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지더라도 뭘 좀 해보고 지자


한국 스웨덴 월드컵
한국은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0-1 패배를 당했다. ⓒFIFA WORLDCUP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스웨덴전 0-1 패배의 여파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이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16강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던 한국은 결국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배의 쓴맛을 봐야했다. 무조건 잡아야 할 상대에게 당한 패배는 더더욱 뼈아프다. 더군다나 이 경기는 스웨덴이 잘해서 이긴 경기가 아니라 한국이 못해서 진 경기였다. 유효 슈팅을 단 한 개도 때리지 못하며 완패를 당하면서 다가올 경기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졌다. 이제 한국은 멕시코와 독일을 상대로 힘겨운 승부를 펼쳐야 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해도 16강 가능성이 극히 낮아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단지 졌다고 욕하는 게 아니다
특히나 멕시코와의 경기는 힘든 승부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독일전보다도 멕시코전이 훨씬 더 어려운 경기가 될 것으로 본다. 힘을 앞세운 스타일보다는 기교를 앞세운 팀에 늘 고전했던 한국으로서는 독일을 잡고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멕시코를 상대한다는 게 대단히 버거운 일이다. 여기에다가 지난 경기 패배 이후 김민우와 장현수 등 일부 선수들은 비난 받으며 정신적으로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스웨덴전이 열리기 전부터 신태용호가 처한 상황을 미리 알리며 부진하더라도 마냥 비난할 일이 아니라고 했던 나 역시 다가올 두 경기에 대한 두려움이 드는 건 사실이다. 솔직히 멕시코가 좀 무섭다.

현실적으로 스웨덴을 상대로도 유효 슈팅 하나 기록하지 못한 팀이 한 수 위로 평가받는 멕시코나 독일을 잡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뚜껑이 열리기 전부터 한 발 물러설 이유는 없지만 승리, 아니 승점을 따내기에도 어려운 경기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은 두 경기에서 패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질 때 지더라도 뭐라도 좀 해보고 상대 팀에 아주 작은 타격이라도 입혀보고 져야 한다. 스웨덴전처럼 상대팀 골키퍼 유니폼이 무슨 색깔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수세에만 몰려 있다가 경기를 마쳐서는 안 된다. 어차피 16강 가능성이야 확 줄어든 거 이제는 16강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우리 플레이라도 좀 해봐야 한다.

지더라도 우리가 가진 걸 보여주면 그 걸로도 충분하다. 이번 월드컵을 전후해 냄비 근성의 팬들이 과하게 대표팀을 비난하는 면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졌지만 잘 싸웠다’ 속된 말로 ‘졌잘싸’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수준이 낮지 않다. 그래도 스웨덴전에서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눈물을 보였던 김민우에게 응원을 보낼 만큼 수준 높은 팬도 꽤 많다. 남은 두 경기에서 무조건 이기지 못한다고 해 그 자체로도 욕할 팬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축구 수준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우리는 월드컵에서 유효 슈팅을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절대 열세에 있다는 걸 누구나 다 안다. 다만 이번에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무너지면 그건 거센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한국 스웨덴 월드컵
신태용호는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이후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FIFA WORLDCUP 공식 페이스북

한 번쯤은 떠올려야 할 신태용호의 상황
스웨덴전이 끝난 뒤 허무함이 밀려왔다. 분노의 감정도 아니라 확 짜증이 나더라. 그래도 스웨덴은 우리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 1승 상대였는데 이런 팀을 상대로 90분 내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다가 패했다. 차라리 치열하게 맞붙다가 우리는 골 결정력이 부족해 골을 넣지 못하고 스웨덴은 행운이 따른 골을 몇 번 넣어 0-3으로 패했다면 허무함이나 짜증은 없었을 것이다. 90분이 지났는데 아깝다고 느끼는 장면도 없었고 경기 도중 뭐 어떻게 전술적으로 변화를 줘 상대의 허를 찔러보겠다는 것도 없었다. 90분 내내 뒤로 물러서 있다가 역습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패했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뒤 이유 모를 짜증이 난 것 같다.

신태용호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안다. 부상자가 속출하며 전력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선수들이 대거 이탈해야 했다. 그런데 더 아쉬운 대목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선수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긴 포지션마다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미리 말하자면 특정 선수를 비난하기 위한 칼럼은 아니다. 단지 현 상황이 너무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수비진에서는 장현수가 실망스러운 모습에 그치고 말았다. 이 자리는 원래 김민재의 몫이었다. 김민재의 부상 공백이 두고 두고 아쉬운 이유다. 김영권-김민재 조합이 가동됐더라면 결과는 조금 달랐을 수도 있다.

황희찬의 자리에 이근호가 있었더라면 훨씬 더 활발한 공격진 전개됐을 것이다. 스웨덴전에서 황희찬이 보여준 플레이는 날카롭지 못했다. 스웨덴의 키 큰 수비수들을 상대로 이근호가 활발하게 움직였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권창훈의 빈 자리도 컸다. 중원에 기성용과 이재성이 포진하고 오른쪽 측면에 권창훈이 배치됐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스웨덴전에서 구자철이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 보니 권창훈의 얼굴이 더 떠올랐다. 이 선수들의 부상이야 월드컵 전에 일어난 일들이라 그렇다고 쳐도 경기 도중 쓰러진 박주호의 공백은 더더욱 아쉽다.

한국 스웨덴 월드컵
신태용호의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FIFA WORLDCUP 공식 페이스북

어려운 건 알지만 뭐라도 좀 해보자
스웨덴전 전반 초반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선보였던 박주호가 빠지면서 신태용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민우를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결국 페널티킥은 박주호를 대신한 김민우에게서 나왔다. 신태용 감독은 왼쪽 측면 자원을 전반 이른 시간에 교체하며 결국 후반에 공격적으로 써야할 교체 카드를 허비해야 했다. 전술적으로도 힘을 쓰지 못했지만 부상 공백이 너무나도 컸다. 이미 끝난 경기에서 누구의 공백을 탓하는 게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지만 왼쪽 측면에 박주호가 계속 있었더라면, 아니 원래 그 자리를 채우던 김진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계속 든다. 신태용 감독이 활용할 자원 자체가 부족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후반 공격 자원으로 투입할 백업 요원이 이승우와 문선민 뿐이었는데 이 자체로도 대표팀은 무게감이 상당히 부족했다. 딱 부상 선수가 빠진 자리에서 공백이 보였으니 어떻게 손을 써볼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면 선수 기용으로 문제를 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부상 선수들이 속출한 상황에서 신태용 감독이 가용할 만한 자원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나은 선수들을 뽑았을 것이다. 아무리 장현수가 비난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대안도 딱히 없다. K리그의 모든 팀들은 장현수가 자신의 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이 선수들이 현재 한국에서 쓸 수 있는 선수 중 가장 나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나는 현재 선수 구성에서 더 나은 선수 구성으로 변화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뭐라도 해야 한다. 김신욱을 기용했으면 지속적으로 공중볼 경합을 시켜서 그걸 따내건 못 따내건 경쟁을 붙어야 한다. 그런데 스웨덴전에서는 어땠나. 김신욱의 부진한 움직임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예 그가 공중볼을 경합할 수 있는 상황도 몇 번 만들어주지 못했다. 손흥민을 보유했으면 자꾸 그가 뒷공간으로 치고 달릴 수 있도록 패스를 찔러줘야 한다. 패스가 연결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다. 그런데 스웨덴전에서는 이런 시도 조차도 없었다. 김신욱의 공중볼과 손흥민의 침투 등의 성패 여부를 따지려면 적어도 의도적으로 이런 시도라도 했어야 한다.

스페인 이란 월드컵
이란은 스페인을 상대로 0-1 패배를 당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FIFA WORLDCUP 공식 페이스북

이란은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나
스웨덴전에서는 패스가 좋은 기성용이 롱 패스를 뿌려주는 모습도 몇 번 못 봤다. 쉽게 말해 우리가 가진 나름대로의 장점을 전혀 활용하지도 못했고 활용할 시도조차도 없었다는 것이다. 스웨덴을 상대로 김신욱이 공중볼 경합에서 밀렸으면 ‘아 쟤네들한테는 제공권이 안 되는구나’라고 단념했을 텐데 우리는 이런 도전조차 못하고 90분을 허비했다. 그러니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허무함과 짜증이 밀려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못했다. 스웨덴도 잘한 경기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잘하고 못하고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허무한 90분을 보냈다. 신태용호의 어려운 사정이야 잘 알지만 그래도 100%의 전력이 아니어도 있는 전력만큼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지난 새벽 이란이 스페인을 상대로 0-1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이런 경기에서 이란이 패했다고 해 아무도 이란을 질타하지 않는다. 이란은 불운에 가까운 골을 내줬지만 전반전 내내 의도적인 수비 축구로 스페인을 괴롭혔다. 그리고 한 골을 실점한 뒤에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면서 위협했다. 득점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으며 취소됐지만 그들이 스페인에 0-1로 졌다고 해서 한탄한다거나 비난하는 이들은 없다. 수비에 치중하고 싶으면 수비를 튼튼히 했고 공격을 하고 싶으면 선수들이 전방으로 나가 슈팅까지 다 하고 내려왔다. 의도한대로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 이런 패배를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한국이 스웨덴을 상대로 패한 것과는 의미 자체가 다르다.

멕시코와 독일을 상대로 반드시 이겨서 16강에 가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건 경합 상황에서 머리를 들이밀어 머리가 깨지건 혼전 중에 몰래 손으로 공을 밀어 넣건 뭐라도 좀 해보자는 말은 꼭 하고 싶다. 질 때 지더라도 좀 이렇게 후회 없이 우리가 가진 건 좀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야 대중도 ‘아, 도저히 이건 우리가 실력으로 안 되는 승부였구나’라며 현실의 벽을 인정한다. 할 건 다 해봤는데도 안 되는 걸 선수 탓 할 만큼 우리 팬들의 수준이 낮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스웨덴전처럼 90분 경기가 끝난 뒤에도 찜찜함만 남는 승부는 더 이상 안 된다. 대패를 당하더라도 아시아의 호랑이답게 할 건 다 해봐야 한다. 이렇게 아무 것도 못 해보고 월드컵을 끝낼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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