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시작되면 또 이런 분위기가 연출될까. ⓒ부천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월드컵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다. 아마 과거에는 월드컵 개막을 보름여 앞둔 이 시점이었다면 여기저기에서 월드컵 열기가 느껴졌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줄곧 월드컵 소식을 보도할 테고 월드컵 응원가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김흥국 씨가 방송 섭외 1순위였을 것이고 연예인들이 저마다 축구를 사랑하고 있다며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이런 열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도 아니면서 앰부시 마케팅을 통해 수익만 쏙 빼가는 기업들이 얄미웠다. 평소에는 축구에 관심도 없다가 4년에 한 번씩 축구 사랑을 외치는 이들도 싫었다. 4년마다 월드컵 때만 되면 응원가를 발표해 홍보 수단으로 쓰는 통신사들의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길거리 응원이 시작되면 태극기를 리폼해 노출을 즐기며 관심을 받는 연예인 지망생들에게도 대단히 큰 거부감이 있었다. 이런 이들이 월드컵만 열리면 애국심인지 뭔지 모를 이유로 눈물을 흘리는 행동들이 싫었다.

물론 지금도 이런 현상을 좋게 보는 편은 아니다. 축구는 늘 우리 곁에 있는데 4년에 한 번씩 애국심으로 포장된 국제 이벤트에만 열광하는 현상이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건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한 번씩 축구가 관심을 받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요즘처럼 월드컵 인기가 시들해지니 월드컵 특수를 노리려는 이들마저도 사라졌다. 월드컵 인기가 대단해 어떻게든 월드컵 인기에 편승하려던 이들을 별로 찾아볼 수가 없다. 월드컵이 이제 보름 남았는데 여전히 월드컵 열기는 느낄 수 없다. 아마 과거였으면 지금쯤 전국이 들썩이고 있을 텐데 말이다.

지난 2010년 월드컵 당시의 모습. ⓒSBS

과연 월드컵 인기는 이제 과거 만큼 회복될 수 없을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그럴 것이다. 일단 팬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다. 나는 여전히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다수 팬들은 한국이 월드컵에서 16강 정도는 가줘야 그래도 1차적인 목표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8강 정도는 가야 감동할까 말까다. 현실과 이상에서 오는 괴리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 독일 다니엘이 나에게 “형 우리 월드컵 때 한 경기 정도는 같이 봐요”라고 하기에 이렇게 답했다. “너희는 월드컵 때 7경기씩 하지만 우리는 3경기가 전부야.” 나는 아직도 한국이 월드컵에서 3경기 이상 하는 게 어색하다. 태어나서 딱 두 번 경험해 봤다.

내셔널리즘으로 먹고 산 한국의 월드컵은 점점 거품이 빠질 것이다. 이제는 손 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해외의 수준 높은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축구에 애국심을 투영하는 것도 시시한 일이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월드컵이 매력적인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끝난 건 아니다. 나는 한국의 월드컵 첫 경기인 스웨덴전 결과에 따라 월드컵 열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내달 12일은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13일에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월드컵 개막 하루 전까지 한국에서는 역사를 바꿀 만한 이벤트가 줄줄이 열릴 예정이다. 이때까지는 월드컵에 올인할 수 없다. 월드컵이 점점 코앞으로 다가와도 월드컵 열기는 대단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전이 열릴 때쯤이면 온전히 월드컵에 집중할 분위기가 될 것이다. 스웨덴전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다면 과거 못지 않은 열정적인 분위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의 조별예선 통과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상황에서 이를 반전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스웨덴전에서의 승리 뿐이다. 연이어 멕시코와 독일을 만나는 한국으로서는 스웨덴을 이기지 못하고도 월드컵 16강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16강 진출을 위해서라도 스웨덴을 반드시 이겨야 하고 월드컵 열기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스웨덴을 꼭 잡아야 한다. 만약 스웨덴전을 그르치면 그 이후에는 월드컵 열기를 끌어올릴 수가 없다. 우리에겐 월드컵 조별예선이 세 경기나 있지만 첫 경기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지난 2010년 월드컵 당시의 모습. ⓒSBS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에 오를 때에도 첫 경기 폴란드전 승리가 굉장히 중요했다.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타야 한다.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꺼져가는 월드컵 열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첫 경기 승리가 필요하다. 스웨덴전을 이기고 분위기 좋게 시작하는 것과 2패를 당한 뒤 팬들의 외면 속에 독일을 상대로 ‘졌지만 잘 싸웠다’를 시전하는 건 느낌이 전혀 다르다. 스웨덴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만 나는 스웨덴만 잡는다면 대단히 좋은 분위기 속에서 남은 월드컵을 축제처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신태용 감독도 이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스웨덴전 맞춤형 전략을 위해 이승우와 문선민을 놓고 저울질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여기저기에서 월드컵 응원가를 발표하고 앰부시 마케팅을 하고 태극기로 몸을 가린 이들이 길거리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모습은 여전히 반갑지 않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삐뚤어진 내 생각이다. 그래도 월드컵이라면 이렇게 상업적으로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월드컵과 대표팀 경기의 가치가 높아져야 결국 협회가 더 돈을 벌고 이 돈이 유소년 육성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과도 같은 시들한 분위기에서는 이런 걸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 스웨덴전이 중요하다. 월드컵 직전까지 중요한 이슈가 많지만 막상 월드컵이 시작되면 이 열기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건 팬들을 들썩이게 할 수 있는 경기력뿐이다. 이게 나도 원하고 팬들도 원하고 치킨집 사장님들도 원하는 결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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