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조는 벌써 많은 것을 보여줬다. ⓒ 포르투갈 축구협회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곽힘찬 기자] 전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을 뛰게 한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개막전에서 개최국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무려 5골을 폭발시키며 팬들을 놀라게 했고 이어진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모하메드 살라가 빠진 이집트를 1-0으로 겨우 격파하는 등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6일 오전 0시(한국시각) 모로코와 이란의 경기를 시작으로 치러진 B조 1차전 경기는 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64경기에 달하는 월드컵 경기 중 이제 겨우 4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벌써 토너먼트를 지켜본 느낌이다.

모로코 0-1 이란

어서와, 늪 축구는 처음이지?

지금쯤 모로코 선수단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모로코에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던 결과였다.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아지즈 부하두즈의 극적인 자책골로 이란은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미국전 승리 후 20년 만에 본선 무대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란의 승리요인은 소위 말하는 ‘늪 축구’였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질식수비는 모로코 선수들을 고전하게 했다. 이날 경기에서 이란은 분명 공격적인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사르다르 아즈문을 비롯한 공격진은 전반전에 몇 번 찾아왔던 득점 기회를 모두 날리는 등 골 결정력이 매우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란은 이러한 약점을 수비에서의 강점으로 커버했다.

'실리축구'의 끝판왕 케이로스. 이란은 모로코를 격파하며 20년 만에 월드컵 첫 승을 거뒀다. ⓒ 이란 축구협회 페이스북

끈끈한 조직력이 바탕이 된 질식수비는 모로코를 제풀에 지치게 했다. 이란의 패스 성공률은 겨우 66%에 불과했을 정도로 모로코에 주도권을 내준 채 경기를 풀어나갔지만 90분 내내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다. 이란은 전반 후반부터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보여줬는데 이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안정감 있게 유지되었다. 3선 간격을 좁히며 모로코의 패스 루트를 차단했고 간간히 역습을 통해 카운터 어택을 시도했다. 후반 막판 이란이 보여준 텐 백은 보는 이들마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결국 이러한 버티기는 모로코의 극적인 자책골이라는 결과로 도출됐고 이란의 귀중한 첫 승으로 이어졌다. 이란은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5분간 슈팅 하나 없이 득점한 최초의 팀으로 기록됐다.

이란은 전날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에 당한 대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중동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팀이지만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하다 0-5로 패배하며 자멸했다. 아시아 1위의 이란은 세계의 벽이 높음을 인정하고 수비적으로 경기에 나섰다. 월드컵은 그저 ‘재밌는 축구’만 보여주는 대회가 아니다. 이겨야 16강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이란은 ‘이기는 축구’를 선택했을 뿐이다.

포르투갈 3-3 스페인

‘해트트릭’ 호날두, 이것이 슈퍼스타다

이 경기의 승자는 두 가지의 유형으로 좁혀진다. 첫 번째로 경기를 지켜본 팬들이며 두 번째는 포르투갈의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호날두는 슈퍼스타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전반 초반에 터진 PK득점을 시작으로 후반 막판 환상적인 프리킥 득점을 터뜨리며 패배에 직면한 팀을 구해냈다. 이날 해트트릭으로 호날두는 생애 첫 월드컵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자신의 커리어 사상 51번째 해트트릭, 월드컵 역사상 51번째 해트트릭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실리축구'의 끝판왕 케이로스. 이란은 모로코를 격파하며 20년 만에 월드컵 첫 승을 거뒀다. ⓒ 이란 축구협회 페이스북

스페인은 월드컵 개막 이틀 앞두고 훌렌 로페테기에서 페르난도 이에로로 갑작스럽게 감독이 바뀌는 불상사를 겪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팀이었다. 중원의 안드레아 이니에스타와 최전방의 디에고 코스타를 앞세워 포르투갈 진영 곳곳을 간결한 패스 플레이로 헤집었다. 하지만 11명의 스페인은 한 명의 호날두를 제대로 막지 못하며 아쉬운 무승부를 거두게 됐다. 스페인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는 호날두 덕분에 호된 월드컵 신고식을 치렀다. 이날 경기에서 포르투갈이 만든 유효 슈팅은 호날두가 시도한 단 3개였다. 하지만 데 헤아는 모두 막지 못하며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특히 두 번째 실점 장면은 ‘월드클래스’로 평가받는 데 헤아 답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축구는 11명의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호흡을 맞춰 진행되는 스포츠다. 한 선수가 독단적인 플레이를 일삼는다면 그 팀은 자멸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호날두는 예외로 두고 싶다. 이날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상대로 볼 점유율, 슈팅 숫자, 연계 능력, 코너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앞서며 한 수 위의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One Player’ 호날두는 이러한 ‘One Team’ 스페인을 상대로 홀로 3골을 폭발시켰다.

호날두는 리그 우승컵, 챔피언스리그 우승컵, 유로 우승컵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유일하게 월드컵 우승만큼은 경험하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은 호날두가 자신의 전성기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월드컵일 수 있다. 그렇기에 더 간절할 수밖에 없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16강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서 만난 스페인과 무승부를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하게 됐다.

이란은 모로코에 압도당하는 와중에도 높은 수비 집중력을 유지하며 승리했고 호날두는 팀이 2-3으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팀의 무승부를 이끌어 냈다. 이번 월드컵은 시작부터 경기 막판에 골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승부가 결정되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경기가 있을 C, D, E, F, G, H 조에 속한 팀들은 많은 B조 1차전 경기를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 같다.

emrechan1@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