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번 월드컵을 세 경기 만에 끝났다. 하지만 여운이 깊게 남을 것 같다. ⓒ중계 방송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욕을 좀 길고 좋게 풀어 쓸 참이다. 어제 다른 매체에 기고하는 칼럼을 통해 대표팀에 대한 조롱과 비난은 독일전이 끝날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고 썼다. 뱉어 놓은 말이 있으니 볼리비아전을 보고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조금 순화를 하긴 해야겠다. 어제 칼럼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더 격한 칼럼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은 최악이었다. 볼리비아 1군을 상대로도 이런 경기력을 보이면 안 되는데 상대는 볼리비아 중에서도 2군이었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 나오는 팀들은 볼리비아 2군보다는 서너배 이상 강하다. 아무리 실험 중이고 발을 맞추는 단계라도 해도 볼리비아 2군을 상대로는 서너 골 차 승리는 거둬야 했다. 심해도 너무 심했다.

본선 두 경기 앞둔 팀이 맞나?

경기 결과를 떠나 내용도 극히 실망스러웠다. 살다 살다 남미 10개 팀 중 9위에 머물렀고 거기에 주축 선수들이 다 빠진 팀과 이런 내용으로 비길 줄은 몰랐다. 어떤 변명으로도 위안 삼을 수 없는 경기였다. 대표팀 상황이 좋지 않은 건 백 번 이해한다. 이근호와 염기훈, 김진수, 김민재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아예 제외됐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볼리비아 2군과 0-0으로 비긴 건 설명이 안 된다. 아마 스웨덴과 멕시코, 독일에서 한국 전력 분석을 위해 볼리비아전을 봤더라면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에이, 뻥치시네. 이게 월드컵 올라온 팀의 경기력이라고?” 신태용 감독과 대표팀을 믿고 지지하자고 주장하는 나에게도 볼리비아전은 충격이었다.

나는 신태용 감독을 믿는 쪽이다. 얼마 전 K리그 선수 몇몇과 대표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다들 대표팀의 월드컵 성적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런데도 다같이 입을 모아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난놈’ 신태용 감독이라면 또 모르죠.” 나 역시 대표팀 경기력이 부족할 때도 믿는 구석은 ‘난놈’ 기질을 보여주는 신태용 감독이었다. 뭔지 모를 기대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뭔가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지금도 깔려 있다. 그런데 볼리이바전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 경기력을 본선에서 뒤집겠다고? 아무리 난놈이어도 쉽지 않을 텐데.’ 여전히 믿고는 있지만 반전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볼리비아전을 놓고 평가를 하자면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골 결정력 부족? 아니면 체력 저하? 그것도 아니면 수비진의 조직력 문제? 그냥 아무 것도 이룬 게 없는 경기였는데 어느 것 하나 지적할 수가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집자면 월드컵 무대에서는 우리가 단 한 번도 갖출 수 없는 상대의 밀집 수비 상황에서 공격을 풀어갈 일이 없는데도 볼리비아 2군과 평가전을 잡은 협회의 행정력부터 따지고 싶다. 월드컵에서는 역습 형태의 경기를 펼쳐야 하는데 밀집 수비 상황에서 이승우와 김신욱, 문선민, 황희찬이 드리블 돌파로 이를 파헤쳐야 하는 경기에서 뭘 얻겠다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마저도 한국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으니 할 말도 없다.

신태용 감독은 정말 전력을 숨겼을까. ⓒ 아시아축구연맹(AFC)

세트피스가 그래도 해법이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김신욱의 선발 기용을 트릭이었다고 했다.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굳이 밝힌 것도 문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보유한 공격 카드가 김신욱 외에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볼리비아전에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한 황희찬이 현재 우리의 주전 공격수다. 손흥민이 아마 투톱의 또 다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그것도 아니라면 후반 막판 김신욱을 기용해 공격할 것이다. 트릭이건 아니건 누구나 다 간파할 수 있는 뻔한 카드 뿐이다. 염기훈과 이근호 등의 부재가 너무 아쉽다. 아니면 이동국이라도 있어야 한다. 대표팀 공격수의 무게감과 다양성이 대단히 부족하다. 어린 이승우가 대표팀 주전 미드필더라는 건 그만큼 대표팀의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수비진은 워낙 볼리비아가 약한 상대라 평가를 하기에도 부족했다. 믿을 건 여전히 김영권-장현수 조합이지만 볼리비아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뭐 여기에는 해답도 없고 남은 시간 조직력을 갖추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 믿자. 믿기 싫어도 믿자. 그래도 윤영선이나 오반석 등 경험이 부족한 수비수들보다는 김영권과 장현수 조합이 아주 조금은 나을 것이다. 지금 와서 수비진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한 정치인이 했던 말이 여기에는 딱 맞는 말인 것 같다. “인생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어요.” 이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짜증이 나지만 정말 믿고 기용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우리가 전술을 실험할 수 있는 경기는 세네갈전 딱 한 경기가 남았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해법은 그나마 수비진은 어떻게 어떻게 버텨주고 세트피스로 골을 넣는 것 뿐이다. 솔직히 수비진은 정말 모르겠다. 그냥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반대로 골을 넣을 수 있는 루트는 그래도 세트피스를 살리는 거다. 이승우가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다. 몸 싸움이 능하지는 않지만 골문 근처에서 제법 파울을 잘 얻어낸다. 이걸 살려서 정우영이나 기성용이 프리킥으로 직접 골문을 노리거나 김신욱을 이용한 세트피스를 연결하는 게 그래도 가장 현실적인 득점 방법이다. 손흥민이 프리킥을 차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고 싶다. 물론 보란 듯이 손흥민이 직접 프리킥으로 골을 기록해 나를 머쓱하게 만들어 주길 바라지만 그래도 손흥민보다는 정우영이나 기성용의 프리킥 감각이 더 낫다.

신태용 감독은 정말 전력을 숨겼을까. ⓒ 아시아축구연맹(AFC)

그래도 망신은 피하자

월드컵에서는 세트피스가 아니면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온두라스전과 보스니아전을 보면서도 신태용 감독의 ‘난놈’ 기질을 믿어왔지만 볼리비아전은 깜짝 놀랄 정도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내 믿음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신태용 감독을 믿고 지지를 보내자는 쪽인 내가 이 정도인데 대표팀 경기를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봐 왔던 이들의 분노는 오죽할까. 신태용 감독이 볼리비아와의 경기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경기에서는 전력의 60~70%만 보여준 경기이길 바란다. 기가 막힌 세트피스와 전략적인 플레이를 모두 숨겼고 우리가 생각 못한 공격 카드가 있는데 김신욱을 트릭으로 썼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한국은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망신을 당했다. 월드컵에서 이런 망신은 다신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볼리비아전을 봤을 땐 지난 월드컵보다도 더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볼리비아전에서는 1군을 상대로 압도라도 했지 어제 경기는 볼리비아 2군을 상대로도 아무 것도 못했다. 이제 열흘 후면 곧바로 월드컵 본선에 돌입해야 한다. 열흘 사이에 드라마틱한 반전이 일어날 수는 없다. 그래도 ‘난놈’이니까 다 생각이 있겠지…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월드컵에서 정말 큰 망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믿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슬프지만 그것뿐이다.

하루 만에 말을 바꿀 순 없으니 그래도 믿고 기다려보자는 말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말 화가 나는 경기력이었지만 실제로도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건 문제점을 냉정히 진단하고 기다려주는 것뿐이다.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화가 나고 걱정도 되지만 지금 이 순간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시간은 없다. 신태용호가 전력을 숨긴 경기였다고 위안 삼으며, 그래도 월드컵에서 세트피스로 한 골 넣고 수비가 어떻게 어떻게 버텨주길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아니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월드컵에서 망신은 당하지 말자고 기도해야겠다. 볼리비아전과 같은 경기력이 또 반복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힘들게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서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고 싶은 욕은 많지만 그래도 월드컵이 열릴 동안에는 참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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