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창녕=조성룡 기자] 경상남도 창녕 부곡면에는 카페가 별로 없다.

제 26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단과 관계자는 '카페가 별로 없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요즘 세상에서 카페는 휴식과 소통의 공간이다. 출장 온 기자들에게는 업무의 공간이다. 지금은 폐장한 부곡 하와이 근처에는 카페가 두 개 정도 있다. 여기는 경기 일정이 끝나면 항상 만원이다. 선수들과 학부모, 관계자들로 북적댄다.

한창 카페에서 마감을 하고 있다보면 여자 축구선수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때로는 의자가 없어서 본의 아니게 합석을 할 때가 있다. 그 때도 그랬다. 선수들과 합석을 하면 어색함을 애써 감추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가 한 선수를 가리키며 "저 선수는 키가 참 크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수들이 특급 정보를 알려줬다. "저 언니 국가대표에요." 서울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의 공격수 장유빈이었다.

그녀는 예선전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했다. 프로필 상 키는 169cm다. 여자 축구선수치고 비교적 큰 편이다. <스포츠니어스> 기자들과 농구를 한다면 센터 포지션은 따놓은 당상이다. 누군가는 그녀를 보고 국가대표 공격수 김신욱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롤 모델은 따로 있었다. 바로 화천KSPO의 강유미였다.

많은 유소년 선수들은 자신의 롤 모델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해외 선수나 남자 선수들이다. 메시나 호날두가 제일 많고 이니에스타 등도 이름을 올린다. 국내에서는 손흥민, 기성용, 박지성 등 국가대표급 전현직 선수들의 이름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장유빈은 뜬금없이 강유미를 꼽았다.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도 대단해요. 체력도 좋아요. 그냥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수입니다."

물론 강유미가 롤 모델로 삼지 못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은 전혀 아니다. 강유미는 현재 대한민국 여자 국가대표팀의 주축이다. 재일동포 3세라는 특이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올 시즌에는 부상으로 활약하지 못하고 있지만 화천의 에이스로 꼽힌다. 장유빈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극찬의 표현을 써가면서 강유미를 닮고 싶다고 했을까? 다 이유가 있었다.

"제가 동산정산고에 오게 된 것이 (강)유미 언니 덕분이었어요. 감독님께서 러브콜을 보내셔서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언니가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깜짝 놀랐어요. 언니가 '네가 동산에서 뛰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진학을 결정했어요. 이후로도 정말 친언니처럼 잘 챙겨주세요. 부진하면 걱정 해주시고 아프면 약도 사다주시고 어쩔 때는 축구화도 사주세요." 그녀는 "얼마 전에도 사주셨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 한 마디 더 덧붙인다. "그것도 신상으로요."

강유미는 수많은 여자 유소년 선수들이 갈망하는 자리에 올라 있다. 어엿한 실업 선수고 국가대표다. 그런 선수가 자신에게 따뜻한 전화를 건네고 살뜰히 챙겨준다면 그만큼 큰 동기부여는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장유빈은 강유미를 닮고 싶은 것보다 강유미를 위해 뛴다는 것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한 축구 관계자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니 "여자 축구선수들 중에 이렇게 후배를 챙기는 사람이 많다"라고 귀띔했다. 긍정적인 이야기다.

장유빈은 동산정산고에서의 활약이 상당히 중요하다. 몇 개월 뒤 우루과이에서 열리는 U-17 여자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는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체력이 부족해요"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운동은 더 집중해서 하고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릴 겁니다"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유미의 응원이 있기에 장유빈은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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