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전에서 득점을 터뜨린 이르빙 로사노 ⓒ 멕시코 축구협회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곽힘찬 기자] 한국이 속한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멕시코에 0-1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독일은 36년 만에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1차전에서 패배하게 됐다. 애초 독일의 3전 전승이라는 전제 하에 16강 진출 시나리오를 계획했던 한국은 이제 골치가 아파졌다. 독일이 3차전인 한국전에서 조 1위를 탈환하기 위해 최상의 전력으로 경기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많은 사람들은 독일의 승리를 예상했다. 손쉬운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독일이 멕시코에 패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전 월드컵 우승팀은 다음 대회에서 부진을 면치 못한다는 ‘월드컵 우승팀 징크스’가 있었지만 독일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스쿼드가 그 어떤 팀보다 두터웠고 선수들의 개인 기량이 모두 뛰어난데다가 2006년부터 팀을 지휘했던 요하임 뢰브 감독의 능력은 충분히 독일을 연속 우승시킬 수 있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일은 유럽 지역예선 C조에서 10전 전승을 거두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고 지난 2017 FIFA 러시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선 2군에 가까운 전력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한 바 있었다.

‘자신감’ 넘쳤던 멕시코는 진짜였다

경기를 지켜봤을 한국 팬들은 한국의 실낱같은 16강 진출의 희망을 위해 독일이 승리하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는 너무 강했다. 멕시코는 시작부터 독일의 수비진을 허물면서 유효슈팅을 시도하더니 급기야 이르빙 로사노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전차 군단’을 단번에 ‘녹슨 전차’로 만들어버렸다. 경기를 앞두고 “독일전에서 수비에 치중하지 않겠다. 우리는 대등한 경기를 펼칠 준비가 됐다”고 출사표를 던진 멕시코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의 말은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이었다.

이날 멕시코는 빠르고 날카로운 팀이면서 단단한 팀이었다. 독일에 비해 피지컬 면에서 불리한 멕시코는 뛰어난 기동력을 앞세운 역습 전술을 통해 독일의 측면을 무너뜨렸고 독일의 강한 압박을 개인기로 무력화시켰다. 발이 느린 독일 수비진은 멕시코의 빠르고 간결한 플레이에 고전했다. 멕시코의 역습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미겔 라윤, 이르빙 로사노를 비롯한 멕시코의 공격진은 수비나 중원에서 넘어오는 한 번의 패스를 받아 슈팅으로 이어갔다.

멕시코는 수비도 안정적이었다. 선제골을 넣은 멕시코는 후반전에 5-4-1 형태로 전환하며 잠그기에 나섰다. 독일은 이러한 멕시코 수비진을 뚫어내지 못하며 시간을 보냈다. 독일의 드리블 이후 중거리 슛, 측면으로 돌리는 패스 형식은 멕시코에 모두 읽혔고 오히려 멕시코에 역습 찬스를 수차례 허용하면서 실점 상황을 맞았다.

무엇보다 이기고자 했던 의지가 독일보다 멕시코가 더 컸다. 멕시코는 월드컵에서 독일을 단 한 차례도 이겨본 경험이 없다. 그랬기에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어떤 때보다 더욱 잘 되어있었다. 여기에 수만 명의 멕시코 관중들의 응원소리는 마치 멕시코의 아즈테카 스타디움을 방불케 했다. 제트기 소음과 같은 응원 목소리로 인해 독일 선수들 역시 적잖은 영향을 받은 듯했다. 이날 독일을 꺾은 멕시코는 확실히 강력했다.

독일 수비는 빠른 템포의 멕시코 역습에 고전했다. ⓒ FIFA World Cup 페이스북

원래 쉬운 상대는 없었다

독일이 멕시코를 잡아야 한국의 16강 진출 시나리오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멕시코의 승리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독일이 3전 전승을 한다는 전제 하에 신태용 감독은 “1승 1무 1패 또는 2승 1패로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독일이 패배하면서 한국은 스웨덴전에서 승리를 하고 마지막 3차전에서 독일을 꺾어야 16강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은 통일 이후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전승을 기록 중이다. 한국은 이러한 기록까지 넘어야 한다.

본선 조별리그 경기가 시작되기 전 많은 이들이 독일은 어렵지만 멕시코는 어느 정도 해볼 만한 상대라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멕시코가 더 강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이제 그러한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 수비진은 빠른 템포가 장점인 멕시코의 기동력을 견뎌내야 승산이 있다. 그전에 한국은 무조건을 스웨덴을 이겨야 한다. 독일이 멕시코에 패배했기 때문에 스웨덴전 결과에 따라 이번 월드컵 성적 여부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

어느 하나 쉬운 상대는 없다. 현재 한국은 같은 조 3개 팀의 입장에서 승점 자판기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항상 이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승리할 줄 알았던 ‘디펜딩 챔피언’ 독일도 멕시코의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패배했다.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상대가 잘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할 수 없게 막는다면 승산이 있다. 원래 경우의 수라는 것은 그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한국은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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