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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전 세계 축구인들에게도 생소한 장면들이 연출될 모양이다. 지난 3월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벤치에서 전자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칙을 변경했다. 우리는 중계화면을 통해 32개 축구협회 대표 감독들, 혹은 코치들이 NFL 감독들처럼 머리에 헤드셋을 낀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K리그 팬들에게는 익숙한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도 도입된다. 지난 3월 국제축구연맹(FIFA)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이 직접 말했다. 그는 "심판진이 더 정확한 판정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도구를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라고 전하며 이번 월드컵부터 VAR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프로 리그로서는 호주 A리그가 VAR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그 뒤를 이어 K리그1(클래식)이 2017년 7월부터,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도 이번 2017/2018 시즌부터 VAR을 시행했다.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는 2018/2019 시즌부터 도입이 확정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다음 시즌에도 VAR 도입을 보류하면서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우리 대표팀은 K리그 선수들과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이승우(헬라스 베로나)를 제외하면 VAR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우리 대표팀의 수비수 중 중앙 수비수들은 오반석을 제외하면 모두 VAR을 경험해보지 못한 선수들이다. 우리 대표팀의 가장 강력한 스타 손흥민과 주장 기성용도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VAR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스위스를 만났던 그날

2006년 6월 23일 하노버에서 우리 대표팀은 스위스와 조별 예선 경기를 치렀다. 우리 대표팀은 전반 23분 필리페 센데로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하는 경기였으나 좀처럼 동점골을 넣을 수 없었다. 그러다 후반 32분 사비에 마르제라즈가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패스한 공이 이호의 발을 맞고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연결됐다. 페널티 박스 안에 있는 선수는 프라이와 이운재뿐이었다. 프라이는 이운재를 제치고 결국 골을 기록했다.

프라이에게 공이 연결될 때 로돌포 오테로 부심은 프라이의 오프사이드 파울을 선언했다. 하지만 부심에게는 휘슬이 없었다. 오라시오 엘리손도 주심은 이호의 발에 맞은 공을 정확히 보고 프라이의 공격을 온사이드라고 판단했다. 그 사이 우리 수비수들은 부심의 깃발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운재만이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다.

국민들은 심판 판정에 분노하고 좌절했다. 언론은 일제히 '오심'이라는 단어를 쓰며 기사를 냈다. 언론은 "프라이의 추가골은 오프사이드였다"라고 말했다. 신문선 해설위원의 '온사이드' 소신 발언은 묵살됐다. 어쨌든 경기는 0-2로 우리 대표팀이 스위스에 패배하며 끝났다. 대회가 끝나고, 이성을 되찾고 나서야 정확히 '부심'의 오심이었음이 밝혀졌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K리그는 VAR 판독의 도움을 받은 골 판정이 많다. 골이 취소되는 등 논란이 됐던 장면도 있었으나 VAR의 순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골 장면이 더 많았다. K리그1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FC서울과 전북현대의 경기에서도 VAR이 제 몫을 했다. 이재성의 첫 번째 골은 부심이 깃발을 들며 오프사이드로 선언됐었지만 VAR을 통해 온사이드 상황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격수의 돌파 장면에서 상대 수비수들이 부심을 먼저 확인하는 장면은 꽤 자주 나타난다. 수비수들은 부심이 깃발을 들자마자 발을 멈추곤 한다. 오프사이드 트랩에 집중하는 전략을 썼다면 이해가 되지만 VAR 판독이 도입된 시점에서 이 전략은 매우 위험하다. 이는 공격수들도 마찬가지다. 프라이가 부심의 깃발을 보고 플레이를 멈췄다면 그의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공격수들도 일단 끝까지 해봐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스포츠의 기본 명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부심이 깃발을 들어도 플레이를 멈추지 말자. 한편으로는 그만큼 선수들이 집중하며 플레이했으면 좋겠다. 일단 막아 놓고, 일단 넣어 놓고 생각하자. 주심으로서는 휘슬을 분 이후에도 플레이를 계속하는 선수들에게 불만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때는 관중들의 환호 소리에 휘슬 소리가 안 들렸다고 항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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