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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창녕=조성룡 기자] "한국 여자축구는 망했어요."

한 학생 여자축구선수의 자조섞인 말입니다. 항상 해체 위기에 놓여있는 여자축구의 현실을 바라본 것입니다. 옆에서 동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그래도 팀 창단 조금씩 되잖아." 둘 다 맞는 말입니다. 한국 여자축구는 창단과 해체의 연속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선수의 말에 조금 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열심히 축구를 해도 미래가 쉽게 보이지 않기에 그녀는 '망했다'는 표현을 썼을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는 월드컵에 모든 시선이 쏠려 있습니다. 수많은 매체가 월드컵에 집중합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것을 알려주는 것은 매체의 역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스포츠니어스>는 지금 경상남도 창녕스포츠파크에 왔습니다. 이곳에서는 제 26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WK리그 팀을 제외한 학교 여자축구부들이 이곳에 모입니다. 꽤 큰 규모의 대회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곳은 아닙니다. 굳이 찾아갈 정도의 대회는 아닙니다.

취재를 위해 만난 한국여자축구연맹 관계자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왕기에 파견된 취재 기자는 <스포츠니어스>세 명과 다른 매체 기자 한 명뿐입니다. 서울에서 창녕까지 찾아간 것에 반가움을 표하면서도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월드컵은 괜찮으시겠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애초부터 <스포츠니어스>가 여자축구에 큰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인 WK리그에만 시선을 향했을 뿐입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여러분께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은 회사의 대표부터 말단 기자까지 여왕기 개막 일정을 알고난 후 취재에 대해 망설임 없이 "가자"라는 의견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스포츠니어스>는 창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 찾아가 스토리를 발굴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죠. 어찌보면 애독자들은 '이상한 매체라 또 그런 곳 갔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지금 창녕에서는 다양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웨덴전 이후 김민우 처럼 패배에 분해 눈물을 흘리는 선수도 있고 파나마나 아이슬란드처럼 한 골에 의미를 부여하며 환호하는 약팀도 있습니다. 저마다 매 경기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월드컵에서 보던 선수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 차이가 있다면 이곳은 한국에서 열리는 국내대회라는 것, 그리고 성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관심의 차이가 이를 증명하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의 스토리는 월드컵 못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 옆에서는 함께 취재를 온 우리 <스포츠니어스> 기자들이 열심히 마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취재를 하면서 싱글벙글이었습니다. "기사 쓸 이야기가 정말 많다"고 하더군요. 물론 제 앞에서만 웃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들의 일거리가 늘어났다는 것인데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요. 사회생활의 일환일 수도 있습니다. 저와 기자들이 쓴 이야기는 차근차근 여러분들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한 가지 독자 여러분께 부탁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스포츠니어스>는 그동안 비교적 관심이 적은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글을 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감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왕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독자 여러분, 그리고 더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단순히 저희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도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면서 묵묵히 땀 흘리는 선수들을 더 많은 분께 보여주고 이야기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월드컵처럼 많은 이들의 관심이 있는 대회는 아니지만 정말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뛰는 선수들의 이야기에도 조금은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러시아에서 뛰는 선수들도 우리 선수들이고 창녕에서 더위와 싸우며 뛰는 선수들도 우리 선수들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다시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처음 소개했던 그녀의 말처럼 한국 여자축구는 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훌륭한 선수를 꿈꾸며 노력하는 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 선수를 인터뷰 할 때 주위에서 팀 동료들은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도 인터뷰 좀 해보고 싶어." 그들이 더 열심히 뛸 수 있도록 멀리서라도 박수 한 번 보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그들에게 여러분의 관심이 주어진다면 이 소녀들은 한국 여자축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기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상남도 창녕에서, 조성룡 기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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