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의 수' 시간이 돌아왔다. 자 이제부터 공부를 시작해 보자. ⓒ유튜브 방송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어김없이 경우의 수 시간이 찾아왔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주판알을 튕겨야 될 상황에 놓였다. 생소하지만은 않다. 늘 월드컵에 나가면 있어 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부터 경우의 수로 수학을 배웠던 나로서는 이제 네 팀이 따지는 경우의 수 정도는 암산으로도 가능하다. 내가 수학에서 집합 다음으로 잘하는 게 경우의 수다. 나뿐 아니라 많은 축구팬들도 경우의 수 만큼은 아인슈타인 못지 않은 지식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2패를 당하고도 마지막까지 경우의 수를 따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월드컵에서 2패를 기록한 9개 나라 중 유일하게 경우의 수를 따져 16강에 올라갈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모로코, 페루, 코스타리카, 파나마, 튀니지, 폴란드는 모두 탈락이 확정됐다. 이쯤 되면 행복한 일 아닌가. 토니 크로스에게 절 한 번하고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알아보자. 그리고 여러 상황에 맞는 대처법까지 알아보자. 2패를 당하고 일찌감치 탈락을 확정지은 뒤 마지막 경기를 보는 것과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안고 3차전을 보는 건 느낌이 확 다르다.

일단 우리는 무조건 독일을 잡아야 한다

가장 희망적인 경우의 수는 한국이 독일을 한 골차 이상으로 이기고 멕시코는 스웨덴을 두 골차 이상으로 이기는 것이다. 한국이 독일을 한 골차 이상으로 이기는 게 이토록 말처럼 쉬운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해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멕시코에 이어 조2위로 16강을 확정짓게 된다. 한국과 독일, 스웨덴이 나란히 1승 2패를 기록하게 되는데 스웨덴은 우리가 득실차에서 밀어내고 독일은 승자승에서 밀어낼 수 있다. 한국이 독일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멕시코가 스웨덴을 상대로 많은 골을 넣는 것도 필요하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우리는 먹고 있던 BBQ와 굽네치킨을 모두 버리고 주위에 있는 멕시칸 치킨을 다시 주문해 파티를 벌이면 된다. 동대 호프집에 가 기분이 좋아 ‘골든벨’을 울리는 아저씨를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한국이 독일과 여러 골을 주고 받으며 한 골차로 승리한 뒤 멕시코가 스웨덴을 1-0으로 이겨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경우의 수와 이를 분리한 이유는 이 경우에는 우리가 다득점에 의해 스웨덴을 따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경우의 수는 스웨덴을 다득점이 아니라 득실차에서 밀어내는 것이었고 지금 언급하는 경우의 수는 득실차가 아닌 다득점으로 조2위에 오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독일을 3-2나 2-1로 제압하면 멕시코가 스웨덴을 1-0으로만 이겨도 우리가 16강에 갈 수 있다. 이럴 경우 텔레비전에서 하루 종일 멕시코의 대표적인 드라마 프로그램인 <천사들의 합창> 전편 재방송을 내보내며 멕시코인들에게 감사를 보내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복잡한 경우의 수가 더 있다. 나같은 문과 출신에게는 어려운 문제다. 간단하게 말하면 한국이 3-2나 4-3, 5-4 등으로 다득점하며 한 골차로 독일을 이길 경우 멕시코는 그것보다 한 골 적은 승부를 펼쳐야 한다. 우리가 3-2로 이기면 멕시코는 2-1로 스웨덴을 이겨줘야 한다. 한국이 무조건 스웨덴을 골득실에서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스웨덴의 골득실과 다득점이 같아지면 그 다음에는 승자승 원칙에 따른다. 이미 스웨덴에 0-1로 패한 한국은 스웨덴과 골득실, 다득점이 같아지면 스웨덴에 밀려 떨어진다. 쉽게 말해 우리는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길 때의 점수보다 한 골 이상을 더 넣고 독일을 이겨야 한다.

이 정도 경우의 수 정도야 축구팬들에게는 덧셈 뺄셈 수준 아닌가. ⓒ유튜브 방송 화면 캡처

이 땅의 멕시코인들이여 일어나라

한국이 독일을 3-2로 이기고 있는 후반 막판 1-1 무승부를 이어가던 멕시코-스웨덴전에서 멕시코 치차리토가 극적인 결승골을 넣는다면 우리는 거리로 나가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한 뒤 전국의 모든 검은 콩 두유 이름을 ‘치차리토 두유’로 바꾸고 국내 모든 콩에 관한 사업 독점권을 부여하면 된다. 치차리토와 ‘콩진호’의 만남을 주선하고 치차리토에게 국내 이케아 매장 전액 무료 이용 쿠폰과 함께 부루마블에서 서울올림픽과 스웨덴 스톡홀름이 걸릴 경우 우대권 무상 사용 권리도 선물해야 한다. 또한 치차리토 한국 방문시 신현준이 MC인 KBS <연예가중계> 우선 출연 권리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때 신현준은 스웨덴 유니폼을 입고 현장 인터뷰를 진행한다. 배경 음악으로는 구피의 <다 잘될 거야>를 틀어주며 이승광이 직접 노래를 부른다.

또 다른 경우의 수도 있다. 한국이 독일을 두 골차 이상으로 이기는 것이다. 그러면 멕시코가 스웨덴을 몇 점 차로 이기는지는 따지지 않아도 된다. 단 멕시코가 무조건 스웨덴을 이긴다는 가정 하에서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골득실이 0이 되고 독일과 스웨덴은 마이너스가 된다. 한국과 독일, 스웨덴이 승점 3점으로 같아지지만 골득실에서 한국이 이 두 팀을 앞서며 16강에 나갈 수 있다. 한국이 독일을 두 골차 이상으로 이기면 독일 출신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에게 보은의 의미로 <런닝맨>과 <썰전>, <6시 내고향> MC를 맡기자. 또한 주한독일대사관에 감사의 의미를 담은 팩스를 한 통씩 보내는 건 어떨까. 주한독일대사관 팩스 번호는 02-6937-0620이다.

하지만 만약 한국이 독일을 이기지 못한다면 경우의 수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대로 탈락이다. 한국이 독일에 승리를 거두지 못할 경우 주심의 아내 둘째 오빠 당숙어른이 독일인이었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경기 청원을 올리면 된다. 그리고는 ‘카카오톡’으로 500만 명이 서명하면 재경기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돌리면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다시 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뿐이다. 독일을 이기지 못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명심하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 독일을 이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두 골차 승리는 더더욱 어렵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을 가지고 승리에 ‘올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 다음은 멕시코-스웨덴전에 운명을 맡겨야 한다.

이 정도 경우의 수 정도야 축구팬들에게는 덧셈 뺄셈 수준 아닌가. ⓒ유튜브 방송 화면 캡처

쉽지 않은 확률, 하지만 포기는 이르다

한국이 독일을 이기고 16강 진출을 위한 작은 희망을 살려도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겨주지 못하면 우리는 16강에 갈 수가 없다. 이 모든 희망은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긴다는 가정 하에 이뤄졌다. 스웨덴이 멕시코를 상대로 승점을 1점이라도 딴다면 승점 4점이 된다. 한국이 조현우가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장현수가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으며 독일을 100-0으로 이겨도 승점은 3점뿐이어서 16강은 스웨덴의 차지가 된다. 이럴 경우 우리는 FM 속 치차리토와 이르빙 로사노를 당장 방출하고 위닝 일레븐으로 멕시코를 선택해 스웨덴을 ‘떡실신’시키는 것 밖에는 분노를 표출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이케아 정문에서 약 30분간 1인 시위를 한 뒤 바로 옆 맛집에서 탄탄면을 먹고 돌아올 예정이다. 에밀 포르스베리가 약물 복용을 해 스웨덴의 승리가 박탈됐다는 헛소문이 돌겠지만 그냥 조용히 하고 잠이나 자자.

쉽지 않은 확률인 건 분명하다. 한국은 무조건 독일을 잡아야 하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겨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여러 조건을 성립해야 극적으로 16강에 갈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미리 조별예선 탈락이 확정된 것과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경기에 임한다는 건 엄청난 차이다. 0%와 1%에는 상상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기적을 기대해 보자. 그래도 기적치고는 그나마 확률이 어느 정도는 있는 기적이다. 어떠한 경우의 수건 일단 한국이 독일을 잡지 못하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은 독일을 잡고 그 다음은 운명에 맡겨보자. 우리의 월드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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