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짬’ 시켰던 조현우 인터뷰 되살리기


한국 스웨덴 월드컵
조현우는 스웨덴전에서 비록 한 골을 허용했지만 수 차례 실점 장면에서 선방을 보여줬다. ⓒFIFA WORLDCUP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2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 호텔.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취재진과 선수, 감독이 만나 각오를 듣는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공식 인터뷰에 앞서 선수들과 감독들이 각자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취재진이 다가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대부분의 취재진은 역시나 전북 최강희 감독과 이동국에게 몰렸다. 경남FC 말컹과 김종부 감독 주변에도 취재진이 모여 들었고 FC서울 황선홍 감독과 수원삼성 서정원 감독을 향한 관심도 뜨거웠다.

이 선수, 몰라보고 ‘짬’시켜서 죄송합니다
미디어데이가 열리면 어색해 하는 선수들도 꽤 있다. 취재진이 옆에 앉아 반갑게 질문을 던져주면 참 좋을 텐데 다소 관심 밖에 있는 선수는 멀뚱멀뚱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아주 어색한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날 유독 한 선수에게는 별로 질문이 없었다. 그래서 옆으로 쓱 다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당일 현장에서 송고할 기사가 많아 일단 이 선수와의 인터뷰는 ‘킵’했다. 또한 이 선수가 전한 각오가 대단히 현실적이지는 않았다는 점도 다른 기사를 먼저 쓰고 이 기사를 ‘킵’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넉 달이 지난 지금 이 선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해졌다. 스마트폰 녹음 목록을 뒤져 다시 그때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니 불과 4개월이 지난 지금 이 선수의 4개월 전 대화를 꼭 전해야할 상황이 생겼다. K리그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이 팀의 골키퍼가 4개월 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선보일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었을 테지만 그는 당당히 러시아월드컵 주전으로 낙점 받았다. 그리고 졸전 끝에 0-1로 패했지만 스웨덴전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플레이를 펼쳤다. 대구FC 조현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늘은 넉 달 전 ‘짬’ 시켰던 그 인터뷰를 되살리려 한다. 때론 묵혀둘수록 가치가 생기는 것 같다.

4개월 전 그가 밝힌 올 시즌 각오
테이블에 멀뚱히 혼자 앉아 다른 선수들의 인터뷰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조현우에게 다가갔다. 염색을 새로 한 듯해 “오늘 미디어데이 오느라 머리하셨느냐”고 묻자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조현우는 반갑게 웃으며 반겼다. 시즌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대구FC에 관한 이야기를 물으니 자신감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족했던 부분을 많이 채우려고 노력했다. 동계 전지훈련 기간을 돌이켜 보면 만족스러웠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팀 분위기도 좋고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도 좋다. 100%로 시즌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후 대구FC 외국인 선수 지안과 카이온은 부상 과 비량 미달로 퇴출되고 말았다. 조현우는 지금 생각해 보면 대구FC 외국인 선수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거짓말쟁이가 됐다.

여기에 팀은 K리그1에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조현우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셈이었다. 대구는 올 시즌 유독 퇴장 선수가 많이 나와 불리한 여건에서 경기를 치른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올 시즌 목표는 명확했다. “지난 시즌에는 우리 수비가 약해 나에게 선방 기회가 많았다. 그러면서 선방률 1위를 기록했는데 올 시즌에는 최대한 나에게 공이 오지 않도록 수비수들에게 지시할 생각이다. 그래도 나에게 오는 공은 멋진 세이브를 보여드리고 싶다. 올 시즌이 우리가 대구스타디움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즌이다. 내년부터는 새로 만들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한다. 올 시즌에 꼭 잔류에 성공해 내년 시즌 K리그1 개막전을 새로운 운동장에서 하는 게 나의 목표다. 멋진 경기장에서 K리그2를 맞고 싶지는 않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팀에서 가장 돋보이는 조현우를 노리는 팀은 많았다. 해외에서도 이적 이야기가 흘러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조현우는 올 시즌에도 대구FC에 남기로 했다. 사정을 물으니 잠시 답변을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 이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적 제안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조광래 사장님께서 나에게 많은 걸 어필하셨고 믿어주셨다. 믿어주는 팀에서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올 시즌에는 일단 다른 걸 생각하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주가가 오르면 팀을 떠날 가능성이 더 커질 것 같다”고 묻자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답을 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구 팬들이 서운해 할 수도 있다. 일단은 대구만 생각하고 시즌을 준비했다.”

대구 조현우
4개월 전 찍은 이 사진은 계속 내 스마트폰에만 담겨져 있었다. ⓒ스포츠니어스

“월드컵에 가고 싶다”던 4개월 전 그의 인터뷰
그에게 대표팀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현우는 이제 막 대표팀에 뽑혀 조금씩 이름을 알리고 있던 시기였다. 평가전 등을 비롯해 A매치 네 경기에 나선 게 전부인 선수였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김승규, 김진현 등 경험 많은 선배들과 주전 경쟁을 펼쳐야 했던 그는 현실적으로는 대표팀 내 세 번째 골키퍼였다. 하지만 그는 처음 경험해 본 대표팀에서 많은 걸 얻었다고 했다. “원래는 길거리에서 나를 알아보는 분들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거리에서도 ‘국가대표 골키퍼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대표팀에 다녀오면서 경기를 할 때 여유도 생겼다. 나에게는 대표팀이 정말 큰 선물이자 나의 가장 큰 목표다.”

2018년 2월에 만난 조현우는 이런 말을 했다. “올 해가 내 축구 인생 중에 가장 중요하고 바쁜 해가 될 것 같다. 대구FC의 잔류를 이끌어야 하고 대표팀에서도 경쟁해야 한다. 올 해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당시만 해도 조현우의 대표팀 입지는 그리 탄탄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현우는 겸손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었다. “나는 겸손할 걸 좋아한다. 운동선수는 늘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은 있다. 일단 대표팀에 누가 뽑혀 누가 골문을 지키던지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나 말고도 훌륭한 골키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왕이면 그 골문을 지키는 선수가 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만큼의 자신감도 있다.”

당시에는 이제 막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 그 여파가 남아 있을 때였다. 조현우는 평창올림픽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했다. “여자 컬링 경기를 보면서 나도 많은 응원을 보냈다. 아마 그런 곳에서 관중의 함성을 들으며 경기를 하면 전율이 느껴질 것이다. 나도 꼭 그런 큰 무대에서 박수를 받고 싶은 욕심이 들더라. 나에게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율을 한 번 느껴보고 싶다. 올 해는 꼭 K리그1 잔류에 성공하고 월드컵에까지 나가 대구 팬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그는 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그리 많은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자 자신의 목표를 명확히 제시했다.

조현우는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핫한 선수가 됐다. ⓒ 대구FC

“올 해를 가장 행복한 해로 만들고 싶다”
그리고 딱 4개월이 흘렀다. 대구FC는 유독 많은 퇴장을 당하며 K리그1에서 꼴찌에 머물러 있지만 대표팀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4개월 전만 하더라도 도전자 입장이던 조현우가 대표팀 주전 골키퍼로 도약한 것이었다. 그리고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본다던 월드컵 본선 무대에 그가 나서게 됐다. 믿기지 않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는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지난 18일 열린 한국과 스웨덴의 2018 러시아월드컵 주전 골키퍼로 든든히 골문을 지켰다. A매치 7번째 경기가 축구사에 남을 어마어마한 경기였다. 비록 이 경기에서 한국이 0-1로 패하며 선수단 전체가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수확이 있다면 바로 조현우였다. 조현우는 이날 눈부신 선방쇼를 펼치며 자칫하면 대패를 당할 뻔한 한국을 구해냈다.

4개월 전 모두의 관심 밖에 있던 조현우의 인생역전이다. 당시만 해도 조현우가 4개월 뒤 한국 축구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없었다. 나 역시 인터뷰를 해놓고 다른 여러 기사를 써야 한다는 이유로 조현우와의 인터뷰 기사 송고를 미뤄왔다. 4개월 뒤 있을 이 어마어마한 골키퍼의 선방쇼를 예상하지 못한 ‘축알못’은 할 말이 없다. 하지만 4개월 전 이야기를 지금 다시 들어보니 오히려 더 묘한 감정이 든다. 그때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던 목표였는데 그가 4개월 전 자신감 있게 밝힌 목표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세상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던 4개월 전 대화를 이렇게 기사로 다시 나오게 한 것도 결국에는 조현우가 해낸 일이다. 지금 들어보니 넉 달 전의 조현우 이야기는 더 새롭게 들린다. 4개월 만에 월드컵이 주목하는 골키퍼가 된 그를 보니 이런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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