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와 싸워 이겨낸 아산 박주원, 616일의 기다림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대전시티즌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 하나 있다.

골키퍼 박주원이다. 2013년 대전에 입단한 그는 당시 대전의 영광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약 4년 간 대전에서 뛴 그는 병역 의무 해결을 위해 2017 시즌을 앞두고 아산무궁화에 입단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후 박주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2018년도 절반 이상이 지나갔다. 그런데 홀연히 박주원이 등장했다.

지난 7일 안산그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박주원이었다. 그는 2016년 10월 30일 대전과 대구FC의 K리그2 마지막 경기 이후 약 2년 만에, 정확히 616일 만에 K리그 무대에 복귀했다. 그 동안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박주원을 만나서 물어봤다. 예상 외로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혜성처럼 나타났던 박주원
앞서 말했던 것처럼 박주원은 2010년 이후 대전의 영광과 시련을 모두 겪은 인물이다. 2013년 K리그1(클래식) 대전에 입단한 그는 팀이 역사상 처음 2부리그 강등을 당하는 순간 함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강등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13 시즌 그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당시 대전의 골문은 김선규와 홍상준이 번갈아 지키고 있었다. 박주원은 세 번째 골키퍼였다.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대전은 K리그2(챌린지)에서 2014 시즌을 시작했다. 이 때부터 박주원은 조금씩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홍상준이 강원FC로 이적했고 신인 한상혁이 배재대학교에서 대전으로 입단했다. 두 번째 골키퍼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선발 골키퍼는 김선규였다. 한 단계 올라섰지만 여전히 선발의 길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2014년 7월, 그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K리그2에서 독주하던 대전은 주춤하고 있었다. 6월 29일 안산경찰청에 1-6 대패를 당하더니 강원FC와 2-2로 비겼다. 전체적으로 문제점이 드러났지만 김선규 골키퍼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 또한 있었다. 故조진호 당시 대전 감독은 강원전에서 김선규를 전반전 45분만 뛰게 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리고 7월 13일 박주원은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프로 2년차에게 드디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날 박주원은 그야말로 펄펄 날았다. 팀의 4-0 완승에 톡톡히 기여했다. 故조진호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가장 고민이던 골키퍼 포지션에서 박주원이 선방했다. 고민을 털어낸 것 같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박주원은 K리그에 등장했고 대전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굳혀갔다.

대전 시절의 박주원 ⓒ 대전 시티즌 제공

이후 남은 시즌에서 박주원은 故조진호 감독의 신임을 얻으며 주전으로 뛰었다. 총 16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대전의 승격을 이끌었다. 대전 역사상 첫 리그 우승컵이었다. 박주원은 당당히 대전 승격의 중심에 서 있었다. 최은성 이후 확실한 골키퍼가 없어 보였던 대전은 박주원이라는 존재의 등장에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팬들도 “고양이 수준의 반사신경이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재강등, 그리고 입대
2015 시즌은 대전에도 박주원에게도 꿈과 희망의 무대였을 것이다. K리그1에 돌아온 대전은 장밋빛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주원은 당당히 팀을 대표하는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다. 하지만 역시나 K리그1은 쉽지 않았다. 대전은 초반부터 부진하며 강등 후보 1순위로 떠올랐다. 박주원은 고군분투 했지만 팀의 잇따른 패배를 막지 못했다.

시즌 도중 성적부진으로 故조진호 감독이 자진사퇴했고 최문식 감독이 새로 부임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박주원은 대전의 희망이었다. 수비진이 전멸한 상황에서 박주원은 묵묵히 선방을 보여줬다. 승격의 버팀목이었던 그는 이제 강등을 막을 또다른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팀은 한 시즌 만에 다시 K리그2로 돌아갔다.

이후 대전은 2016 시즌에도 K리그2에 남아 있었다. 박주원은 그리고 병역 의무를 위해 입대를 결정했다. 그는 아산으로 향했다. 군 입대 전 마지막 경기는 박주원에게 뼈아팠을 것이다. 2016년 10월 30일 대전은 대구를 만나 0-1로 패했다. 이날 대구는 대전전 승리로 승격에 성공했다. 남의 잔치를 바라보는 심정은 썩 좋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 그는 몰랐을 것이다. 다시 K리그 무대로 돌아오기까지 꽤 많은 시일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K리그 무대
박주원은 정든 대전을 뒤로하고 아산으로 떠났다. 군 생활은 쉽지 않았다. 주전 경쟁도 만만치 않았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그렇다. 어느 한 선수가 인상적이고 안정적인 활약을 보인다면 크게 변화를 주지 않는다. 아산에는 박형순이라는 골키퍼가 이미 있었다. 박주원보다 약 3개월 먼저 입대한 그는 송선호 전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주원이 할 수 있는 것은 훈련 뿐이었다. 군 생활에 적응하면서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꽉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박주원은 굵은 땀 방울을 흘렸다. 그리고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2017년 5월 17일 아산과 광주FC의 FA컵 경기에 선발로 출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박주원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광주에 0-3으로 무너지며 FA컵에서 탈락했다.

ⓒ 아산 무궁화 제공

당시 아산은 비주전을 중심으로 선발 명단을 꾸렸다. 송 감독이 로테이션을 돌렸다. 박주원도 “당시 경기에 뛰지 않던 선수들이 출전했다. 서로 조직력이 부족했고 잘 모르는 상황에서 경기했다. 서로 신뢰도가 비교적 적은 상황에서 경기에 들어갔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자책하지는 않았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 한 경기 이후 다시 박주원은 벤치에 앉았다. 그를 기용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느끼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대전의 수호신이던 박주원은 아산에서의 첫 시즌을 ‘리그 0경기 출전’이라는 기록으로 마무리했다.

청천벽력같이 날아온 의사의 한 마디
아쉬운 한 해가 지나가고 2018 시즌이 다가왔다. 아산은 박동혁 감독에게 새로이 지휘봉을 맡겼다. 박주원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올 시즌에는 꼭 기회를 얻어보리라.’ 시즌 전 동계훈련은 그래서 그에게 특별했다. “(박)형순이 형이 워낙 잘하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저도 한 번 경쟁에서 이겨보고 싶었어요.” 박주원은 그 누구보다 독한 마음으로 동계 훈련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컨디션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게다가 날이 갈 수록 체중이 쭉쭉 줄어들었다. 피로가 몰려왔고 근육통도 찾아왔다. 일시적인 감기나 몸살은 아니었다. 박주원의 몸은 예상보다 심각해 보였다. 최익형 아산 골키퍼 코치는 그 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박)주원이가 아예 힘을 쓰지 못하더라. 몸 상태가 이상했다. 체중이 줄어들어서 그럴 수 있지만 내가 봤을 때 정말 이상해 보였다.”

그는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의사에게서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단핵구증입니다.” ‘단구증가증’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사실 많은 성인들이 가지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피로감과 근육통이 찾아온다. 박주원은 주전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약화시켰고 임파선에 이 병이 찾아온 것이었다. 체중 감소가 함께 따라온 이유였다.

큰 병은 아니다. 단핵구증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충분한 휴식과 영양 섭취가 확실한 방법이다. 발열이나 근육통이 심할 경우에만 진통해열제를 섭취하는 정도다. 하지만 신체 기능이 회복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병원에서는 박주원에게 말했다. “아마도 신체 기능이 예전처럼 돌아오려면 약 4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한창 땀 흘려야 할 박주원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였다.

박주원, 내려놓는 법을 배우다
박주원은 병원에 갔다온 이후 많은 생각을 했다. “분명 아산에서 저는 준비가 됐고 컨디션도 좋았어요. 하지만 형순이 형이나 다른 골키퍼들이 잘하고 있었어요.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큰 변동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머리로는 이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몸은 저도 모르게 이런 상황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대전에 있을 때는 제가 열심히 하고 잘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다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여기에 오니 그렇지 않았어요. 군경 팀이라는 특수성 상 저 혼자의 힘보다는 단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단합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나 하나로 인해서 전체가 피해볼 수 있는 상황도 올 수 있잖아요. 행동이 조심스럽게 변하면서 생각도 바뀌었어요.”

예상치 못한 병에 걸린 박주원은 조금씩 경쟁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프기 전까지는 계속 경쟁하고 뛰고 싶은 마음에 속칭 발악했던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시작했다. “제 스스로의 문제로 슬럼프가 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것으로 인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어요.”

ⓒ 아산 무궁화 제공

그는 K리그에 다시 출전하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뒤로 미뤘다. 박형순의 전역 이후로 설정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놨어요. 그래서 시즌 초반부터 뛰려고 욕심을 부리는 것보다 제가 확실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출전하자고 생각했어요. 그게 박형순의 전역 이후였어요. 형순이 형이 전역한 다음 첫 경기에는 꼭 출전하자고 다짐했죠.” 그 경기는 7월 7일 안산전이었다.

일주일 빠를 뻔 했던 박주원의 복귀전
박주원은 다시 몸을 정상적으로 회복하고 훈련에 전념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군 생활을 했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그 동안 박주원은 K3리그 여주세종축구단과의 FA컵에 다시 한 번 출전하며 팀의 7-0 완승에 일조했다. 실전 경험도 했으니 남은 것은 K리그 복귀였다. 박동혁 감독도 박주원의 출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주전 골키퍼 박형순이 전역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형순이 전역 직전까지 안정적인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박 감독과 코칭 스태프는 이런 박형순을 쉽게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박형순은 7월 1일 광주와의 마지막 경기까지 풀 타임을 소화하고 전역했다. 광주와 2-2로 비기고 나서 박 감독은 문득 한 가지 후회 아닌 후회를 했다. ‘박주원을 쓸 걸 그랬나…’

박형순이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박형순은 아산 골키퍼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당장 다음 경기부터 버팀목이 사라진 상황에서 경기를 해야 했다. 차라리 박형순이 있는 상황에서 다른 골키퍼를 선발로 내세우는 것이 안정적일 수 있었다. “그 경기 끝나고 ‘박주원에게 자신감을 얻게 해줬어야 했나’란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박형순은 떠났다.

선수들에게 무한한 믿음을 주는 박 감독은 역시나 안산전을 앞두고 박주원을 선발 명단에 올렸다. 박 감독이 그에게 한 말은 딱 한 마디였다. “편안하고 자신감 있게 해라.” 굳이 구구절절 말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알기 때문이었다. “박주원 나름대로 이번 경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겁니다. 잘해야 선발로 계속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것입니다. 그래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616일 만에 돌아온 K리그 그라운드
박주원은 616일 만에 K리그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그라운드를 앞두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내려놨다. ‘영웅이 되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잘 해보자.’ 어렵게 얻은 기회이기 때문에 그는 더욱 마음을 비웠다. “굉장히 힘들게 얻은 기회잖아요. 부담이 큰 경기인 만큼 경기력이 좋지 않았을 때의 타격도 생각해야 했어요.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경기를 망칠 수 있잖아요.”

단순히 박주원 혼자서만 중요한 경기가 아니었다. 아산은 한창 성남FC와 1위 싸움 중이었다. 그리고 아산은 안산을 유독 껄끄럽게 여겼다. 한 아산 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다른 팀과 붙으면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안산은 정말 껄끄럽다. 구단 캐릭터처럼 늑대처럼 뛰면서 상대를 굉장히 많이 괴롭힌다.”

경기가 시작됐고 아산은 전력의 우위를 보여주며 여유 있게 두 골을 앞서 나갔다. 하지만 안산은 결코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점점 더 역습의 강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골 찬스를 몇 차례 맞이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보다 더 간절했던 박주원이 버티고 있었다. 그는 라울의 슈팅 등 결정적인 장면에서 선방을 해내며 상대의 추격을 막아냈다.

결국 경기는 아산의 2-0 승리로 끝났다. 박주원의 K리그 복귀전은 무실점이라는 기분 좋은 결과로 끝났다. 팀 동료들은 박주원에게 다가왔다. “돌아온 것 축하해.” 그는 그 때서야 깨달았다. “정말 몇 개월 동안 이 안산전만 바라보고 준비했어요. 클린시트라는 좋은 결과를 얻고 동료들이 축하해주니까 제가 K리그에 돌아온 것이 실감났어요.”

ⓒ 아산 무궁화 제공

시작된 제 2의 군생활, 목표는 유종의 미
경기 후 아산 박 감독은 박주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현우 같았습니다. 아산에 와서 K리그 한 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벤치에서 준비를 아주 잘 했습니다. 첫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선방을 보여줬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아무도 선발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결국 대한민국 제 1의 골키퍼 자리를 차지한 조현우처럼 박주원도 훌륭히 해냈다는 이야기였다.

앞으로 아산에서 박주원을 볼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박 감독은 “안산전에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활약해줬다”면서 “다음 경기도 기대된다. 앞으로 잘 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주원이 좋은 모습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 그를 선발로 쓰겠다는 이야기다. 출전 기회에 목말랐던 박주원도, 새로운 주전 골키퍼를 고민해야 하는 아산도 만족할 만한 결과다.

하지만 박주원은 아산에서 오래 뛸 수 없다. 그의 전역은 10월이다. 약 3개월 가량 밖에 남지 않았다. 속칭 ‘말년’인 셈이다. 그러나 박주원은 지금이 말년이 아닌 제 2의 시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시작이 참 좋았어요.” 기다림의 오랜 세월은 끝났다. 이제 제 2의 시작을 맞이한 박주원은 3개월이라는 시간을 후회없이 보낼 계획이다.

그의 목표는 단순하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 하지만 아산이라는 K리그2 강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꽤 높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바로 우승이다. “이 팀의 순위가 결정되기 전에 저는 전역해요. 하지만 올 시즌을 마무리하고 아산이 우승한다면 저 또한 우승의 일원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간절하고 꼭 해낼 것입니다.”

616일 동안 그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한 층 더 성장했다.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또는 자만함은 조금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들을 깨우치고 있었다. 이제 아산 박주원의 마지막 불꽃이 막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꽃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단 3개월이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할 시간이 지금 박주원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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