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연속’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 총정리


호날두, 러시아월드컵, 포르투갈
ⓒ 포르투갈 축구 협회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임형철 기자] 그야말로 혼돈의 연속이었다. 조별예선 48경기에서 절대 강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잉글랜드-벨기에, 파나마-튀니지의 H조 조별예선 3차전 경기를 마지막으로 32개 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이 막을 내렸다. 이번 조별예선은 강팀과 약팀의 차이가 크지 않아 유독 팽팽한 분위기와 긴장된 흐름이 긴 시간 이어졌다. 대부분 경기가 한 골 차 싸움으로 끝났다.

우승 후보로 불리던 팀들은 저마다 불안한 구석을 노출하거나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기대를 모았던 슈퍼스타 중 일부는 실수나 부진을 면치 못했다. 예상 밖의 선전을 거두면서 새로운 스토리를 쓴 팀들도 있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은 유독 흥미로운 사건이 많았다. 막을 내린 월드컵 조별예선을 정리하는 의미로 32개 팀의 48경기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하나씩 정리해보았다.

개최국 러시아, 최고의 수혜자 골로빈
평가전에서 러시아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달랐다. 우루과이,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A조에 편성된 러시아는 2승 1패의 성적으로 수월하게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개막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를 5-0으로 꺾은 그들은 이집트도 3-1로 누르며 조별예선 두 경기 만에 8골을 터트렸다. 알렉산드르 골로빈, 아르템 쥬바, 데니스 체리셰프 등 공격진에 선 선수들이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대회 첫 골의 주인공 유리 가진스키도 공수 양면에서 팀의 중심을 잡아줬다.

조 1위 자리를 두고 치러진 우루과이와의 조별예선 3차전에서 0-3으로 무너지긴 했지만, 러시아는 조별예선을 통해 가지고 있는 전력을 증명했다. 특히 이번 대회 최고의 수혜자인 골로빈의 활약이 돋보였다. 개막전에서 자고예프의 부상으로 2선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 잡은 골로빈은 매 경기 12km가량의 활동량을 기록하며 팀의 중원 싸움, 공격 전개를 이끌었다. 우루과이전은 휴식을 취한 채 2경기 1골 2도움의 성적을 기록 중인 골로빈은 다가오는 토너먼트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포르투갈을 살린 호날두
포르투갈의 전력은 냉정히 말해 좋지 않다. 그러나 팀보다 위대하다는 평가가 절대 부족하지 않은 한 선수가 있었기에 포르투갈은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스페인전 해트트릭을 시작으로 모로코전에서도 연속 골 득점에 성공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조별예선 3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란전 PK 실축이 유일한 흠이긴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팀의 16강 진출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은 다 한 상태였다. 토너먼트에서의 호날두는 더 무섭다. 조별예선의 활약을 그저 예고편으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한다.

메시, 러시아월드컵, 아르헨티나
ⓒ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 페이스북

지옥과 천당 오간 메시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는 큰 부담이 따라오는 탓일까. 리오넬 메시가 아이슬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PK를 놓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아르헨티나는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1차전 1-1 무승부에 만족했다. 2차전인 크로아티아전에서는 더 충격적인 결과가 이어졌다. 중원이 없다시피 한 최악의 경기력을 보인 아르헨티나는 크로아티아에 0-3으로 무너지며 16강 진출에 위험신호가 켜졌다.

위기를 직감한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과 아르헨티나는 작심하고 마지막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했다. 그동안 외면해온 에베르 바네가를 다시 선발로 기용하고 팀의 전형을 4-3-3에 가깝게 정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바네가의 활약 덕에 자유로워진 메시가 선제골을 넣으며 부활을 알렸고 종료 직전 마르코스 로호가 극적인 결승 골을 터트리며 2-1로 승리했다. 자칫 나락으로 빠질 뻔했던 아르헨티나는 16강에 올라 겨우 체면치레했다. 그들의 16강 진출 과정은 16개 팀 중 가장 극적이었다.

“이번엔 진짜 달랐다” 징크스를 깬 크로아티아
20년 전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크로아티아는 당시 4강까지 오르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이후 본선에 오를 때마다 모두 조별예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은 지역 예선에서 탈락해 불참하기도 했다. 매년 나쁘지 않은 선수단이 구성된 크로아티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본선에서 유독 힘을 쓰지 못했다. 그런 크로아티아에 긴 시간 ‘결과를 못 내는 팀’이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들은 드디어 징크스를 깼다. 이번엔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전승을 거두며 지난 대회들의 아픔을 씻어냈다. 특히 3-0 대승을 거둔 아르헨티나전은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역사에도 길이 남을 경기였다. 마르셀로 브로조비치, 이반 라키티치, 루카 모드리치를 앞세워 아르헨티나의 중원을 압도했던 크로아티아는 누가 봐도 90분 내내 우세한 경기를 풀어갔다. 이제 크로아티아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되는 팀’이 됐다. 그들이 토너먼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수록 이번 조별예선에서의 행보가 지니는 가치도 더더욱 올라갈 것이다.

브라질의 진짜 에이스, 사실은 쿠티뉴
우승 후보 브라질은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지역 예선 때만큼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상 후유증을 앓고 있는 에이스 네이마르의 부진이 컸다. 지난 겨울 소속팀에서 중족골 골절을 당해 3개월가량 치료에 집중했던 네이마르는 조별예선 내내 100% 몸 상태를 회복하지 못했다. 마지막 세르비아전에서 조금이나마 살아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조별예선 내내 네이마르보다 돋보인 브라질 선수는 따로 있었다.

필리피 쿠티뉴가 브라질이 조별예선을 통과한 1등 공신이었다. 쿠티뉴는 1차전 스위스전에서 ‘쿠티뉴존’에서의 멋진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2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도 후반 추가시간에 오랜 0-0 침묵을 깨는 선제골을 터트렸다. 마지막 세르비아전에서는 도움을 기록하며 조별예선 세 경기에서 모두 공격 포인트를 쌓았다. 브라질이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동안 쿠티뉴의 존재감이 빛을 발했다. 쿠티뉴가 있었기에 브라질은 조별예선의 중요한 순간마다 결과를 냈다.

알바니아
자카와 샤키리는 골을 넣고 손으로 이 새를 표현하면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원더 골 넣고 흑역사를 만든 자카와 샤키리
브라질과의 1차전에서 꿋꿋이 무승부를 거둔 스위스는 16강 진출을 위해 세르비아와의 2차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했다. 이 중요한 경기에서 선제 실점을 허용하며 불안하게 출발한 그들은 후반전 그라니트 자카와 제르단 샤키리의 골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두 선수의 골 장면은 모두 대회 최고의 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자카는 특유의 중거리 슛 장점을 살려 먼 거리에서 골을 넣었고 샤키리도 장기인 드리블과 속도를 앞세워 종료 직전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은 멋진 원더 골 장면에서 흑역사를 남겼다. 골을 터트린 후 행한 세레모니가 문제가 됐다. 알바니아계 스위스인인 두 선수는 상대 팀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의 국가 간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을 이용해 알바니아 국기에 있는 새를 손으로 표현한 채 세레모니를 즐겼다. 명백히 세르비아를 향한 도발의 의미가 담겼다. 이들의 정치적인 행위를 외면하지 않은 피파는 두 선수에게 두 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조별예선 3차전을 징계로 결장한 두 선수는 다가오는 스웨덴과의 16강전에도 나설 수 없다.

러시아월드컵, 독일
우리가 이 팀을 꺾었다. 실화다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페이스북

독일의 이른 퇴장, 그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
요하임 뢰브 감독은 선수 선발 과정에서 익숙함을 중시했다. 그러나 그가 받아든 결과는 절대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회 전부터 선수 발탁 논란, 터키계인 메수트 외질과 일카이 귄도안의 터키 대통령 기념사진 스캔들 등을 이유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독일은 조별예선 내내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다.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0-1 충격 패를 당하며 대회를 시작한 독일은 스웨덴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뒀으나 스웨덴을 압도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대한민국과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경기를 펼쳤다. 90분 내내 한국의 강한 압박과 촘촘한 수비벽에 해법을 찾지 못한 독일은 후반 추가 시간에만 두 골을 내주며 대회 탈락을 확정했다. 전 대회 우승팀이 고전을 면치 못하며 무너지는 모습에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이목이 쏠렸다. 자연스레 기가 막힌 경기력과 투지로 세계 1위 팀을 격파한 대한민국에 여러 나라의(특히 멕시코의) 찬사가 쏟아졌다.

대한민국은 스웨덴과의 첫 경기를 아쉽게 마쳤지만, 두 번째 경기인 멕시코전부터 익숙한 4-4-2로 시스템을 바꿔 달라진 경기력을 보였다. 세 번째 경기인 독일전에서는 그동안 준비해왔던 경기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전 대회 우승팀을 2-0으로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목표로 했던 16강 진출엔 실패했으나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은 대표팀은 월드컵 열기를 증폭시키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득점왕 메이커’ G조가 배출한 유력 후보들
잉글랜드와 벨기에는 튀니지, 파나마와 함께 G조에 편성됐다. 객관적인 전력상 두 팀이 상당한 우위에 있는 데다 서로 간의 맞대결은 최종전에나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G조에서 득점왕 유력 후보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대회 전부터 지배적이었다. 예상대로 해리 케인과 로멜루 루카쿠는 튀니지, 파나마를 상대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했다. 케인은 튀니지 상대 2골, 파나마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루카쿠는 파나마와 튀니지를 상대로 각각 두 골씩 기록했다.

케인과 루카쿠는 정작 서로 간의 최종전 맞대결에서 나란히 결장했다. 이미 16강을 확정한 상황인 데다 G조 1위에게 주어지는 특혜도 대진상 많지 않았기 때문에 토너먼트를 대비해 체력을 안배하는 쪽을 선택했다. 득점왕 메이커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던 G조는 예상대로 득점왕 유력 후보를 두 명이나 배출했다. 조별예선을 마친 현재 G조에서 5골을 넣은 케인과 4골을 넣은 루카쿠, B조에서 4골을 넣은 호날두가 나란히 1, 2, 3위를 구성 중이다. 이들의 경쟁은 토너먼트에서 더욱 열기를 더할 전망이다.

레반도프스키, 폴란드
한반도프스키라는 말은 취소다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페이스북

16강 진출에도 박수받지 못한 일본
1차전 콜롬비아에 2-1로 승리하며 기분 좋게 대회를 시작한 일본은 세네갈과의 2차전에서도 2-2로 비기며 선전했다. 그러나 1승 1무의 성적으로는 16강 진출을 단언할 수 없었다. 폴란드와의 최종전과 같은 시간에 열리는 세네갈 대 콜롬비아의 경기 결과를 유심히 살펴야 했다. 일본은 폴란드의 얀 베드나레크에게 선제 실점을 내주며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같은 시각 세네갈이 콜롬비아에 0-1로 패한 덕에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앞선 일본이 세네갈을 제치고 16강에 올랐다.

여기까지는 정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기 내용에 있었다. 스스로 0-1로 지고 있는데도 콜롬비아가 세네갈에 앞서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일본은 경기를 포기한 채 라인을 내리고 15분 이상의 시간 동안 뒤에서 볼을 돌리기에 급급했다. 상대 팀 폴란드는 더했다. 일본이 대놓고 시간을 지연하는데도 똑같이 물러서서 경기를 포기했다. 대회 내내 심각한 부진에 빠졌던 팀이 극도의 소극적인 선택을 했다. 경기 후 두 팀 모두 전 세계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번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 중 최악의 경기임이 틀림없었다.

최초 도입된 VAR이 빚은 작은 소동들
팀, 선수, 경기 이상으로 이번 월드컵에서 크고 작은 사건을 만든 주인공은 따로 있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도입된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이다. VAR 활용 권한이 온전히 주심에게 있었기 때문에 형평성에 논란이 일었다. 어떤 팀은 선수들이 조르자 바로 VAR이 시행되는 혜택을 얻었고 어떤 팀은 VAR 시행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주심의 단호한 반응으로 인해 철저히 외면당했다. 대한민국도 VAR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봤다. 스웨덴전 구자철이 상대 선수에 고의로 밟힌 장면과 멕시코전 두 번째 실점 직전에 기성용이 반칙을 당한 장면을 곱씹어보면 아쉬움이 크다.

VAR의 긍정적인 면도 분명 존재한다.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김영권이 VAR 판독 끝에 골을 인정받은 장면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닌 영국 BBC의 축구 패널들도 극찬을 보냈다. 외신도 “VAR이 이 장면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해냈다”며 칭찬했다.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VAR이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어쨌든 이대로 끝까지 간다. 토너먼트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쏟아낼 가능성이 현재로선 대단히 높다.

이 밖에도 ‘늪 축구의 달인’ 이란의 지독히도 끈적한 축구, 월드컵 1승을 위해 이빨부터 들이민 파나마와 튀니지의 맞대결 등 수많은 사건이 러시아 월드컵 조별예선과 함께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건들은 대부분 토너먼트에서 이야기가 더해질 가능성이 높다. 16강을 준비 중인 16개 팀이 아직 다 보여주지 않은 면모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월드컵 토너먼트가 이제 시작된다. 과연 이번엔 어떤 사건이 축구팬들을 놀라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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