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 부족했지만 잘 싸웠다

일본은 사상 첫 8강에 갈 뻔 했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아직도 여운이 남는다. 무려 다섯 골이 터진 후반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 아시아 팀 중 유일하게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일본은 사상 첫 8강 진출을 노렸지만 후반 추가시간에 통한의 역전골을 허용하며 아쉽게 역전패하고 말았다. 하라구치 겐키와 이누이 다카시의 연속골에 힘입은 일본은 2-0으로 앞서나갈 때만 하더라도 무리 없이 8강에 진출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재정비한 벨기에의 공격에 순식간에 무너지며 대역전패를 당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 일본의 2-0 리드
이날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벨기에 감독은 3-4-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선 수비, 후 역습을 노리는 일본을 상대로 그다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백 쓰리 전술은 수비 진영에 3명의 선수를 두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양쪽 풀백이 공격에 가담하는 백 포 전술과 다르게 공격 자원의 수가 감소한다. 그러한 벨기에는 일본을 상대로 중원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지만 갈수록 라인을 올리면서 강하게 압박하는 일본에 공격 루트가 계속 차단됐다. 어쩔 수 없이 측면으로 돌려 빌드업을 하고자 했지만 이날 윙백으로 출전한 야닉 카라스코는 벨기에의 공격 흐름을 계속 끊으며 약점을 노출했다. 결국 중원과 측면에서 크게 일본을 압도하지 못한 벨기에는 완벽한 찬스를 잡기 힘들었다.

이 점을 간파한 일본은 벨기에의 측면을 지속적으로 공략했다. 이누이 다카시, 카가와 신지, 시바사키 가쿠를 중심으로 짧은 패스 플레이를 구사하는 일본의 역습은 매우 날카로웠다. 선제골과 추가골 역시 모두 역습 상황에서 나왔다. 벨기에의 얀 베르통언과 토비 알더웨이럴트는 소속팀인 토트넘 홋스퍼에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백 포와 백 쓰리 전술을 모두 경험한 베테랑이지만 일본을 상대로 실수를 범하는 등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벨기에가 공격 패턴을 바꾸기 전까지는 일본이 경기를 주도했다.

펠라이니, 벨기에를 구해내다
마르티네즈 감독은 애초 단신 윙어인 드리스 메르텐스와 에당 아자르의 뛰어난 스피드와 돌파 능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수비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에 역습을 허용하며 0-2까지 끌려가자 그때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뒤늦게 변화를 줬다. 해결책은 만들어가려는 플레이보다 선 굵은 단순한 패턴이었다. 교체 투입된 마루앙 펠라이니와 나세르 샤들리는 경기의 흐름을 180도 바꿨다.

194cm의 신장을 자랑하는 펠라이니는 크로스, 세트피스 상황에서 190cm의 로멜루 루카쿠와 함께 일본 선수들을 압도하며 엄청난 존재감을 선보였고 샤들리는 경기 내내 측면에서 약점을 노출하던 카라스코와 다르게 중앙과 측면을 부지런히 오가며 벨기에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벨기에의 천금 같은 동점골과 극적인 역전골 역시 이들이 만들어냈다.

펠라이니 카드는 적중했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2% 부족했던 일본
일본은 간결한 패스 플레이에 능하지만 힘과 높이로 밀고 들어오는 팀에 약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2월 있었던 한국과의 동아시아 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경기다. 당시 한국은 김신욱을 앞세워 제공권에서 우위를 점했고 일본은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1-4 대패를 당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과 비교해서 멤버 자체가 다르긴 하지만 일본은 예전부터 단순한 패턴에 약했다.

니시노 아키라 일본 감독도 그러한 일본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월드컵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만 한다면 이길 수 없는 대회다. 자신들의 약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곧바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빠르게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0-2로 격차가 벌어진지 13분이 지난 후반 20분이 되어서야 투입된 펠라이니의 교체 타이밍은 분명 빠르지 않았다. 벨기에가 공격 패턴에 변화를 주기 전까지 대응할 시간은 충분했다. 애초 단신 공격수들을 위주로 공격을 전개했던 벨기에였기 때문에 높이를 강화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키라 감독도 분명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날 일본의 백 포 라인을 구성했던 요시다 마야(189cm), 사카이 히로키(183cm), 쇼지 겐(182cm), 나가토모 유토(170cm)는 벨기에의 피지컬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일본은 펠라이니가 들어왔을 때 곧바로 제공권의 격차를 줄여줄 수 있는 선수를 투입해 벨기에의 공격을 방어했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은 동점골을 허용하고 난 후인 후반 36분이 되어서야 교체카드를 사용했다. 벨기에의 늦은 타이밍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일본의 실수였다.

또한 일본은 후반 추가시간 코너킥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이미 2-2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수비적으로 나서서 연장전을 바라보는 것이 현명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수들이 하프라인을 넘어 벨기에 진영으로 올라가있었고 벨기에는 역습 한 방으로 일본을 무너뜨렸다. 아키라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경기 막판 상대가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역습을 할지 몰랐다”고 말하며 후회했다.

후반 7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만회골을 터뜨리기 전까지 벨기에가 일본을 상대로 전술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이 충분히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벨기에가 일본이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약점을 간파해 공략하면서 결국 패배의 쓴잔을 마시게 됐다. 일본은 2% 부족했다. 벨기에가 망설이고 있던 그 시간을 잘 이용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쉬워하는 일본 관중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그래도 일본의 저력에 박수를 보낸다
몇 가지 부족한 점을 보인 일본은 결국 벨기에에 역전을 허용하면서 탈락했지만 그들의 경기력은 충분히 인정 받을만했다. 잉글랜드의 ‘레전드’ 게리 리네커가 “잉글랜드가 일본을 피하게 된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하다”고 언급했을 만큼 일본의 경기력은 소위 말하는 ‘졌잘싸’였다. 일본은 한국,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가운데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한 팀이다. 그리고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자신들의 팀 색깔을 잃지 않고 보여준 아시아 팀이기도 하다.

지난 폴란드전에서 무의미하게 공을 돌리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장점인 간결한 패스, 특유의 점유율 축구를 팬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며 일본 축구가 세계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마지막까지 버티며 ‘황금세대’로 불리는 피파랭킹 3위의 벨기에를 상대로 이렇게 재미있는 ‘꿀잼’ 경기를 보여준 일본에 박수를 보낸다.

emrechan1@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rl0rb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