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홍명보 전무 발언, 틀린 말 없다


홍명보
홍명보 감독도 기자회견을 통해 마지막 인사를 전했었다.. ⓒ기아자동차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경기장에서 K리그 감독들을 만나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무승이 몇 경기만 이어져도 하루 하루 늙어가는 게 보인다. 황선홍 감독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고 서정원 감독의 주름이 늘어날 때마다 안쓰러웠다. 고정운 감독이 최근 들어 웃는 걸 본 적도 없다. 고종수 감독은 김호 대표의 비호를 받는 거 아니냐는 비난까지 나온다. 최용수 감독도 FC서울을 맡은 뒤 새치가 많이 늘었었다. 선수로 왕년에 잘 나갔던 형님들이 지도자가 돼 폭삭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 영광도 누릴 만큼 누렸고 돈도 벌 만큼 번 사람들이 왜 굳이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푼돈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설기현 감독은 관심이 부족한 대학 무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매년 강원도 태백과 경남 통영 시골에 가면 설기현 감독을 만날 수 있다.

홍명보의 말, 그 의미는 무엇일까?
이미 선수 시절 이룰 만큼의 성공을 이룬 이들이 건물 하나 사 놓고 임대료나 받으며 4년에 한 번씩 월드컵 때 텔레비전에 얼굴만 비춰도 아쉬울 게 없다. 부와 명예를 다 가진 왕년의 스타들이 관중도 적고 늘 선수들이 부상 당해 선발 명단을 걱정해야 하는 이 바닥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축구장은 추울 때는 너무 춥고 더울 때는 너무 덥다. 경기 때는 그나마 낫지 훈련장에 가보면 추위와 더위는 더 심하다. 그렇다고 팀을 잘 가꾸어 놓아도 칭송 받지 못한다. 잘하면 선수 탓이고 못하면 감독 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여전히 현장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이건 축구인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가대표로 오랜 시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축구인이라면 이렇게 축구로 평생 돌려줘야 하는 게 맞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가 어제(5일) 안정환과 이영표, 박지성 등 지상파 축구 해설위원 세 명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홍명보 전무는 “그 친구들은 우리나라에서 축구로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현장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경험했으면 좋겠다. 꼭 현장 지도자나 감독으로 경험을 한다면 해설 내용이 깊어질 거 같다. 그런 훌륭한 사람들은 여기(협회)에서 일했으면 좋겠다. 문이 열려 있다”고 했다. 워낙 민감한 발언이라 이에 대한 비판도 많다. 호감도가 대단히 높아 한국 축구에서는 건드려선 안 되는 세 명을 한꺼번에 겨냥했으니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홍명보 전무는 협회에서 일하며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이제 그는 기득권이 됐고 이 발언으로 ‘꼰대’로 낙인 찍혔다.

일단 같은 발언이라도 너무 ‘꼰대스럽게’ 말한 건 홍명보 전무의 잘못이다. 뉘앙스는 충분히 알겠는데 ‘너희들이 밖에서만 그러지 말고 안에 들어와서 해보라’는 뜻으로 내비쳐진 건 잘못됐다. 전형적인 “나 때는 말이야”식의 발언이다. 돌려 말한 것 같지만 의미는 분명하다. ‘입으로만 하지 말고 나처럼 안으로 들어와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다소 강경한 발언임에도 나는 홍명보 전무의 발언을 대체적으로 지지한다. 틀린 말이 없기 때문이다. 2002년의 영광을 누린 축구인들이 자꾸 겉돌게 아니라 현장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나 같은 근본 없는 이들이야 밖에서 뭐라고 떠들건 큰 영향력이 없지만 이 세 명의 해설자는 다르다. 방송에서 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전국민이 반응한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우리나라 축구를 너무 제3자 보듯 한다.

이영표
KBS 이영표 해설위원 ⓒKBS

시청률 경쟁에 쏟아지는 ‘사이다(?) 발언’
언제부턴가 꾸짖고 강하게 질타하는 해설이 ‘사이다’나 ‘팩폭(팩트폭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뭐 인터넷에서 중계를 하는 이들이야 편파 중계를 해도 상관없고 비선수출신 해설위원이 모르고 떠들어도 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 명의 해설위원의 말은 틀렸어도 곧 법이 된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분위기에 휩쓸려 일반 네티즌이 할 법한 수준의 발언을 여과 없이 하기도 했다. 똑같은 말이라도 이들이 대놓고 ‘디스’를 하는 건 대중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 “영표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같은 말로 마치 정답인 것처럼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자기들도 현역 시절 주변인들의 비판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쓴소리가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월드컵의 부담감을 잘 아는 이들이라면 조금 더 순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 해설위원은 멕시코전 도중 김민우의 크로스가 부정확하자 이런 말을 했다. “소속팀에 돌아가면 크로스 연습을 해야 합니다. 상대 마크가 없는 크로스가 선수 근처에 가지 않는 건 연습 부족입니다.” 김민우의 크로스가 아쉬웠다는 건 누구나 다 공감했다. 하지만 국가대표까지 지낸 선수 출신이 대놓고 월드컵에 나간 선수에게 ‘연습 부족’이라고 딱 잘라 말해버리면 이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 선수는 정말 크로스 연습을 하지 않은 선수가 된다. 내가 기억하기론 이 해설위원도 현역 시절 크로스는 다른 능력에 비해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 해설위원이 선수 시절 사람들이 다 보는 월드컵에서 크로스 한 번 잘못했다고 선배 축구인으로부터 연습 부족이라고 했으면 기분이 어땠을까.

또 다른 해설위원은 제3국끼리의 경기가 극적으로 끝나자 이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다음 경기 홍보를 했다. 이때 드는 생각은 이들이 정말 축구인으로 그 자리에 있는 건지 아니면 방송국 관계자로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 해설위원은 어느덧 철저한 방송인이 돼 ‘축구’보다는 ‘시청률’에 더 목을 매고 있었다. 한 팀에서 같이 뛰던 이 세 명은 이제 각자 방송사의 손을 잡고 시청률 경쟁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미묘한 경쟁은 결국 선수들을 향한 ‘사이다 발언’으로 포장된 비난으로 이어졌다. 다른 방송사보다 조금 더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비판을 해야 일침을 가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안정환
안정환 해설위원은 MBC에서 이번 월드컵을 전달하고 있다. ⓒMBC

그들이 축구계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
선수들을 걱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하는 ‘축구인’이라기보다는 욕만 안 했지 인터넷 방송과 다를 게 없는 자극성을 띈 ‘방송인’에 더 가까웠다. 물론 이 세 명이 다 그랬다는 건 아니다. 굳이 꼽지는 않겠지만 유독 더 심한 곳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제3자인 척 하며 ‘사이다’나 ‘점쟁이’로 대우를 받았지만 결국 밑바탕에는 후배들을 향한 과도한 비난이 깔려 있었다. 감스트는 그래도 되지만 이 해설위원들은 그러면 안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감싸라는 것도 아니다. 과거 차범근 해설위원은 그래도 선수 입장에서 이해하며 상황을 대중에 알렸다. 대놓고 저격하지 않고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도 있는데 일부 해설위원들은 자기는 한국 축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자기는 팔짱 끼고 이 상황을 관망하는 것처럼 대표팀을 바라봤다. 그들의 의도 자체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물론 애정이 있어서 한 발언이겠지만 그들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조금 아쉽다.

홍명보 전무의 발언이 ‘꼰대’ 같았던 건 맞다. 하지만 본질을 봤으면 좋겠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나간 이들은 본인들 스스로도 잘한 게 있지만 어찌 보면 국가와 국민이 만들어준 영웅이다. 스포츠에 국가 들먹이는 걸 싫어하지만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히딩크 감독과 코치진을 데려왔고 월드컵 경기장을 지었다. 지금 협회가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건 헛소리지만 당시에는 정말 세금이 많이 들어갔다. 다들 거리로 뛰쳐 나와 빨간 옷을 입고 응원을 보냈다. 나도 어린 나이에 현장에 가 응원을 보냈으니 4강 신화에 우주의 먼지 만큼은 보탬이 됐을 것이다. 월드컵 4강 주역들이 지금도 영웅으로 대접받지만 모두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그들은 영웅이 될 수 없었다.

심지어 병역 혜택까지 줬다. 월드컵은 원래 병역 혜택이 있던 대회가 아니었는데 당시 주장이던 홍명보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해 특별법까지 만들어 병역 혜택을 부여했다. 이들은 엄청난 혜택을 입은 이들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뭐 해설이야 욱하는 마음에 한 번씩 감정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주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이들이 다시 축구계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통해 엄청난 혜택을 받아 놓고 심지어 군대까지 빼주는 유례 없는 경험을 하고도 축구계 밖에서 쓴소리만 하는 제3자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뭐 그럭저럭 했던 대표팀 출신 선수는 사업을 하건 연예계 활동을 하건 상관없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은 축구로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실력도 뛰어났지만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난 행운과 과도할 정도의 지원도 분명히 있다. 물론 이 해설위원들 중에서는 지금도 유소년에 관심을 갖고 지도자 공부를 한 이도 있다.

하루 하루 주름이 늘어가는 게 보이는 수원삼성 서정원 감독 ⓒ 수원삼성

한국 축구 위해 행동으로 보여주길
“이들이 해설을 더 잘하기 위해 감독이나 현장 일을 위해 내부로 들어오라”는 홍명보 전무의 말에 전부 동의하지 않는다. 아마 홍명보 전무는 “해설을 더 잘하기 위해”라는 말은 그냥 명분을 위해 썼다고 본다. 핵심은 그 뒤에 이어진 “감독이나 현장 일을 위해 들어오라”는 말이다. 앞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핵심인 뒷 부분에는 100% 동의한다. 축구로 그토록 많은 혜택을 입은 2002년 월드컵의 주역들이 은퇴하고 현장에도 나오지 않으면서 4년에 한 번씩 중계석에 앉아 해설만 하는 건 재능 낭비다. 그 경험을 누군가에게 물려줘야 하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전파해야 한다. 감독이 아니라 행정으로도 할 수 있다. 그 누가 바꿀 수 없어도 2002년 4강 주역은 워낙 지지층이 많아 할 수 있다. 나는 홍명보 전무의 말을 “너희들도 입으로만 그러지 말고 현장으로 돌아와 같이 힘써주면 얼마나 좋겠느냐”로 해석했다.

홍명보 전무의 이 발언을 향해 ‘메신저’를 공격하는 이들도 많다. 4년 전 월드컵 당시 대회를 준비하며 땅을 보러 다녔고 대회에서는 참패를 경험한 홍명보 전무가 할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대표팀 감독 시절 보여준 능력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나 역시 많이 비판했다. K리그를 B급리그 운운하며 실언했던 그가 한 말이니 더 공격 받는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메신저’가 아니라 ‘메시지’를 봐야 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홍명보 전무가 할 말은 아니다”라는 논리는 세상에 없다. 맞는 말이면 그냥 맞는 말이다. 여기에선 4년 전 월드컵 참패를 경험한 감독을 들먹일 이유가 없다. 나는 홍명보 전무의 발언을 지지한다.

전북 최강희 감독도 최근 들어 비슷한 말을 했다. 최강희 감독도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한국 축구를 위해 같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들의 행동과 말이 나같이 비인기 감독보다 더 파급력이 있다”고 했다. 이 세 명 중 박지성 해설위원은 비상근직인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고 있지만 나머지 두 명은 해설위원 명함 외에는 딱히 축구와 관련된 직함이 없다. K리그를 경험했던 이들이지만 최근 K리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해설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4년에 한 번 하는 해설위원은 부업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신 다음 월드컵이 열리는 4년 동안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한국 축구를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4년 전에 마이크 앞에 앉았던 이들이 4년 만에 돌아와 마치 한국 축구를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바라보며 쓴소리만 해서는 곤란하다.

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현역 시절 영광으로 계속 존경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축구인이기에 비난 받아도 현장에 있어야 한다. ⓒ FC서울

해설위원, 그들의 ‘직업’이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오랜 시간 해설직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무슨 매일 축구 중계가 이뤄져 해설위원이 매일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K리그 프리뷰나 리뷰 프로그램에 나와 매일 같이 축구를 분석해주고 설명해주면 뭐 해설위원으로서도 한국 축구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하지만 가끔 열리는 국가대표 경기만 해설하는 이들에게는 이게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세 명뿐 아니라 2002년 4강 주역 중 일부는 축구계를 떠나 방송에나 얼굴을 비추며 살아가고 있다. 아직도 루이스 피구 막은 이야기를 하고 말디니 뒷통수 때린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 폼 나지 않더라도 고등학교 감독이라도 하며 축구계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미래를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2002년 당시 엄청난 특혜를 입은 이들에게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옛 축구 영웅들을 현장에서 감독으로 만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에는 우상이었던 황선홍, 서정원, 최용수, 고종수, 고정운 감독 등은 볼 때마다 주름이 더 깊어진다. 감독은 아니지만 최진철 K리그 경기위원장도 늘 관중 없는 경기장을 찾아 묵묵히 일하고 있다. 이미 이룰 건 다 이룬 사람들이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그 고생을 하고 있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많다. 한 경기만 패해도 얼굴이 빨개져 마치 곧 쓰러지기라도 할 듯 쓴웃음을 짓는 그들을 보면 안타깝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현장에 있을 때, 축구와 계속 인연을 잡고 있을 때가 가장 빛난다. 그게 그래도 현역 시절 축구를 통해 사랑받아왔던 이들이 또 다시 후배들에게 축구를 물려주는 길이기도 하다. 이들의 쓴소리에는 그만한 애정이 있으니 그렇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지만 부디 2002년의 영웅들이 쓴소리만 하는 ‘방송인’이 아니라 ‘축구인’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2002년 월드컵 영웅들에게 냉장고 뿐 아니라 한국 축구도 부탁하고 싶다. 그들은 그럴 만한 능력과 경험, 영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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