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 방송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대한민국이 독일을 꺾었다.

27일 밤 11시(한국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예선 최종전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김영권과 손흥민의 연속골에 힘입어 독일을 2-0으로 제압했다. 2연패로 F조 최하위에 머물렀던 대한민국은 이날 승리로 조 3위를 차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며 월드컵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였다. 그래서 더욱 달콤하다. 모두가 박수를 보낼 만한 경기력이었고 이길 자격이 있었던 한 판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승리에 누구보다 당황한 사람들이 있다.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웃고 있을 때 누가 이런 상황에 처했을까? 한 번 꼽아봤다. 승자의 여유를 가지고 읽어보자.

1. 슈틸리케 감독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가 쓸쓸하게 고국으로 돌아간 슈틸리케 감독은 유독 이번 월드컵에 신나 보였다. 월드컵 내내 "한국은 안된다"를 외치고 다녔다. 스웨덴전을 마치고 독일 국영방송 ZDF와의 인터뷰에서 "슬프지만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3패를 받아들여야 한다"더니 25일 독일 '키커'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은 독일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틸리케의 발언은 비판보다는 감정을 섞은, 악의적인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잘못된 방향으로 백지 상태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더니 "한국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반드시 희생양이 나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독일전 직전까지 그의 발언은 예상 외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슈틸리케 말 하나 틀린 것 없다"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세바스티안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는 등 과거의 행적은 깔끔하게 지워진 것처럼 보였다.

ⓒ 아시아축구연맹(AFC)

하지만 신태용 감독과 대한민국 대표팀은 전임 감독이 내뱉는 조롱 가까운 발언을 이겨내고 그의 조국 독일을 2-0으로 격파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입을 다물게 하는 확실한 한 판이었다. 그리고 독일은 한국보다 뒤쳐진 F조 최하위로 최악의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그에게 좋은 속담을 하나 선물해주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2. 해외 베팅 사이트

독일전이 열리기 전까지 해외 베팅 사이트는 한국의 절대 열세를 점쳤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평가했을 때 한국은 독일보다 분명 약했다. 하지만 축구에는 의외성이라는 것도 있다. 특히 이번 월드컵에서는 강호들이 발목 잡히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문제는 해외 베팅 사이트가 '한국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것처럼 분석했다는 점이다.

각종 베팅 사이트에서는 독일의 절대 우세를 예상하면서 극단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해외 주요 베팅 사이트들은 경기 전 배당률을 책정했다. 여기서 한국이 독일을 2-0으로 꺾을 가능성보다 독일이 한국을 7-0으로 완파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레드브룩스'의 경우 전자는 100/1, 후자는 80/1로 책정했고 'Bet365'는 전자 80/1, 후자 66/1의 배당률을 매겼다.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한국은 점유율에서는 완전히 밀렸지만 결코 소극적인 경기를 하지 않았다. 독일의 공격을 잘 틀어막고 효과적인 역습으로 2-0 승리를 거뒀다. 축구의 의외성을 무시하고 배당률을 책정하는 업체에 함부로 낚이지 말자. 한강 물 온도만 더 확인할 뿐이다. 공은 둥글지만 축구라는 스포츠는 앵간하면 상식 선 안에서 보는 종목이다.

3. 마누엘 노이어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은 부진했다. 멕시코에 0-1로 패했고 스웨덴을 상대로는 진땀 승부 끝에 2-1로 승리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조별예선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멕시코전에서 패한 이후 기자회견에서 독일 골키퍼 노이어는 "이 시점부터 독일은 모든 경기에서 결승전처럼 뛸 것이다. 스웨덴과 한국을 상대로 독일 축구의 힘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의 이후 행보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스웨덴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터진 극적인 역전골로 2-1 승리를 거뒀지만 한국전에서는 0-2 패배를 당하며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특히 한국전에서 노이어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정우영의 무회전 프리킥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고 후반 막판에는 무리한 공격 가담으로 추가 실점을 허용했다. 이 정도면 '허언증 갤러리 고정닉'이라 해도 믿을 수 있다.

4. 브라질 국민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홈 팀 브라질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당시 브라질은 미네이랑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을 만났다. 브라질은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게다가 홈 팀이었다. 하지만 독일에 와르르 무너졌다. 11분 만에 토마스 뮐러에게 실점하더니 이후 여섯 골을 더 내줬다. 경기 종료 직전 오스카가 만회골을 터뜨렸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홈에서 열린 월드컵 4강전에서 1-7 대패라는 굴욕을 겪었다.

ⓒ 아시아축구연맹(AFC)

이후 브라질은 복수를 꿈꿨다. 물론 지난 3월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 스타디움에서 1-0 승리를 거뒀지만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는 월드컵에서 만나야 했다. 그리고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 둘은 맞대결을 예고했다. 브라질은 E조, 독일은 F조에 편성되어 16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특히 마지막 3차전이 열리기 전 브라질이 1위, 독일이 2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맞대결 성사에 대한 기대감도 생겼다.

하지만 한국이 독일의 발목을 잡고 스웨덴이 멕시코를 완파하면서 두 팀의 맞대결은 무산되고 말았다. 브라질 국민의 입장에서는 설욕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그래도 브라질 국민들은 황당하지만 웃고 있다. 벌써부터 대한축구협회의 인스타그램에는 브라질 팬들의 감사 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덤으로 0-3 완패를 당하고도 16강에 오른 멕시코 팬들 역시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5. 인터넷 악플러

월드컵 기간 내내 인터넷 악플러들은 축구에 눈을 돌렸다. 축구가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기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의 악플은 도를 넘었다. 특히 청와대 국민청원과 주요 포털 사이트 댓글 창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개막 전부터 비판이 아닌 비난이 쏟아졌다. 제대로 된 전후 관계 파악 없이 "히딩크를 거부한 신태용 두고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본격적으로 월드컵이 개막하자 악플러들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특히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이 끝나고 나서 악플러들은 그야말로 활개를 쳤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장현수를 사형시켜달라'는 등 섬뜩한 수준의 청원이 올라왔다. 신태용 감독도 비슷한 수준의 사이버 테러를 당했고 가장 활약한 조현우의 아내 역시 악플에 시달리면서 인스타그램을 닫았다.

독일전 이후 인터넷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잘 싸웠다", "탈락해도 괜찮다. 너희들이 최고다"라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역대급 유종의 미'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물론 악플러들은 "냄비들 한 경기 이겼다고 또 오버하네"라는 등 열심히 댓글을 달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가대표들은 자신의 힘으로 여론을 뒤집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 감독의 말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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