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축구협회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1884년 유럽 열강은 베를린에 모여 테이블에 지도를 펼치고 땅을 나눠 가졌다. 토착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강국의 이해관계에 얽혀 곳곳에서 내전이 발발했다. 지구 온난화로 사막화는 가속된다. 동물들은 떼죽음을 당한다. 아프리카 팀들이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이 마무리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해리 케인이 슈퍼스타가 됐고 파나마와 아이슬란드의 도전이 끝났다. F조 최약체 대한민국은 세계 1위 독일을 꺾었고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6강에 오른 팀이 됐다. 환희와 동화 속 주인공들이 있었던 반면 비극적인 월드컵을 치른 팀들도 있다. 아프리카 팀들이 모두 떨어졌다. 매 대회에서 이변을 일으키며 돌풍을 일으켰던 대륙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아프리카 돌풍이 잠잠했다.

ⓒ 모로코 축구협회 공식 페이스북

초라했던 '깡패', 불운했던 모로코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팀은 단연 이집트다. 모하메드 살라라는 초특급 슈퍼스타가 탄생하면서 이집트가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우루과이의 강세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됐었고 개최국 러시아의 경기력이 의문이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개최국이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과거가 있으므로 이집트가 러시아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아프리카 무대에서 '깡패' 노릇을 하던 이집트의 활약을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사우디아라비아는 논외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모하메드 살라가 부상을 당하면서 이집트에 비상이 걸렸다. 엑토르 쿠페르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살라의 출전을 장담했지만 결국 우루과이전에 출전을 시키지 않으면서 0-1 패배를 당했다. 1차전을 패배로 시작한 이집트는 러시아와의 2차전에서 살라를 선발로 내세웠고 전반전을 0-0으로 마쳤으나 1-3으로 무너지면서 두 경기 만에 16강 진출 좌절의 맛을 봤다. 동기부여를 잃었던 이집트는 '동네북'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게마저 1-2로 패배했고 결국 28년 만에 찾은 월드컵 본선 3전 전패로 마무리했다.

B조에 배정됐던 모로코도 1차전을 악몽으로 시작했다. 모로코는 이란의 백 식스를 넘지 못했다. 이란의 사르다르 아즈문이 생각외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모로코는 더 강하게 압박했지만 결국 마지막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자책골을 허용했다. 사기가 꺾였던 모로코는 포르투갈을 만나 분전했으나 전반 4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헤더골로 선제 실점을 허용하면서 2차전도 힘들게 시작했다. 모로코는 마음을 다잡고 골키퍼 무니르 모한드 모하메디의 선방으로 분전했으나 포르투갈 골키퍼 후이 파트리시오도 놀라운 선방을 펼쳤고 메드히 베나티아가 연달아 문전에서 슈팅을 허공으로 날리며 득점에 실패했다.

모로코는 2패로 B조에서 가장 먼저 조별예선 탈락을 맛봤다. 모로코는 마지막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전반 14분 칼리드 부타입이 선제골을 넣을 때만 해도 모로코의 사기가 올라갔지만 5분 만에 안드레아 이니에스타와 이스코가 찬물을 끼얹었다. 후반 36분 유세프 엔네시리가 놀라운 헤더로 또 앞서갔으나 추가시간 이아고 아스파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스페인의 동점골과 헤라르드 피케의 핸드볼 상황에서 적용한 VAR 기준을 두고 논쟁도 있었다. 골대를 맞추는 불운 등이 겹쳐 모로코도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쓸쓸하게 짐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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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나이지리아와 튀니지의 탈락, 세네갈의 희망 고문

D조에 배정됐던 나이지리아도 패배로 월드컵 무대를 시작했다. 모로코와 마찬가지로 전반 32분 오그헤네카로 에테보가 수비 과정에서 클리어링에 실패하며 자책골로 실점했다. 설상가상으로 후반 25분 윌리엄 트루스트 에콩이 박스 안에서 파울을 범하며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루카 모드리치가 어렵지 않게 득점하면서 나이지리아는 크로아티아에 0-2로 패배했다.

나이지리아야말로 월드컵 무대가 익숙한 국가였다. 첫 번째 경기를 패배로 시작한 나이지리아는 이번 월드컵 무대가 처음인 아이슬란드를 만나 2-0 승리를 거뒀다. 마침 리오넬 메시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아르헨티나가 크로아티아에 0-3으로 패배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를 제치고 조 2위로 뛰어오르며 아프리카의 자존심을 지키는 듯 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만나 전반 14분 리오넬 메시에게 실점하며 어려운 경기를 치렀다. 후반 6분 빅터 모제스가 페널티킥 골을 성공시키긴 했지만 후반 41분 마르코스 로호에게 실점하면서 조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G조의 배정된 튀니지도 두 경기만에 16강 진출 탈락이 결정됐다. 튀니지는 조 편성부터 운이 없었다. 해리 케인, 제시 린가드를 앞세운 잉글랜드와 에당 아자르, 로멜로 루카쿠가 뛰는 벨기에와 한 조가 됐다. 튀니지는 잉글랜드를 만나 1-1 팽팽한 동점 상황을 이어갔으나 후반 추가시간에 해리 케인에게 헤더골로 실점하면서 패배를 거뒀다. 결과를 거두지 못한 튀니지는 다음에 만난 벨기에에 2-5 대패를 당하며 고개를 떨궜다. 튀니지는 파나마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손에 땀을 쥐었던 H조의 경기에서마저 세네갈의 탈락이 결정됐다. 세네갈의 탈락 과정은 희망 고문이었다. 다른 조의 아프리카 팀들과는 다르게 '톱시드' 폴란드를 2-1로 꺾었다. 전반 37분 티아고 시오넥의 자책골로 선제 득점에 성공하면서 운도 따라줬다. 후반 15분 음바예 니앙의 추가골로 앞서가기 시작하면서 승리를 확신했다. 세네갈은 경기 종료를 앞두고 후반 41분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의 헤더골로 실점했는데 그때는 이 실점이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몰랐다.

세네갈은 일본과의 경기를 2-2로 마무리하면서 조 2위 자리를 지켰다. 무실점 무승부만 거둬도 세네갈은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마침 폴란드의 얀 베드나렉이 후반 14분 일본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면서 조 1위 자리까지 올랐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후반 29분 예리 미나의 헤더를 놓치며 조 3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크리호비아크에게 허용한 실점이 여기에서 세네갈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과 골득실, 득점까지 모두 같았고 일본과의 승부에서 무승부까지 거뒀으므로 승자 승 원칙까지 동률인 상황이었다. 결국 세네갈은 페어플레이 포인트에서 일본에 밀리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 모로코 축구협회 공식 페이스북

잠잠했던 돌풍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눈물을 흘렸던 대륙은 아시아였다. 이란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을 뿐 모두가 부진했다. 그런 이란도 1무 2패로 월드컵 무대를 4위로 마쳤다. 호주는 3전 전패를 거뒀고 일본도 1무 2패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우리 대표팀도 1무 2패를 거두며 조 최하위로 월드컵 여정을 마쳤었다. 아시아의 자존심을 걸고 세계 무대에 도전했던 모든 국가가 모두 승점 제물이 됐다. 이번 대회에서는 우리나라가 독일을 꺾는 이변이 연출됐고 이란도 모로코를 잡았다. 호주도 덴마크를 상대로 승점 1점을 추가하면서 지난 대회보다는 나은 성적을 거뒀다. 일본은 16강에 진출하면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살렸다.

그러나 아프리카 대륙은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세네갈이 아프리카의 자존심을 살리는 듯했으나 결국 무너졌다. 지난 대회 아시아 국가들의 성적만큼 처참하진 않지만 16강 토너먼트에 한 국가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134년 전 유럽 열강에 의해 분리됐던 아프리카의 모습과 겹친다. 그래도 아프리카는 노래를 불렀고 타악기를 두드리며 춤을 췄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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