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슬란드 축구협회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임형철 기자] 하네스 할도르손 골키퍼가 리오넬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을 때의 흥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끝까지 끈질긴 승부를 펼친 아이슬란드는 결국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둬 기적을 연출했다. 누가 봐도 열악한, 덜 알려진 선수들로 이뤄진 그들이 유로 2016 8강에 이어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모습은 큰 감동을 불러왔다. ‘언더독의 반란’을 보여준 아이슬란드 선수들을 향해 팬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 대해 몇 가지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그들의 동화 같은 기적을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 이들의 기적을 더 감동적으로 포장하기 위해서인지 잘못된 정보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글을 통해 아이슬란드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하나씩 바로 잡고자 한다. 잘못된 포장 없이 현실로만 놓고 봐도 아이슬란드의 기적은 충분히 감동적이고도 남는다.

2017 우르발스데일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발루르 ⓒ 발루르 페이스북

아이슬란드에는 정말 축구 리그가 없을까?

일부 팬들에게 아이슬란드에 축구 리그가 없다는 정보가 사실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총인구는 서울 도봉구와 비슷한 34만 명에 불과하고 국토의 80%는 빙하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국 리그가 없을 거로 생각하는 게 무리가 아니어서인지 아이슬란드에 축구 리그가 없다는 정보가 아무렇지 않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는 무려 남자 축구팀이 77개나 존재한다. 이들의 리그는 5부 리그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 축구팀도 28팀에 달한다. 1부 리그 우르발스데일드에는 12팀이 참여하는데 리그 1위 팀은 UEFA 챔피언스리그 1차 예선에 진출한다. 2, 3위 팀에는 UEFA 유로파리그 1차 예선 티켓이 주어진다. 지난 시즌은 하프날피외르뒤르가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매년 2~3차 예선에 올라오는 일이 잦은 만큼 상위권 팀들의 국제무대 경쟁력은 리그 규모에 비해 제법 안정돼있는 상태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에 프로 리그가 없다”라는 말은 사실이다. 1부 리그 우르발스데일드는 4월 말부터 9월까지 총 5개월 간만 진행된다. 야외스포츠 진행이 힘든 아이슬란드의 기후 여건상 짧은 시간 동안 리그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정상적인 리그 운용이 쉽지 않다. 이는 리그의 상업화에도 큰 제약을 일으키는 요소다. 따라서 우르발스데일드는 프로화를 기대하기에 어려움이 많아 여전히 세미-프로 리그에 머물러 있다. 아이슬란드에 축구 리그는 있지만, 프로 리그는 없다.

2017 우르발스데일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발루르 ⓒ 발루르 페이스북

아이슬란드 감독과 선수들은 정말 축구가 부업일까?

아이슬란드 선수 중 일부가 투잡을 병행 중인 것은 사실이다. 아무렇지 않게 리오넬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하네스 할도르손 골키퍼는 축구 선수와 영화감독 직을 병행하고 있다. 헤이미르 하들그림손 감독도 축구 감독과 치과 의사직을 함께하고 있다. 하들그림손 감독은 비시즌 기간 선수가 아닌 치아 치료를 위해 모인 환자를 돌본다. 이 시기엔 축구 전술이 아닌 환자 치료 전술에 전념하며 큰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이들에게 축구가 부업일 거라 보는 시선은 잘못됐다. 엄연히 다른 나라 선수들처럼 직업 축구 선수들이 아이슬란드 월드컵 대표팀을 이루고 있다. 이번 월드컵 대표팀에 뽑힌 23명의 선수 중 해외파는 20명에 달한다. 이 20명의 선수는 잉글랜드, 덴마크, 독일, 스웨덴 등의 나라에서 충분한 프로 선수 대우를 받고 경력을 유지하고 있다.

프로가 아닌 아이슬란드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세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도 과거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잉글랜드 등에서 남 부럽지 않은 풍족한 프로 생활을 보낸 후 말년을 자국에서 보내기로 한 선수들이다. 이들은 82, 83, 84년생 베테랑 선수다. 국내에 알려진 것처럼 축구 선수로서 별다른 수입이 없는 열악한 선수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일을 본업으로 삼아 월드컵에 도전 중인 것이 아니다.

월드컵을 위해 러시아로 출국하기 전까지 소금공장에 출근해 소금 포장작업에 매진했다고 알려진 비르키르 사이바르손도 소금공장 직원이기에 앞서 전문 프로 축구 선수로 상당한 경력을 자랑한다. 과거 그는 노르웨이 명문 팀 SK 브란에서 6년간 168경기에 나섰고 작년까지 스웨덴 리그에서 세 시즌을 활약했다. 소금공장 직원 일을 선수 생활과 병행하는 것은 맞지만 그는 선수 생활 내내 남부럽지 않을 만큼 큰 성공을 이뤘다.

2017 우르발스데일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발루르 ⓒ 발루르 페이스북

메시의 페널티킥을 막은 하네스 할도르손 골키퍼도 평상시엔 덴마크 라네르스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에 전념한다. 지난 시즌은 덴마크 수페르리가 34경기에 나서 53실점을 허용하며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영화감독 일은 프로 선수 일이 바쁘지 않을 시기에 가끔 맡는 정도에 불과하다. 할도르손의 영화감독 병행 사실을 조명한 해외 기사에서 어느 기사도 “그가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 감독직을 맡고 있다”며 조명한 기사는 없었다.

아이슬란드 축구 감독 하들그림손도 치의학 전공자로 긴 시간 치과 의사를 병행하고 있지만 주로 시간을 쏟는 주 분야는 축구다. 엄연히 직업 축구 선수로 20년간 경력을 쌓았다. 한때 세미-프로 축구팀에서 지도자와 선수 생활을 병행하기도 했고 틈틈이 치과 의사 일도 함께했다. 하들그림손은 과거 인터뷰에서 “다른 감독이 골프 등 취미 생활을 자주 하는데 나는 진료가 취미다. 진료가 휴식에 많은 도움을 준다”며 밝혔던 바가 있다. 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에게 진료를 축구 이상의 본업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

아이슬란드 감독과 선수들에게 축구가 부업이라는 정보는 유로 2016 때부터 자주 언급됐던 내용이다. 그러나 유로 2016에 나선 당시 23명의 선수는 전원 해외파로 구성됐다. 이들 모두 각자의 소속팀에서 풍족한 프로 선수 대우를 받았다. 이처럼 아이슬란드의 국제무대 돌풍에는 축구 선수로서 열악한 환경에 놓인 것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본업을 잡아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며 꿈을 키운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프로 축구 선수를 본업으로 삼는 것만으로 충분한 성공을 이룬 인물들이다.

2017 우르발스데일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발루르 ⓒ 발루르 페이스북

이니에스타, 플라미니도 사실 투잡을 뛰고 있다

축구 선수가 투잡을 뛰는 행위를 특별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미 익히 알려진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저마다 투잡을 병행하고 있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축구 선수 못지않게 와인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보데가 이니에스타’라는 이름으로 가족들과 함께 시작한 이 사업은 8년 만에 연간 백만 병 이상의 와인을 생산하며 30개 이상의 나라에 수출하는 거대 사업으로 성장했다. “축구 도사 이니에스타의 정체는 사실 와인 재벌이다”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올 정도다.

과거 아스날에서 뛰었던 마티유 플라미니도 투잡을 병행 중인 대표적인 선수다. 10년 전 공동 창립자로 대체 에너지 사업에 뛰어든 그는 석유를 대신할 레볼릴 산의 가치가 크게 인정받은 덕에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36조 원에 달하는 회사를 보유 중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플라미니에게 축구는 취미다”라는 말이 많이 나왔지만 그의 본업은 엄연히 축구 선수다.

이 밖에도 수많은 축구 선수들이 프로 축구 선수만으로 충분히 안정적인 위치에 올라있음에도 불구하고 취미나 새로운 인생 설계를 목적으로 투잡을 병행해 큰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슬란드 선수들이 투잡을 병행한다고 해서 그것만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축구 선수의 투잡 병행이 꼭 축구 선수로서의 위치나 수입이 열악하기 때문에 이뤄지는 일은 아니다.

축구 선수로서 새로운 인생 설계가 쉬운 해외 선수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외국의 축구 선수들은 프로 축구 선수직 외에도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며 새 인생을 설계하는 게 쉬운 편이다. 취미로 영화감독을 하든 치의학 전공을 살려 치과 의사를 병행하든 그들은 이미 프로 축구 선수직과 부업을 병행해 자기 인생을 효과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이 중에는 이니에스타나 플라미니처럼 부업의 수익이 본업을 뛰어넘은 경우도 존재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운동선수는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사고가 여전히 지배적인 탓에 축구 선수들 대다수가 축구를 위해서만 육성된 채 다른 영역에 뛰어들 기회를 제한적으로 받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축구 선수들이 투잡을 뛰면 기껏해야 유소년 축구 코치 병행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취미나 부업으로 무언가 진행하려 해도 일생을 축구에만 쏟은 이들이 다음 인생을 설계하기엔 배경이나 지식이 부족하다. 선수를 키우는 우리의 육성 구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다.

투잡을 병행 중인 아이슬란드 선수들이 단순히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부러운 것이 아니다. 이들이 축구 선수로서 취미나 인생 설계에도 능력과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부럽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취미와 꿈을 함께 키워가는 인생은 풍요롭다. 우리는 선수에게 너무 축구만을 강요해온 것이 아닐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아이슬란드가 주는 교훈은 두 개의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열악한 환경을 딛고 살아왔다는 게 아니라 축구만이 강요된 세상에 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슬란드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폄하할 뜻은 없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가 자극적으로 잘못 전해지면서 우리가 정작 새겨야 할 교훈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축구만이 강요되지 않는 아이슬란드를 부러워해야지 그들이 축구선수가 직업도 아니면서 축구를 잘한다는 잘못된 사실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아이슬란드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꼭 이렇게 이야기를 과장되게 포장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stron1934@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