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수원FC에서 헌신했던 조덕제 감독은 지난 시즌 도중 팀을 떠났다. ⓒ수원FC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이른 더위가 찾아온 지난 2일 수원종합운동장. KEB하나은행 K리그2 2018 수원FC와 아산무궁화의 경기가 열리자 한 남자가 정장을 갖춰 입고 관중석에 등장했다. 이 남자는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응시하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몇몇 관중이 그를 알아보곤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지난 시즌까지 관중석이 아니라 반대쪽 벤치에서 선수를 지휘했던 이 남자의 이름은 바로 조덕제다. 수원FC를 이끌었던 조덕제 감독은 이제 한 명의 팬으로서 조용히 경기장을 찾는 중이다.

수원FC의 살아있는 역사, 조덕제

조덕제 감독은 지난 시즌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 수원FC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수원FC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11년 수원시청 축구단 유소년 총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2011년 내셔널리그가 끝난 뒤 전임 김창겸 감독이 계약만료로 팀을 떠나자 유소년 총괄 감독에서 성인팀 감독으로 내부 승격했다. 수원시청은 2012년 12월 프로 전환을 확정지으며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게 됐고 팀 명칭도 수원FC로 변경했다. 마지막 사랑은 언제인지 몰라도 첫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프로화 이후 초대 감독이라는 변하지 않는 역사도 조덕제 감독이 쓰게 됐다.

조덕제 감독은 2015년 막판 K리그 챌린지에서 엄청난 상승세를 이어가며 3위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뒤 서울이랜드와 대구FC를 꺾고 부산아이파크까지 제압했다. 창단 후 최초의 K리그 클래식 승격까지 이뤄낸 것이다. 내셔널리그 팀을 K리그 챌린지를 거친 뒤 K리그 클래식까지 이끈 최초의 감독이었다. 2015년 K리그 챌린지 리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비록 한 시즌 만에 다시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됐지만 강등팀 감독으로 경질되지 않은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조덕제 감독은 수원FC의 역사이자 지금의 수원FC를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조덕제 감독은 지난 해 8월 시즌 도중 중도 사퇴했다. 5연패를 당하는 등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팀을 떠났다. 그가 사퇴를 결정한 뒤에도 팬들은 “감독님 제발 가지 마세요”라는 걸개를 내걸기도 했다. 이후 그는 대한축구협회 대회위원장으로 부임했다. 협회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 운영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감독관도 파견하고 경기가 이상 없이 진행되는지 파악하는 게 주 업무다.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전국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올 시즌 수원FC 홈 경기에는 빠짐 없이 개근 중이다. 비록 이제는 수원FC 감독이 아니지만 그는 늘 수원종합운동장을 몰래 찾는다.

지난 시즌 조덕제 감독을 향해 팬들이 내건 걸개. ⓒ스포츠니어스

그가 몰래 경기장을 찾은 이유는?

이날도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살인적인 지방 출장 일정을 마친 뒤 수원으로 날아왔다. 이틀 전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내셔널리그 선수권대회에 갔다가 하루 전에는 전주로 가 한국과 보스니아의 A매치 경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이날 오전에는 군산으로 가 금석배 개막전 두 경기를 지켜본 뒤 당진으로 가 오후 3시에 대통령금배축구대회를 참관하고 왔다. 그리고는 오후 6시에 열리는 수원FC 홈 경기장으로 날아왔다. 일정상 무리였지만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수원FC 경기를 빼놓고 싶지 않았다. 그는 경기장에 도착해 본부석이 아닌 일반석 한 켠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수원FC는 물론 지역 유력 축구 인사인 그가 본부석으로 가지 않고 일반석에서 경기를 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본부석에 가면 시장님도 있고 구단 이사들도 있다. 그런데 전임 감독이었던 내가 자꾸 본부석에 나타나면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수원FC 경기력에 대해 물어보면 그에 대해 어떤 답변을 내놓기도 곤란하다. 김대의 감독에게 부담을 주기도 싫다. 내가 저쪽에서 경기를 보면 모양새가 이상해진다. 그래서 일반 관중석에서 조용히 경기를 보고 간다. 올 시즌 홈 경기는 거의 다 봤다.” 현 감독에 대한 조덕제 대회위원장의 배려였다. 그리고 여전히 수원FC를 사랑하는 한 팬으로 돌아간 이의 애정이었다.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비록 지난 시즌 도중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수원FC를 내셔널리그와 K리그2를 거쳐 K리그1까지 올려 놓았던 그는 여전히 구단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수원FC를 향한 조덕제 대회위원장 애정은 당연하다. “여기에서 승격을 해보기도 했고 내려오기도 했다. 내가 그만둘 때도 시장님께서 잡았지만 이를 뿌리치고 사퇴했다. 그때는 스스로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늘 팀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5~6년 동안 함께 해온 팀인데 여전히 내 팀 같은 생각이 든다.”

지난 시즌 조덕제 감독을 향해 팬들이 내건 걸개. ⓒ스포츠니어스

조심스러운 이야기, 조심스러운 행동

하지만 그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러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계속 아끼는 듯했다. “서포터스 중에는 나를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감독으로 있을 때는 경기가 끝나면 잘 못 마시는 맥주도 한 잔씩 하면서 같은 추억을 공유했었다. 가끔 ‘다시 돌아오라’는 팬들도 있지만 그럴 때면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감독님이 열심히 하고 계신데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더 숨어서 경기를 지켜보려 한다.” 조덕제 대회위원장을 취재하기 위해 일반 관중석을 한참 뒤져서야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수원FC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최대한 노출을 자제했다.

이날 수원FC는 아산무궁화에 0-2로 패하고 말았다. 경기장에는 ‘大義(대의)를 위한 대의 OUT’이라는 걸개가 내걸렸고 “김대의 아웃”이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조덕제 대회위원장이 팀을 떠날 때 걸개를 통해 사퇴를 반대했던 팬들은 여전히 현 감독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경기장에 늦게 도착해 팬들의 걸개를 보지는 못했다. “모르겠다. 퇴진 운동은 못 봤다. 다만 안타까운 부분은 있다. 수원FC 선수들이 연봉으로만 따지면 적은 돈을 받는 선수들이 아니다. 지나친 간섭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선수들이 조금 더 분발해줬으면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팬으로서 하는 이야기다.”

이날 경기장에는 조덕제 대회위원장의 감독 시절 제자들이 많았다. 이승현을 비롯해 민현홍, 배지훈 등은 그가 수원FC에서 기회를 줬던 선수들이었다. 아산무궁화에서 뛰는 박형순과 김종국 등도 그의 수원FC 시절 제자들이다. “다 나와 함께 했던 선수들이다. 이 팀 저 팀을 떠나 잘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내가 계속 협회에서 일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지도자로 현장에 돌아올 텐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눈에 담아두고 싶다.” 이날도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경기가 시작될 쯤 관중석에 등장해 조용히 경기를 보고 사라졌다. 애정은 여전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 현 감독 체제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본부석에는 일부러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 조덕제 감독을 향해 팬들이 내건 걸개. ⓒ스포츠니어스

벤치 아닌 관중석의 조덕제, 애정은 여전하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수원FC를 위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러자 한참 동안 머뭇거리던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가 지금 수원FC 상황에 대해서 말하기가 워낙 조심스럽다. 팀이 잘하고 있으면 무슨 이야기라도 툭 던져도 된다. 하지만 지금 팀 성적이 좋지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에도 좀 그렇다. 마음에 있는 말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다만 팬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김대의 감독이 모든 걸 한 번에 다 이룰 수는 없으니 감독에게 조금 더 힘을 보태주는 게 어떨까 싶다.”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진심으로 수원FC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 느껴졌다.

팀을 떠난 전임 감독은 사퇴 이후 이 팀에 대한 관심을 끊는 게 일반적이다. 작별 과정에서 감정이 쌓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조금 다르다. 지금의 팀을 만들어 놓은 그는 여전히 수원FC에 대한 애정을 숨길 수가 없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그가 전면에 나서는 건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조용한 한 팬이 돼 경기장을 찾고 있다. “김대의 아웃”이 울려 퍼진 경기장에서 조덕제 대회위원장은 그렇게 조용히 경기를 지켜본 뒤 자리를 떴다. 그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경기였다. 비록 그는 이제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조용히 경기를 지켜보는 팬이 됐지만 팀을 사랑하는 마음 만큼은 여전하다. 아마 다음 홈 경기 때도 그는 또 조용히 관중석 한 켠에서 수원FC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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