두 '경고'의 맞대결은 6회에 원태인을 상대로 집중력을 선보인 경남고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경기 결과를 떠나 양 교 모두 자신의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모두 등장하여 목동야구장을 찾은 야구팬들에게 최선의 플레이를 선보였다는 사실에는 박수를 보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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