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을 ‘찬사’로 바꾼 김영권, 그의 눈물은 값졌다


'카잔의 기적'을 이끈 김영권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김영권의 최근 축구인생을 되돌아보면 힘든 시기의 연속이었다. 엄청난 비난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왔고 김영권은 자신의 팔에 둘러져있던 주장 완장을 내려놔야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이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팬들과 언론 매체들은 연이어 그의 기량에 의문부호를 던졌다. 엄청난 부담을 안고 러시아를 밟은 김영권은 뛰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했다. 자신과 조국을 위해 이 악물고 뛰며 엄청난 투지를 보여준 김영권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중심이 되었고 독일전 승리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사로잡았던 마음고생을 털어낼 수 있게 됐다.

그를 나락으로 빠뜨린 ‘실언’
지난 2017년 8월 28일 신태용 감독은 이란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9차전 경기를 앞두고 김영권을 새로운 대표팀 주장으로 선임했다. 슈틸리케 전 감독 체제 아래에서 한국의 2015 EAFF 동아시안컵 우승을 이끈 경험이 있고 중국 슈퍼리그의 광저우 에버그란데 소속으로 보여준 활약 덕택이었다. 김영권이 주장으로 출전한 이란전에서 한국은 유효슈팅을 단 한 차례도 기록하지 못하는 졸전을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0-0 무승부를 거뒀다.

당시 대표팀은 실망스러운 경기력만으로도 팬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영권은 “경기장 관중들의 함성이 너무 커서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우리가 준비할 것을 펼칠 수 없었다”고 실언을 하고 말았다. 마치 경기력 부진의 원인을 홈 팬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듯한 대표팀 주장의 발언은 축구팬 모두를 분노케 했다. 뒤늦게 김영권이 직접 나서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지만 이미 팬들은 그로부터 등을 돌린 후였다.

그를 따라다닌 ‘중국화’ 꼬리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A매치 경기가 있을 때마다 한국 선수들의 ‘중국화 논란’에 대한 기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중국화 논란’이란 중국 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이 날이 갈수록 하락하면서 대표팀 경기력 부진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김영권도 그러한 논란의 중심 속에 있었다.

슈틸리케 전 감독 아래에서 한국의 아시안컵 준우승을 견인하는 등 붙박이 주전으로 뛰며 활약했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이 시작된 후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특히 지난해 10월 러시아, 모로코와의 A매치 경기에서 2경기 7실점을 하면서 ‘중국화 논란’은 극에 달했다. 인터뷰 실언에 이어 대표팀의 경기력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김영권의 자신감은 바닥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올해 1월 터키 전지훈련 당시 펼쳐졌던 몰도바전 출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과 멀어지게 되었다. 김영권 자신도 자신의 러시아행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다
하지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주전 수비수 김민재의 월드컵 출전 불발이었다. 김민재는 대구FC와의 K리그 경기에서 종아리뼈에 실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면서 러시아행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 경험이 많은 김영권을 대신 러시아로 데려갔다.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 최종명단에 김영권의 이름이 포함되자 대부분의 팬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표팀 선수답지 않은 발언을 한 이력이 있는데다가 ‘중국에서 뛰는’ 수비수라는 인식이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었기 때문에 김영권의 발탁을 긍정적으로 볼 리가 없었다.

그러한 팬들의 반응을 김영권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기사마다 자신을 헐뜯는 악성댓글들이 수없이 달렸지만 꾹 참고 묵묵히 훈련에 열중했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가지고 러시아에 입성한 김영권은 이번 대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팬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온 힘을 다해 뛰면서 실력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영권의 활약이 있었기에 다른 선수들도 웃을 수 있었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이번 월드컵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을 걸다시피 한 김영권은 엄청난 투지를 보여주며 팬들에게 소리 없는 용서를 구했다. 스웨덴, 멕시코와의 1, 2차전에서 정교한 슬라이딩 태클과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를 보여주며 축구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비록 패배했지만 김영권은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오던 팬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 독일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앞선 2경기에서 보여준 준수한 수비력으로 벨기에의 얀 베르통헌을 빗댄 ‘영 베르통권’이라는 별명까지 들었지만 김영권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메수트 외질, 티모 베르너, 토니 크로스 등의 슈팅을 온몸을 던져 막아냈고 양 측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독일의 크로스를 걷어냈다. 또한 후반 추가시간 ‘전차군단’ 독일을 침몰시키는 선제골을 터뜨리면서 대이변의 중심이 됐다.

모두의 심금을 울린 김영권의 눈물
한국이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2-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Man of the Match’로 선정된 골키퍼 조현우의 환상적인 선방쇼 덕분인 것도 있지만 김영권의 안정적인 수비력과 코너킥 상황에서 터진 그의 선제골이 없었더라면 16강 진출보다 값지다고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승리’는 없었을 것이다.

독일전이 끝난 후 김영권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가 흘린 눈물엔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꺾은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이제야 팬들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김영권은 경기가 끝난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4년 동안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 힘들었던 것들이 조금이나마 덜어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 축구를 위해서 희생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독일전 승리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김영권 ⓒ SBS 중계화면 캡쳐

지난 4년간 김영권은 축구선수로서 너무도 힘든 나날을 보냈다. 자신이 저지른 한 번의 실수로 인해 팬들은 등을 돌렸고 잡음이 많았던 대표팀 성적에 대한 비난의 중심이 돼 었었다. 하지만 김영권은 누구보다도 절실했던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엄청난 투지를 보여주며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비난의 화살을 잠재웠다.

4년 전 ‘미운오리새끼’였던 김영권은 이제 독일을 꺾은 ‘투지 넘치는 태극전사’로 변모했다. 지난 2014 브라질 월드컵 때와 비교하면 똑같은 조별리그 탈락이다. 하지만 당시엔 엿을 던졌고 4년 후인 지금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김영권은 한국 축구팬들이 원하는 진짜 축구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그가 보여준 뜨거운 눈물은 당분간 계속 여운을 남길 것 같다.

emrechan1@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OaxIY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