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축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내용일까?

일단 한국 드라마의 특성 상 러브라인이 빠질 수 없다. 우리는 과거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09년 방영된 드라마 '맨땅에 헤딩'에서는 축구선수 차봉군(유노윤호)과 초짜 에이전트 강해빈(고아라)을 엮었다. 물론 발연기 논란이 일어나며 처참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축구장에서 다른 로맨스는 가능할까?

독자들을 위해 드라마 못지 않은 한 편의 러브 스토리를 소개하려고 한다. 축구선수와 서포터의 만남이다. 심지어 단순한 팬이 아니다. 축구선수와 '홍염 좀 까 본' 서포터의 연애 이야기다. 벌써부터 티격태격 싸우고 남자친구를 향해 야유를 퍼붓는 여자친구의 모습이 상상되며 절로 웃음이 터진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남자친구, 아니 남편이 축구선수면 어때요?" 10년 가까이 인천을 응원하다가 지금은 축구장 밖 또다른 감독이 되어버린 오혜지 씨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소개한다.

인천이 가장 슬펐던 날, 울산 팬이 된 인천 시민

오 씨가 처음으로 축구장을 찾은 날은 2005년 11월 27일이다. 이날은 수많은 인천 팬들이 잊을 수 없다. 2005년 K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인천은 울산현대를 만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상'의 하이라이트 부분이기도 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인천은 울산에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울산 이천수가 생애 첫 K리그 해트트릭이자 챔피언결정전 역사상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5-1 대승을 이끈 것이다.

당시 그녀는 축구팬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인천의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한 판을 보고 운명적으로 축구팬이 됐다. 오 씨는 수많은 인천팬처럼 눈물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와, 울산 진짜 대박이다…" 그랬다. 인천 시민인 오 씨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보고 울산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당시 '울산 이천수'는 대단했다 ⓒ 울산 현대 제공

"이후 울산 경기 엄청 따라다녔어요. 인천에 살지만 울산 홈 경기도 상당히 많이 갔어요. 울산에서 저녁 홈 경기가 있는 날에는 인천 돌아오는 버스가 끊겨서 터미널 근처에서 밤 새고 아침 버스 타고 집에 온 적도 많아요. 덕분에 많이 혼났어요. TV로 그 때 A3 챔피언스컵(한국, 중국, 일본 프로축구 우승팀이 모여 겨루는 대회) 본 것도 생각나요." 하지만 그녀의 울산 사랑은 약 2년 정도로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울산의 성적이 하락세였고 그녀의 마음을 강렬히 사로잡았던 이천수가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축구팬이 되면서 연고 의식에 대해서도 점차 눈을 뜨기 시작했다. 울산에 대한 흥미가 조금씩 사라지자 '우리 동네 팀'에 눈을 돌렸다. 몇 차례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점차 인천 특유의 끈끈한 축구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오 씨는 그렇게 인천 팬이 됐다. 서포터스 소모임에도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는.축.구.계.에.발.을.들.이.지.않.겠.다

"추억 많이 쌓았어요. 소모임 언니 오빠들과 원정도 많이 다녔어요. 특히 전남드래곤즈나 지방 원정을 갈 때가 기억 나요. 서포터스 원정 버스를 타고 가서 축구를 보고 돌아오면 새벽 세 시쯤 되거든요. 어릴 때여서 택시 타고 갈 돈이 없잖아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버스 첫 차 올 때까지 언니들이랑 수다 떨면서 시간 보냈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 그리고 오빠들 도움 받아서 홍염 터뜨려본 것도 생각나요."

그 당시 '울산 이천수'는 대단했다 ⓒ 울산 현대 제공

그렇게 오 씨는 인천과 함께 추억을 만들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의 건립도 그녀는 생생히 지켜봤다. "고등학교 다닐 때 조금씩 공사를 시작했어요. 마침 제가 바로 근처에 있는 학교를 다녔어요. 하교할 때마다 괜히 근처 구경 갔어요. 축구전용구장이라 설렜어요. 게다가 조감도도 예뻤거든요. '빨리 완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인천시) 빚은 언제 다 갚나…'라고 생각했죠."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나서도 인천과의 인연은 여전했다. 바쁜 대학 생활 탓에 예전과 같이 경기장을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틈날 때마다 경기장을 찾았다. 이 쯤 되면 축구계 종사자를 한 번 쯤은 꿈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민구단의 열악한 현실을 많이 봤고 축구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어요. 축구는 그저 제 평생 취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축구계에는 내 인생을 걸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몇 년 뒤 그녀는 스스로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오 씨의 꿈은 세무사였다. 착실히 공부하며 미래를 대비했다. 세무사 1차 시험에도 합격했다. 2차 시험만 통과한다면 그녀는 세무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사소한 사건 하나가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현재 그녀의 꿈은 잠시 보류 중이다. 언젠가 그녀는 다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길 기다리고 있다.

이마 까진 축구선수와의 문래동 회동, 인생이 흔들리다

아주 사소한 사건은 인천에 한 축구선수가 입단하면서 시작됐다. 머리숱은 풍성하지만 이마가 좀 까진 그 선수는 축구를 꽤 잘했다. 그녀는 2017년 4월 1일 그를 처음 봤다. 인천과 수원삼성의 K리그1(클래식) 경기에서였다. 팀은 3-3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이날 그 선수는 펄펄 날았다. 멀티골을 넣으며 맹활약했다. 그녀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며 감격했다. '드디어 우리 팀에도 멀티골을 넣는 선수가 생겼구나…' 그것이 그 선수에 대한 그녀의 첫 인상이었다.

그렇다고 오 씨가 그 선수의 팬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인천을 응원하는 서포터였기 때문에 선수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인천 팬이라면 다들 저와 같은 처지일걸요? 시민구단이라는 특성 상 인천에 들어온 선수는 다들 몇 년 뛰지 않고 떠나요. 선수와 정이 들 만 하면 이적하죠. 그래서 선수보다는 우리 팀을 응원하는데 더욱 집중했죠."

그러던 와중에 인천의 명예기자로 일하는 친구가 오 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원하는 선수의 사인을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베푸는 일종의 호의였다. 그녀는 주저 없이 그 선수를 선택했다. 당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였던 것도 있었고 인천 첫 해였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적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친구는 '선수와 사진도 찍으라'고 권유했지만 그녀는 정중히 사양했다. "당시 그 선수는 잘했지만 팀 성적은 썩 좋지 못했어요. 그런데 웃으면서 선수와 사진 찍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그 당시 '울산 이천수'는 대단했다 ⓒ 울산 현대 제공

하지만 사소한 사인 한 장은 둘을 가깝게 만들었다.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심지어 둘은 묘한 인연으로 얽혀 있었다. '문래동'이라는 지역이었다. 당시 오 씨는 문래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선수는 문래중학교 출신이다. 서로의 인연에 놀라워하며 "그렇다면 언제 문래동에서 커피 한 잔 하자"고 약속했다. 둘은 실제로 문래동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두고 마주 앉았다.

그 선수는 딱히 오 씨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 "선수와 팬의 관계로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이성에게 호감을 보이기보다 그냥 순수한 남동생 같은 느낌이었어요." 심지어 카페에서 자리를 먼저 뜬 것도 그 선수였다.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 한 잔 하더니 "내일이 경기일이라 먼저 일어날게요"라며 휙 가버린 것이다. "선수의 프로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저 친구가 내게는 흑심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도감을 느꼈달까? 역시 인천의 에이스 공격수 다웠죠."

그러나 그 선수는 그녀에 대한 마음이 커졌나보다. 몇 차례 만남을 더 가지고나서 그는 오 씨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로맨틱하지는 않았다. "그 선수가 참 분위기 만들 줄은 몰라요." 계획했던 카페는 찾아가니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둘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그는 뜬금없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우리 만나볼래요?"

하지만 그녀는 그의 고백을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냥 한 번 만나보려는 쉬운 마음으로 말한 거면 넣어두세요." 단순히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던진 말은 아니었다. 어느덧 그녀는 서포터스 사이에서도 '축구 좀 본' 서포터였다. 그런 그녀가 선수를 만난다는 것은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못가고 헤어진다면? 둘 다 난감한 상황에 처해진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선수는 "진심이다"라고 말했고 그렇게 둘의 연애는 시작됐다. 머리숱은 풍성하지만 이마가 조금 까졌고 축구를 잘하는 그 선수는 바로 문선민이었다.

문선민이 여자친구를 화나게 하는 방법

서포터와 선수가 연애를 시작했다. 축구라는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는 간극이 컸다. "솔직히 다른 것이 많았어요. 제가 대학 시절 얘기를 신나서 하면 문선민은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어요. 게다가 문선민은 게임을 즐겨해요. 반면 저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해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둘은 더욱 축구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문선민의 착한 성격도 차이를 줄이는데 한 몫 했다.

문제는 인천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만일 여자친구가 응원하는 팀과 남자친구가 뛰는 팀이 서로 다르면 큰 문제는 없다. 이기든 지든 "수고했다"라고 격려하면 된다. 하지만 팀이 같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오 씨는 인천의 경기에 누구보다 몰입해서 보는 팬이다. 우리 팀 선수라도 못하면 욕 좀 해봤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제는 남자친구가 잘 뛰지 못해도 격려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았다.

특히 2017년 7월 19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이날 인천은 FC서울과의 홈 경기에서 1-5로 대패했다. 과거 인천에서 뛰었던 데얀에게 해트트릭을 내줬다. 후반 추가시간이 되어서야 박용지가 한 골을 겨우 만회했다. 오 씨의 화는 부글부글 끓었다. 평소 그녀는 인천이 패배해도 문선민에게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날은 도저히 문선민에게 좋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인천의 패배가 너무나 뼈아팠기 때문이다.

그녀는 퇴근한 문선민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화를 삭혔다. 당장 메시지를 보냈다가는 문선민에게 어떤 말을 할지 몰랐다. 그녀가 마음을 추스르는데 약 세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생 많았어. 참 잘 졌다.' 뼈있는 한 마디였다. 문선민의 답장은 '미안해'였다. 그리고 이 상황은 3개월 뒤 재현됐다. 인천이 포항 원정을 떠나 0-5 대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울산 이천수'는 대단했다 ⓒ 울산 현대 제공

올 시즌에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기에서 지면 문선민은 조용히 집으로 퇴근한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거실 쇼파 한 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다. 최대한 오 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그의 모습은 귀여울 뿐이다. 왜 그러고 있는지 이유를 물어보면 문선민은 조용히 한 마디 한다. "무서워서…" 문선민은 그녀에게 한 번 심경을 토로한 적 있다. "나는 24시간 감독님과 함께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오 씨는 그럴 때마다 간단하게 받아친다. "그러게 누가 서포터 만나래?" 다 문선민 자업자득이다.

혹시나 모를 이적에 대해서도 둘은 합의했다. 선수가 '원클럽맨'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언젠가 이적을 한다. 오 씨는 문선민에게 선을 그었다. "당신이 이적을 해도 내가 그 팀을 따라가서 응원하는 일은 없을 거야. 당신은 그 팀에 가서 열심히 뛰어. 나는 이 팀 열심히 응원할게." 축구장 안에서 서로 적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 씨의 묘수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하면 문선민 팀과 인천이 붙을 때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할 것 같았어요. 인천이 이기면 제 기분이 좋고 문선민 팀이 이기면 승리 수당 받아서 맛있는 것 사달라고 하면 그나마 덜 화날 것 같더라고요."

'문 서방'에게 생긴 수많은 형님들

둘은 열애 사실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분명 서포터와 선수가 만난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문선민의 절친 김도혁(아산)을 시작으로 소문은 점점 퍼졌다. 팬들과 선수들이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따뜻한 시선과 차가운 시선이 공존했다.

한 번은 오 씨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따라 문선민은 부진했고 인천은 패했다. 그녀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경기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누군가 큰 소리로 그녀에게 말하듯이 외쳤다. "문선민 진짜 더럽게 못해!" 그 때 그녀는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한 명의 서포터이지만 문선민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을.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그런 이야기에 심리적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 당시 '울산 이천수'는 대단했다 ⓒ 울산 현대 제공

"선수가 못하면 비판 받는 건 당연하잖아요. 저도 서포터를 하면서 욕 많이 해봤어요. 물론 아쉽고 섭섭한 마음은 조금 있어요. 하지만 이해해요. 돈 내고 경기를 보러 왔는데 부진한 모습만 보면 실망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 식으로라도 좋지 않은 기분을 털고 가야죠." 그렇게 오 씨는 서포터이자 축구선수의 남자친구라는 두 가지 역할에 적응하고 있었다.

같은 소모임의 지인들은 "정말 잘됐다"라고 응원하면서도 한 가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선민은 경기력이 주춤하던 시기였다. "우리 동생 먹여 살리려면 축구를 잘해야 할 것 아냐? 골도 좀 많이 넣고. 요즘 하는 거 보니 동생 먹여살리기 힘들 것 같던데… 언제 한 번 우리 모일 때 같이 와. 아주 정신 바짝 차리도록 우리가 단단히 일러둘게."

얼마 뒤 둘은 실제로 소모임 회원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했다. "인천 부평구에 오아시스라는 펍이 있어요. 거기 사장님이 저희 모임 회원이세요." 오 씨는 수 년 간 자신을 지켜본 '오빠'들이 문선민에게 어떤 말을 할 것인지 내심 궁금했다. 카페에서 심호흡을 하며 준비를 한 두 사람은 모임 장소로 이동해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오빠들이 아닌 웃는 얼굴의 오빠들만 있었을 뿐이었다. "아이고 문 서방, 어서오게나. 사인도 좀 해주고." 그렇게 문선민은 수많은 형님(처남)들이 생겼다.

연애 끝 결혼 시작, 집 안 선수 육성 프로그램도 시작

약 1년 간의 짧은 사랑이지만 둘은 서로를 믿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문선민은 자주 오 씨에게 "결혼하자"란 이야기를 했다. 그녀 역시 한없이 착한 그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2018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결혼식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는 없었다. 오 씨는 문선민에게 제안했다. "일단 우리 아빠 허락부터 받자." 그리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녀의 아버지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딸이었다. 하지만 딸은 뜬금없이 사윗감이라며 한 남자를 데려왔다. 미국에는 아버지 뿐 아니라 친척들이 모두 살고 있었다. 오 씨가 결혼을 위해 미국행을 제안한 이유였다. 하지만 모든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그녀의 아버지 역시 처음에는 사위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열심히 키워 대학 공부까지 마친 딸이다. 그런 딸을 달라고 불쑥 찾아온 남자가 썩 마음에 들리 없다. 게다가 축구선수라고 하니 아버지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그는 야구팬이었다. KIA타이거즈의 광팬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말했다. "야구선수도 아니고 축구선수라니. 게다가 축구 국가대표도 아니고… 결혼은 조금 더 생각해보면 안되겠니?" 오 씨와 문선민은 약 한 달 가량을 미국에 체류했다. 그동안 문선민은 바짝 긴장했다.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며 살았다. "아빠나 친척들 마음을 얻으려면 살갑게 대하고 애교도 좀 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한 달 동안 그를 유심히 지켜본 모양이다. 한국으로 떠나기 직전 아버지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정말 착하고 좋은 것 같다. 네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결혼해도 좋다."

그 당시 '울산 이천수'는 대단했다 ⓒ 울산 현대 제공

그렇게 결혼 승낙을 받은 둘은 2018년 1월 혼인신고를 했고 같이 살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임신이라는 기쁜 소식도 날아들었다. 결혼식보다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지금도 결혼식 욕심은 크게 없어요. 하더라도 조촐하게 하고 싶어요." 오 씨는 마냥 좋을 수 없었다. 본격적인 축구선수 아내로서의 내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축구장에 있는 건 아니지만 감독이 된 기분이었어요."

문선민을 위한 내조였지만 오 씨에게는 '우리 팀이 더 잘 될 수 있는 방법'이 내조였다. 그녀는 원칙을 세웠다. '잘 먹이고 잘 재우자'였다. 그녀는 한 번도 축구선수를 만난 적 없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식단을 짰고 정해진 시간이 되면 무조건 재웠다. 부부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잠 하나는 꼭 많이 자게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그녀의 결정에 잘 따랐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도 아내가 "잘 시간이 됐다"라고 말하면 꼬박꼬박 잤다. 입에 쓴 보약을 사와도 군말 없이 챙겨먹었다. 그런 덕분에 둘은 아직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좋아하는 게임을 하기 전에도 꼭 제게 물어봐요. '나 지금 게임해도 돼?' 그리고 제가 하라고 대답을 해야 게임을 해요. 친구를 만나거나 늦게까지 술 먹는 걸로 속을 썩이지도 않아요. 지금까지 술 한 잔 하고 밤 늦게 들어온 건 딱 세 번 밖에 되지 않아요. 세 번 모두 비시즌에, 그리고 제 허락을 받고 갔어요."

그녀의 내조 덕분이었을까? 올 시즌 들어 문선민은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전반기 14경기에서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문선민의 절친 김도혁(아산) 또한 "문선민이 결혼 하더니 축구를 엄청 잘하더라. 진짜 잘 만났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문선민도 오 씨도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이렇게 인천에서 뛰면서 멋진 활약을 보여주길 바랄 뿐이었다.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대표팀 소집

5월 14일 아침. 월요일이었다. 상주상무 원정에서 돌아온 문선민은 곤히 자고 있었다. 옆에서는 오 씨가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이상했다. 유독 오 씨의 핸드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려대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씨는 잠결에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었다. 문선민의 핸드폰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아무래도 괜찮았다. 문선민의 핸드폰은 거실에 있었다.

결국 울려대는 알람 때문에 문선민이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거실로 나갔다. 잠시 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침대로 돌아왔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 뽑혔어." 오 씨는 뭔 소리인지 몰랐다. 문선민은 어리둥절한 그녀에게 핸드폰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월드컵 대표팀 28명 엔트리 명단 발표 기사가 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사에는 문선민의 이름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울산 이천수'는 대단했다 ⓒ 울산 현대 제공

문선민 부부 만의 경사가 아니었다. 인천의 경사였다. 수없이 울려대던 오 씨의 핸드폰 알람은 지인들의 축하 문자였다. 다들 "인천의 아들 문선민이 월드컵에 간다"며 기뻐했다. 그녀의 서포터스 소모임도 환호했다. "우리 문 서방이 월드컵 간다!" 그녀는 그 때를 생각하며 웃었다. "아니 소모임 지인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선민 못한다고 욕하는 거 생생하게 들었는데 갑자기 '문 서방'을 외치더라고요. 그래도 기분은 엄청 좋았어요."

하지만 그녀는 내심 걱정했다. 냉정하게 문선민의 실력은 월드컵에 갈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입장보다 10년 이상 축구를 본 축구팬의 관점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파주NFC로 떠나는 문선민에게 당부했다. "재밌게 하고 와. 떨어져도 되니까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와." 며칠 뒤 그녀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선민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나 손흥민이랑 친해졌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 덧붙였다. "문선민의 주장이지 손흥민 선수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선민 아내는 축구 보면서 딱 세 번 운다

며칠 뒤 대구스타디움에서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이 열렸다. 오 씨는 홀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구로 향했다. 문선민의 A매치 데뷔전에 그녀가 빠질 수 없었다. 축구팬이기에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대구에 도착한 그녀는 인천팬 다운 생각을 했다. "대구스타디움 시야 진짜 머네. 역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이 최고야." 그녀는 걱정과 설렘 섞인 마음을 안고 남편의 데뷔전을 기다렸다.

남편의 데뷔전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전반전 내내 문선민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기회는 주어졌다. 후반 10분 문선민은 부상을 당한 이청용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다. 그의 첫 번째 A매치가 시작된 것이었다. 오 씨는 기대를 갖고 경기를 지켜봤다. 하지만 기대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많은 축구팬들이 지적한 것처럼 문선민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문선민이 뛰는 경기를 오래 봤잖아요. 저는 '인천에서 뛴 만큼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인천에서 보여준 것도 해내지 못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경기장을 나가고 싶었어요. 남편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데 마음껏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어요." 약 20분 가까이 그녀는 마음 고생을 했다.

하지만 후반 29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역습 상황에서 황희찬의 패스를 받은 문선민이 드리블 이후 침착하게 슈팅을 날렸다. 공은 온두라스의 골망을 흔들었다. 문선민은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다 팀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한 방이었다. 이 골로 문선민은 신태용 감독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그 순간 오 씨는 눈물을 쏟았다. 기쁨보다는 크나큰 안도감의 눈물이었다. "정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나왔어요. 제가 축구 보면서 눈물 흘리는 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펑펑 울었어요." 참고로 오 씨는 축구를 보면서 딱 세 번 울었다. 처음 운 것은 2007년이었다. 수원삼성 에두가 임중용에게 침 뱉는 장면이 나오는 전광판을 보면서 임중용 혼자 퇴장 당한 것이 억울해 울었다. 그리고 임중용의 은퇴식 때 슬퍼서 울었고 온두라스전에서 안도감에 운 것이었다.

그 당시 '울산 이천수'는 대단했다 ⓒ 울산 현대 제공

온두라스전이 끝나고 마지막 국내 평가전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이 다가왔다. 문선민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골은 넣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그에게 몰려왔다. 오 씨는 옆에서 격려 했지만 하루아침에 그의 표정이 바뀔 수는 없었다. 그녀도 착잡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밝게 그를 대했다. 그녀는 대구에서 돌아오고 며칠 뒤 다시 전주로 향했다.

문선민, 이 남자가 이렇게 로맨틱할 줄이야

보스니아전에서 문선민은 후반 35분 이재성을 대신해 교체 투입됐다. 약 10분 가량 2018 러시아 월드컵 멤버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를 마쳤다. 반응은 엇갈렸다.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위험하다" 또는 "결국 떨어질 선수는 문선민 밖에 없지 않나"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운명은 문선민의 손을 떠났다. 결국 신태용 감독의 선택만 남은 것이었다.

전주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낸 부부는 운명의 아침을 맞이했다. 월드컵 최종 23인 엔트리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먼저 일어난 것은 남편 문선민이었다. 선수단이 모두 모여 아침을 먹고 해산하는 일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돌아왔다. 조용히 돌아온 그는 아내의 머리맡에 앉았다. 오 씨는 푹 자고 있었다. 임산부의 몸으로 지방을 두 차례나 다니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잠시 후 문선민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받지 않았다. 그의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읽지 않았다. 문선민은 그저 자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 씨는 한참 뒤에 눈을 조금씩 떴다. 문선민도 아내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때 다시 한 번 전화가 왔다. 문선민은 그 때 처음으로 전화를 받고 한 마디를 던지더니 다시 끊었다. "내가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

막 잠에서 깬 아내에게 문선민은 말했다. "여보. 나 가." 그 때까지 잠에 취해 있었던 아내는 졸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어딜 가? 우리 짐 싸고 인천 돌아가?" 문선민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나 러시아 간다고. 당신에게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어서 축하 전화 안받고 기다리고 있었어." 지금까지 문선민에게 제대로 된 고백이나 프로포즈를 받지 못했다는 오 씨였지만 이날 만큼은 문선민이 세상 그 누구보다 로맨틱했을 것이다.

기쁨 느낄 새도 없이 보낸 마지막 24시간

두 사람은 기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쁨을 오래 느낄 여유는 없었다. 23인 엔트리는 2일에 발표됐다. 그리고 월드컵 대표팀의 출국은 3일이었다. 단 하루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오 씨는 분주했다. 홀몸이 아니었지만 정신없이 문선민의 출국을 챙겼다. 러시아에서도 핸드폰을 쓸 수 있도록 유심 칩을 수배했고 보약도 바리바리 챙겼다. 그리고 3일, 오 씨와 문선민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오 씨는 쑥쓰러운 듯 웃었다. "사실 축구선수 출국하는 거 보러 공항에 온 것은 처음이에요. 뭘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월드컵 대표팀을 배웅하러 나온 인파를 보면서 그녀는 상당히 신기해했다. 그녀의 손에는 검은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이 안에는 문선민이 비행기 안에서 지루함을 달랠 스마트패드가 들어 있었다. 살짝 문선민의 드라마 취향을 묻자 그녀는 말했다. "축구 영상만 봐요. 특히 자기가 골 넣으면 그 부분만 100번은 돌려봐요."

문선민은 깜짝 발탁 이후 숨가쁘게 대표팀 일정을 소화했다. 자연스럽게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도 확 줄었다. 신태용 감독의 선택으로 인해 취소되거나 조정된 일정만 여러 개였다. "원래 4일에 같이 산부인과 검진을 받기로 했어요. 그건 2일에 후다닥 다녀왔어요. 그리고 문선민 생일이 6월 9일이에요. 그 때 뮤지컬이 보고 싶다기에 예매했는데 취소했어요. 마지막으로 휴식기 때 태교 여행으로 괌에 가기로 했는데 그것마저 취소했죠." 정말 이 부부, 월드컵 갈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 못했다.

간단한 환송 행사 이후 문선민은 출입국 심사장으로 들어갔다. 이제 이 부부는 당분간 함께 할 수 없다. 도전에 나서는 문선민을 향한 오 씨의 바람은 소박하다. "재밌게 하고 편하게 하고 왔으면 좋겠어요. 여기까지 온 것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월드컵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단 1분이라도 기회가 온다면 움츠러들지 말고 마음껏 문선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오면 저는 만족합니다."

그래도 내심 국가대표팀과 문선민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줬으면 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심 칩의 유효 기간과 보약을 8강전에 맞춰서 준비했다. "추가로 갖다주러 러시아에 가야하는 고민이 생기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모두가 "안된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기대한다. 그렇기에 오 씨와 문선민은 부부이자 가족이다.

문선민은 두 번째 반전을 선사할 수 있을까

'축구선수 아내' 오 씨의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많은 것이 낯설다.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갑자기 국가대표가 되어버린 남편을 내조하면서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될 준비를 해야한다. 문선민 만큼 바쁘다. 그래도 서로의 애정은 여전하다.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 도중 계속해서 문선민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보안검색대를 통과 하자마자 전화한 모양이다.

오 씨는 과거를 회상했다. "솔직히 제 인생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어요. 나이를 먹게 되면 제 일에 충실하면서 가끔 취미로 축구 보러 다니는 삶을 꿈꿨어요.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네요. 아마 과거의 제가 이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거 같아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요. 제가 설계한 미래에 완전히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이룰 겁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이 행복해요."

'서포터' 오 씨의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버킷 리스트'를 묻는 질문에 여지없이 "인천의 K리그1 우승"을 외친다. 그리고 "적어도 인천의 AFC 챔피언스리그(ACL) 진출"을 꿈꾼다. 인터뷰가 진행된 인천공항에서 그녀는 이렇게 한탄했다. "인천이 ACL에 진출해서 원정 경기를 하러 출국할 때 여기에 온다면 지금만큼 행복할 것 같아요. 그 때도 꼭 한 번은 배웅 나올 거에요."

하지만 문선민의 아내 오 씨가 아닌 '오혜지'의 새로운 인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녀는 꿈을 접은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자신의 꿈을 잠시 보류했을 뿐이다. 아직 그녀는 갈 길이 멀다. 인터뷰 말미에 그녀는 그런 말을 했다. "다 하고 싶은데 아직은 모르겠어요. 미래는 쉽게 예상할 수 없잖아요." 맞는 말이다. 그녀의 미래에는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저 미래의 희망을 그려놓고 현실에 충실할 뿐이다.

이제 문선민의 월드컵 도전이 시작되려고 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월드컵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렇게 적은 응원을 받으며 가는 대표팀이 과거에 있었을지 궁금할 정도다. 하지만 문선민은 착실히 반전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 한 여자의 인생에 깜짝 놀랄 반전을 수없이 선사한 것처럼 이번에는 국민들 앞에서 감동 가득한 반전 드라마를 선사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릴 것이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