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부가 ‘폐교 위기’ 학교를 살린 이야기

ⓒ 단월중학교 여자축구부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창녕=홍인택 기자] 시골 학교에 모여 공을 차는 여중생들. 이 학생들은 학교를 ‘폐교 위기’에서 살려낸 영웅들이다.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은 흔히 말하는 ‘시골’이다. 길게 늘어선 건물 대신 논밭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추수철 단월면 보룡리와 덕수리 사이를 지나가면 금색 찬란한 벼가 고개를 숙인 채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 시골 한복판에 뜬금없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다. 면의 이름을 딴 단월초등학교와 단월중학교다.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역이 8.1km 떨어진 경의·중앙선의 마지막 종착역 지평역이다. 서울로 향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9.5km 떨어진 용문역으로 가는 게 낫다. 단월면 인구 현황은 3,800명이 채 안 된다. 주로 장년, 노년층이 모여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당연히 어린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다.

학교에서 직접 만들어 본 카누를 바로 띄워볼 수 있는 단월중학교 ⓒ 단월중학교

박민재 교장의 묘수, ‘0’에서 시작한 김태희 감독

단월중학교는 1965년 단월농업기술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 1970년 단월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어느덧 개교 50년을 넘은 전통 있는 학교다. 그러나 지리적 위치와 농업 위주의 지역 산업이 지역사회 고령화로 이어졌다. 학교는 있는데 학생들이 없었다. 전교생이 30명을 못 채워 폐교 위기가 찾아왔다.

2011년 새롭게 취임한 박민재 교장은 고민이 많았다. 쓰러져가는 학교를 살려야 했다. 여기서 박 교장이 묘수를 냈다. “여자축구부를 창단하고 학생 선수들을 키우자.” 그렇게 단월중학교는 2012년 3월 여자축구부를 창단했고 10월에는 야구부까지 창단하며 체육특화 학교로 변화를 노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었다. 시골 학교로 축구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을 찾기 쉽지 않았다. 아이에게 축구를 가르치려 했던 학부모들도 학교의 위치나 상황을 보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김태희 감독은 이렇게 단 한 명의 선수도 없었던 팀의 초대 감독을 맡았다. 김태희 감독은 직접 전국을 발로 뛰며 선수들을 스카우트했다. 선수 수급도 쉽지 않은데 겨우 데려온 학생들도 기초부터 가르쳐야 해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김태희 감독의 노력으로 점점 학생 선수들이 늘어났다. 전국 대회에서 단월중 여자축구부를 직접 본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왔다. 여자축구부는 자연스럽게 단월면의 자랑거리가 됐다. 박민재 교장은 학생들에게 인성을 강조하며 “어르신들에게 꼭 인사를 하고 다니라”고 가르쳤다. 동네 어르신들은 학생들을 볼 때마다 군것질거리를 손에 쥐여줬다. 시골 동네 아무것도 없었던 단월중 여자축구부는 그렇게 점점 자리를 잡아 나갔다.

한편 김태희 감독이 단월중을 지도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대한축구협회는 2016년 김태희 감독에게 유소년 유망주 정책 ‘골든에이지’의 전임지도자를 맡겼다. 김태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떠나야 한다고 말했을 때는 목이 메어서 말이 안 나왔다. 아이들이 안 가면 안 되느냐고 했고 결국 울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창단 때부터 김태희 감독 밑에서 코치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박영애 감독이 자리를 이어 받아 팀을 이끌고 있다.

ⓒ 스포츠니어스

전교 1등이 골을 넣는 축구부

단월중 선수들은 이번 제26회 여왕기전국여자축구대회에도 참가했다. 빠르고 조직적이었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전북삼례여중을 4-0으로 꺾고 당당하게 조 1위로 8강에 올랐다. 박영애 감독은 “선수들이 생각보다 열심히 해주고 있어서 성적이 나온다”라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단월중의 지형적 위치가 오히려 축구에 집중하기 수월하다는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도 아직은 한참 놀고 싶어 하는 중학생들이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고 노는지 물었다. 박영애 감독이 살짝 귀띔했다.

“학교 앞에 농협 마트가 생겼다. 우리 애들이 거길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학교 옆에 개울가가 있다. 여름에는 운동하고 개울가에 가서 놀다가 들어와서 쉰다. 항상 그러고 있다.”

대화를 이어 가는데 박 감독이 놀라운 이야기를 해줬다. 그녀는 “우리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되길 바란다. 우리 팀에 전교 1등이 있다”라고 말했다. 당장 그 선수를 찾았다. 운동장에서 최후방과 최전방을 오가던 김나은이었다. 축구할 때는 그렇게 앞뒤를 가리지 않고 뛰던 선수가 인터뷰 요청을 하니 그저 부끄러움 많은 중학생으로 변했다.

김나은은 경기JSJFC라는 클럽에서 남자 학생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진심으로 축구를 마주하고 단월중으로 전학을 왔다. 김나은은 “운동 시간에는 운동하고 공부 시간에는 집중해서 한다. 공부도 할 수 있는 거니까”라면서 전교 1등을 차지한 비결을 밝혔다.

김나은은 이날도 최전방에서 팀의 마지막 골을 넣었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터. 그러나 김나은은 “힘들 때도 있는데 그래도 재밌으니까 한다”라고 말했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김나은은 “공부도, 운동도 1등을 놓치기 싫다”라고 말했다.

학교를 살린 영웅들 ⓒ 단월중학교 여자축구부 페이스북

시골 한복판에서 탄생한 명문

시골 한복판에 놓인 학교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 팀은 이제 점점 명문의 길을 걷고 있다. 박영애 감독은 “부상 없이 우승하는 게 목표”라며 이번 대회 각오를 전했다. 진주여중을 6-2로 꺾고 삼례여중까지 4-0으로 잡아 자신감도 넘친다.

박 감독은 “양평에는 여자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가 없어서 수급이 많이 힘들다. 직접 발로 뛰면서 구한다. 원래 어디나 선수 수급이 가장 어렵지 않나”라면서도 “들어온 아이들이 열심히 해줘서 진학은 괜찮다”라고 말했다.

단월중 출신 선수들은 주로 여고 무대의 명문 울산현대고와 강원화천정보산업고로 진학했다. 졸업생 중에는 벌써 U-17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도 있다. 울산현대고 수비수 장은현과 화천정산고 골키퍼 강지연이 단월중 출신이다. 개울가와 논밭이 펼쳐진 시골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나왔다.

단월중 여자축구부 창단 이후 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는 소식은 찾기 힘들었다. 2015년 추계대회에서 3위를 기록하면서 받은 트로피 사진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적과 상관없이 이들은 학교와 지역을 살린 영웅이었다. 단월면의 총인구는 약 3,800명. 전교생 30명이 채 안 되던 학교에서 출발한 이 축구팀의 인원은 21명이 됐다. 전교생은 131명이 됐다. 학년 당 두 반을 운영하는 학교가 됐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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