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우는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핫한 선수가 됐다. 그를 아시안게임에 보내 병역 혜택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거세지고 있다. ⓒ 대구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조현우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은 1승 2패의 성적으로 원하던 16강에 가지 못한 채 대회를 마감해야 했지만 얻은 성과도 많다. 독일을 이겼다는 건 오래 기억될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됐다. 그리고 또 하나 조현우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을 전해주고 있다. 지금껏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알지 못했던 조현우가 이제는 전국민적인 스타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조현우에게 화장품과 수입차 등의 광고 제안도 쏟아지고 있고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의도 물밀 듯이 밀려오고 있다. K리그에서도 비인기 구단이었던 대구FC 선수가 이렇게 한 순간 스타가 된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불 붙은 조현우의 AG 와일드카드 발탁 여론

더 나아가 내달 있을 2018 팔렘방-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조현우를 와일드카드로 선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여론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이제는 그냥 축구팬들의 희망 정도가 아니라 조현우의 와일드카드 발탁은 뉴스에서도 비중 있게 다룰 만한 ‘사회적 이슈’가 됐다. 군 입대 문제를 내년까지는 해결해야 하는 조현우를 와일드카드로 아시안게임에 데려가 병역을 해결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승선을 노렸던 조현우는 당시 무릎 연골 부상을 당해 수술을 하며 결국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했던 바 있다. 조현우는 재검을 받으면 사회복무요원인 4급 판정을 받을 수 있지만 그는 재검을 통해 4급을 노리지 않고 현역 입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K3리그에서 뛰는 것보다는 그래도 상주상무나 아산무궁화에서 뛰는 게 선수의 미래를 위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계산을 떠나 그가 당당히 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은 박수를 보내야 한다. 다들 군 문제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지만 조현우가 사회복무 대신 현역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사회적인 존경을 받을 만하다. 이런 그를 보며 “조현우를 아시안게임에 뽑아 병역 혜택을 주자”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월드컵에서 눈 부신 선방을 보여준 그가 병역 문제를 해결하면 유럽으로 날아가 경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이끄는 김학범 감독이 느끼는 부담감은 더 커질 것이다. 조현우를 와일드카드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조현우의 국민적인 인기는 엄청나다. 그를 쉽게 외면할 수 없다. 이제 그는 ‘국뽕’ 카테고리에 싸이, 뽀로로, 박지성, 김연아 등과 함께 얼굴을 올릴 만큼 영향력이 커졌다.

하지만 나는 조현우가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 선발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봐 미리 말하자면 나는 조현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팬이다. 올 초 인터뷰를 통해 큰 꿈과 겸손한 자세를 겸비한 그가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늘 그를 응원하고 있다. 비록 K리그 꼴찌팀 골키퍼지만 그는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조현우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반짝 스타로 등극했고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해 그를 와일드카드로 뽑는 건 반대다. 아시안게임에 나갈 선수를 뽑는 건 인기투표가 아니다. 누구 한 명 병역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한 신문고 역할을 해서도 안 된다. 또한 월드컵을 통해 가장 고생한 선수의 보상 같은 의미가 되어서도 안 된다.

강현무도 잘한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든든한 수문장이다. ⓒ 스포츠니어스

강현무와 송범근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시나요?

“월드컵에서 그 눈부신 선방을 보지 않았나요? 조현우를 아시안게임에서 활용하면 팀도 강해질 것이고 조현우도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하는 선수라면 당연히 와일드카드로 뽑아야죠.”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많다. 맞다. 조현우가 잘하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은 조현우만 보면 안 된다. 현재 U-23 대표팀 골키퍼 중에는 능력 있는 선수들이 꽤 있다. 이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과연 조현우를 단 석 장 뿐인 와일드카드 중 한 장으로 쓸 만한지 따져봐야 한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현우의 존재도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조현우의 병역 문제까지 고민해 주는 건 냄비 근성의 대표적인 사례 아닐까.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U-23 대표팀에는 강현무와 송범근이 버티고 있다. 강현무는 포항스틸러스 주전 골키퍼고 송범근은 전북현대 골문을 지키고 있다. 이 둘이 K리그에서 보여준 활약은 조현우 못지 않았다. 조현우가 월드컵 경험을 쌓으면서 앞으로 이들을 크게 앞지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강현무와 송범근이 있는 포지션에 와일드카드를 쓴다는 것 자체가 낭비일 수도 있다. 손흥민의 와일드카드 발탁이 기정사실화 돼 있는 상황에서 석현준도 와일드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아시안게임이 병역 혜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사정 급한 이 선수 저 선수 다 모아서 뛰게 해주는 곳은 아니다. 손흥민과 석현준의 아시안게임 승선이 높게 점쳐지는 상황에서 나머지 와일드카드 한 장을 골키퍼에 쓴다는 건 팀에 큰 이득이 될 수 없다.

나는 사실 손흥민이나 석현준 중 한 명만 와일드카드로 뽑기를 바란다. 공격진에 와일드카드를 둘이나 뽑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전방 공격진에 와일드카드를 두 장이나 쓸 거면 미드필드나 수비진을 이끌 선수 한 명을 와일드카드로 뽑는 게 더 타당하다. 전체적인 흐름을 잡아줄 경험 있는 선수가 필요한데 그 한 장의 와일드카드를 골키퍼로 채우는 건 팀에 득이 아니다. 더군다나 조현우를 와일드카드를 뽑아 기량이 뛰어난 강현무와 송범근이 벤치를 지키게 한다는 건 대표팀에 큰 손실이다. 조현우가 군대에 가지 않고 유럽으로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은 나 역시 있지만 그렇다고 여기 저기 병역 혜택이 필요한 선수들을 모아 ‘군대 빼기용’ 대표팀을 만드는 건 반대다.

강현무도 잘한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든든한 수문장이다. ⓒ 스포츠니어스

와일드카드는 보상도, 술집 골든벨도 아니다

와일드카드를 무슨 군대 빼주는 기회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럴 거면 와일드카드에 방탄소년단도 넣고 엑소도 넣자. 와일드카드가 조직력과 우리 경기력, 단점 보완 등과는 별개로 군대 문제 급한 사람들이 우선 혜택을 받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꾸 아시안게임이 무슨 병역 혜택용 대회로 변질되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이건 금메달을 땄을 때의 ‘선물’일 뿐이다. 주객이 전도돼도 한참 전도됐다. 그리고 지금껏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는 누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월드컵 때 팬이 된 선수의 사정만 보고 마치 무슨 술집 골든벨 울리듯 와일드카드를 주장해서도 안 된다. 적어도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우리가 보완해야 할 포지션은 골키퍼보다는 수비진이다. 골키퍼는 기존 선수들로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다.

조현우의 와일드카드 선발을 반대하는 나를 좋지 않게 볼 수도 있다. 전국민적인 인기를 얻는 선수의 병역 혜택 기회 자체를 반대하니 내가 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자. 혹시 강현무가 훗날 더 성장해 유럽으로 진출하고 국가대표팀 주전 수문장이 됐다고 가정해 보자. 또 그때 가면 조현우가 여론에 편승해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 무혈 입성했고 결국 U-23 대표팀 골문을 줄곧 지켰던 강현무는 그 자리를 빼앗긴 채 아시안게임에도 나가지 못했다는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탄생해 인터넷 가짜 뉴스로 떠돌 것이다. 그러면서 와일드카드로 발탁된 조현우는 원래 신태용 감독 라인이었고 신태용 감독과 친한 김학범 감독이 조현우를 와일드카드로 뽑았다는 말이 마치 사실처럼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 가서 조현우가 조금 부진하거나 우리가 원하는대로 유럽에 가지 못하고 일본에서 뛰고 있다면? 또 조현우를 특혜를 입은 ‘인맥 축구’의 중심이라고 비난할 거 아닌가. 결국 왜곡하고 선동하기 좋아하는 무분별한 인터넷 매체에서는 여기에 MSG를 팍팍 뿌릴 게 뻔하다. 강현무를 ‘빽’ 없고 힘이 없어 와일드카드 때문에 밀려 축구를 그만둘 수도 있었지만 이걸 실력으로 이겨내 적폐와 맞서는 기구한 선수로 몰아가기 딱 좋다. 그때 가서는 또 누군가를 공정하지 않은 인맥 축구라고 비난할 것 아닌가. 소설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우리가 조금 더 아는 선수 한 명을 위해 우리가 앞으로 알게 될 선수에게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지금 가장 친숙한 골키퍼는 조현우지만 언제 또 강현무나 송범근이 대중에게 알려질지 모른다.

강현무도 잘한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든든한 수문장이다. ⓒ 스포츠니어스

여론 몰이 말고 순수하게 그를 응원해주자

그때 가서 또 대중이 과거부터 강현무나 송범근을 챙겼던 것처럼 가식 떨지 말자. 솔직히 말해 지금 조현우의 와일드카드 발탁과 병역 혜택을 주장하는 사람 중 대다수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런 선수가 있는지 조차 모르지 않았나. 조현우의 미래를 응원한다면 지금 그의 와일드카드 발탁 청원을 할 게 아니라 대구FC 홈 경기장, 아니 대구가 멀면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대구 원정 경기에 가 그를 응원해주는 편이 훨씬 더 낫다. 관중이 가득찬 월드컵에서 경기를 했던 조현우는 이제 이번 주말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늘 그랬던 것처럼 K리그 경기에 임할 예정이다. 우르르 몰려 다니며 와일드카드로 누구 뽑아라, 누구 뽑아라 훈수를 두는 건 한국 축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정말 조현우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시간에 경기장으로 와 조현우 걸개 하나 걸고 그의 유니폼 하나 사주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다.

축구도 보지 않다가 갑자기 조현우를 본 뒤 청와대 게시판에 그의 아시안게임 대표팀 발탁 청원을 올리며 호들갑을 떨지 말자. 이런 특혜가 생기면 또 다른 누군가는 기회를 잃게 된다는 아주 상식적인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김학범 감독이 골문 불안으로 조현우를 꼭 뽑고 싶다고 한다면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겠다. 하지만 월드컵 딱 세 경기 본 사람들이 마치 조현우가 한국 축구의 전부인 것처럼 병역 혜택을 이야기하는 건 역겹다. 월드컵에서 잘했으니 무슨 보상을 주는 것마냥 병역 혜택 기회를 주자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시안게임에 나갈 김학범 감독은 지난 달에도 유럽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을 살피기 위해 한 달 가까이 유럽에 체류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계획에 맞는 선수들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이미 머리에 어느 정도 대표팀 구성을 다 끝내 놓은 상태다. 한 달 뒤에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대한 준비는 이렇게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무슨 ‘병역 면제증’ 내놓으라는 식으로 갑자기 여론에서 조현우를 들이미는 건 대단히 이기적인 발상이다. 월드컵에서 잘했으면 그에 대해 박수 쳐주고 예능에 나오면 많이 시청해 주고 광고도 많이 찍을 수 있도록 응원해주면 그걸로도 충분한데 갑자기 난 데 없이 월드컵 활약에 대한 보상으로 병역 혜택이 튀어 나오는 건 불편하다. 물론 이걸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강현무나 송범근 같이 뛰어난 그 연령대 선수들이 있다는 건 관심 밖의 일이다. 김학범 감독이 필요해서 뽑는다면야 얼마든 지지해 줄 수 있지만 여론에 떠밀려 뽑지 않아도 될 선수를 뽑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와일드카드는 보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