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독일을 제압했다. 이번 월드컵 최대 이변이다. ⓒ 아시아축구연맹(A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요 며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힘을 주고 싶어 응원의 칼럼을 썼다가 욕도 많이 먹었다. 한국이 스웨덴에 0-1로 패한 뒤로는 월드컵 기간 동안 출연하기로 했던 방송도 뚝 끊겼다. “그래도 다음 경기를 기대한다”고 하면 조롱이 쏟아졌고 신태용 감독을 응원했다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뒷돈을 받은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장현수는 청와대 청원 사이트에 사형을 요구한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신태용호에 응원을 보내는 것 자체를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나날이었다. 나도 이 정도였는데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간 선수단은 오죽했을까.

독일전 앞두고 조롱 받던 대표팀

한국이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꺾었다. 그것도 2-0의 믿기지 않는 승리였다. 우리는 원래 목표인 16강 진출에 실패했는데 그래도 기분이 너무 좋다. 마지막 독일전에서 보여준 투혼과 감동은 아마도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라이벌 일본이 16강에 가고 말고는 더 이상 배 아픈 일도 아니다. 우리가 보여준 투혼 하나 만으로도 오늘은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월드컵 무대에서, 단 한 번도 조별예선 탈락을 해본 적 없는 독일을 상대로, 부상자가 속출해 전력이 100%도 아닌 한국이 승리를 거둔다는 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결과다. 아마 드라마를 써도 이렇게 쓰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월드컵 개막 전 최용수 감독이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노려보자”고 했다가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 이 장면은 지금도 캡처돼 여러 유머 사이트에 돌아다닌다. 그만큼 우리가 독일을 잡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박지성 해설위원도 “독일과 비벼볼만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조롱 섞인 반응을 들어야 했다. 천하의 박지성도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는데 그 결과를 실제로 얻었다는 건 꿈만 같은 일이다. 한국이 이렇게 박수를 받으며 월드컵을 마무리한 건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당시에는 4강이라는 성과를 냈으니 그렇다고 쳐도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도 이렇게 흐뭇한 적은 정말 처음이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 있다. 너무 상투적이어서 이제는 피하고 싶은 표현이다. 그런데 독일전은 정말 ‘떨어졌지만 잘 싸웠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대단한 경기였다. 온갖 조롱의 대상이 됐던 장현수도, 이전에 그 지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김영권도 잘 싸웠다. 관심이 부족한 무대에서 뛰던 조현우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상대로 무실점 경기를 했다는 것도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게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문선민과 주세종은 이 무대의 당당한 주인공이 됐다. 멕시코전이 끝난 뒤 분한 마음에 눈물을 보였던 손흥민은 독일의 추격 의지를 완전히 꺾는 골을 뽑아냈다. 다른 선수들도 비난에 맞서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장현수는 이번 월드컵에서 온갖 비난을 받아야 했다. ⓒ FC도쿄

가장 힘든 월드컵이 이렇게 끝났다

생각해 보면 정말 힘든 월드컵이었다. 이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신태용 감독은 독이 든 성배, 아니 독이 든 소주잔을 들이켰다. 감독 인생을 걸고 한국을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진출로 이끌었음에도 숱한 질타를 받아야 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히딩크 감독 재부임설로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던 날 대중은 신태용 감독이 아닌 히딩크 감독을 외쳤다. 소집 훈련 기간도 짧았고 그 와중에 핵심 선수들은 줄줄이 부상을 당했다. 심지어 대회 기간 동안 박주호와 기성용까지도 부상으로 쓰러졌다. 가진 전력의 절반은 내놓은 채,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월드컵에 임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월드컵 중에 가장 대중의 여론이 좋지 않은 대회였다. 이러다 한국 축구가 정말 큰일 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걱정되는 월드컵이었다. 조별예선 두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해 성적도 좋지 않은 마당에 대중의 싸늘한 반응까지 이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국 축구가 망하는 건 K리그에 관중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표팀의 인기가 떨어졌을 때다. 내셔널리즘이 강한 한국에서 대표팀이 관심을 받지 못하면 축구는 다 죽는다. 위기감을 느껴야 할 정도로 대표팀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독일과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는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할 만큼 비관적인 의견이 많았다.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어도 한국이 독일을 두 골 차로 이기는 건 꿈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이 정말 독일을 두 골 차로 이겼다. 비록 멕시코가 스웨덴에 완패하면서 기적과도 같은 경우의 수는 일어나지 못했지만 한국이 90분 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아니 그 이상으로 했다. 우리가 기적적으로 16강에 가지 못한 건 우리 탓이 아니다. 이전 두 경기 결과를 빼고 마지막 독일전에서는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결과를 냈지 않은가.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을 조금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도 있지만 이 아쉬움을 다 극복할 만큼 독일전은 엄청났다.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됐던 대표팀이 반전을 이룬 것 같아서 기쁘다. 특히나 이 독일전은 오랜 시간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FIFA 랭킹 1위 독일을 2-0으로 이기며 그들의 발목을 잡은 건 월드컵 역사에 남을 일대 사건이다.

장현수는 이번 월드컵에서 온갖 비난을 받아야 했다. ⓒ FC도쿄

탈락했지만 정말 잘 싸웠다

한편으로는 참 우리나라 축구 팬들이 순수한 면도 있는 것 같다. 한국이 독일을 두 골 차로 제압할 경우 멕시코가 스웨덴을 한 골 차로만 이겨줘도 우리는 16강에 갈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조건을 기적적으로 충족했는데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기지 못하면서 우리의 16강 꿈을 사라지게 됐다. 어찌 보면 멕시코를 원망하면서 볼 멘 소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월드컵에서 독일을 이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격에 빠져있다. 아마 다른 나라였으면 멕시코 대사관 앞에서 항의를 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멕시코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소박한 우리 팬들은 16강에 도움을 주지 못한 멕시코를 원망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우리의 꿈은 16강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감격적인 경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국 축구가 저력을 보여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최근 들어 대표팀은 늘 투지가 부족하고 정신력도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는 그랬을 수 있어도 한국 축구의 저력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 한판이어서 감격적이다. 한국 축구가 늘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지탄을 받아도 그래도 멱살 잡고 한국 축구를 이끌어 주는 건 이렇게 한 번씩 감동을 선사하는 대표팀이었다. 아주 오랜 만에 한국 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보여준 한판이어서 오늘은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우리가 언제부터 16강에 못 갔다고 욕하는 팀이었나. 이렇게 조별예선에서 후회 없이 싸우고 멋지게 상대를 한 번 물어뜯으면 그걸로도 박수를 보낼 만한 팀 아니었던가. 가장 힘든 월드컵을 우리는 그래도 감격적으로 마무리했다.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지만 잘 싸웠다. 온갖 지탄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해 감동을 선사한 태극전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얻을 것 보다 잃을 게 훨씬 많은 대표팀 감독이 돼 안 먹어도 될 욕을 잔뜩 먹었던 신태용 감독에게도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독일을 1승 제물로 삼은 신태용 감독의 ‘트릭’은 진짜였다. 이 선수들의 이름을 오늘은 꼭 불어줘야겠다. 김승규, 김진현, 조현우, 김영권, 정승현, 윤영선, 오반석, 김민우, 박주호, 홍철 고요한, 이용, 기성용, 정우영, 주세종, 구자철, 이재성, 이승우, 문선민, 손흥민, 황희찬, 김신욱,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현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태극전사들이여, 탈락했지만 잘 싸웠다. 정말 잘 싸웠다. 16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정말 기분 좋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