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울었던 운남고 노윤주의 한 가지 소원, 축구


[스포츠니어스|창녕=조성룡 기자] 많은 청소년들이 축구선수의 꿈을 꾼다.

하지만 축구선수가 되는 확률은 극히 적다. 특히 나이를 먹을 수록 그들의 꿈은 옅어진다. 축구도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 축구를 늦게 시작할 수록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은 점점 멀어져간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리고 유소년 선수가 된다 하더라도 성인 팀까지 올라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한 선수가 있다. 여자 축구선수다. 물론 여자축구는 선수들의 축구 입문이 비교적 늦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한 것은 상당히 늦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 축구를 시작한 것에 행복해하고 있다. 축구를 시작하기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운남고 노윤주의 이야기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꿈 키운 초등학생
그녀가 처음 축구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노윤주는 그저 운동을 잘하는 어린이였다. 그런데 TV가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그녀는 TV로 ‘일밤-아빠! 어디가?’를 즐겨봤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 12.3%를 기록하는 등 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그녀는 한 인물에 꽂히게 된다. 2002년의 영웅 안정환이었다.

사실 노윤주는 안정환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2002년의 영웅’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직접 안정환의 경기 장면을 찾아봤다. 그리고 그의 매력, 아니 축구의 매력에 빠졌다. 게다가 점심시간에는 남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한 번 축구에 빠져들자 남학생들의 점심시간 축구도 재밌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공을 차봤다. 흥미도 적성에도 맞았다. 그 때부터 그녀는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멋지게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그럴 때마다 노윤주는 행복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 그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축구화를 신게 되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을.

“축구가 너무 하고 싶어요”
중학교에 입학하자 그녀는 부모님에게 이야기했다. “저 축구가 하고 싶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했다. “축구 시작하면 고생한다.” 축구 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 또한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축구 대신 태권도를 시켰다. 하지만 노윤주는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졸랐다. “엄마 진짜 축구 하고 싶어요. 잘 할 수 있어요.”

노윤주의 어머니는 고민이 많았다. 그녀가 운동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당시 그녀는 광주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평범한 학교였다. 하지만 광주중의 체육 교사는 스포츠 클럽 활성화에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학생들을 데리고 팀을 꾸리고 대회에 나가곤 했다. 여기서 노윤주는 두각을 나타냈다. 종목을 가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축구가 제일 하고 싶었다. 노윤주의 열정을 교사는 알아봤다. 그래서 본격적인 팀은 아니지만 축구 클럽을 하나 꾸렸다. 거기서 그녀는 주장을 맡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혼자서 속앓이를 했다. “애 아빠가 알면 지금 유일하게 하고 있는 태권도마저 시켜주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런 와중에 노윤주는 틈만 나면 “축구가 하고 싶다”라고 졸랐다.

딸이 조르는데 이길 수 있는 어머니는 많지 않다. 그녀의 어머니는 큰 결심을 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된 노윤주를 데리고 중학교 축구부에 테스트를 본 것이다. 솔직히 ‘차라리 안된다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자의 한 마디는 어머니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아깝네요.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을텐데. 1년만 일찍 했어도 좋았을 겁니다. 지금도 길은 있어요. 하지만 힘들 겁니다.” 하필이면 그 때 노윤주는 바로 옆에 있었다. 그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눈물로 지새운 나날들, 어머니의 속앓이
그 때부터 노윤주는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켜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어느 날 그녀는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엄마. 나 진짜 축구가 소원인데 한 번만 해보면 안될까? 어떻게 나 들어갈 수 있는 팀 한 번만 알아보면 안될까?” 이후로도 노윤주는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서 몰래 운 적도 많아요.”

“원래 제가 눈물이 많아요. 그런데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지니 우는 날이 많아졌어요.” 그녀는 애써 포기하려고 했다. 혼자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축구는 안될 거야. 축구는 안되겠지.’ 어릴 때부터 해오던 태권도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녀가 하고 싶은 것은 태권도가 아니었다. 오직 축구였다.

그녀는 학교에 돌아오면 어머니에게 매일 같이 전화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축구가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가 밖에서 일을 하는데 윤주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가 되면 일을 제대로 못해요. 윤주가 계속 전화를 해요. ‘엄마 팀 알아봤어? 어떻게 좀 알아보면 안될까?’라고 물어봐요. 제가 마음이 약해서 남편 몰래 팀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라고 그녀의 어머니는 회상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다투기도 했다. “여보. 어릴 때 진작 축구를 시켰으면 윤주가 포기했다 하더라도 애 진로 선택의 길은 넓어졌을 거에요. 윤주 축구 안시키면 죽을 때까지 엄마 아빠 원망할 거 같아요. 저렇게 울잖아요. 요즘 자식 소원 들어주지 않는 부모가 어딨어요? 한 번만 시켜 봅시다.” 진심 어린 어머니의 설득에 아버지 마저 마음을 돌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노윤주를 앉혀놓고 축구선수의 길을 허락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성공은 안해도 된다. 하지만 끝까지 노력해봐라. 그리고 다치지 말아라.” 노윤주는 뛸 듯이 기뻐했다. “제가 하늘을 날지 못하는 건 알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쑥스럽게 웃었다. “근데 다치지 않으려고 해도 다칠 때가 있어요. 부모님 말씀을 안듣는 딸이 된 것 같아요.” 이제 허락도 받았으니 그녀는 축구부에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모녀는 운동장에 주저앉아 한 번 더 울었다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본격적으로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중학교 축구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리 여자축구 인프라가 열악하지만 노윤주는 상당히 축구를 늦게 시작한 편에 속했다. 게다가 광주에는 여자축구부가 거의 없었다. 쉽지 않았다. 그 때 광주 광산중 감독이 그녀에게 권유했다. “차라리 고등학교 테스트를 미리 보는 것은 어때?”

그가 권유한 곳은 광주의 운남고였다. 그녀는 열정을 다해 테스트를 봤다. 그리고 꿈에도 듣던 한 마디를 들었다. “훈련에 합류하세요.” 그토록 마음 졸이던 노윤주와 그녀의 어머니는 그 무엇보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감격에 겨운 모녀는 결국 운동장 한복판에서 끌어안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몇 년을 기다려왔던 노윤주의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운남고에 합류했다. 모든 것이 재밌었다. 첫 경기에 나선 기억도 생생했다. “공을 많이 만지지 못해도 많이 뛰자는 각오였어요. 사실 감독님께서 실력이 있어서 뛰게 해준 것도 아니었어요. 경험 삼아 뛰어보라는 거였어요. 공은 두 번 만진 것 같아요. 한 번은 패스를 했고 다른 한 번은 뺏겼어요. 제 생각보다 많이 보여주지는 못했죠.”

자존심 상한 노윤주,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축구부에 들어갔다고 노윤주의 모든 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냉정하게 노윤주는 모든 것에서 불리했다. 남들보다 몇 년을 뒤쳐졌다. 그렇다면 만회해야 했다. 훈련을 받으면 받을 수록 노윤주는 자신이 많은 것에서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왕년에는 ‘운동 좀 했다’는 소리 들었던 그녀다.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첫 경기 이후에 많은 것을 느꼈어요. 더 잘하고 싶었어요. 원래 제가 잠이 많아서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해요. 그런데 새벽 운동을 나가기도 했어요. 물론 오래 가지는 못했어요. 한 4일 정도 하니까 도저히 아침에 못일어나겠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쑥스럽다는 듯 웃는다. “그래도 체력을 기르고 연습 많이 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상황은 노윤주에게 썩 좋지 않았다. 그녀가 운남고에 들어간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감독이 갑작스럽게 팀을 떠났다. 훈련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부지런히 경쟁자를 따라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노윤주는 정체됐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시작과 함께 새로운 감독이 부임했다는 것이다. 새 감독은 ‘여자축구계의 호랑이’ 이미애 감독이었다.

축구가 노윤주를 힘들게 할 줄이야
이 감독은 부임 이후 선수들을 강하게 휘어 잡았다.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노윤주는 갑작스러운 분위기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 훈련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몸과 마음은 조금씩 지칠 수 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고민이 늘어났다. 지금까지는 축구가 재밌었다. 하지만 이제는 축구가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기 시작했다.

결국 3월에 그녀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자.” 숙소에서 탈출해 도망간 것이다. 여기에는 친구 세 명이 함께 했다. 어린 마음에 감행한 탈출이었다. 그들은 숙소를 나와 정처 없이 동네를 떠돌아다녔다. 마냥 좋았다. 일상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기뻤다. 운천저수지에 가 벚꽃도 구경하며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었다.

물론 돈은 없었다. 그들은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면서도 서로 다짐했다. “절대 들키지 말자. 잡히지 말자. 먼저 들어가지 말자.” 하지만 그들의 일탈은 단 하루 만에 끝났다. ‘호랑이’ 이 감독이 연락한 것이었다. “지금 들어오면 봐준다.” 이 한 마디에 그들은 마음이 약해져서 숙소로 복귀했다. 그리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다.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각오해.”

결국 그녀와 함께 했던 친구 세 명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노윤주는 남았다. 힘든 것보다 축구를 하겠다는 열정이 그녀를 떠나지 못하게 했다. “제가 축구를 늦게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백 배 천 배 노력해서 감독님도 부모님도 기쁘게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물론 그 때의 경험은 노윤주에게 새로운 힐링의 방법을 안겨줬다. “이후 휴가를 받으면 계곡도 가고 제주도도 놀러갔어요. 여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있어요.”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이유, 축구
올해 운남고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현재 운남고의 선수단은 10명이다. 베스트 11도 꾸리지 못한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고충이 크다. 매 경기마다 수적 열세를 견뎌내야 한다. 노윤주도 마찬가지다. “원래 포지션은 윙인데 공격수, 미드필더, 풀백도 해봤어요. 미드필더가 제일 힘들어요. 저는 스피드를 살려서 드리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미드필더는 좁은 공간에서 움직일 때가 많아요.”

이제 노윤주는 2년 차에 접어든다. 아직 부족한 것은 많다. “어떤 것 하나만 부족한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그래도 이 감독의 조련 덕분에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정말 제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스승님이 이미애 감독님입니다. 확실하세요. 맞을 땐 맞다고, 아닐 땐 아니라고 하세요. 그리고 운동 할 때는 열정적으로 하시고 쉴 때도 정말 푹 쉬게 하시는 분입니다.”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그녀는 낙천적이다. “사람 앞날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 친구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된다. “대회에 다녀오면 책상 위에 쪽지가 붙어 있어요. ‘나 오늘 네 자리 앉았어. 빨리 와. 보고 싶어. 휴가 받으면 놀러가자’와 같은 편지도 많이 받아요.” 이 말을 하면서 노윤주는 세상에서 제일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남학생들의 골 세리머니를 보며 꿈을 키웠던 그녀지만 새로운 재미에도 눈을 떴다. 도움이다. “골은 자기가 넣어야만 기쁜데 도움은 누가 넣더라도 저는 도움을 기록하고 골 넣은 것과 같은 기쁨까지 얻을 수 있으니 너무 좋아요.” 그녀의 꿈도 득점왕이 아닌 도움왕이다. 롤 모델은 메시다. 불리한 신체조건을 딛고 ‘축구의 신’이라 칭송받는 그의 모습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장난 삼아 “이번 월드컵에서 메시가 부진하고 있다”라고 말하니 그녀는 당황하면서도 “그래도 메시죠”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노윤주의 인생은 이제 시작일 뿐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정말 길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아직 노윤주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다. 지금까지 그녀는 힘든 역경을 헤쳐왔다. 축구를 하지 못할 때도, 축구를 하면서 베스트 11도 채우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밝은 미래를 꿈꾸며 땀을 흘리고 있다. 단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새로운 선수들이 빨리 들어오는 것”이다.

노윤주는 축구화를 신은 지 이제 2년이다. 하지만 꿈은 당차다. “아무도 쉽게 가지 못했던 국가대표를 한 번 꼭 해보고 싶어요. 부모님께서도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려서 제가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감독님도 많이 부족한 저를 이끌고 고생 많이 하고 계세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노력하시는데 보란 듯이 축구로 성공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그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각오를 남겼다. 맞다. 끝날 때까지는 끝나지 않았다. 노윤주는 축구화를 아직 벗지 않았다. 이제 막 신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윤주의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그녀 자신 뿐이다. 축구가 하고 싶어서 매일 울던 눈물 많은 소녀는 어느덧 당찬 축구선수가 되어 자신의 앞날을 설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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