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한국 축구, 자존감이 필요해


월드컵
앞으로는 월드컵을 보다 더 현명하게 준비해 보자. ⓒRussianPresident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국이 스웨덴을 이길 수 있을까요? 16강에 갈까요?” 요즘 들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쩍 자주 듣는 말이다. 진지하게 대답을 한 적도 많고 희망 섞인 이야기를 한 적도 많다. 그러면 상대방 대부분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나름대로 터득한 답변이 있다. “발릴 거 같아요. 3패하겠죠.” 상대방 표정이 환해진다. 원하는 답을 들었다는 듯하다. “그렇죠? 전패하겠죠?”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을 하라는 뜻의 ‘답정너’가 딱 어울린다. 나는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원하는 답을 이야기해주고 다닌다. 속으론 씁쓸하지만 그게 사회 생활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느낀다.

3전 전패를 말하지 않는 자, ‘국뽕’인가?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이들의 자존감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아직 한국은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았는데 많은 이들은 벌써부터 3전 전패라느니, 독일한테 망신만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한다. 한국 축구에 대한 진지한 걱정이라기보다는 비아냥 섞인 지적이거나 조소에 가깝다. 내 주변 사람들만 그런 건 아니다. 여기저기 축구팬들이 모인 곳에 가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목구멍까지 이런 이야기가 차오른다. ‘아직 경기는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리고 설령 3전 전패 좀 하면 어떻습니까. 지면 지는 거지 까짓 거 뭐 있나요.’ 물론 혼잣말이다. 3전 전패를 예측하지 않으면 ‘국뽕’ 취급 받으니 혼자 삭히고 만다.

나는 한국이 이번 월드컵에서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16강을 가느니 마느니, 스웨덴을 이기느니 마느니는 지금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한다고 그게 정답도 아니다. 그래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신태용 감독과 선수단을 믿는 게 반,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 반이다. 3전 전패를 한다는 예측이나 독일에 힘 한 번 못 써보고 허무하게 질 것이라는 재수 없는 소리는 현 시점에서 하고 싶지 않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분석하면 될 일이다. 스웨덴전을 하루 앞두고도 벌벌 떨며 우리 팀에 냉소를 보내고 싶진 않다. 지금은 이기는 것만 생각할 때고 이기기 위한 응원을 보내야 할 때다.

종합격투기 뉴스를 보면 흥미로울 때가 많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수들이 경기 전부터 과할 정도의 자신감을 갖고 인터뷰를 하는 걸 보면 ‘뻔히 질 것 같은데 너무 심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이건 상대와 맞서는 모든 운동선수들이 가져야 할 마음이라는 점에서도 충분히 이해한다. 링 위에 오르는데 “사실 제가 실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부디 적게 맞고 안 아프게 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선수가 오히려 더 한심하다. 무명의 선수도 타이슨과 싸우기 전에 “타이슨을 링 위에 쓰러트리겠다”고 하는 게 정상이다. 물론 대부분은 타이슨에게 흠뻑 맞은 뒤 KO 당하겠지만 경기 전부터 숙이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자신감을 보여주는 게 더 옳은 자세다.

한국 멕시코
20년 전보다도 우리는 한국 축구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기록사진

이기려는 자세가 진정한 스포츠인의 모습
한국 축구를 대하는 많은 이들은 링 위에 서기도 전에 “부디 KO만 당하지 말고 판정패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을 때가 많다. 아니 항복의 의미로 링 위에 수건을 먼저 던질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내가 다른 매체에 <스웨덴도 못 이기면 16강에 못 간다>는 칼럼을 썼더니 ‘스웨덴도’라는 단어에 발끈하는 이들이 많다. 앞뒤 문맥은 다 자르고 스웨덴을 감히 ‘스웨덴 따위’라고 표현했다고 받아들인다. 상대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고 16강에 가려면 스웨덴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뜻을 담은 글이었는데 우리나라의 많은 스웨덴 명예 국민들은 한국보다 스웨덴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스웨덴도 못 이기면 한국은 16강에 갈 수 없고 지금은 승패에 대한 예측보다는 응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BS에서 방송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재미있게 봤다. 차범근 감독을 비롯해 최용수 감독 등이 출연해 유쾌한 입담을 과시했다. 그런데 최용수 감독이 독일을 상대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임하자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자 사회자가 박장대소했다. “한국이 독일을? 푸하하.” 최용수 감독은 마치 세상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엉뚱한 사람이 됐다. 물론 한국이 독일을 이길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나는 최용수 감독처럼 스웨덴이고 독일이고 경기하기 전에는 이기겠다는 마음을 먹는 게 스포츠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최용수 감독이 명장 소리를 듣는 것도 독일을 승리 제물로 생각할 정도의 그릇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최용수 감독을 좋아한다.

축구 좀 못해도 된다. 월드컵에 나가서 3전 전패를 해도 상관없다. 이왕이면 16강에도 가고 8강에도 갔으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그렇지 못할 확률에 비해 높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공정하게 선수를 선발해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박수를 쳐줄 수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홍명보 감독은 선수 선발 등에서 공정성 논란이 있었다. 스스로 원칙을 어겨 뽑은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에 나갔다가 완패를 당했다. 축구 인생을 건 도박이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이렇게 과정을 거치며 공정성 논란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축구를 못하는 것 자체로는 비난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당시 홍명보 감독을 많이 질타했다. 핵심은 축구를 못해서가 아니라 공정하지 못해서였다.

한국은 과연 스웨덴에 비해 한참 부족할까? ⓒ 스웨덴 축구협회 공식 페이스북

이 시점에서 예측 보다 필요한 건 응원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홍명보 감독이 16강 이상의 성적을 냈더라면 논란도 실력으로 돌파하는 명장이라는 평가를 들었을 것이다.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은 도박이었다. 당연히 과정이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성적까지 좋지 않으니 후폭풍은 엄청났다. 그런데 이번 대표팀은 적어도 공정한 과정을 거쳐 최선을 다해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이 자체로 바라봐 주길 바란다. 우리 선수들 중에 누가 봐도 가장 잘하는 선수들을 뽑아 최적의 전술을 짰는데도 안 되면 그건 한국 축구 시스템 자체를 고쳐야 한다. 몇몇 선수와 감독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일단 응원을 보낼 시기다. 과정도 문제가 없고 공정하게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점에 대한 진단은 월드컵이 끝난 다음에 하자. 아직 우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단 1분도 뛰지 않았다.

요즘 들어 ‘경기 결과 예측’이 유행이 되고 있다. 나는 이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월드컵 경기 승패는 물론 스코어까지 정확하게 예측하면 속된 말로 ‘축구의 신’이 되고 ‘점쟁이’가 되고 ‘축잘알’이 된다. 하지만 이런 예측은 별로 의미가 없다. 경기를 앞두고 양 팀 상황을 분석해 내용 전개에 대한 예상은 할 수 있지만 스코어까지 맞추는 건 신의 영역이다. 우리가 과정도 없이 너무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 우리의 눈은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아니라 스웨덴을 이길지 못 이길지, 16강에 갈지 말지, 우승은 누가 할지에만 집중돼 있다. 경기 결과 예측을 잘해 ‘점쟁이’ 소리를 들을 거라면 뭣하러 축구 이야기를 하고 있나. 그 시간에 스포츠토토에 돈을 걸어 부자가 돼 있겠지. “한국이 스웨덴을 이길 수 있을까요? 16강에 갈까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러게요. 저도 갔으면 좋겠네요.”

얼마 전 한 매체에서 나에게 한국 선수 중 누가 월드컵 첫 골을 넣을지 물었다. 나의 대답은 “세트피스에서 골을 넣을 것 같고 세트피스에서 무조건 골을 넣어야 하고 그러려면 장현수가 한 골 넣길 바란다”였다. 그랬더니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장현수 말고 다른 선수로 골라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서 다시 답했다. “그러면 같은 의미로 김영권으로 하겠습니다.” 답답한 듯 다시 질문이 왔다. “공격수 중에 골라주세요.” 손흥민이나 이승우나 황희찬 중에 골라 달라는 것이었다. ‘답정너’다. 나는 정말 한국이 세트피스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고 거기에 승패가 달렸다고 믿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장현수나 김영권을 여전히 믿지 않는다. 예측도 원하는 답변을 필요로 한다.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시원하게 발릴 거고 3전 전패를 할 것 같다”는 답변을 원하는 대중과 다를 게 별로 없다.

후회 없이 한 번 시원하게 이 선수들과 붙어보자. ⓒ 독일 축구협회 공식 페이스북

한국 축구, 자존감이 필요해
요즘 보면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이들의 자존감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던 때도 월드컵만 나가면 “이번에는 꼭 1승 한 번 해보자,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너무 낮게 본다. 3전 전패 운운하고 독일에 대패하는 건 아닌지를 걱정한다. 이게 진지한 걱정이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3전 전패와 독일전 대패를 바라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건 상대를 존중해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한 없이 낮게 보는 거다. 이럴 땐 “스웨덴? 멕시코? 독일? 뭐 어쩌라고?”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네딘 지단을 다치게 해놓고 “내 연봉에서 까라”던 김남일 정신이 필요하다.

솔직히 결과는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결과는 ‘쪽집게’ 이영표도 모르고 ‘점쟁이 문어’ 故파울도 모른다. 지금 미래의 결과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솔직히 말해 나는 신태용 감독이 워낙 ‘난 놈’이니 한 편의 기대도 있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굴욕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까짓 거 3전 전패 좀 하면 어떤가. 3전 전패보다 더 무서운 건 한국 축구가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후회 없이 싸우고 우리는 그런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자. 단 하나 확실한 건 링 위에 오르기도 전부터 상대에 잔뜩 기가 죽어 있는 선수가 이길 확률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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