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리거’에서 ‘월드컵 스타’로, 픽포드와 맥과이어

잉글랜드 수비의 핵 해리 맥과이어.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ㅣ남윤성 기자] 지난 7일 오후 11시(한국시간) 러시아 사마라 아레나에서 펼쳐진 2018 러시아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가 해리 맥과이어와 델레 알리의 연속골에 힘입어 스웨덴에 2-0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잉글랜드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월드컵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부임과 동시에 백쓰리 카드를 꺼내들며 팀을 실리적으로 변화시킨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탁월한 전술적 선택과 더불어 스쿼드 평균연령 25.6세의 성공적인 세대교체 그리고 선수들의 뛰어난 재능과 개인 능력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선전의 이유로 꼽히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던 픽포드와 맥과이어의 맹활약은 단연 압권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팬들이라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이름이겠지만 작년까지 이들에게 월드컵 출전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열렬한 축구팬에서 월드컵 스타로
193cm, 100kg의 거구를 십분 활용한 압도적인 공중볼 장악능력과 적재적소에서 상대의 크로스를 사전에 차단하는 뛰어난 위치선정 그리고 세트피스에서 빛나는 존재감까지.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맥과이어는 발기술도 매우 탁월한 중앙수비수이기 때문이다.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 맥과이어는 터치 횟수 68회와 85%의 패스 성공률 그리고 결정적인 기회 창출을 2회나 기록하면서 공격하는 수비수의 면모를 마음껏 드러냈다.

하지만 불과 2년 전만해도 맥과이어는 그저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축구팬이었다. 헐시티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갓 이뤄낸 그는 친구들과 함께 유로 2016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잉글랜드와 슬로바키아의 경기를 관전한 맥과이어는 그날의 분위기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2년 전만해도 대표팀 승선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해리 맥과이어 인스타그램

“대표팀 경기를 보기 위해 외국까지 갔던 건 굉장히 특별한 순간이었어요. 열광적인 팬들과 경기장의 분위기는 정말 놀라웠죠.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국제대회에 나선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어요. 소속팀에서도 주전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로부터 2년 뒤 맥과이어는 상상에서나 가능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무려 월드컵 무대에서 조국의 승리를 견인하면서 말이다. 2017년 처음으로 대표팀 부름을 받은 맥과이어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백쓰리 포메이션의 최대 수혜자다.

스피드는 느릴지 몰라도 상대와의 공중볼 경합에서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하고 특히 존 스톤스의 넓은 수비 반경 아래 잉글랜드의 1차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공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대표팀에서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아 오히려 두렵지 않다는 맥과이어는 삼사자 군단의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쓸 준비를 마쳤다.

임대생에서 넘버원 골리로
타인 위어 주에 위치한 소도시 워싱턴에서 태어난 픽포드는 8살이던 지난 2002년 또래 중 키가 가장 크다는 이유만으로 학교팀의 골키퍼를 맡았다. 그리고 이듬해 그의 재능을 알아본 부모님의 추천으로 선더랜드 유소년팀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9년 후 프로계약을 체결한 픽포드는 로컬보이로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즉시 1군에서 활약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결국 선덜랜드는 그의 임대를 추진한다. 이후 5부 리그 달링턴에서 성인무대에 데뷔한 픽포드는 5년간 하부리그를 떠돌며 임대생활을 해야 했다. 계속된 임대 생활에 지칠 법도 했지만 픽포드는 좌절하지 않았다. 꾸준히 발전하며 고향팀에서 활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그 꿈은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임대기간 5부에서 2부까지 차례로 모든 리그를 거치며 성장한 픽포드는 15/16시즌을 앞두고 5년 만에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로 귀환했다. 그리고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6/17시즌 주전 골키퍼 비토 마노네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픽포드는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주전 도약에 성공했다.

임대 생활을 청산한 뒤 픽포드는 날아올랐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놀라운 반사 신경과 일대일 방어 능력, 안정적인 공중볼 처리 등 뛰어난 능력을 선보인 픽포드는 비록 팀의 강등을 막아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3,000만 파운드(한화 약 420억 원)라는 역사상 가장 비싼 잉글랜드 골키퍼 이적료를 발생시키며 에버튼으로 이적한다.

에버튼 이적 후 픽포드는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놀라운 활약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부름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넘버원 골키퍼까지 도약하며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에 출전한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서 픽포드는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콜롬비아와의 16강전에선 잉글랜드의 월드컵 역사상 첫 승부차기 승리를 이끌었고 스웨덴과의 8강전에선 믿기 힘든 선방을 수차례 기록하며 잉글랜드의 28년 만에 준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골키퍼들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발생하며 좌절을 맛봐야 했던 잉글랜드로서는 픽포드의 지금과 같은 활약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설레발은 금물
모처럼 만의 월드컵 4강 진출에 잉글랜드 전역이 축제의 도가니에 빠졌다. 주요 언론은 벌써부터 월드컵 우승 가능성을 계산하며 행복회로를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설레발은 금물이다. 지금까지는 4강에 진출한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대진운도 분명 따랐다. 52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앞으로 만날 진짜 강팀들을 상대로도 준비한 플레이를 제대로 펼치고 능동적으로 경기 페이스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끄는 핵심 대부분이 하부리그를 거쳤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하지만 어느 때보다도 그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현재 잉글랜드 선수단에는 픽포드와 맥과이어 이외에도 해리 케인과 제이미 바디, 델레 알리 등 핵심적인 선수들이 대부분 하부리그를 거쳐 여기까지 올라왔다. 때문에 이들의 월드컵을 향한 간절함은 중요한 순간 빛을 발할 가능성이 있다. 잉글랜드의 월드컵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skadbstjdsla@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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