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호, 270분 중 90분을 뛰었을 뿐이다


ⓒ 울산현대

[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한국시각 18일 오후 9시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우리 대표팀과 스웨덴의 경기는 0-1로 패배를 당했다. 멕시코가 독일을 잡은 상황에서 우리 대표팀이 스웨덴에 패배하면서 16강 진출이 더 어려워졌다.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기록들이 나왔다. 기록 집계를 시작한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로 52년 만에 유효슈팅 ‘0’을 기록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이어지던 본선 첫 경기 무패 행진도 끝났다. 아니나 다를까 실망과 비난, 분노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급기야 전반 20분가량 좋은 경기를 펼쳤던 박주호의 부상 원인을 장현수로 돌리는 언론 매체마저 등장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그때 장현수가 패스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건 다 과거의 이야기이고 누구보다 장현수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팀 동료의 부상을 유발한 자신의 실수를 누구보다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장현수는 그 뒤로 꽤 괜찮은 수비 리딩을 보여줬지만 볼 배급에서 계속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아마 자신도 패스 실수를 털어내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팀 동료가 허벅지 뒤쪽을 잡으면서 일어나지 못했기에 그 걱정이 더 컸으리라.

지난 3월 평가전에서 기성용은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며 그의 주장 완장을 장현수에게 넘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현수를 향한 의심이 가득했다.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선수, 신태용 감독의 아들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으면서도 그는 축구화를 신었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으며 필요에 따라 주장 완장까지 찼다. 그런 그를 ‘박주호의 부상 원흉’으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다. 언론 매체가 비판 기사의 헤드라인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FC도쿄

지려고 뛰는 팀은 없으니까

장현수의 실수를 탓하기 이전에 수비수들은 충분히 잘해줬다. 장현수의 실수는 ‘아쉬운 결과’다. 나비효과처럼 박주호가 부상을 당했고 박주호 대신 들어온 김민우가 페널티킥 파울을 범하면서 패배했다고 얘기하는 건 단지 비극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현대소설에서 절대 악과 절대 선의 경계가 희미한 이유는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속사정을 세밀하게 살폈기 때문이다. 장현수를 절대 악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박주호 대신 들어간 김민우를 향한 비난도 과하다. 김민우는 수원삼성에서도 더 공격적인 윙백 역할을 수행하던 선수였다. 상주상무 김태완 감독은 그의 공격력에 높은 점수를 주며 그를 윙으로 올렸다. 박주호만큼이나 전술적 활용 가치가 뛰어난 선수다. 팀의 주장 기성용이 말한 것처럼 세계적인 선수들과 세계적인 무대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실수이며 패배는 개인의 책임이 아닌 팀의 책임이다.

그렇다고 많은 이들이 표현하는 것처럼 선수들이 무기력하게 패배했나. 중요한 기준은 태도다. 선수들이 더 공격적이지 못했다고 그들에게 대충 뛰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선제골이 필요한 경기였지만 먼저 실점했다. 그 시점에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축구팬들과 언론은 스스로 이 경기 전까지 무엇을 말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4년 전 알제리에 무너지며 패배했을 때 선수들을 이끌어줄 베테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구자철이 기용됐다. 우리 대표팀이 약체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수비와 중원 간격을 줄이고 수비벽을 쌓았다. 스웨덴은 높이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김신욱을 썼다. 3패 해도 좋으니 뭔가 보여달라고 했다. 그래서 거칠고 많이 뛰는 선수들을 최종 명단에 발탁했다. 신태용 감독이 밝힌 ‘트릭’이라는 단어는 조롱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우리가 한 말은 기억하지 못했다. 10개월 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신태용 감독에게도 시간과 자원이 부족했다. 주전급 선수들도 부상으로 팀을 이탈했다.

지려고 뛰는 팀은 없다. 부상으로 이탈한 선수들 몫까지 채워줄 만한 선수층이 부족했을 뿐이다. 실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은 계속 고민 중이다. 우리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건 그 시스템 구축이 계속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축구협회의 역량을 거론할 게 아니라 빡빡한 삶 속에서 잇속을 챙기려 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 사회 환경까지 되돌아봐야 한다.

길거리 응원
월드컵이 시작되면 또 이런 분위기가 연출될까. ⓒ부천시

16강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가 축구를 못 한 다는 걸 인정하자고 말하면서 아직도 인정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눈은 아직도 높다. 멕시코와 독일의 경기를 보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보면서,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의 경기를 보면서 그들의 모습을 우리 팀에서도 찾길 바랐던 거 같다. 월드컵 본선 진출 만으로도 위대한 업적이다. 월드컵 본선 무대 첫 골을 염원하던 시기와 첫 승리를 염원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목표도 한두 번의 대회를 치르면서 16강 진출을 당연한 목표로 삼았다.

우리 대표팀은 9회 연속으로 월드컵 무대 본선에 올랐다. 무려 36년의 시간이다. 국제사회에서 강국이라 불리는 중국도 2002년 단 한 번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우리보다 축구 열기가 뜨겁다는 베트남과 태국 대표팀은 한 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파나마와 아이슬란드는 이번 월드컵이 처음이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는 이번 본선 무대 진출에 실패했다. <스포츠니어스>가 아무리 이들을 조명하고 분에 넘치는 이 행복을 강조해도 본선 무대 졸전에 초점이 맞춰지는 현 상황은 아쉽다.

파나마, 아이슬란드, 그리고 이탈리아와 네덜란드까지 그들의 사정이 있다. 그만큼 독일이나 스페인, 포르투갈, 아르헨티나도 그들의 사정이 있다. 2002년 우리 대표팀도 우리만의 사정이 있었다. 남들을 부러워하는 것보다 지금 우리 대표팀에 초점을 맞추자. 나라를 대표해서 월드컵 본선 무대에 진출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하고 있다. 우리는 마음껏 그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면서 그들에게 선전을 원하나. 최근까지 우리가 그들에게 보냈던 애정 어린 응원과 격려는 얼마나 있었기에 16강을 강요하나. 혹시 팬들도 ‘트릭’을 쓰나? 갑질이 따로 없다.

한국 국가대표팀
ⓒ중계 방송 화면 캡처

박주호를 위해 뛰어라

누군가의 말처럼 270분 중 아직 90분을 뛰었을 뿐이다. 우리 대표팀에는 아직 조별예선 180분이 남았다. 그 180분 동안 답답한 경기가 펼쳐질지라도 이 대회가 향후 우리 대표팀 전술 콘셉트의 기반이 될 수 있다. K리그는 모든 팀과 감독이 ‘공격’을 외치고 있다. 아시아 무대에서 우리 대표팀은 아직 강팀에 속하기 때문에 깊숙하게 수비 라인을 내리는 전술에 익숙하지 않다. 이란처럼 뛰어야 국제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그동안 우리가 수비 전술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생각하면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다. 단순히 최종 수비라인에 수비수 몇 명이 서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것에 그쳤으니까.

멕시코전과 독일전은 스웨덴전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대국민 적 목표로 여겨지던 16강 진출도 어렵다는 뜻이다. 김민재, 이근호, 염기훈, 권창훈의 부상 이탈도 안타깝지만 박주호가 가장 안타깝다. 자신의 기량을 전부 보여주지 못한 채 햄스트링 부상으로 전반 20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끝낼 가능성이 크다. 박주호의 나이를 고려하면 4년 뒤 열릴 월드컵에 그를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본선 무대를 밟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다. 그래서 박주호의 부상 이탈이 더 아쉽다. 더 많이 뛰었으면 했다. 울산현대로 복귀하면서 그의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그의 안타까움을 달래기 위해 우리 대표팀이 더 힘을 내줬으면 한다. 우리의 예상대로 180분이 남을지, 아니면 180분 이후 90분이 더 생길지는 모르는 일이다. 박지성의 말처럼 이대로 포기하면 사상 최악의 월드컵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누구를 위해 포기하면 안 되는 지 더 생각했으면 한다.

불투명해진 16강을 위해 뛰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압박감에 시달리며 축구를 하면 즐거울 것 같지 않다. 나라를 대표하고 국민을 위해 뛰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팀을 위해 뛰어줬으면 한다. 박주호를 위해 뛰어라. 자신의 역량을 전부 보여주지도 못한 채 월드컵 도전을 마무리해야 했던 박주호를 기억했으면 한다. 장현수도, 김민우도, 그리고 스웨덴전에서 미처 투입되지 못했던 선수들도 박주호가 움켜잡지 못했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자. 뛰고 싶어도 뛰지 못하는 이를 기억하자. 박주호의 시간을 우리가 쓰자. 아직 두 경기가 더 남았다.

intaekd@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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