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 가능한 대한민국 P급 여성 지도자를 소개합니다

[스포츠니어스|창녕=조성룡 기자] 감독들에게 P급 라이센스는 정말 따기 쉽지 않은 자격증이다.

2016년 한국 축구계에서는 P급 라이센스가 화제였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이 “2017 시즌부터 AFC 챔피언스리그(ACL)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감독이 P급 라이센스를 보유해야 한다”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구단은 P급 라이센스를 보유한 지도자로 감독을 급하게 교체하는 등 촌극을 빚기도 했다. 이후 K리그에서 P급 라이센스는 감독의 필수 조건으로 떠올랐다.

2017년 ACL은 홍콩의 한 팀에 주목했다. 홍콩 이스턴 SC의 감독 때문이었다. 이름은 찬유엔팅. 그는 여성 지도자였다. 그녀는 전 세계 축구 역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남성 1부리그 팀 우승을 이끈 여성 감독이다. 그녀가 이끈 팀은 2017 ACL에 출전해 수원삼성과 경기를 하기도 했다. 비록 당시 수원 원정에서는 0-5로 완패했지만 세상은 그녀의 도전에 찬사를 보냈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찬유엔팅과 같이 K리그 팀을 이끄는 여성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여성 지도자가 자격을 갖춰야 한다. P급 라이센스를 취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과연 있을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예상 외의 장소에서 주인공을 발견했다. 제 26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에서 경기 율면고를 이끌고 있는 김선영 감독이었다.

패스, 또 패스…졌지만 인상적인 율면고
먼저 율면고의 경기를 살펴봤다. 이번 대회에서 율면고는 3전 전패로 아쉬움을 삼켰다. 하지만 플레이 자체는 눈길이 갔다. 패스였다. 수비에서부터 이루어지는 빌드업이 인상적이었다. 알고보니 김 감독은 스페인 축구를 추구하는 지도자였다. “워낙 스페인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많이 요구한다. 티키타카 훈련도 굉장히 많이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율면고는 자신들의 모습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했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저하된 상황에서 부상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엄서현과 최린이 다치는 바람에 아쉬움이 크다”라고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뛰었다. 경기는 졌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라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율면고 선수들과 함께 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그렇지만 보람도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타고난 재능은 비교적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노력으로 이를 채우고 있다. 힘든 부분도 많다.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마지막까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다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김 감독이 P급 라이센스를 따게 된 것은 성인팀 지도자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모교인 현대중·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울산과학대를 거쳐 실업팀에서 2년 간 생활했다. 이후 단국대 감독을 맡은 다음 율면고에 자리했다. 성인팀 지도자를 2년 이상 했기 때문에 P급 라이센스를 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P급 라이센스 취득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A급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나서 P급을 취득하는데 2년 가까이 걸린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교육을 받은 후 해외 연수까지 마쳐야 한다. K리그 팀 감독도 “힘들다”고 혀를 내두르는 과정이다. 그녀 역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P급 라이센스 취득 과정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김 감독은 짧게 탄식을 내뱉더니 한 마디 던졌다. “진짜 힘들었다.”

“남성들 틈에 껴서 라이센스 취득을 준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보람도 있었다. “남성들의 축구를 많이 배웠다”는 것이다. “빌드업 등 축구에 대한 전체적인 것에 대해 눈이 뜨이더라. 특히 지도자의 자격이나 역할 등 지도자가 해야 할 일들을 많이 배웠다. 그 전까지는 몰랐다. 라이센스를 준비하는 동안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됐다.”

P급 라이센스를 딴 여성 지도자는 극소수다 ⓒ스포츠니어스

열 손가락 안에 꼽는 P급 여성 지도자
K리그 팀들이 P급 라이센스 보유자를 감독으로 많이 찾기 시작하면서 한국에도 P급 라이센스를 딴 감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지도자는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내가 알기로는 나를 포함해 이미연(보은상무 감독), 김은정(여자대표팀 코치), 윤수진(前 충남인터넷고 감독), 황인선이 있다. 유영실 감독(대덕대)이 라이센스를 준비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 합격 여부는 듣지 못했다”라는 것이 김 감독의 설명이었다. 유 감독이 합격을 한다 하더라도 P급 라이센스 보유자는 최대 여섯 명에 불과하다.

김 감독은 P급 라이센스 연수 과정에서 배운 노하우를 팀에 녹여내고 있다. 그녀는 ‘수평적인 관계’를 팀의 철학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더라”며 웃은 김 감독은 “사실 단순하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는 수직적일 때가 많다. 우리 팀에서는 선수들이 편하게 감독에게 질문할 수 있고 감독 또한 거리낌 없이 선수에게 묻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감독이 율면고에서 얼마나 이런 철학을 심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율면고 여자축구부의 미래는 어둡다. 운영 상 위기에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내 힘이 닿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라고 말한 김 감독이었지만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이 순간 만큼은 P급 라이센스를 취득한 실력 있는 감독이 아닌 열악한 현실 속에 놓여있는 한 명의 여자축구 감독이었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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