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티즌 고종수 감독을 만나 월드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만19세의 나이에 월드컵이라는 엄청난 무대에 나섰던 고종수 대전시티즌 감독은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을까.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고종수 감독을 만나 후배들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부탁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귀한 이야기를 전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19세 8개월의 나이로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월드컵을 경험했던 그는 이제 배가 나온 감독이 돼 있었지만 월드컵 이야기가 나오자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공교롭게도 그의 월드컵 데뷔 무대 상대는 멕시코였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멕시코와 한 조에 속하게 돼 피할 수 없는 승부가 예정돼 있다. 1998년 당시 한국은 멕시코를 상대로 하석주가 선취골을 뽑아냈지만 이후 퇴장을 당하며 내리 세 골을 내줘 1-3으로 패하고 말았다. 고종수 감독은 여전히 멕시코의 높은 기량을 잊지 않고 있다. “멕시코 선수들은 전부 다 축구를 대단히 잘했다. 신체조건은 우리와 비슷한데 기술적으로 크게 앞섰다. 미리 예측해 상대가 편하게 축구를 할 수 없도록 해야한다. 수비수는 절대 한 번에 공을 빼앗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는 기술이 좋은 멕시코 선수들에게 계속 뚫릴 수 있다.”

고종수 감독은 ‘협력’을 강조했다. “일대일로 마주해서는 안 된다. 동료들이 도와줘야 한다. 기술적인 센스에서 멕시코와 일대일로 격돌하는 건 피해야 한다. 걔네들은 우리 수비가 뒤늦게 커버를 하러 가면 다른 쪽으로 패스를 주면서 타이밍을 계속 흔든다. 타이밍으로 패스하고 타이밍으로 드리블을 한다. 그런 축구를 상대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 수비를 끌어낸 다음에 패스를 주면 자꾸 우리는 뒤늦게 멕시코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수적 열세 속에 경기를 해야 한다. 한 명이 안 되면 두 명이 싸워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세 명이 싸워야 이길 수 있다. 협력하지 않고서는 발재간을 당해내기가 어렵다.”

1998년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 모습. 이날 한국은 섵취골을 넣은 뒤 연거푸 세 골을 내줬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기록사진

고종수 감독이 선수로 뛰던 시절에 비해서는 많은 게 달라졌다. 그 역시 1998년과 2018년의 비교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 등과 맞붙었다. 그러면서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강호들과 격돌해 보지 못하고 나갔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에는 ‘월드컵이라고 얼마나 다르겠어’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경기장에 들어가 보니 상대팀 응원과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나는 긴장돼서 턱이 덜덜덜 떨렸다. 다 티는 안 냈지만 다른 선수들도 나만큼 긴장한 게 보였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K리그와 J리그에 속해 있어서 발을 맞추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에서 합류한 선수들도 많아 호흡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속된 말로 선수들의 머리가 컸다.”

그가 말한 것처럼 속된 말로 머리가 큰 선수들이 과거 만큼 절실한 마음으로 뛰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고종수 감독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들한테 희망을 주려면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안 된다.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까놓고 말해 우리 국민들도 우리가 월드컵에서 약체라는 건 다 안다. 국민들이 월드컵 경기마다 한국이 이기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질 땐 지더라도 희망을 줄 수 있는 경기를 보여줘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패했어도 그거 가지고 욕하겠나. 독일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우리를 쉽게 이기고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변수가 워낙 많은 종목이니 우리가 물고 늘어지면 희망을 줄 수 있는 경기를 할 수도 있다. 월드컵 이후 그 감동이 이어져 K리그도 좀 살아났으면 한다.”

고종수 감독은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이 이 부담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혜성처럼 등장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의 이야기라 훨씬 더 와 닿는다. 늘 이슈와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됐던 현역 시절 고종수의 이야기라면 충분히 들어볼 만한 이유가 있다. “월드컵을 앞두고 많은 팬들이 대표팀을 질타한다. 선수 개개인을 향해서도 비난을 보내기도 한다. 대표팀 선수라면 그런 걸 어떻게 일일이 신경 쓰나. 욕할 사람은 욕도 하고 그게 우리나라 문화라고 받아들이면 편하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왜 우리를 욕합니까’라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 고종수 감독은 말을 이었다. “대표팀 경기를 앞두고 욕할 사람은 욕하라고 하라. 결국 그런 사람들도 대표팀이 잘하면 또 다 나중에 응원해주게 돼 있다. 욕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지 않나. 민감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월드컵 기간 동안만이라도 인터넷 댓글 안 보고 SNS 안하면 선수들이 멘탈을 잡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뭘 굳이 찾아보면서 일부러 스트레스를 더 받으려고 하나. 나는 예전부터 이런 반응을 일일이 찾아보지 않았다. 욕하면 욕하는 거지 거기에 대고 ‘저는 원래 그런 선수가 아닙니다’라고 대응해야 하나. 월드컵 때만이라도 SNS 안하고 축구에만 집중하면 해결될 일이다.”

1998년 한국과 멕시코의 경기 모습. 이날 한국은 섵취골을 넣은 뒤 연거푸 세 골을 내줬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기록사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고종수 감독이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줄 가장 훌륭한 선배 아닐까. 고종수 감독은 보다 더 넓은 마음으로 팬들의 비난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아휴, 축구선수가 운동장에서 실력으로 이야기하는 거지. 경기장 밖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다.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 중에 실력이 없는 선수는 없다. 실력이 없으면 월드컵 대표팀에 뽑아주지도 않는다. 자기 기량을 믿고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그 역량을 발휘해 달라. 그리고 설사 월드컵에 나가서 잘 못하면 욕도 먹고 그러면서 또 발전해 나가면 된다.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다시는 욕을 먹지 않으려고 준비해면 되지 않나.”

그러면서 고종수 감독은 선수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던졌다. “‘나는 이제 성인 대표 선수니까 축구가 더 늘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이구, 은퇴할 때까지 매일 노력해도 부족한 게 바로 축구다. 킥 마스터가 세상에 어디 있나. 계속 훈련하고 그래야 그래도 은퇴하기 전까지 만족할까 말까다. 사람들이 내 프리킥이 날카롭다면서 타고났다고 하는데 나는 은퇴하기 전까지 죽어라 프리킥을 연마했다. 헤딩 잘하는 선수가 성인 대표팀에 뽑혔다고 더 실력이 늘 일이 없으니 헤딩 한 번 안 하다가 갑자기 하려면 그게 되나. 은퇴하기 전까지는 매일 매일 반복 훈련하는 것 말고는 해법이 없다.”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배웠으면 한다. 성인 대표팀에 뽑혀 머리가 컸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 노력할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거다. 월드컵에 나가면 경기장에서 나를 빛내려 하기 보다는 코치진이 원하는 성실한 플레이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끈질기게 싸울 땐 싸워 달라. 우리와 상대하는 팀들은 기본적으로 우리보다 개인 능력이 좋다. 한 명이 뚫리면 다른 선수가 또 협력하고 또 다른 선수가 돕는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임했으면 한다. 감독과 코치진이 원하는 큰 틀이 있겠지만 그라운드에서 일어나는 순간순간의 판단은 선수들의 몫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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