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이변, 러시아가 스페인을 꺾었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이번 월드컵의 또 다른 이변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러시아가 ‘무적함대’ 스페인을 집으로 보냈다. 1일 오후 11시 (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16강전에서 러시아가 스페인을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경기는 특유의 패스 플레이로 중원을 휘어잡은 스페인의 일방적인 공세로 진행됐다. 하지만 러시아는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공격을 모두 차단했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한 끝에 ‘스페인’이라는 거함을 침몰시킬 수 있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전 참가했던 1970 멕시코 월드컵 이후 48년 만에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하는 위업을 거뒀다.

개최국과의 악연은 계속 된다
스페인은 조 2위로 올라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유는 ‘개최국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지금껏 월드컵 무대에서 개최국을 꺾고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한 적이 없다. 징크스의 시작은 193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은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개최국 이탈리아와 8강에서 격돌했다. 당시 토너먼트 방식은 전, 후반전을 무승부로 끝내게 되면 연장전 없이 재경기를 진행했다. 1-1로 비긴 스페인은 재경기에서 이탈리아에 0-1로 패배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1950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개최국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1-6 완패를 당하며 짐을 싸야했고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는 한국에 승부차기로 3-5로 패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로부터 16년 뒤 또 다시 ‘개최국’과 토너먼트에서 만났다. 페르난도 이에로 스페인 감독은 러시아와의 경기가 치러지기 전 “징크스는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지만 결국 징크스를 깨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코케의 잠 못 이루는 밤
지난 2011년 스페인은 콜롬비아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과 격돌했다. 연장전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은 승부차기까지 가게 됐다. 이때 세 번째 키커로 나온 코케는 실축하고 말았다. 스페인은 가까스로 8강에 진출하긴 했지만 코케 입장에서는 지옥과 천당을 오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 코케는 7년 전과 똑같이 세 번째 키커로 나섰다. 과거의 악몽과 같은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코케는 실축했고 스페인은 탈락하고 말았다.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서 개인적인 징크스를 깨지 못한 코케는 당분간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러시아를 보니 2002 한국이 떠올랐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러시아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했던 한국 대표팀의 모습이 보였다. 당시 한국은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기량 차이를 만회했고 수비수부터 공격수까지 모두 수비에 가담하며 실점을 최소화했다. 필드 플레이어 10명 모두가 한발 더 뛰는 헌신을 보여준 끝에 4강이라는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러시아도 그랬다. 러시아는 ‘무적함대’ 스페인을 만나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치 약을 먹은 것처럼 러시아 선수들은 연장전이 종료되기 직전까지도 쉬지 않고 달렸다. 영국 언론 ‘스카이스포츠’에 따르면 조별리그 2차전까지 가장 많이 뛴 팀은 러시아였다. 선수 당 평균 8.3km에 가까운 거리를 달렸다.

알렉산드로 골로빈의 히트맵 ⓒ 후스코어드 닷컴 캡쳐

FIFA 랭킹이 70위에 불과한 러시아는 스페인에 볼 점유율에서 크게 밀렸지만 공이 없는 와중에도 10명의 선수들이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공백을 줄였고 상대가 공격할 기회를 내주지 않았다. 특히 알렉산드르 골로빈은 스페인전에서 무려 16km 가까이 뛰며 그야말로 미친 활동량을 보여줬다. 러시아는 16강 진출이 그저 운이 아니었으며 스페인을 격파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소련 붕괴 이후 첫 8강 진출이라는 위업 역시 이러한 선수들의 헌신 끝에 나온 결과다.

이고르 아킨페프, ‘기름손’ 오명을 벗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축구팬들에게 “아킨페프는 어떤 선수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이근호의 슛을 흘린 기름손’ 또는 ‘챔피언스리그 42경기 연속 실점의 주인공’이라는 대답이 되돌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아킨페프는 더 이상 웃음거리가 아니었다. 조별리그 첫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의 무실점을 시작으로 16강 스페인전에서 선방쇼를 보여주며 러시아의 8강행을 이끌었다. 특히 승부차기에서 코케와 이아고 아스파스의 슈팅을 아크로바틱하게 막아내며 러시아의 ‘영웅’으로 등극했고 스페인전 공식 ‘Man Of the Match’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기름손’ 아킨페프가 아니었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축구는 정말 알 수 없다. 아니 월드컵은 더욱더 알 수 없다.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한국에 0-2로 패배하며 조 최하위로 탈락했고 지난 대회 준우승국인 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버티는 포르투갈이 모두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오늘 스페인까지 집으로 향하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속출하고 약팀의 소리 없는 반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번 대회는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 그리고 영원한 약자도 없다. 이제 팬들은 또 다른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혼전의 양상. 이것이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의 묘미다.

emrechan1@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y4XXw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