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신태용호 미리 ‘실드’치기


ⓒ 아시아축구연맹(AFC)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오늘(18일) 드디어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 스웨덴전이 열린다. 긴장이 된다. 한 편으로는 잘할 것이라는 믿음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가진 능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최근 보여준 경기력이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만약 오늘 스웨덴을 상대로 실망스러운 경기력에 머문다면 이번 월드컵 흥행은 물 건너간다. 가뜩이나 월드컵 열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 경기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면 역대 가장 썰렁한 월드컵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은 16강을 위해서도, 월드컵 흥행을 위해서도, 전국의 치킨집 사장님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 경기에서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도자 인생을 건 신태용 감독의 도전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글을 쓰려 한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을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그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 상황이 얼마나 우리에게 불리한지를 되짚으며 응원을 유도하고 싶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신태용호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결과에 끼워 맞춰 분위기에 편승해 비판이나 칭찬을 하고 싶지는 않다. 딱 오늘 미리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리 신태용호를 ‘실드’치려 한다. 그만큼 우리는 현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물론 이 칼럼이 부디 내일 성지순례 글이 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대단히 크다.

신태용 감독과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도 죽겠어. 내 축구 인생 걸었잖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된 이후 대표팀은 표류하고 있었다. 이 독이 든 성배를 마시려는 감독은 그 누구도 없었다. 이미 홍명보 감독이 어려운 상황에서 맡은 대표팀이 실패한 뒤 홍명보 감독은 한 동안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나는 그가 아직도 4년 전 월드컵 실패의 여파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급할 때마다 감독을 갈아치우고 방패막이로 쓰는 협회의 모습을 보며 신태용 감독이 또 다른 희생양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감독이고 능력 있는 감독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나는 신태용 감독이 단 두 경기 만에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표팀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야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자칫 두 경기를 그르칠 경우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오명을 쓴 감독이 되기 때문이었다. 프로 무대에서 화려한 경력을 이미 쌓아온 감독이 굳이 이런 모험을 걸 필요는 없었다. 나 같으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프로팀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했다. 4년 전 소방수로 등장해 처참하게 실패한 뒤 아직도 명예회복을 하지 못한 홍명보 감독을 보면서도 신태용 감독은 기꺼이 대표팀을 맡겠노라고 했다.

신태용 감독
성남일화 시절 아시아를 정복했던 신태용 감독은 이후 대표팀 감독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 ⓒ성남일화

히딩크 논란, 신태용호를 흔들다
아시아 최종예선 두 경기 내용은 실망스러웠다. 나도 “내가 알던 ‘난놈’ 신태용 감독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내용보다도 더 중요한 결과를 잡으며 숙원이던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을 성공시켰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날 교묘하고 의도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히딩크 감독이 난 데 없이 등장한 것이다. 그의 한국 대리인이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고 이는 정말 악의적인 타이밍에 맞춰 기사화됐다. 사람들은 감독 생명을 걸고 대표팀을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려 놓은 지도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대신 난 데 없이 히딩크 감독에게 다시 열광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혼자 광화문으로 나가 풍자 기사를 쓰기도 했다. 신태용 감독과 대표팀을 조롱하고 히딩크 감독을 추앙하는 인터넷 전사들이 히딩크 감독 모시기 촛불집회를 한다고 선동해 직접 현장으로 나가봤다. 나는 혼자 약속된 장소에 가 네덜란드 국기를 두르고 촛불을 켠 채 기다렸지만 나를 빼고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만 움직이는 이 축구를 사랑하는 국민이라는 이들은 오히려 한국 축구를 죽이고 있었다. 사명을 다하고 있는 대표팀 감독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기 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공정성을 훼손한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큰 여론이 됐다. 신태용 감독은 그래도 버텼다. 이 시기를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난다. 정당성을 무시한 채 공정한 세상을 부르짖는 이들 때문이었다.

이 문제는 국정감사에까지 올랐다. 그렇게 신태용 감독은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외롭게 대표팀을 지켰다. 이뿐 아니다. 신태용 감독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뽑을 애가 없어. 진짜 답답해.” 이때는 유럽 전지훈련 겸 평가전을 치르던 지난 해 10월이었다. 이미 슈틸리케 감독 시절 아시아 최종예선 탈락의 위험을 느낀 협회는 K리그 선수들을 조기 차출해 전지훈련을 했던 바 있다. 이때 K리그 구단들에게 받은 약속이 “10월 유럽 전지훈련 때는 K리그 선수들을 차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신태용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르기 전 일이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결국 신태용 감독은 제대로 된 베스트11도 구성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해외파만을 소집해 유럽에서 발도 제대로 맞추기 못하고 평가전을 치렀다.

촛불집회
촛불을 들고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나갔다. 나는 이곳에서 “국민의 뜻”이라던 그들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스포츠니어스

선수 차출 제약과 부상자 속출
이때 신태용 감독은 측면 수비 자원이 없어 이청용을 수비수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전임 감독이 이미 K리그 선수들의 조기 차출이라는 카드까지 쓴 상황에서 신태용 감독은 본인 잘못도 아닌데 벌 아닌 벌을 받아야 했다. 물론 이런 전후사정을 따지지 않고 언론과 여론에서는 두 경기에서 7골이나 허용한 신태용호에게 거센 질타를 가했다. 히딩크 감독 논란으로 이미 많은 대중의 반감을 사는 상황에서 K리그 선수들도 뽑지 못하고 치른 전지훈련에서 참패를 당하니 여론은 더 악화됐다. 신태용 감독은 당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물론 언론도 여론도 그의 편은 없었다.

두 달 뒤 신태용 감독은 이번에는 K리그 선수 위주로 명단을 꾸려 EAFF E-1 챔피언십에 나섰다. 따지고 보면 모든 선수들이 모여 발을 맞춘 경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열악한 상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최근 들어 대표팀에서 가장 믿음직한 인상을 남겼던 김민재의 부상은 엄청난 타격이었다. 김민재를 포백 수비의 한 축으로 이미 점찍어 놓고 수비진 구성을 고민하던 신태용 감독은 김민재가 부상으로 이탈하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머리를 싸매야 했다. 김민재의 부상 정도가 애매해 그를 월드컵에 데리고 가야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신태용 감독은 과감하게 그를 대표팀에서 배제했다. 욕심이 나는 자원이었지만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김민재의 선수 생활을 위해 포기했다.

결국 다시 김영권과 장현수 조합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표팀에서는 이미 한 번 가동했다가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조합이지만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김민재까지 빠졌으니 신태용 감독은 이 둘을 기용하는 전술을 찾아야 했다. 시간은 흘렀는데 다시 원점이었다. 막판까지 포백이냐 스리백이냐를 놓고 고민 중이라는 점도 비판받고 있지만 신태용 감독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김민재가 부상을 당하지 않고 건재했으면 고민할 것도 없이 포백을 썼겠지만 촉박한 시간 동안 수비 강화를 위해 스리백 카드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논란도 많고 이슈도 많았던 대표팀은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신태용호의 월드컵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월드컵
한국이 9회 연속으로 월드컵 무대에 선다. ⓒFIFA 공식 트위터

이승우와 문선민이 뽑히지까지의 속내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연이어 염기훈과 이근호, 권창훈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이 세 명으로 대표팀 주전 공격 조합을 짜도 될 정도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다소 하향세에 있고 대체 자원이 있는 염기훈은 그렇다고 쳐도 이근호와 권창훈의 부상 공백은 엄청났다. 한 번도 뽑아본 적 없는 이승우와 문선민을 뽑아 쓸 정도로 선수층은 부족했다. 문선민에게 “정말 천운을 타고 났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이승우와 문선민 입장에서는 행운도 깃든 대표팀 승선이었지만 대표팀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권창훈과 이근호를 당연히 베스트11으로 생각했던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 경험이 전무한 이승우와 문선민을 뽑아야 할 정도로 가용할 자원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월드컵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전력을 120% 가동해도 쉽지 않은 승부인데 우리는 많은 걸 잃고 많은 이들이 서로 싸우며 이 자리까지 왔다. 이 파란만장한 일은 불과 9개월 만에 이뤄졌다. 지난 해 9월 최종예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뒤 9개월 동안 일어난 일 치고는 너무나도 시끄러웠다. 감독 생명을 걸고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올라오는 동안 박수 쳐 주는 이보다는 흔드는 이가 훨씬 더 많았다. 이전 월드컵 같은 전폭적인 협조나 지원도 부족했다. 그래도 억지로 대표팀을 끌고 왔는데 핵심으로 생각했던 선수들은 줄줄이 부상으로 쓰러졌다. 발을 맞출 시간도 없이 이렇게 월드컵이 다가왔다. 이렇게 사건사고나 많았던 월드컵이 있었나 싶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늘이 바로 그 대망의 월드컵 첫 경기다.

내가 미리 신태용호를 ‘실드’치는 이유는 그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경기 결과를 떠나 그들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질 것 같아서 미리 방패막이 되려는 건 아니다. 한 번도 전폭적인 지원과 응원을 받지 못한 대표팀이 안쓰럽다. 지도자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신태용 감독에게 오늘은 아낌 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나 같았으면 이미 지난 해 9월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이 일었을 때 화가 나 대표팀 감독을 때려 치웠을 것이고 그 다음 달 전지훈련에 뽑을 선수가 없어 이청용을 수비수로 기용해야 했을 때도 사표를 냈을 것이다. 잘 참았어도 김민재가 쓰러져 월드컵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그만두려고 했을 것이다. 염기훈과 권창훈, 이근호까지 부상을 당했을 때는 미친 놈처럼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다 내려놓았을 것 같다.

신태용호를 미리 ‘실드’쳐 봅니다
하지만 신태용호는 이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면서 결국 오늘 경기를 준비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만 다하면 된다. 오늘 한국과 스웨덴전을 지켜볼 많은 이들이 경기를 앞두고 지금껏 신태용호가 얼마나 힘든 길을 돌아왔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칼럼을 썼다. 신태용호가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이런악조건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생각보다 경기력이 좋다면 ‘그래도 상황을 이겨내는 난 놈’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신태용호는 이런 생각으로 편하게 경기에 임했으면 한다. 내일 이 칼럼을 다시 돌아보며 미리 질 것 같아서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스웨덴전 결과를 알 수 없는 이 시점에서 꼭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다. 신태용호는 월드컵에서 국민의 박수를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 동안 많이 고생하며 묵묵히 이 자리에 서 준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에게 오늘 만큼은 아낌 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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