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스웨덴을 상대로 0-1 패배를 당한 이후 비난은 극에 달했다. ⓒFIFA WORLDCUP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월드컵에 나가야 한국 축구가 계속 먹고 살 수 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해야 대한축구협회가 여러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고 그래야 이 돈이 유소년 축구로 투자된다. 일부에서는 한국 축구가 정신을 차리기 위해 한 번쯤 월드컵에 나가지 못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나마 월드컵으로 먹고 사는 한국 축구가 이 무대에서 한 번 멀어지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 고마워해야 한다. 애국심으로 돈벌이를 하기에는 월드컵 만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축구 열기를 그나마 4년에 한 번씩 월드컵이 멱살 잡고 끌어 올리는 역할도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요즘 들어 월드컵을 볼 때마다 깊은 회의감이 든다. 4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일부 대중의 집단 폭력 증세 때문이다. 월드컵이 열릴 때면 그 동안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저마다 전문가가 되고 감독이 돼 훈수를 둔다. 아니 여기까지는 그래도 애국심 정도로 봐줄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들이라도 있어 한국 축구가 거액의 후원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 축구를 사랑하고 걱정한다는 핑계로 과도한 비난을 마치 당연한 쓴소리처럼 하는 이들도 많다. 지난 4년 동안 한국 축구를 단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으면서도 월드컵만 되면 훌리건으로 변신하는 이들이다. 4년 동안의 ‘팩트’도 모르면서 이들은 늘 ‘팩트, 팩트’거린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는 SNS가 발달하면서 이런 과한 비난이 더욱 심각해졌다. 어제부터 KBS 해설위원으로 러시아 현지에 가 있는 이근호 SNS에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이근호가 스웨덴전 패배 이후 “한국 축구는 멕시코가 1차전에서 이겼으니까 2차전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우리가 1차전에서 스웨덴에 졌으니까 2차전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위치가 아니다”라며 “한국 축구가 언제부터 16강을 당연하게 바라봤는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은 이근호 SNS로 달려 가 조롱과 비난을 보내고 있다. 욕설을 보내는 그들에게는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있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니까 난 이런 말할 자격이 있다.”

 

이근호의 SNS는 이런 조롱과 욕설로 가득 찼다. ⓒ이근호 인스타그램

일부 네티즌들은 “대표팀 고참이 이런 마인드니까 국대가 망했다”면서 “여태 국대로 해외 나가서 쓴 비용 다 뱉으라” “이 새X 왜 입털었냐ㅋㅋㅋ 장현수는 토토정배 걸었는지 팀킬하고 있지ㅋㅋㅋ십노답 대표팀 박주영처럼 엿이나 까먹을 자신있냐?” “입 함부로 털지마라 지금 먼가 팩트를 잘못 짚었는데 월드컵에 참가했으면 성적을 기대하는 건 당연한 거다” 등 온갖 조롱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나는 이근호의 발언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다. 과연 한국 축구가 언제부터 16강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팀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해설위원 자격으로 현지에 간 선수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SNS까지 가 욕설을 내뱉고 있다. 자기들끼리 이렇게 누군가를 비난하고 조롱한 발언은 ‘사이다 발언’으로 칭송받는다. 사이다 김 빠진 소리다.

비슷한 시간,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스웨덴전에서 눈부신 선방을 펼친 대구FC 조현우의 아내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 관심을 끌었다. 조현우의 아내는 장문의 글을 통해 “아기에 대한 안 좋은 댓글들을 건너건너 듣게 되면서 아기가 나중에 글씨를 알게 되면 상처가 될까봐 700개 정도의 수년간 일상을 담은 일기와 같은 것들을 모두 지우게 됐다”면서 “외모 지적 또한 받게 되면서 며칠 동안 내가 잘못하고 있었구라고 알게 됐다. 아기에게까지 안 좋은 말을 듣게 할 줄은 몰랐다”고 괴로워했다. 일부 네티즌이 조현우의 아내와 아이의 외모까지 지적하며 험한 말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이건 정말 테러 수준이다. 선수 당사자도 아니고 아무 죄도 없는 선수의 가족을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건 비겁한 테러다.

심지어 스웨덴전이 끝난 뒤 해당 주심의 SNS도 한국인들로부터 공격을 당했다. 나 역시 당시 주심의 판정에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SNS로 달려가 인신공격을 일삼는 것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 “욕 먹어도 싸다”는 말 한 마디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대한축구협회 공식 SNS 계정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터키 국민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네 상황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SNS를 통해 테러를 가하는 걸 애정 표현의 수단 정도로 여기면 안 된다. 이건 대단히 큰 정신적 폭력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폭력을 가하면 한국 축구가 발전을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저 분풀이 대상으로 누군가를 지목하고 집단 폭력을 가하는 것뿐이다. 한국 축구가 답답한 플레이에 머무는 걸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은 이들의 집단 히스테리 증상이다.

이근호의 SNS는 이런 조롱과 욕설로 가득 찼다. ⓒ이근호 인스타그램

4년 마다 한 번씩 오는 이런 각설이, 아니 팬, 아니 팬이라고 할 수도 없는 냄비들은 한국 축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단언하는데 단 1%도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차라리 그렇게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으면 현장으로 찾아오시라. 방구석에서 키보드나 스마트폰을 두들기는 걸로는 한국 축구를 바꿀 수 없다. 월드컵이 끝나면 K리그 경기장에 이근호와 조현우를 비롯해 당신들이 그토록 욕하고 싶었던 이들이 나올 테니 경기장으로 와 야유를 보내는 편이 훨씬 더 영향이 있다. 그 정도 수고도 하지 않으면서 ‘나는 한국 축구를 사랑하니까 선수 SNS에 가 욕 좀 해도 돼’라고 하는 건 그냥 악플일 뿐이다. 방구석에서 하는 건 누가 못하나. 나도 방구석에서는 세계 평화를 걱정하는 노벨 평화상 후보다.

K리그를 주로 보는 입장에서 K리그를 보는 사람만 대표팀을 응원할 자격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런 우월의식을 가지고 싶지 않다. 그런데 바꿔 말해 대표팀 23인의 소속팀을 아는 사람만 대표팀에 욕할 자격이 주어진다면 과연 인터넷과 SNS가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장처럼 지저분했을까. 평소에는 아무 관심도 없고 이 선수들이 어디에서 뛰는지, 4년 동안 어떤 준비를 했는지도 모르면서 4년마다 한 번 찾아오는 이들이 나는 불편하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며 SNS로 욕하고 조롱하는 걸 애정과 관심이라고 포장하지 마시라. 이건 애정과 관심이 아니다. 그냥 폭력일 뿐이다. 2010년에는 염기훈이 그 집단 폭력에 당했고 이번에는 그때 염기훈을 물고 뜯었던 이들이 하이에나처럼 또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을 뿐이다.

이근호의 SNS는 이런 조롱과 욕설로 가득 찼다. ⓒ이근호 인스타그램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를 보라고 애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마치 자신이 무슨 대단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는 마시라. 불만이 있으면 그래도 비난이 아닌 건전한 비판 정도로도 충분하다. 이건 꼭 K리그를 보지 않고 4년에 한 번 축구를 보는 이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수년 째 염기훈을 단 한 순간의 실수로 폄하하고 조롱했던 이들은 한국 축구의 현실을 냉정히 되짚은 이근호에게 달려가 온갖 욕설을 퍼붓고 있다. 아무 잘못 없는 조현우의 가족을 향한 SNS 공격은 더 심각하다. 이런 심각한 테러가 한국 축구에 자행되는 한 한국 축구는 더 발전할 수 없다.

나 역시 이번 스웨덴전에 많이 실망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플레이였다. 하지만 선수들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욕 먹어도 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건전한 비판만 하자. SNS까지 몰려가 욕을 하는 게 축구에 대한 애정이라고? 웃기지 마시라. 이 테러범(?)들은 월드컵이 끝나면 성형한 연예인 기사에 악플을 달고 치어리더 기사에 성희롱을 일삼으며 빨갱이 논쟁에 불을 지필 이들이다. 그렇게 각자 또 4년 동안 자신의 서식지에서 물을 흐리다가 4년 후가 되면 마치 자기가 4년 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또 월드컵이라는 무대로 모여든다. SNS 테러는 애정이 아니라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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