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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요즘 안산그리너스 홍동현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 죽일 놈의 골이 문제였다. 올 시즌 들어 안산은 펄펄 날았다. '역시나 하위권'이라는 시즌 전 예상을 보란듯이 깨고 있었다. 하지만 홍동현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 그는 9경기에 출전해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13경기에 출전해 1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공격 포인트 없어도 팀에 보탬이 되면 그만이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격수는 골로, 아니면 도움으로 말하는 법이다.

이흥실 감독의 잔소리도 늘어났다. "너는 골문 앞에서 너무 침착하지 못해." 홍동현은 이번 시즌 꽤 많은 기회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 속에서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 또한 있었다. 하지만 홍동현의 슈팅은 도통 영점이 잡히지 않았다. 올 시즌 그가 골망을 흔든 것은 딱 한 번이었다. 공격수가 골이 없다면 악순환에 빠지기 마련이다. 골이 터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부담감이 생긴다. 옆에서 격려를 해도 걱정만 늘어난다. 그렇게 계속 골을 넣지 못한다. 홍동현이 딱 그랬다.

가족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진이 필요해'

홍동현은 울산 출신이다. 울산 학성중과 학성고등학교를 나와 숭실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부산아이파크에서 프로로 데뷔한 이후 안산으로 이적했다. 그는 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살았다. 숭실대를 다닐 때와 지금이 수도권 생활의 전부다. 혈혈단신으로 수도권에 온 홍동현은 구단의 봉사활동도 열심히 다니고 훈련도 열심히 한다. 단지 골이 빵빵 터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모든 축구선수가 그런 것처럼 홍동현 역시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다. 한 명의 축구선수를 키우기 위한 가족의 희생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다. 많은 축구선수들의 입에서 "가족을 위해 뛴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홍동현도 그랬고 홍동현의 가족도 그랬다. 홍동현이 가족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였다. 골을 넣는 것 뿐이었다.

그나마 부산에 있을 때는 보답할 방법이 한 가지 더 있었다. 티켓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경기 보러 오세요"라고 티켓을 내밀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안산으로 이적했다. 갑자기 가족들과의 거리가 확 늘어났다. 부모에게는 종종 경기에 오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부모에게는 쉽게 그럴 수 없었다.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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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TV로 손자가 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K리그2는 케이블 채널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아니면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케이블 채널도 인터넷도 그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소식을 듣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홍동현은 조부모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홍동현의 사진에 대한 열망은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힘들어"라는 말 대신 "나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는 말이 더욱 쉽게 나온다. 홍동현도 그랬다. 경기에 지거나 부상 당해서 실려 나가는 사진을 조부모에게 보낼 수는 없었다. 대신 경기에서 이기거나 골을 넣으면 기분 좋게 사진을 보냈다. 손자가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잘 뛰고 있다고.

문제는 골이 쉽게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낼 일도 줄어들었고 사진에 자신이 나오는 일도 줄어들었다. 가족들에게 보낼 사진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골을 넣으면 됐다. 하지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이 감독이 꾸준히 홍동현을 출전시킨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언제든지 골을 넣을 기회는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었다.

부담감 내려놓게 한 어린이들의 외침

9일 광주FC와의 경기를 앞두고 안산의 라커룸 분위기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일주일 간 세 경기를 치르는 강행군 속에서 안산은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전반기 마감을 앞두고 무조건 이겨야 후반기를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이 감독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전술 뭐 이런 거 없어. 그냥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해라."

홍동현은 일찍 그라운드에 나와 마음을 다스렸다. '편하게 하자, 편하게 하자.' 골에 대한 부담감을 애써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 때 누군가가 애타게 불렀다. "홍동현 선수! 홍동현 선수!" 어린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두 명의 어린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평소 어린이를 좋아했다.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그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공을 차줬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이를 헤더로 다시 넘겨주는 것이었다.

'이것 봐라.' 홍동현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라운드에서 홍동현은 공을 차주고 어린이는 헤더로 패스했다. 그렇게 그들은 약 5분 간 신나게 놀았다. 그 때 만큼은 홍동현 역시 골에 대한 부담감은 모두 잊고 웃으면서 놀았다. 이 어린이들은 안산 유소년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뜻밖의 선물을 얻었다. "프로 선수랑 놀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그들은 90분 내내 홍동현을 미친듯이 응원했다.

사진기자의 한 마디, 독기를 품게 하다

홍동현은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그 때 그의 눈에는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한 사진기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산에 자주 오지는 않지만 종종 경기장을 찾아 사진을 찍던 사람이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는 사이었다. 한창 사진에 목말라 있던 그는 사진기자에게 다가갔다. "요즘은 왜 제 사진이 없을까요?"라며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그러자 사진기자는 웃으면서 농담 섞인 한 마디를 던졌다. "하하, 그러면 골 좀 넣어봐." 홍동현은 머쓱해져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때 그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홍동현은 프로 5년차 선수였다. 그의 말을 듣고 과거를 곱씹어봤다. 생각보다 그가 공격 포인트를 올린 기억이 별로 없었다. 사진기자의 농담은 홍동현의 폐부를 찔렀다.

골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부담감이 없어야 하지만 독기 또한 없으면 결코 터지지 않는다. 홍동현은 부담감을 내려놓았지만 독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독기를 한 사진기자가 채워준 셈이었다. "순간 자존심이 상했어요. '오늘 한 번 내가 보여줘야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홍동현은 부담감을 내려놓은 대신 독기를 품고 그라운드에 들어갔다. 전반 20분 만에 그는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침착한 슈팅으로 골을 만들었다.

골 넣은 공격수는 당당해진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온 홍동현은 당당해 보였다. 전반전만 뛰고 가벼운 부상으로 교체됐지만 골을 넣은 공격수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한 사진기자와의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골 넣었으니까 사진 많이 찍었겠죠? 앞으로도 골 많이 넣을 거니까 사진 많이 찍어달라고 꼭 전해주세요." 당분간 홍동현 가족의 핸드폰에는 알림 소리로 불이 날 수도 있겠다.

지난 3월 17일 FC안양전 이후 약 3개월 만에 보는 골맛이다. 하지만 홍동현은 더욱 욕심을 내고 싶다. "공격수니까 골을 많이 넣고 싶어요. 그렇지 못한다면 도움이라도 많이 하면서 공격 포인트를 쌓고 싶어요. 오늘 중요한 경기였는데 제 골로 승리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골은 무언가 팀에 보탬이 됐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홍동현은 다른 경기보다 더욱 기쁠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골 맛을 본 홍동현은 기뻐 보였다.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는 점이 행복할 것이다. 그는 이제 감독님 앞에서도, 가족들 앞에서도, 어린이들 앞에서도, 사진기자 앞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기분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을 것이다. 그가 "우리 팀이 이대로 간다면 승격 플레이오프도 도전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가 더욱 활약한다면 안산의 상승세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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