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아티아 축구협회 공식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크로아티아와 나이지리아가 만났는데 경기가 너무 지루했다. 두 팀 모두 월드컵에 참가한 나라 중 약체로 꼽히는 팀이 아니었는데 막상 만나니 경기는 루즈하게 진행됐다. 17일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가 나이지리아를 2-0으로 꺾었지만 내용은 양 팀 모두에 불만족스러웠다. 과연 왜 그랬을까.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밤을 하얗게 지새운 나를 원망하며 그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해 봤다. 적어도 지금까지 지켜본 이번 월드컵에서는 가장 긴장감이 부족해 보이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1. 2위 싸움이라고 생각한 신중한 경기 운영

D조는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 크로아티아와 나이지리아가 한 조로 묶였다. 월드컵이 개막하기 전부터 아르헨티나가 1위로 16강에 오르고 크로아티아와 나이지리아가 2위 싸움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아마 자신들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가 최하위에 머물 것이니 결국 1차전 승부에 16강의 향방이 갈릴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아르헨티나와 아이슬란드전이 열리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이 두 팀에는 재미보다도 실리를 챙겨야 하는 경기였다. 개막 전부터 그렇게 준비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슬란드가 이 경기 바로 전 아르헨티나를 만나 선전하면서 결국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크로아티아와 나이지리아는 자기들이 조2위 싸움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가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서로 이 경기에서 패하면 16강 가능성이 확 줄어든다는 걸 생각하고 임해야 하는 경기였다. 벼랑 끝에서 서로를 밀쳐내려 하기보다는 자기가 일단 떨어지지 않으려는 의도가 강했다. 지루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2. 상대적으로 재미있었던 이전 경기들

크로아티아와 나이지리아전이 유독 지루했지만 상대적으로 이번 월드컵 다른 경기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던 것도 이 경기가 더 돋보이는 ‘노잼’ 경기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0위와 63위의 대결로 역대 가장 재미없는 개막전이 될 것이라던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는 막상 뚜껑이 열리니 화끈한 골 잔치가 벌어지면서 원더골을 선보였다. 이란과 아이슬란드는 수비 축구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떨어지는 페루와 덴마크의 경기도 나름대로 지켜볼만한 재미가 있었다.

몇 경기 열리지도 않았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기는 이번 월드컵에서 더한 명승부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로 기가 막혔다. 이 경기를 밤새 지켜본 내가 대단히 자랑스럽다. 인터넷에서는 이 경기를 본 자신의 안구를 죽을 때 기증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눈이 정화되는 경기였다. 아직 개막 초반이긴 하지만 연이어 흥미로운 경기들이 펼쳐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비교했을 때 크로아티아와 나이지리아의 경기가 더 재미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새벽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영화 <타짜>와 <신세계>를 재미있게 보다가 바로 옆 채널을 틀었는데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나올 때의 기분이랄까.

ⓒ 나이지리아 축구협회 공식 페이스북

3. 양 팀의 부족했던 의지

크로아티아는 이반 라키티치를 너무 수비적으로 썼고 나이지리아는 존 오비 미켈에게 공격적인 움직임을 더 많이 요구했다. 능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공격보다는 그래도 수비에 무게감이 더 있는 미켈에게 공격 전개 시 너무 많은 역할이 부여됐다. 전반전 동안 미드필드 라인을 내린 상태에서 미켈에게 공격적으로 과한 부담을 준 건 아닌지 아쉽다. 크로아티아는 라키티치를 너무 아래에서 활용했고 루카 모드리치 역시 전진 자체를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상대가 후방으로 물러섰을 때의 공격 대응이 부족했다. 마리오 만주키치의 높이와 안드레이 크라마리치의 힘은 위력적이었지만 단조로웠다.

더군다나 크로아티아는 후반 15분 최전방과 측면 등에서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크라마리치를 대신해 미드필드 마르셀로 브로조비치를 투입하며 골을 더 넣기보다는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하는데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크로아티아의 전략이 잘 먹혀 2-0 승리를 따내기는 했지만 전술을 살펴봤을 때 양 팀 모두 공격적인 의지가 강력했던 건 아니었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에 훨씬 더 중점을 두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차피 우리하고는 별로 상관없는 경기이니 이왕이면 치고 받고 그러다 기가 막힌 골도 터지고 그랬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여러 모로 아쉬운 경기이기는 했다.

4. 새벽 4시 경기

왜 러시아는 새벽 4시에 축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경기가 한국 시간으로 밤 9시나 11시에 열리는 경기였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 것이다.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 받으며 수다를 떨면서 경기를 지켜봤더라면 그래도 조금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새벽 4시에 누가 깰까봐 텔레비전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자니 더 졸음이 몰려온다. 평생을 밤낮이 바뀐 채 러시아 시차로 살고 있는 나에게도 힘겨운 경기였다. 더군다나 이번 월드컵에서는 한국 시간으로 저녁 7시에도 경기가 열린다. 이렇게 편한 시간대에 경기를 감상하다가 새벽 4시에 극한의 환경에서 경기를 보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이 경기를 중계한 두 방송사의 캐스터까지 너무 조곤조곤하게 이야기를 해 나의 졸음은 배가 됐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크로아티아의 미녀 응원단과 중간 중간 나오는 광고 뿐이었다. 이 경기를 보고 자려고 누우니 계속 이런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불 좀 꺼줘요. 사진 찍게. 어두워도 인생 샷은 남겨야 하니까.” 이미 날은 밝았는데 누군가 자꾸 나에게 불 좀 꺼달라고 한다.

5. 크로아티아가 지금껏 나왔던 월드컵

크로아티아가 훌륭한 팀이라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다. 세계적인 선수들도 포진해 있다. 하지만 나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 크로아티아가 4강에 오른 걸 빼고는 월드컵에서 이들이 찬사를 받을 만한 경기를 보여준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크로아티아는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경기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다.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가 지금껏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적어도 이 경기에서 만큼은 나이지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크로아티아는 중요한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얻었다. 제3자인 내가 봤을 땐 지루했던 경기였지만 아마 그들에게는 지루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승점 3점이 더 필요한 경기였을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목적을 달성했다. 다만 해가 뜰 때까지 경기를 지켜본 이들에게는 아쉬운 내용이었던 건 분명하다. 뭐 월드컵을 보다보면 이런 경기도 있고 저런 경기도 있는 법이니 다가올 경기에서 더 많은 명승부가 나오길 기대한다. 오늘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니 지금도 자꾸 누군가 내 귀를 간질이며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불 좀 꺼줘요. 사진 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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