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의문을 던지고 시작하고 싶다. 원 팀이란 뭘까. 단순히 선수단과 코치진이 하나가 된다고 원 팀이 될 수 있을까. 12번째 선수라던 팬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단순히 비판과 비난을 넘어 조롱과 비아냥을 던진다면 선수들은 뛰고 싶을까. 감독은 벤치에 있고 싶을까.

단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표팀을 향해 조롱과 비아냥을 쏟아내는 이들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팬'이라는 단어는 운동 경기나 선수 또는 연극, 영화, 음악 따위나 배우, 가수 등을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순화용어로 '애호가'라는 단어가 있다. 이들을 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정치인을 향해 조롱하고 비아냥거릴 때 그 정치인의 팬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훌륭한 활약을 펼쳤던 조현우의 가족까지 건드리는 SNS 환경을 보면서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장현수나 김신욱, 신태용 감독을 향한 조롱이 오히려 정당화될 정도였다. 그들은 '팬'이 아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장난감이다. 갖고 놀아야 하는 대상이다. 그렇게 재밌는 놀잇거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놀이터가 두 곳 있다. '해축갤'과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다.

ⓒ 청와대 청원 게시판 화면 캡쳐

'놀이터'인가 '공개처형' 장소인가

'해축갤'과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이미 광장이 됐다. 불특정 다수가 모인 광장에서 너도나도 한 번 웃겨보려고 "동네 사람들, 이 사람 좀 보라"라며 마녀사냥을 시작한다. 국가대표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는 건설적인 비판과 해석보다 그저 때리고 부수는 장난감으로 취급하는 듯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온라인 광장의 역할은 이런 게 아니다. 권력에 의해 탄압당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약자를 위한 혐오와 차별을 멈춰달라고 청원하기 위한 곳은 이미 공개처형의 장으로 변했다.

이쯤 되면 혐오에 가깝다. "한국 축구가 그렇지 뭐"라는 인식을 넘어 그들을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새로운 혐오의 대상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들은 프로 선수라는 굴레에서 그 조롱과 비아냥을 직격탄으로 맞는다. 심지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인들까지 비아냥과 조롱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이미 운동선수들을 향해 "공부 못해서 운동한다"라는 낙인을 찍은 적이 있다. 실수를 범할 때마다 "밥 먹고 공 차는 사람이 저것도 못 찬다"라며 맥락 없이 비난해왔다. 선수를 넘어 축구계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향한 편견이 역사적으로 지속되면 이들은 차별의 대상이 된다.

마치 외국인 노동자를 향해 폭언을 던지며 생산성을 끌어올리라는 공장장 같은 느낌이다. 혹은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파벌을 형성하는 사람들 같다. 괴롭힐 대상을 정하고 직장에서 느끼는 모든 스트레스를 한 개인에게 뒤집어씌우는 모습과 비슷하다. 직원 모두가 모여있는 식당에서 "얘는 이럴 것이다"라며 비웃는다. 실제로 그가 어떤 심리적 피해를 받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어서 일하라. 제대로 해라"라고 부추긴다. 물론 직장은 축구판을 의미하며 식당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의미한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마녀사냥의 무대가 온라인으로 옮겨졌으며 이들은 사회에서 하던 악습을 그대로 온라인 광장으로 끌고 왔다.

한 선수를 향한, 그것도 픽션을 기반으로 한 인신공격은 이미 혐오 생산의 뿌리가 됐다. 정황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스토리를 교묘하게 왜곡한다. 신태용 감독이 발언했던 '트릭'이라는 단어는 이미 조롱의 수단이 됐다. 한 감독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힌 단어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렇게 맥락 없이 조롱과 비난으로 쓰일 만한 단어는 아니었다. 이 조롱과 비아냥의 시작이 '해축갤'이었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었다.

ⓒ 청와대 청원 게시판 화면 캡쳐

온라인 광장의 기능은 마비됐다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은 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민청원 게시판이 '놀이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한편 <중앙일보> 최규진 기자는 본인의 사설에 "우리나라는 국가대표라는 이유로 일종의 '사회적 살인'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지만 그 폐해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이 드물다"라고 말한 한 미디어 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오염된 인신공격의 놀이터라면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 의견에 동의한다. '해축갤'이나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퇴근 후 장보기 리스트로 사용할 만큼의 재치있고 유쾌한 놀이터가 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정도의 비난을 쏟아내기엔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의 진정한 기능은 이미 마비됐다. 사람 한 명을 죽이고 살릴 정도의 기능밖에 없다. 김보름을 향했던 비난도 과하고 장현수와 신태용 감독을 향한 비난도 과하다. 그들의 인터뷰, 혹은 경기력에는 분명 비판점이 있고 질책할 점이 있지만 그게 그들의 선수 생명을 끝낼 정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청원은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조재범 코치에 대한 처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좀 더 한국 축구에 관심을 쏟을 수 있도록 관계자들과 정책적으로 좋은 토론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문체부, 교육부, 대한축구협회가 한 책상에 모여 머리를 맞대 달라는 말이다. U-20 월드컵이 국내에서 열릴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리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이었을 것이다. 그런 청원들은 얼마나 이슈가 되었나. 누가 올렸나. 그들은 경기력이나 행정력으로 큰 실책을 범한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그 자리에서 쫓아낸 사람들을 대신할 대체자도 제시하지 않고 정책적으로 설득력 있는 근거도 들지 않은 채 그들이 그저 보기 싫다고 그 자리에서 내쫓아 달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육을 해왔나. 그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일이라서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닌가.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면서 과연 뛰고 싶을까. 당신이라면 뛸 수 있는가. 당신이라면 그 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선수단과 코치진에 원 팀을 외쳤던 우리 아닌가. 그런데 정작 팬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팀 코리아'는 원 팀이 될 수 있을까. '팀 코리아'는 어떤 팀인가. 선수단과 코치진만이 국민과 상대 팀을 상대로 외롭게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을 약하게 하는 건 누구인가. 그들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이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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