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여대 기은경 감독 ⓒ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창녕=곽힘찬 기자] 현재 경상남도 창녕군의 창녕스포츠센터에서는 한국 여자 축구의 미래를 발굴하는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창녕스포츠센터에서 초등부부터 대학부까지 전 연령별의 선수들이 각 학교를 대표해 그라운드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침 대학부 경기가 열린 따오기 구장에서는 서울 한양여자대학교와 대전 대덕대학교의 경기가 막 끝나가던 참이었고 그곳에서 한양여대 기은경 감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기은경 감독이 반갑게 맞았다. 그녀의 목은 경기 내내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느라 많이 쉬어 있었다. “선수들이 학교 강의를 모두 듣고 팀에 합류하느라 이번 대회를 앞두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임했다”고 밝힌 기은경 감독은 “사실 대덕대를 상대로 크게 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주전 선수들을 빼고도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양여대는 이날 대덕대를 상대로 접전 끝에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대덕대는 여자 축구의 1세대 레전드인 유영실 감독이 이끄는 팀이다. ‘여자 홍명보’라고 불렸던 유영실 감독은 한국 여자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진출을 이끈 여자 축구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한양여대는 그러한 대덕대를 맞아 귀중한 무승부를 거뒀다. 무승부의 요인을 묻자 기은경 감독은 “대덕대의 전력을 분석 했을 때 골키퍼가 가장 취약점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를 공략하기 위해 킥이 좋은 선수를 내세워 직접 프리킥을 통해 동점골을 터뜨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 결과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던 기은경 감독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근심이 많아보였다. 바로 한양여대 축구부의 해체 때문이었다. 한양여대는 1993년 2월 창단 후 여자 대학축구계에서 강자로 군림해왔다. 전국 대회를 포함해 각종 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휩쓸었고 지소연(첼시 레이디스), 서현숙(수원도시공사), 임선주(인천현대제철) 등의 굵직한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한 명문 대학팀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갑작스럽게 축구부의 해체를 결정했다. 예정대로 해체가 진행된다면 오는 2019년 한양여대 축구부는 사라진다. 등록금 및 교수 급여의 동결 등으로 인해 재정이 급속하게 나빠진 것이 원인이었다. 과거 IMF사태가 터졌을 때에도 살아남았던 한양여대였지만 이제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한양여대의 2018년 올해 신입생은 13명이다. 원래 16명이 오기로 되어있었지만 축구부의 해체 소식을 듣고 중간에 3명이 이탈하고 말았다. 지금 당장은 보충된 신입생들을 포함해서 대회를 치를 수 있지만 2019년에는 선수 수급이 불가능해진다. “상당히 걱정스럽다”는 기은경 감독은 “내년에는 13명만을 데리고 대회에 나서야 될 수도 있다”고 근심했다.

기은경 감독은 그동안 지도해왔던 선수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편입생을 받는 방식으로 한양여대 축구부의 해체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은경 감독은 “편입생을 받으려면 조건이 있다. 그런데 충족시킨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실상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양여대의 일반 학생들을 선수로 등록하는 것도 또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그 학생들이 과연 축구부에 들어올지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양여대의 축구부 해체 소식은 지난해 이미 발표가 된 사실이다. 하지만 13명의 선수들이 한양여대를 택했다. 이유는 기은경 감독 때문이었다. 기은경 감독은 “신입생들이 축구부가 해체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양여대를 선택해서 온 것은 나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책임감이 크고 선수들에게 더 많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가닥 희망은 남아있다. 한양여대는 서울 소재 유일의 대학 여자축구부다. 내년 전국체전이 서울에서 열린다. 지역 축구계에서는 한양여대를 해체하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기은경 감독은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확신을 하지 못하겠다”며 기대 반 걱정 반의 모습을 보였다.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양여대는 2019 시즌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지소연을 비롯한 최고의 국가대표를 만들어냈던 한양여대는 지난해 WK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8명을 WK리그 무대로 진출시키며 울산 과학대학교와 더불어 최다 선수를 배출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양여대 축구부 역사상 최악의 위기가 닥쳐왔지만 기은경 감독에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자신이 지금껏 아끼면서 지도했던 한양여대 선수들이다. “축구부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고 와준 선수들을 위해서 나는 마지막까지 선수들을 책임지고 마무리를 지을 것이다. 이것이 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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