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창녕=조성룡 기자] 둘 다 힘들다. 하지만 분명 다르다.

여자축구선수들은 각자 사연이 많다. 정말 다양하다. 도중에 축구화를 벗어봤던 선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하게 축구와 인연을 맺은 선수도 있다. 제 26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에 참가한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어린 초등학교 선수들부터 대학교 선수들까지 사연 없는 선수가 없다.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있다. 특히 이들은 축구를 남성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한 선수들이 많다.

그 중 독특한 이력을 가진 선수가 있다. 과거 그녀는 발레를 했다. 발레리나가 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토슈즈 대신 축구화를 신고 있다. 실내에서 점프를 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잔디가 깔린 뜨거운 그라운드 위에서 헤더를 따내기 위해 점프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또다른 현실의 벽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서울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동산고) 박예빈의 이야기다.

어린 박예빈에게 감당하기 힘들었던 발레의 혹독함

사실 그녀의 꿈은 축구선수가 아니었다. 어릴 적 꿈은 발레리나였다. 발레는 축구와 정반대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축구가 강인한 이미지라면 발레는 아름다운 느낌이 강하다. 과거의 박예빈이 지금의 자신을 생각한다면 쉽게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튼 그녀는 발레리나를 꿈꿨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발레를 배웠다.

하지만 발레리나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유명한 발레리나의 발을 보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박예빈 발 보면 깜짝 놀랄 걸요? 올챙이 같아요." 그녀의 동료가 말했다. 하지만 박예빈은 무엇보다 체중 관리를 제일 힘겨워했다. "당시 키가 153cm였어요. 발레에는 적정 체중이 있어요. 제 키에 맞는 체중은 38kg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최대 40kg까지?"

"아침은 무조건 굶었어요. 그리고 점심에 학교 급식을 먹었고 저녁에는 선식으로 버텼어요. 솔직히 너무 싫었어요." 어린 나이에 체중을 관리한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도 힘들다. 그녀는 그렇게 발레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발레와도 이별을 했다. "그 당시에는 아쉬운 마음 같은 것 없었어요." 농담 삼아 그녀는 "축구보다 발레가 적성에는 더 맞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다시 토슈즈를 신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발레의 대안, 축구

약 7년 간 동고동락했던 발레와 헤어졌다. 그렇다면 박예빈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솔직히 제가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공부는 잘 못해요." 그녀의 아버지는 운동을 해볼 것을 권했다. 그는 스포츠를 좋아했다. 그의 슬하에는 1남 1녀가 있었다. 이미 아들은 야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딸에게도 권한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축구와 야구를 좋아했다. 그녀의 선택은 축구였다. 본격적으로 축구선수의 길을 걷기 전 박예빈은 스포츠 클럽 취미반에 들어갔다. 거기서 조금씩 배웠다. 그리고 서울 오주중학교 여자축구부 테스트에 응시해 합격했다. 물론 축구도 발레만큼 쉽지 않았다. 입에서 단내 나는 체력 훈련을 할 때 특히 그랬다. "사실 축구를 시작할 때 아무 생각 없었어요. 그런데 그게 지금 제 학창시절을 함께 하고 있어요."

오주중에서 시작된 축구 인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력도 좋다. 그녀의 팀 동료들은 그녀를 향해 '메시' 또는 '천재'라고 부른다. 박예빈의 포지션이 윙인 것도 있지만 실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다. 한 동료는 "박예빈은 공을 잘 뺏기지 않는다. 스피드도 출중하다. 예전에는 골을 넣을 때 스피드를 살려서 골키퍼까지 제치고 넣더라. 좋은 선수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기도 했다. 이 얘기를 전하자 그녀는 웃으면서 "적성에는 축구보다 발레가 맞는 것 같아요"라는 말로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밝은 박예빈의 표정을 어둡게 하는 한 가지

박예빈은 밝은 성격의 소유자다. 현재 여왕기가 열리고 있는 창녕에서는 그녀의 웃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쉬는 날 놀러간 카페에서는 흥에 겨워 춤을 추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래도 수 년 간 발레를 배웠던 만큼 춤에 대한 갈망과 흥미는 존재한다. 그녀는 훈련이 없을 때 춤 동영상을 보는 것이 취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예빈은 "춤은 이제 진짜 취미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고민이 있다. 바로 대학이다. 현재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내년이면 대학을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그녀가 갈 수 있는 대학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실력이 문제가 아니다. 팀 수가 너무 적다. 현재 대학부에는 7개 팀이 있다. 그 중에서 한양여대는 2019년 해체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신입생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6개 팀이 남는다.

조심스럽게 대학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밝던 그녀도 한숨을 푹 내쉰다. "솔직히 대학 이야기만 나오면 막막해요." 혹독한 체력 훈련이 그녀의 몸을 힘들게 한다면 대학 생각은 그녀의 정신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방법은 없다. 그저 열심히 해야 할 뿐이다. 열악한 여자축구의 현실을 가장 온 몸으로 느끼고 있지만 그녀가 축구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해야 할 뿐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한 마디에는 그런 각오가 담겨 있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단순히 박예빈 뿐 아니라 현재 수많은 고등학교 3학년 여자축구선수들이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 취업의 길도 좁아지고 대학 진학의 길도 좁아지고 있다. 어른들의 논리에 어린 선수들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면서도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밖에 없기에 오늘도 묵묵히 그라운드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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