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매치 데이, 그들은 왜 안양과 효창으로 갔을까?


효창 WK리그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효창=홍인택 기자, 안양=조성룡 기자] 어제(28일) 축구팬들의 눈은 모두 대구로 쏠렸다. 대구스타디움에서 한국과 온두라스의 평가전이 열렸기 때문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치러지는 평가전이라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흥민이 펄펄 날았고 이승우와 문선민은 데뷔전에서 멋진 활약을 선보였다. 경기장에는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울펴 퍼졌다. 언론에서도 일제히 대표팀 소식을 보도했다. 월드컵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해도 이 경기가 열리니 월드컵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 이 땅에서 또 다른 축구경기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WK리그 경기장을 찾은 100여 명의 관중
<스포츠니어스>는 A매치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는 이때 다른 두 경기장으로 향했다.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국가대표 경기 대신 이 경기장을 찾은 이들의 사연이 궁금했다. <스포츠니어스>는 효창운동장에서 열리는 서울시청과 구미스포츠토토의 현대제철 H CORE WK리그 2018 8라운드 경기장을 찾았다. WK리그 선수들을 살피려는 여자 대표팀 윤덕여 감독을 비롯해 1백여 명의 관중만이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날 구미스포츠토토는 전반전 여민지의 활동량과 최유리의 번뜩임으로 서울시청을 몰아쳤다. 전반전 이세진의 골로 앞서갔으나 전반 종료 직전 서울시청 김민지가 동점골을 기록했고 후반전 서지연의 골까지 허용하며 1-2 역전패를 당했다.

구미스포츠토토는 경기 초반 압도하던 모습과는 달리 후반전 역전골을 허용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이며 결국 경기를 뒤집지 못한 채 패배했다. 반면 서울시청은 노소미를 중심으로 전방에서 압박하며 역습을 노렸고 공격의지가 강했던 구미스포츠토토의 수비 뒷공간을 노리며 날카로운 역습을 노렸다. 구미스포츠토토 응원석에는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구미스포츠토토를 응원했다. 구미스포츠토토가 다급한 마음에 수차례 반칙을 범할 때마다 이 4~50명 가량의 중년 남성들은 심판을 향해 야유했다. 이곳엔 응원을 위한 타악기도 전혀 없었으나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국가대표 경기가 있는 날 혈기 왕성한 ‘아저씨’들이 경기장에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스포츠토토 직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상암동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인사과 직원들이 스포츠토토의 경기 일정을 파악하고 사내로 공지를 내렸다. 한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후원사이기도 하고요. 국가대표는 알아서 잘하겠죠. 하하.” 그러자 옆에 있던 한 관중도 거들었다. “대구는 너무 멀잖아요. 마침 이 팀이 구미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는데 응원하러 와야죠.”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들은 경기내내 구미스포츠토토를 열심히 응원했다. 비록 대구스타디움을 찾은 붉은악마 만큼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열정은 붉은악마 못지 않았다.

반대쪽 홈 팀 서울시청의 응원석에는 응원단장과 치어리더, 그리고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젊은 남성이 눈에 띄었다. 잠실에서 왔다는 최 모씨(25)는 국가대표 경기를 보지 않고 이 경기장을 찾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여자축구는 처음 보러 왔어요. 국가대표 경기도 관심이 있지만 여기 응원단장 때문에 왔어요. 응원단장이 지인이거든요. 여자축구도 45분 뛰는지 몰랐는데 생각보다 진짜 잘하는 거 같아요. 여자축구 무시하면 안 되겠어요.” 이 관중은 서울의 시즌 두 번째 승리를 지켜보며 활짝 웃었다. 비록 1백여 명의 적은 관중이었지만 이들에게는 관심이 부족한 WK리그 경기에서 A매치 못지 않은 즐거움을 느꼈다. 이 경기를 찾은 취재진은 두 명이었다.

안양 K리그2
K리그2 경기가 열린 안양종합운동장을 찾은 이들. ⓒ스포츠니어스

관계자도 놀라 “왜 여기에?”
같은 시각 <스포츠니어스>는 안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K리그2 경기장에도 찾아갔다. 사실 많은 관중과 관심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관중석은 평소보다 더 한산했다. 딱히 위기 의식을 느끼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날 만큼은 국가대표 평가전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딱 축구보기 좋은 날이었다. 다만 대한민국과 온두라스 대신 FC안양과 서울이랜드가 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경기장을 찾은 이들은 A매치가 열리는 시간임에도 경기장을 찾은 다른 이들을 보며 서로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취재를 위해 자리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조영증 한국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이 있었다. 조 위원장이 반갑게 인사하면서 약간 놀란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웃으며 취재를 왔다고 하자 지금까지 서로 인사하고 덕담 정도 주고받던 그가 좀 더 질문을 던졌다. “거긴 뭐하는 매체인가요? 기자는 몇 명이나 있어요?” A매치가 열리는 날 K리그2 경기장을 찾은 기자를 보며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사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은 익숙하다. 웃으면서 한 마디 던졌다. “변태 같은 곳 있어요.” 이 경기장에는 <스포츠니어스>가 유일하게 현장 취재를 왔다.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됐다. 관중들은 일제히 시선을 그라운드에 고정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바빴다. 그라운드에 눈길을 줬다가 금새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화면에는 국가대표팀 경기가 나오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두 아이의 아버지 한 분도 그랬다. 경기장을 찾은 이유야 축구를 보러 왔을 테지만 이런 날은 A매치 대신 K리그2 경기장으로 온 이유를 꼭 물어보고 싶었다. 경기장을 찾은 이유를 묻자 멋쩍게 웃으며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이 팬인데 꼭 오자고 해서…” 그러더니 반문한다. “그러면 기자님은 왜 오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열렬히 응원했던 한 남자, 그리고 515명의 관중
그런데 후반전 들어서 안양의 테이블석에 한 남성이 보였다. 안양 엠블럼이 박힌 옷을 입고 있는 그는 유독 그라운드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반응도 서포터스 못지 않았다.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아쉬운 장면이 있을 때는 누구보다 크게 탄식을 뱉었다.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호기심이 생겨 누군지 물어봤더니 예상을 뛰어넘는 답변이 돌아왔다. “저 안양 선수인데 아까 퇴장 당했어요.” 전반전 추가시간에 퇴장 당한 최재훈이었다. 그는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다. 유니폼을 벗으며 격하게 억울함을 표현했지만 판정이 번복되지 않았다.

이후 라커룸에서 선수들과 함께한 그는 관중석으로 이동해 경기를 보고 있었다. “너무 아쉬워서 라커룸에서 혼자 물병도 집어던지고 그랬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후반전 직전에 선수들 파이팅 같이 해주고 나왔어요. 사실 라커룸 안에 있으려고 했는데 제가 이렇게라도 힘을 불어줘야 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의 손에는 물 한 통과 바나나가 들려 있었다. 남들이 맥주와 컵라면, 또는 치킨을 먹을 때 그는 자신 만의 방식으로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다음 경기는 못 나서지만 그래도 영양을 섭취해야죠.” 그러면서 최재훈은 안절부절 못했다. “이거 지면 감독님 뵐 낯이 없을 것 같아요. 경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무리했어요.” 그래서 유독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커 보였나보다.

다행히 안양은 알렉스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그는 슬슬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있었다. 구단 관계자들이 “너 없으니까 더 잘 한다”라고 놀려도 그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 막판 문준호의 추가골이 터지자 최재훈은 미친 듯이 환호했다. 그러더니 주심의 종료 휘슬과 함께 그라운드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안양 옷만 아니었다면 관중 난입이나 다름 없었다.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경기하니까 보는 것도 진짜 재밌네요. 이렇게만 하면 관중 늘어날 것 같아요”라는 말을 남긴 채. 이날 경기장에는 515명의 유료 관중이 모였다. 무료 관중까지 합하면 907명이었다. 평소에 비하면 적은 관중수였지만 A매치가 열린 날 A매치까지도 포기하고 K리그2 경기장으로 달려온 이들은 어느 때보다도 빛나보였다.

전반전에 선수로 뛰다가 그라운드에서 쫓겨나 졸지에 관중이 된 안양 최재훈 ⓒ FC안양 제공

A매치가 열리던 날, WK리그와 K리그2의 풍경
그들은 편하게 집에 앉아 국가대표팀 경기를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에 나와 작은 화면으로 데이터를 펑펑 쓰면서 국가대표팀 경기와 K리그2 경기를 함께 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이상하다고 놀렸지만 사실 그 경기장 안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국민이 열광하는 국가대표 경기도 포기하고 WK리그 경기장과 K리그2 경기장을 찾은 이들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얼마 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상당 부분 동의하는 말이다. 우리는 축구를 좋아하기 보다는 국가대표를 좋아한다. 하지만 효창과 안양에서 만난 이들은 조금 달랐다.

intaekd@sports-g.com,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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