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우 ⓒ 대구FC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골키퍼는 타 포지션에 비해 크게 변화가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보통 여러 명의 후보 자원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다가 감독으로부터 신뢰를 얻게 된 선수가 기회를 잡게 된다. 경쟁에서 승리한 선수는 큰 문제가 없는 한 고정적으로 경기에 계속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골키퍼에게 ‘영원’이라는 것은 없다. 어느 순간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해 주전 자리를 빼앗아 오고 그러한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전 세계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조현우 역시 도전자의 입장이었다. 대표팀에는 붙박이 골키퍼였던 김승규가 버티고 있었지만 조현우는 이번 월드컵 조별리그 전 경기에 출전하며 대한민국의 No. 1 골키퍼로 거듭났다. 하지만 조현우 역시 언젠간 새로운 골키퍼들의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도 많은 골키퍼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소리 없이 훈련하면서 땀을 흘리고 있다. 향후 조현우 못지않은 대표팀의 수문장으로 거듭날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제 2의 신화용’ 강현무 (포항 스틸러스)

지난 1월 중국에서 열렸던 2018 AFC U-23 챔피언십. 한국은 이 대회에서 4위를 기록했다. 팀 전체가 호흡을 맞춰볼 시간이 부족했다고는 하지만 공격, 수비, 체력 등 대부분의 면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유일하게 빛이 났던 선수가 있었다. 강현무였다. 조별리그를 포함해 3·4위전까지 모두 출전했던 강현무는 흔들리는 선수들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이들을 바로잡았다. 특히 조별리그 3차전이었던 호주전에서는 유효슈팅을 무려 6개나 막아내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겨주었다.

강현무 ⓒ 스포츠니어스

이렇게 U-23 대표팀에서 보여준 경기력을 인정받은 강현무는 이제 ‘포항의 수호신’으로 성장했다. K리그에서 매 경기 선방쇼를 보여주며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를 팬들에게 확실히 알렸고 베테랑 못지않은 침착함으로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사실 강현무는 ‘난놈’이 아니었다. 기회를 잡기 위해 묵묵히 기다리며 뒤에서 피나는 노력을 해왔던 ‘노력파’ 선수다. 포항제철고 졸업 후 곧바로 프로로 직행한 강현무는 2015년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강현무는 무명 중의 무명이었다. 당시 베테랑 신화용을 비롯해 김진영 등 까마득한 선배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무가 뛸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강현무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로지 뛰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지켜보는 구단을 위해 이를 악물고 열심히 훈련했던 강현무는 포항에 입단한지 1,169일 만에 비로소 자신의 데뷔전이었던 K리그1 2라운드 광주FC전에 출전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간절한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의 몇 배를 발휘하게 된다. 이날 팀의 2-0 무실점 승리를 이끈 강현무는 자신의 데뷔전이 끝난 뒤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 2의 신화용’이라고 불리는 강현무는 184cm의 작은 신장을 갖고 있지만 이를 뛰어난 집중력과 순발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 활동 반경이 넓기 때문에 경기 조율 능력도 나쁘지 않다. 강현무는 이전까지 세트피스 상황에서 공중볼을 직접 처리하는 것보다 세컨드 볼에 이은 상대의 슈팅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작은 키로 인해 생기는 세트피스에서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올 시즌 펀칭을 통해 직접 처리하는 쪽으로 바꾸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해나가고 있다. 강현무는 이번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무명 선수에서 포항의 주전 골키퍼로 성장한 강현무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각오가 남다르다.

‘송붐’ 송범근 (전북 현대)

송범근은 어떻게 보면 특이한 경우의 선수다. 이제 막 프로에 발을 들였지만 곧바로 주전을 꿰찼기 때문이다. 그것도 K리그 최고의 팀으로 불리는 전북 현대에서 말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경쟁할 강현무는 프로 데뷔전을 뛰기 위해 수년을 기다렸지만 송범근은 고려대학교를 거쳐 전북으로 입단하자마자 주전 골키퍼로 낙점 받았다. 물론 권순태의 J리그 가시마 앤틀러스 이적과 홍정남, 황병근의 부진이 맞물린 상황이 작용한 것도 있지만 1997년생의 어린 선수가 곧바로 기회를 잡아 프로 최강팀의 주전 골키퍼가 되기는 쉽지 않다.

강현무 ⓒ 스포츠니어스

송범근이 자신의 이름을 알린 것은 지난해 열린 FIFA U-20 월드컵에서다. 월드컵 조별리그 세 경기와 16강전까지 전 경기 선발 출전했던 송범근은 강팀들과의 대결에서도 주눅들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아르헨티나전에서 안정감 있는 활약과 엄청난 선방쇼를 펼치며 축구팬들에게 대형 신인 골키퍼의 등장을 알렸다.

U-20 월드컵이 끝난 후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망과 마르세유에서 관심을 표했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구단이 공식적인 제안을 하면서 송범근의 주가는 더욱 올라갔다. 하지만 송범근은 뛰기 위해 한국에 남았다. 유럽 진출은 모든 축구 선수들이 꿈꾸는 것이지만 벤치만 달구게 된다면 성장할 수가 없다. 아직 앞날이 밝은 송범근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K리그 행을 택한 것이다.

송범근은 196cm의 장신이지만 스피드와 순발력이 뛰어난 골키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혼전 상황 중 발생하는 공중볼 다툼에서도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송범근의 경험이 부족해 상황판단 능력과 수비진 조율능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송범근이 프로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올 시즌 송범근은 K리그1 13경기에 출전해 5실점했다. 경기 당 실점 기록이 0.38에 이른다. 왜 전북이 송범근을 영입해 곧바로 주전 골키퍼로 세웠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첫 데뷔 시즌부터 엄청난 기록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는 송범근은 최강희 전북 감독의 믿음에 100% 보답하고 있다.

성남의 ‘Mountain’ 김동준 (성남FC)

결론부터 말하자면 올 시즌 김동준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럼에도 김동준을 선택한 것은 성남에서 보여준 활약이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한 구단의 대체 불가능한 자원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올 시즌 초반 무패 행진을 달리던 성남FC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김동준의 부상이었다. 정밀 검사 결과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를 크게 다쳤다. 복귀까지 6개월가량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남기일 성남 감독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 시즌 초반 이어졌던 성남의 상승세를 전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김동준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현무 ⓒ 스포츠니어스

성남의 U-18 팀인 풍생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거쳐 성남에 입단한 김동준은 성남이 발굴한 ‘보석’이다. 2016시즌을 앞두고 박준혁, 정산을 모두 내보낸 성남은 대체 선수를 찾아야 했다. 당시 김학범 성남 감독은 강원FC에서 뛰던 김근배와 올림픽축구대표팀 골키퍼 김동준을 영입하며 골키퍼 포지션을 보강했다. 김학범 감독은 주전 골키퍼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 많은 고민을 했지만 그의 마지막 선택은 신태용이 이끌던 올림픽 대표팀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김동준이었다.

김동준은 자신의 프로 데뷔전을 2-0 승리로 장식하며 첫 클린시티를 기록했다. 이후 김동준은 완벽한 성남의 주전 골키퍼로 자리 잡았다. 2016시즌에 27경기를 뛰며 첫 데뷔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냈고 2017시즌에는 36경기 29실점의 기록을 세우며 팀이 리그 최소 실점을 하는데 기여했다. 올 시즌에도 다치기 전까지 전 경기 선발 출장 중이었다.

이운재 코치의 지도를 받아서일까? 김동준은 평가전이나 킹스컵과 같은 대회에서 PK를 유독 잘 선방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순발력을 바탕으로 상대 슈팅의 방향을 잘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공중볼 처리가 미흡해 실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단점이 보완된다면 향후 국가대표 골키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동준은 성남이 강등당하고 승격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잔류했을 만큼 팀에 대한 애정이 매우 뛰어나다. 그래서 K리그 팬들이 김동준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동준은 J리그로 이적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성장시켜준 구단과 재계약을 하면서 K리그1 승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래서 김동준의 부상 소식이 더욱 아쉽다.

‘양 데사르’ 양한빈 (FC서울)

양한빈은 올 시즌이 프로 데뷔 8년차이지만 팬들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양한빈의 프로 인생은 암흑과도 같았고 시련의 연속이었다. 백암고등학교를 졸업한 양한빈은 2011년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강원에 입단했다. 첫 프로 데뷔전을 뛰기까지 무려 2년 반이 걸렸다.

결국 강원에서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 양한빈은 2013년 성남으로 이적했다. 전상욱, 정산에 이은 세 번째 골키퍼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기다림 끝에 양한빈은 2013년 7월 31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 출전하는 기쁨을 누렸지만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경기에 나설 수 없었다.

희망이 없어보이던 양한빈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유상훈이 상주 상무로 입대하며 두 번째 골키퍼가 된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유현이 우라와 레즈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엄청난 실수를 범하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양한빈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2017년 3월 19일 광주전은 양한빈의 프로 통산 3번째 경기이자 4년 만의 첫 출전이었다. 이후 양한빈은 뛰어난 선방을 연이어 보여주며 팬들로부터 서울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선수로 꼽힐 정도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강현무 ⓒ 스포츠니어스

1991년생 양한빈은 현재 한국 대표팀 주전 수문장인 조현우와 동갑이다. 하지만 뒤늦게 K리그에서 빛을 발한 ‘늦깎이 주전’이다. 7년 가까이 부상과 후보 골키퍼로 자신의 축구 인생을 채워왔지만 묵묵히 참고 기다린 끝에 주전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을 괴롭게 했던 시련들을 이겨낸 양한빈은 이제 서울의 수호신이 되기 위해 또 다시 그라운드에 설 것이다.

K리그 경기들을 챙겨본 팬들이라면 양한빈이 지금 당장 대표팀에 발탁된다고 해도 불만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194cm의 신장과 동물적인 반사 신경, 시련을 겪으며 성숙해진 정신력 등은 조현우와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다. 양한빈은 U-20 대표팀 이후 국가대표와 인연이 없다. ‘늦깎이 주전’에겐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양한빈의 활약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자원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늦깎이 GK’ 윤보상 (상주상무)

대부분의 팬들로부터 호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윤보상은 상대팀으로부터 박수를 이끌어낸다. 경기 전후 상대팀 팬들에게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그는 안티팬이 거의 없다. 이렇듯 인성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는 윤보상은 실력도 뛰어나다. 지난 시즌 광주FC가 K리그1에서 강등을 당했지만 시즌 내내 맹활약하며 극찬을 받았다. 그러했던 윤보상이 이제 상주 상무로 입대했다. 광주팬들 입장에서는 팀을 먹여 살리다시피 했던 윤보상의 입대 소속이 정말 슬프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강현무 ⓒ 스포츠니어스

윤보상의 등장은 마치 혜성과 같았다. 2년 전인 2016년 K리그1 6라운드 전남전에서 프로 데뷔한 윤보상은 전남 스테보의 PK를 막으며 광주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갑자기 나타난 한 선수는 그 후로 미친 듯이 선방쇼를 펼치며 광주의 수호신이 되었다. 윤보상은 중학교 3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늦깎이 선수다. 그것도 축구부가 아닌 동네 교회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교회팀 소속으로 수원의 삼일중학교 축구부와 연습경기를 치렀을 때는 11골을 먹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삼일중학교 축구부는 ‘11골’을 실점한 교회팀 골키퍼 윤보상을 스카우트했다.

다른 선수들보다 축구를 늦게 시작한 윤보상은 기본기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년을 유급하고 학교를 더 다니며 훈련을 했다. 유급을 해 공식 경기에는 나가지 못하고 연습 경기 정도에만 나갈 수 있었다. 윤보상은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 몇 배나 더 많이 훈련하고 땀을 흘렸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수원 삼일공고에 진학한 윤보상은 그 곳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지만 고등무대의 연령 제한으로 인해 대회에 나갈 수 없었다. 1년 유급 때문이었다. 윤보상은 이를 악물고 그 1년 동안 더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런데 이번엔 오른쪽 발가락이 피로골절을 당하며 철심을 박아야 했다.

희망이 없어보이던 와중에 윤보상을 구해준 곳은 울산대학교였다. 곧바로 주전을 꿰찬 윤보상은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에 국가대표로 참가했고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남기일 감독의 눈에 들어 광주FC로 이적을 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윤보상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꾸준히 훈련하고 준비했다.

2부 리그의 골키퍼를 두고 국가대표로 뽑자는 말은 대체로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팬들은 윤보상 만큼은 그럴만한 실력이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184cm의 윤보상은 키가 작다는 자신의 약점을 자신의 뛰어난 순발력으로 보완했다. 다이빙 능력이 좋아 PK를 막아내는 등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많이 연출한다. 올 시즌 광주에서 7경기 7실점의 활약을 보여준 윤보상은 이제 상주 상무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골키퍼는 주전이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특수 포지션이다. 그만큼 경쟁이 매우 치열한 포지션 중 하나다. 한 차례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 골키퍼다. 하지만 그 중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 선수만이 살아남는다. 일찌감치 포기한다면 그 어떤 선수도 프로의 세계에서 견뎌낼 수 없다.

K리그에는 조현우 못지 않은 골키퍼들이 많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현우 역시 큰 관심을 받는 골키퍼는 아니었다. 오늘 소개한 이들 또한 언제든 조현우를 넘어설 재능을 지니고 있다. 단지 관심을 덜 받고 있을 뿐이다. 조현우가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동안 이들에게도 조금의 관심이 생겼으면 한다. 조현우도 훌륭한 골키퍼지만 그 못지 않은 매력을 지닌 골키퍼들이 K리그에는 참 많다.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