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창녕=조성룡 기자] 20일 경상남도 창녕스포츠파크.

제 26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 고등부 조별예선 광주운남고와 화천정보산업고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10명 밖에 없는 운남고는 여자축구 강호 화천정산고를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남고의 공격진에서 한 선수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11번이었다. 뭔가 열심히 뛰는데 어설펐다. 드리블을 하다가 공을 놓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녀는 경기 내내 웃고 있었다.

그렇다고 약해빠진 선수는 아니었다. 공 경합 과정에서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저러다 퇴장 당하는 거 아니야?'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번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스피드 경합 과정에서 밀리자 상대 선수의 옷을 잡고 늘어졌다. 주심이 휘슬을 불고 그녀에게 달려가자 90도로 인사를 했다. '제발 카드는 안된다'는 심정이 관중석까지 느껴졌다. 학부모들은 파안대소했다. 근데 경기가 끝나니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경기 후 운남고 이미애 감독에게 슬쩍 물어봤다. "저 선수는 도대체 뭐하는 선수인가요? 정말 재밌는 캐릭터네요." 이 감독은 호탕하게 웃더니 말했다. "우리 공격수인데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입니다. 날씨가 더우면 금방 지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도 열심히 뛰지 않아요? 사실 저 선수 사연 많아요. 축구화 벗었다가 다시 시작한 선수입니다."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녀에게 부탁했다. "아직 20년도 살지 않았지만 살아온 인생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운남고 정하늘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누가 이 소녀가 비만 오면 무릎이 쑤신다고 생각할까. ⓒ정하늘 SNS

U-17 월드컵으로 키운 꿈, 부상으로 꺾이다

그녀가 축구에 눈을 뜬 것은 2010년이었다. 당시 FIFA U-17 여자 월드컵이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렸다. 여기서 대한민국은 결승전까지 진출해 일본을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우승컵을 드는 순간이었다. 정하늘은 그 모습을 TV로 지켜봤다. "여민지, 이소담, 장슬기… 거기서 뛰는 언니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어요."

그렇게 그녀는 축구를 시작했다. 꽤 촉망받는 선수 중 하나였다. 순탄하게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하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부상이었다. 무릎 인대 부상을 당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재활하고 다시 돌아와야지'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녀는 착실하게 재활을 받아 경기장에 복귀했다. 그런데 얼마 후 또다시 부상을 당했다. 남자 선수들과의 연습 경기에서 또 무릎을 다친 것이다.

그녀의 무릎 인대는 꽤 심각하게 망가졌다. 재활을 한다면 복귀가 가능했으나 연속된 부상은 그녀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제가 아직 스무 살도 안됐는데 인대가 너덜너덜해요." 그녀는 손짓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설명했다. "이 나이에 비 오는 날에는 무릎이 쑤셔서 잠도 안온다니까요." 평범한 학교 생활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그녀는 결국 축구를 접었다.

누가 이 소녀가 비만 오면 무릎이 쑤신다고 생각할까. ⓒ정하늘 SNS

방탕(?)하게 놀기 시작한 정하늘

정하늘은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좋았다. 트레이닝복 대신 교복을 입었다. 그녀에게는 교복이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 "친구들 보면서 '나도 교복 입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입어보니 마음에 쏙 드는 거에요." 학교 수업도 재밌게 느껴졌다. 특히 국어 수업은 정하늘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잠이 많은 그녀기에 수업 시간에 저절로 감겨지는 눈까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정하늘은 신나게 놀았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녔다. "정말 방탕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녀는 그 때를 방탕하게 살았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얼마나 방탕하게 살았나요?" 정하늘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수업 시간에 담 넘어가서 떡볶이 먹으러 간 정도?" 기자는 그녀보다 더 방탕하게 살아온 수없이 많은 나날을 반성해야 했다.

그렇게 정하늘은 축구선수가 아닌 한 명의 학생으로 점차 변하고 있었다. 남들과 똑같은 학생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졸음을 쫓아가며 공부했고 시험 성적에 일희일비했다. "그래도 제가 공부를 정말 못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물론 아직 검증되지 않은 그녀의 주장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축구화를 다시 신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돌아온 탕자가 된 정하늘

학교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남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친구였다. 체육 시간이 되면 그들을 상대로 '메시 놀이'를 하곤 했다. 털털한 매력에 많은 친구가 있었다. "솔직히 체육 시간 축구 정도는 쉽죠. 축구화 신지 않고 러닝화 신고 뛰어도 축구 잘 할 수 있어요." 물론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방탕한' 생활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데 그녀는 문득 공허함을 느꼈다.

"방탕한 생활이 정말 재밌기는 해요. 그런데 길어야 3개월을 못가더라고요." 그녀는 놀면서도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축구로 돌아가자'였다. 그녀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하는 것이 축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에게 "축구를 다시 하겠다"라고 말했다. 대책 없이 놀던 딸을 걱정하던 어머니는 그녀에게 당부했다. "할 거면 확실하게 해라."

그녀는 다시 축구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공백은 꽤 컸다. 체력부터 다시 길러야 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전념했다. 광산중과 운남고를 거치면서 그녀는 조금씩 성장했다. 세월은 빨랐다. 축구화를 벗고 잠시 방황했던 그녀는 이제 어느덧 고등학교 3학년이다. 10명 밖에 없는 열악한 운남고에서 친구들과 후배들을 다독여야 하는 입장이 된 셈이다.

누가 이 소녀가 비만 오면 무릎이 쑤신다고 생각할까. ⓒ정하늘 SNS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한 순간은 지금"

운남고는 이번 여왕기에서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했다. 교체 선수도 없이 10명이서 뛰는 입장에서 많은 것들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은 이미애 감독의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처럼 정하늘도 그랬다. "얼마 전까지 감독님께 늦잠 자서 혼 많이 났어요"라며 쑥쓰럽게 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의 부임은 정하늘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주며 자극한다. 정하늘도 다시 한 번 축구화를 질끈 조이고 있다. "솔직히 이 감독님 밑에 있으면서 혼자서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무엇 하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본 적 있을까?' 생각해보니 별로 없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지금이 가장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하늘의 미래는 마냥 밝지 못하다.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그리고 운남고는 선수가 10명 밖에 없는 약체다. 대학 진학이 결정되어야 하는 시기에 그녀는 시련을 겪고 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녀는 지금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뜨겁게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하늘의 미래가 해피 엔딩이 되지 못할지라도 지금 이 시간은 그녀의 평생에 큰 도움이 될 밑거름으로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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