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둘은 오는 16일 백년가약을 맺는다.

[스포츠니어스 | 부천=김현회 기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 연애’ 중이었던 부천FC 사내 커플이 결혼에 골인한다. 주인공은 바로 부천 주장 문기한과 구단 홍보팀 윤나리 대리다. 2016년 문기한이 부천으로 이적한 뒤 선수와 프런트 사이로 지내던 이 둘은 2016년 시즌이 끝난 뒤 교제를 시작해 오는 16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선수와 프런트가 비밀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주위 시선이 부담스러워 경기가 열릴 때마다 묘한 눈빛만을 주고 받아야 했던 이 둘은 이렇게 백년가약을 맺을 예정이다.

예비 신부겸 홍보팀 직원을 앞에 두고 한 인터뷰

그렇다면 과연 부천 정갑석 감독은 이 둘의 결혼 소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갑석 감독은 문기한을 주장으로 선임하며 중용하고 있는 지도자이면서 홍보팀 윤나리 대리와도 가장 자주 소통해야 하는 사이다. 홈 경기가 열릴 때면 윤나리 대리가 정갑석 감독과 취재진 사이를 조율한다, 그런데 9일 대전시티즌과의 KEB 하나은행 K리그2 2018 경기를 앞두고 만난 정갑석 감독은 의외의 이야기를 전했다. “저는 둘이 ‘썸’을 타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하하. 제가 기한이한테 늘 나리 씨 한 번 만나보라고 했거든요.”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정갑석 감독은 둘이 묘한 감정을 느끼기 전부터 열애를 예감했다고 했다. 경기 전 인터뷰를 이끈 윤나리 대리가 바로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어도 이 순간 만큼은 문기한의 예비 신부가 아닌 홍보팀 자격이라 그녀는 말 없이 정갑석 감독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정갑석 감독이 문기한에게 윤나리 대리와 만나보라고 추천했던 이유는 무엇이엇을까. “나리 씨가 정말 똑똑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인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요. 기한이한테 ‘이 친구를 선택하면 너의 축구 인생에 있어서 큰 축복이 될 것’이라고 했어요. 아마 이때도 둘이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예비 신랑의 스승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윤나리 대리가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갑석 감독은 말을 이었다. “기한이한테 ‘멀리서 찾지 말라’고 했죠. 저도 결혼 생활을 한지 20년이 됐는데 축구선수의 아내는 정말 힘들어요. 운동선수라는 직업이 일반적이지는 않잖아요.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결혼 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너를 이해해주고 컨트롤해줄 수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저는 나리 씨가 충분히 그럴 만한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요.” 마치 일주일 뒤 있을 결혼식 주례사처럼 윤나리 대리는 옆에서 이 말을 경청했다. 그녀는 아직 웨딩드레스가 아닌 부천FC 엠블럼이 박힌 옷을 입고 있었다.

문기한은 부천에서 사랑도 잡았다. ⓒ 부천FC1995

정갑석 감독 딸이 눈물 흘린 이유는?

짓궂게 계속 물었다. 경기 직전이지만 경기 준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선수와 구단 프런트의 비밀 연애를 알면서도 묵묵히 지켜준 감독의 입장이 궁금했다. 그 동안 둘의 연애를 알고 있던 입장에서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다. 정갑석 감독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시원시원하게 답변했다. “둘이 정말 잘 어울리잖아요. 그런데 남녀 관계라는 게 억지로 되는 건 아니에요. 감독이 선수 연애까지 억지로 시킬 수는 없습니다. 자기들이 감정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기한이가 나리 씨를 훨씬 더 많이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선수와 감독으로 기한이와 목욕탕에서 둘이 있을 때나 동계훈련을 가 주장 자격으로 미팅을 할 때도 한 번씩 둘 사이를 묻곤 했어요.”

정갑석 감독은 대놓고 둘의 연애를 참견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돌려 묻곤 했다. “동계 훈련을 가서는 ‘나리 씨는 안 내려오느냐’고 묻기도 했어요. 구단 프런트니까 훈련지에 올 수도 있잖아요. 장난 삼아 기한이한테 ‘나리 씨가 내려오면 특박도 주겠다’고 하기도 했어요. 제가 ‘야 빨리 결혼해 인마’라고 이야기를 한 적도 있는데 작년 11월에 기한이가 식사 자리를 한 번 마련하더라고요. ‘얘네가 정말 진지하게 만나고 있구나’는 느낌이 딱 그때 왔죠. 아니나 다를까 식사 자리에 갔더니 서로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만나고 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결국 정갑석 감독의 묵묵한 지지를 받은 이 커플은 2년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정갑석 감독은 이 둘의 청첩장을 자신의 집 액자에 걸어 놓았다. 볼 때마다 너무나도 예쁜 커플이기 때문이다. 청첩장에는 둘이 부천 유니폼을 나란히 입고 팔짱을 낀 사진과 함께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너는 나의 자랑, 나의 꿈, 나의 전부야.” “나의 모든 걸 걸고 사랑해.” 그가 걸어 놓은 청첩장을 본 정갑석 감독의 고등학교 3학년 딸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 딸이 청첩장 사진과 글귀를 한참 보더니 ‘이런 아름다운 사랑이 또 있느냐’고 울더라고요. 그 정도로 둘이 예쁜 사랑을 하고 있어요. 사실 기한이는 워낙 책임감도 강해 제가 사위를 삼고 싶은 선수였어요. 둘이 아주 잘 살겁니다.”

문기한은 부천에서 사랑도 잡았다. ⓒ 부천FC1995

축의금은 어디로 보낼까?

K리그2 3주간의 휴식기를 맞아 부천은 오는 17일 강원도 태백으로 짧은 전지훈련을 떠난다. 이 커플은 결혼식을 올린 바로 다음 날 생이별(?)을 해야 한다. 문기한은 곧바로 전지훈련을 가야 하고 윤나리 대리는 부천에 남아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기 때문이다. 정갑석 감독은 전지훈련 일정을 잡은 자신을 자책했다. “괜히 합숙을 잡은 건 아닌가 싶어요. 기한이한테 ‘결혼식도 올리니 원한다면 며칠 너만 따로 휴가를 주겠다’고 했는데 괜찮대요. 이 커플은 아주 공과 사가 정확한 친구들이에요. 하루라도 더 쉬고 팀에 합류하라고 했는데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팀에 합류하겠답니다. 뭐 알아서 잘하겠죠.”

정갑석 감독이 괜한 전지훈련을 잡아 미안하다고 하자 윤나리 대리가 예비 신부, 아니 구단 홍보 담당자로서 처음 입을 열었다. “감독님, 저희는 괜찮아요.” 그렇다면 정갑석 감독은 어느 쪽에 축의금을 보낼까. 아끼는 제자와 프런트의 만남이어서 궁금한 게 많았다. 정갑석 감독은 호쾌하게 답했다. “생각이 깊은 친구들이라 나리 씨가 청첩장을 주면서 ‘청첩장을 보낸 쪽에만 축의금을 하시면 된다’고 웃더라고요. 그래도 전 둘 다에게 똑같이 축의금을 보낼 생각입니다. 제가 둘 다 좋아하거든요. 똑같이 해야죠. 어차피 그 돈이 다 같은 주머니로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정갑석 감독은 축의금으로 얼마를 낼지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섭섭지 않게 준비하지 않을까.

지난 7일 자유한국당 정태옥 의원은 부천이라는 지역을 향해 논란의 발언을 했다. 정태옥 의원은 “서울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곳에서 잘 살다가 이혼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가고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 지방에서 생활이 어려울 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서울로 온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이라는 뉘앙스의 이 발언으로 ‘이부망천’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부천 서포터스는 대전전이 열리는 경기장에 ‘이부망천? 1부 부천!’이라는 걸개를 내걸기도 했다. 부천 시민과 부천 팬으로서는 화가 날만한 발언이었다.

달달한 부천의 러브 스토리

이 논란의 발언을 정갑석 감독에게 전하자 그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이런 말을 건넸다. “여기 부천 사람들 열정적이고 사랑이 넘쳐요. 이혼하면 밀려오는 동네는 아닙니다. 우리 구단의 러브스토리만 봐도 알잖아요.” 문기한은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부천과 재계약을 한 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여자친구가 초콜릿을 좋아하는데 여자친구 초콜릿 사줄 돈만 있으면 됩니다.” 부천과의 의리를 지키는 말이면서 동시에 부천에서 일하는 예비 신부를 위한 말이기도 했다. 부천은 이혼하면 떠 밀려 오는 동네가 아니다. 이렇데 달달한 러브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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