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월드컵②] 두 번이나 뽑히고 1분도 못 뛴 유일한 선수


서울이랜드 김영광은 월드컵에 두 번이나 나섰지만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 서울이랜드FC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2018 러시아월드컵에 나선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쓰게 됐다. 우리는 1986년부터 2018년까지 4년마다 월드컵에 빠짐없이 나서며 울고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게 당연해졌다. 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월드컵을 준비하고도 이 무대에 서지 못했던 이들도 있다. <스포츠니어스>에서는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에 나가지 못했던 사람들을 주목해 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이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사실은 누군가에겐 평생 단 한 번도 서보지 못하는 꿈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주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금까지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 한국 선수는 총 144명이다. 이중 월드컵 무대에서 가장 오랜 시간 뛴 선수는 홍명보다. 그는 월드컵에서 무려 1,409분을 뛰었다. 박지성이 1,268분으로 2위에 올라있고 이영표가 1,113분으로 3위다. 영광스러운 무대에서 이렇게 꾸준히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이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그리스전에서 이승렬은 후반 42분 투입돼 추가시간까지 딱 5분을 뛰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다 월드컵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다고 경기에 나선 건 아니다. 월드컵에서 결국 그라운드에 서지 못한 선수는 무려 31명이다. 윤정환과 김두현 등도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는 합류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

독일월드컵으로 향한 22세의 골키퍼
그리고 이중 가장 눈길이 가는 선수가 있다. 단 1분도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한 선수 중 유일하게 월드컵 무대에 두 번이나 참가한 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선수는 두 번의 월드컵을 벤치에서만 지켜보며 결국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참가했지만 경기에 나가지 못한 이 선수는 바로 골키퍼 김영광(서울이랜드)이다. 한국 월드컵 역사상 두 대회에 참가하고도 단 1분도 그라운드에 서보지 못한 이는 김영광뿐이다. 과연 그에게는 월드컵이 어떤 의미일까. 꿈의 무대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벤치만 지켜야 했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김영광은 연령별 대표마다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였다. 1998년 U-16 대표팀부터 시작해 U-19, U-20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3년에는 U-20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당시 김영광은 독일과의 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곧바로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돼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과 본선 모두 그가 대표팀 골문을 지켰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의 주전 골키퍼도 김영광이었다. 만20세였던 2004년부터 성인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소속팀뿐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김영광의 입지는 확고해 보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의 첫 월드컵 도전이었다.

대표팀 승선 자체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운재와 김용대, 김영광 체제가 일찌감치 구축됐기 때문이다. 조준호가 이따금 대표팀에 승선하긴 했지만 경쟁이 되진 못했다. 김영광은 어렵지 않게 첫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로 향했다. 하지만 대표팀에는 워낙 쟁쟁한 경쟁자가 있었다. 바로 이운재였다. 그는 지금도 당시의 경쟁에 대해 고개를 내저었다. “2006년 당시 (이)운재 형 몸이 워낙 좋았어요. 속된 말로 ‘넘사벽’이었죠. 저하고 운재 형하고 (김)용대 형이 같이 월드컵에 가게 됐는데 그때 딱 느꼈습니다. ‘아, 우리는 운재 형 백업이구나.’ 당시 운재 형이 워낙 잘해서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죠.”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주역이었던 이운재는 2006년에는 더 성장한 모습으로 대표팀 골문을 지켰다. 김영광은 독일까지 날아가 벤치만 지켜야 했다.

이운재 토고 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 토고전에 나선 이운재의 모습. ⓒ문화체육관광부 국가기록사진

이운재라는 큰 벽에 가로 막히다
그에게 첫 번째 월드컵은 모든 게 신기했다. “월드컵이라는 게 정말 대단해요. 경기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벤치에만 앉아 있어도 마치 경기에 나서는 것 같았어요. 그 정도로 긴장이 됐죠. 올림픽에도 서봤지만 올림픽하고는 또 달라요. 꿈의 무대라는 설렘이 막 느껴져요. 벤치에서 경기를 보면서 ‘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엄청난 압박감을 안고 뛰는 거잖아요. 운재 형이 정말 대단해 보였죠. 독일월드컵 때 벤치에서 프랑스전을 보는데 티에리 앙리와 지네딘 지단을 보면서 ‘와 축구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 나왔어요. 마치 위닝일레븐을 하는 것 같았다니까요.”

결국 그는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까지 날아가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월드컵을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회가 더 있었다. 나이도 어렸고 이운재도 서서히 기량이 하락세를 타며 새로운 골키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는 4년 전보다 조금 더 긍정적인 생각으로 월드컵을 준비했다. 허정무 감독은 이운재와 함께 정성룡, 김영광을 계속 대표팀에 발탁했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골키퍼라는 특수한 포지션은 변화에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이운재가 골문을 지키는 동안 대표팀은 아시아 무대에서 17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하는 등 펄펄 날았다. 골문이 이미 안정된 상황에서 김영광이 새롭게 주전을 꿰차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 딱 한 번의 기회가 왔다. 2009년 11월 18일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 김영광이 선발 출격하게 된 것이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친선경기였다. 한국은 이전까지 27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네마냐 비디치(당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202cm의 니콜라 지기치(당시 발렌시아) 등을 상대하면서 김영광을 선발로 낙점했다. 이 경기에서 김영광은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전반 5분 세르비아의 프리킥을 막아냈고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 비디치의 슛을 한 번 더 김영광이 막아내며 진가를 발휘했다. 비록 지기치에게 한 골을 내주며 0-1로 패했지만 유럽에서 정예와 치른 평가전 치고는 나쁘지 않은 내용이었다. 협회 관계자들도 허정무 감독에게 “영광이한테 기회를 좀 더 주면 어떻겠느냐”고 이야기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수원 정성룡
정성룡의 등장으로 김영광은 또 한 번 월드컵을 벤치에서 맞게 됐다. ⓒ수원삼성

정성룡의 등장, 결국 벤치에 앉은 김영광
하지만 이 경기가 마지막이었다. 김영광은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다시 한 번 이름을 올렸지만 이번에도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운재 형이 경기를 앞두고 목에 담이 와 고개를 돌리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정)성룡이를 선택하시더라고요. 월드컵을 바로 앞두고 치른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성룡이가 잘했어요. 성룡이는 그 기회를 잡은 거죠. 감독님께서 고민하시다가 결국 저를 대신해 성룡이를 주전 골키퍼로 낙점했습니다.” 김영광은 두 번째 월드컵에서도 결국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4년 전 그라운드에 있던 이운재와 함께 이번에는 정성룡이 뛰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한국이 원정 첫 16강에 진출하며 역사를 쓸 때에도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정성룡의 몫이었다.

“월드컵은 혼자만의 욕심으로 되는 게 아니죠. 나라를 대표해서 나가는 거잖아요. 2010년에도 리오넬 메시의 플레이를 보면서 ‘와 무슨 저런 선수가 다 있느냐’고 신기하게 쳐다봤어요. 비록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는 못했지만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트이고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뛰지 못했어도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죠. 이런 월드컵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어떤 경기를 치러도 부담이 덜하고 쭉쭉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 무대에 서 있는 성룡이가 참 대단해 보였어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아쉬움도 있었죠. 이미 한 번 벤치에서 월드컵을 경험해 봤잖아요. ‘나도 저기 나가면 긴장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죠.” 그렇게 그는 두 번의 월드컵에 참가하고도 단 1분도 뛰지 못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김영광은 세 번째 월드컵에 도전했다. 이번에는 단 1분만이라도 꿈의 무대에 서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뒤 김영광은 전성기를 맞게 됐다. 그는 소속팀 울산현대의 2012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끄는 등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다. 대표팀을 맡은 최강희 감독은 김영광에게 기회를 부여했다. 2009년 세르비아전 이후 대표팀 골문을 단 한 번도 지키지 못했던 김영광은 2012년 우즈베키스탄전과 잠비아전, 호주전 등에서 주전 골키퍼로 나서 듬직한 활약을 선보였다. 이대로 가면 세 번째 월드컵에서는 그라운드에 서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는 기분 좋게 2013년을 시작했다.

월드컵에서 뛴다는 것
하지만 2013년 K리그 첫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달고 활약한 그는 두 번째 경기를 앞두고 뜻하지 않은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종아리 근육이 무려 7~8cm가량 찢어지는 큰 부상이었다. “운동을 무조건 많이 하면 좋은 줄 알았어요. 운동으로 극복하자면서 무리하게 계속 운동을 했죠. 결국 그러다가 종아리가 뻥하고 터진 거죠. 축구를 하면서 많은 부상을 겪어봤지만 가장 아픈 부상이었어요. 결국 가장 좋을 때 부상을 입고 쉬게 됐는데 이것도 다 제 잘못이죠. 아마 부상이 없었더라면 월드컵에 한 번 더 도전해 봤을 거고 좋은 결과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가 부상으로 신음하는 동안 대표팀에는 새로운 얼굴이 등장해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바로 팀 동료이기도 했던 김승규였다. “그때 승규가 치고 올라갔죠.” 김영광은 부상과 함께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결국 그는 더 이상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부상을 털고 돌아왔지만 김승규를 비롯해 김진현, 조현우 등이 버티고 있는 대표팀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두 번이나 전세계인의 축구 축제에 초대받았음에도 단 1분도 그 무대를 즐길 수 없었던 김영광은 누구보다도 월드컵이 얼마나 소중한 무대인지 잘 안다. “축구를 시작해서 갖는 가장 큰 꿈이 월드컵 출전이었어요. 전세계 모든 선수들은 월드컵에 단 1분이라도 서 보자는 마음으로 축구를 합니다. 저도 그 목표 하나만을 가지고 달려가다 보니 어찌어찌 바로 그 문턱까지는 갔어요. 그런데 한 번이라도 경기장에 서보지는 못했네요. 저는 꿈을 이룬 걸까요. 못 이룬 걸까요. 1분도 뛰질 못했으니 아마 못 이룬 것 같아요. 월드컵만 바라보고 하루하루 후회 없이 노력해 왔고 안 되면 될 때까지도 해봤는데 안 되는 건 그래도 안 되네요.”

그에게 월드컵이 얼마나 축복 받은 이들의 무대인지 물었다. “축구 선수를 시작해서 프로선수가 될 확률이 0.3%쯤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여기에서 프로팀 주전으로 뛰는 건 또 극소수죠. 이렇게 프로팀 주전으로 뛰는 선수 중 선택 받은 아주 극소수가 대표팀에 갑니다. 그리고 이 대표팀이 월드컵 지역 예선이라는 관문을 뚫어야 하고 선수는 극소수의 돌연변이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갈 수 있어요. 어느 정도의 확률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저는 그냥 월드컵을 벤치에서만 지켜봐도 흥분됐는데 그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남들은 단 한 번도 가기 어려운 월드컵 무대에 두 번이나 다녀온 그는 비록 1분도 뛰지 못했지만 엄청난 성공을 거둔 선수라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서울이랜드 김영광
김영광은 꿈을 위해 또 뛰겠다고 다짐했다. ⓒ스포츠니어스

그가 태극전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는 올해 만 34세가 됐지만 아직도 월드컵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니지만 선수는 은퇴할 때까지 도전해야죠. 외국 선수들 중에는 나이를 먹어도 잘하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제가 축구를 할 시간이 얼마 남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월드컵에 단 1분이라도 서는 그 꿈을 가지고 또 하루하루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김영광은 비록 지금은 대표팀에서 다소 멀어져 있지만 올 시즌에도 서울이랜드에서 듬직한 수문장 역할을 해내고 있다. K리그에서만 439경기에 출장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러면서 김영광은 이번 월드컵에 나가는 후배들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기력이 좋지 않으면 국민들이 욕도 하고 짜증도 내는데 그것도 결국에는 다 축구를 사랑하고 관심 가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이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2002년 한일월드컵 때처럼 축구붐이 일어날 수 있도록 감동적인 경기를 보여줬으면 합니다. 축구를 외면한 분들이 다시 축구장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자라나는 유소년 선수들과 축구계에 종사하는 분들도 계속 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월드컵에서 꼭 멋진 경기 해주세요.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월드컵을 두 번이나 경험하며 누구보다도 이 간절한 무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김영광의 응원이 러시아까지 전달되길 바란다.

footballavenue@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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