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향한 잘못된 열정의 희생자, ‘모아시르 바르보사’

모아시르 바르보사 ⓒ FlikkaD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월드컵은 전 세계 축구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최고의 무대다. 국민들은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위해 열띤 응원을 펼치고 그들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길 원한다. 그리고 선수들이 가져다주는 감동을 통해 울고 웃는다. 하지만 선수들은 때때로 축구를 향한 팬들의 과도한 에너지로 인해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콜롬비아 전 국가대표 안드레아스 에스코바르는 지난 1994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귀국 후 총에 맞아 사망했고 한국의 장현수는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PK를 내줬다는 이유로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사형 요청이 올라오는 등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

5회 우승으로 월드컵 최다 우승국에 빛나는 브라질 역시 예외는 아니다. 브라질은 그 동안 월드컵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둬왔기 때문에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치가 다른 팀들에 비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벨기에에 1-2로 패배하며 4강 진출에 실패하자 브라질 국민들은 귀국한 대표팀 선수단을 향해 수십 개의 계란을 던졌고 폭죽을 터뜨렸다. 이처럼 브라질 국민들의 축구를 향한 에너지는 엄청나다. 그래서 이로 인해 과거 수많은 선수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얻기도 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바르보사
브라질 대표팀 최초의 흑인 골키퍼 모아시르 바르보사. 그는 브라질 최고의 골키퍼로 명성을 떨쳤지만 월드컵에서 실패하며 자신의 축구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때는 1950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은 자국에서 열리는 4번째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노리는 강팀이었다. ‘펠레의 우상’으로 알려진 지지뉴, 아데미르 등 당대 최고의 공격진을 구축한 브라질은 그 어떤 팀도 쉽게 상대할 수 없었다. 바르보사 역시 화려한 브라질의 선수단 중 일원으로 월드컵에 참가했다.

원래 그는 레프트 윙어로 축구를 시작했으나 골키퍼로 포지션을 변경한 이후 승승장구했다. 174cm의 작은 신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명문 클럽 중 하나인 CR 바스쿠 다 가마에 스카우트되며 남미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고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브라질 국민들은 뛰어난 활약을 보인 바르보사에 많은 기대를 걸었고 바르보사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월드컵 본선에서도 골문을 완벽하게 책임지며 브라질의 결승리그 진출을 이끌었다. 브라질은 결승리그에서도 바르보사의 활약 덕에 스웨덴과 스페인을 상대로 각각 7-1, 6-1 대승을 거뒀다.

그의 인생을 바꾼 ‘마라카낭의 비극’
마지막 남은 경기는 우루과이전. 당시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2-2 무승부를 기록하고 스웨덴을 3-2로 힘겹게 격파하는 등 시원한 승리를 거둔 브라질에 비해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다. 브라질은 마지막 우루과이전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우승을 차지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축구계는 브라질의 우승을 확신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1950년 FIFA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우승 메달 22개를 미리 제작했고 FIFA는 미리 브라질에 쥴리메 컵을 전달했다. 상파울루 시장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몇 시간 뒤 우리는 월드컵의 승자 브라질을 향해 환호를 보낼 것이다. 미리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연설을 했다. 브라질 국민들 역시 크고 작은 축제를 벌이며 브라질의 우승을 미리 축하했다. 경기 당일 마라카낭 스타디움에는 무려 20만 명이 넘는 관중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브라질을 향해 일방적인 응원을 펼쳤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는 딱 후반 34분까지였다. 이후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루과이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고전한 브라질은 후반 2분이 돼서야 프리아사가 겨우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후반 21분 우루과이의 스키아피노에게 동점골, 후반 34분 기데아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패배의 여파는 엄청났다. 20만 명이 넘는 관중이 운집한 마라카낭 스타디움엔 침묵이 흘렀고 많은 팬들이 권총으로 자살을 하거나 심장마비로 생을 달리하는 일이 발생했다. 브라질 전역엔 조기가 게양되었으며 분노한 팬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엄청난 충격에 빠진 브라질 축구협회는 팀의 상징과도 같던 하얀 유니폼을 모두 불태웠고 이를 노란색 유니폼을 교체했다.

지금의 노란색 유니폼으로 바뀐 것은 ‘마라카낭의 비극’ 때문이었다. ⓒ Brazil Football Team 페이스북

‘비극의 희생자’ 바르보사
브라질 축구협회는 월드컵 우승 실패에 대한 책임을 모두 선수들에게 돌렸다. 패배의 주범으로 지목된 선수들은 두 번 다시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다. 특히 그 중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선수가 바르보사였다. 골키퍼로서 2골을 막지 못한 바르보사는 대표팀에서 퇴출되었고 은퇴 이후에도 코치와 감독, 해설자로 나가지 못했다.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바르보사는 형수 집에서 얹혀살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93년 바르보사는 1994 미국 월드컵을 앞둔 브라질 대표팀을 격려하기 위해 훈련장을 찾았지만 거부당했다. 당시 기술고문이었던 마리우 자갈루에 따르면 바르보사가 대표팀에 불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해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브라질 전 국민들로부터 50년 가까이 ‘브라질 국민들을 좌절과 불행의 늪 속에 빠뜨린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질을 받던 바르보사는 2000년 79세의 나이로 쓸쓸하게 숨을 거뒀다.

어떻게 보면 바르보사를 향한 비난은 브라질의 당시 상황과 맞물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때 브라질은 경제난에 허덕이던 가난한 국가였다. 그러한 브라질 국민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것은 축구였다. 그들은 연전연승하며 세계를 주름잡던 대표팀의 선전에서 작은 희망을 찾았다. 하지만 브라질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실패했고 국민들이 원했던 기쁨과 행복은 곧 분노와 울분으로 변하면서 이것이 바르보사로 향하게 된 것이다.

우루과이전에서 역전골을 내준 후 좌절하는 바르보사 ⓒ FIFA. TV 유튜브 캡쳐

브라질 전체의 축구를 향한 잘못된 열정과 기대는 한 선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그리고 그 선수는 죽기 직전까지도 비난 받았다. 바르보사는 생을 마감하기 전 “브라질에서 최고 형벌은 징역 30년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월드컵에서 저지른 실수로 인해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50년을 보냈다”는 말을 남겼다. 이렇게 ‘남미 최고의 골키퍼’로 칭해지던 바르보사는 브라질을 위해 헌신하며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 월드컵 준우승 등을 일궈냈지만 결국 ‘브라질 전체를 절망에 빠뜨린 선수’로 자신의 축구인생을 마무리하게 됐다. 바르보사는 브라질 전체가 만든 ‘역적’이자 마라카낭 비극의 또 다른 ‘희생자’였다.

잘못된 열정은 위험하다
월드컵은 모든 선수들이 뛰길 원하는 꿈의 무대다. 자국의 국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라를 대표해 최고의 무대에서 4년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수들은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축구인생을 화려하게 마무리하기도 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로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자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고 ‘영웅’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때때로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한 큰 실수를 범하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월드컵이란 큰 무대는 단 몇 경기 내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선수들이 얻는 심리적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판과 비난은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잘못에 대한 논리적인 비판은 행해질 수 있지만 선수를 죄인으로 만드는 맹목적인 비난은 있어서 안 된다. 선수들이 월드컵을 위해 4년 동안 노력하면서 흘린 피와 땀은 어떤 말로도 형용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살해 위협 등을 비롯해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어떤 선수도 국가를 대표해 뛰는 대회에서 고의적으로 팀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경우는 없다. 진정으로 팀을 위한다면 선수를 격려하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비판을 하는 것이 옳다. 이는 팬부터 축구협회까지 축구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해당한다. 이미 우리는 바르보사를 포함한 수많은 선수들을 ‘희생자’로 몰아갔다. 축구를 향한 잘못된 열정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mrechan1@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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